1. 개요
鈴木武幸일본의 특촬물 프로듀서,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1945년 1월 26일 출생([age(1945-01-26)]세).
2. 경력
어린 시절 당시 몇 없던 TV가 있는 가정에서 자라 TV를 좋아했으며 토에이에 입사할 때도 영화가 아닌 TV제작 부서를 지망했다. 토에이에서는 TV부서는 힘들고 영화보다 못한 부서라 일부러 간다는 사람이 없어 희한한 녀석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한다.힘내라!! 로보콘의 프로듀서로 데뷔해 큰 히트를 했다. 데뷔작부터 히트해서 자신이 천재라 생각했으나 이후 여러 벽에 부딪히면서 그게 아니란 걸 깨닫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반성하면서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1970년대 후반 잠시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로 주로 활동했다. 당시 토에이에서는 특촬물에서 힘을 빼자는 판단을 해 히라야마 토오루, 요시카와 스스무 같은 특촬물 프로듀서도 애니메이션으로 이동해 일을 했었는데 대부분 적응하지 못하고 작품도 실패했지만, 스즈키는 애니메이션 쪽에서도 히트작을 배출했다. 이때 만난 나가하마 다다오 감독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슈퍼전대 시리즈로 이동했으며 연속으로 대형 작품을 맡아 전대 시리즈를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매년 하는 시리즈로 성장시켰다. 한국에선 전대가 장수 시리즈라 꾸준히 인기 시리즈였다고 생각하지만 스즈키가 전대를 만들던 시절엔 메탈히어로 시리즈가 전반적으로 더 인기였으며 토에이에서도 전대는 그만 만들라는 요구가 많았다고 한다.[1] 스즈키는 성인 팬과 여성 팬을 공략하는 등 새로운 시도로 일정 이상의 팬덤과 시청률을 확보해 전대를 계속 유지했으며 전격전대 체인지맨에 이르러서는 메탈 히어로를 흥행으로 이겨버리기도 했다.
파워레인저로 전대의 해외 진출도 성사시켰다. 감수 역으로 참가했는데 미국 측과 대화를 하면 문화 차이 때문에 많은 충격을 받곤 했다고 한다. [2]
1996년부터 TV부 총책임자의 자리에 오른다. 2010년에 전무이사로 승진. 2018년 토에이를 퇴사했다.
3. 특징
CG를 싫어하고 미니어처 특촬을 좋아한다. 그래서 스즈키가 만든 슈퍼 전대는 미니어처 합체, 전투신의 질이 상당하다. 1980년대는 CG가 제대로 안 나오던 시절이니 어쩔 수 없지만 1990년대에도 CG로 만드는 걸 최대한 거부했다. 2000년대에 로봇 전투를 전부 CG로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스즈키가 반대해 막았다고 한다. 스즈키 타케유키가 2018년 퇴임한 뒤 나오는 토에이 특촬은 CG가 늘어나는 중이다.드라마가 있는 작품이 성공한다는 것이 신조. 아무리 잘 생긴 캐릭터나 로봇이 있어도 그 캐릭터에 서사와 드라마가 없으면 멋져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스즈키 이전의 슈퍼전대 시리즈는 개그색이 강했는데 스즈키는 심각한 분위기를 넣었다. 전대 초기엔 능력있는 스태프는 요시카와 스스무 같은 선배가 다 빼앗아 갔는데 드라마를 만들려면 소다 히로히사, 호리 나가후미, 나가이시 타카오 이 3명은 반드시 필요하다 생각해 양보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외엔 대부분 신인을 썼으며 이노우에 토시키, 아메미야 케이타 등을 발굴하기도 했다.
애니메이션과 특촬물을 번갈아 했던 특이한 경력의 프로듀서라 애니메이션에서 하던 것을 특촬물에 다수 도입했다. 이즈부치 유타카 같은 애니메이션 쪽 디자이너를 불러오기도 했다. [3] 특히 애니메이션에서는 많은 5체 합체 로봇을 특촬물에서 실현하는 게 꿈이었다고 한다. 여러 현실적인 사정으로 못하다[4] 광전대 마스크맨에서 처음으로 5체 합체를 실현했다.[5] 이후로는 전대에 5체 합체 로봇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스즈키의 특촬은 애니메이션 같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한국 특촬팬덤은 전반적으로 드라마틱하고 스토리가 탄탄한 작품을 좋아하는데 스즈키가 이런 작품을 주로 만들어서 스즈키 작품의 인기가 상당히 높다. 한국에서는 전대의 이미지가 스즈키의 작품을 기준으로 굳어져서 스즈키가 들어오기 전에는 전대가 코미디 색이 강한 시리즈였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꽤 있을 정도다.[6] 일본에서도 스즈키의 전대는 성인 팬덤의 지지가 높다.
제자는 시라쿠라 신이치로가 있다.
4. 작품
전부는 아니다. 굵은 글씨는 치프 프로듀서 작품.- 힘내라!! 로보콘 (1975) - 기획은 히라야마 토오루. 현장 프로듀서가 스즈키였다고 한다.
- 아쿠마이저 3 (1975)
- 초신 비뷴 (1976)
- 로봇 110번 (1977)
- 쾌걸 즈밧토 (1977) - 기획은 스즈키가 했다고 한다. 제작은 스케줄이 겹쳐 불참.
- 빙하전사 가이스러거 (1977)
- 모험 패밀리 여기는 행성0번지 (1977)
- 투장 다이모스 (1978)
- 미래로보 달타니어스 (1979)
- 사이보그 009 ( 타카하시 료스케 감독판) (1979)
- 태양전대 선발칸 (1981)
- 대전대 고글파이브 (1982)
- 과학전대 다이나맨 (1983)
- 초전자 바이오맨 (1984)
- 전격전대 체인지맨 (1985)
- 초신성 플래시맨 (1986)
- 광전대 마스크맨 (1987)
- 초수전대 라이브맨 (1988)
- 고속전대 터보레인저 (1989)
- 지구전대 파이브맨 (1990)
- 조인전대 제트맨 (1991)
- 공룡전대 쥬레인저 (1992)
- 오성전대 다이레인저 (1993)
- 닌자전대 카쿠레인저 (1994)
- 초력전대 오레인저 (1995) - 요시카와 스스무와 공동 메인.
- 가면라이더 쿠우가 (2000) - 승진하고 현장을 떠나서 책임자 일을 하고 있는데 타카테라 시게노리와 아라카와 나루히사가 각본을 느리게 제출해서 작품을 펑크낼 지경이라 직접 현장으로 내려와서 수습했다고 한다. 타카테라와 아라카와를 자르려고 했는데 이노우에 토시키가 말려서 참았다고.
- 특수전대 데카레인저 (2004) - 제작총괄
- 마법전대 마지레인저 (2005) - 제작총괄
- 가면라이더 THE FIRST (2005) -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 가면라이더 THE NEXT (2007) -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
[1]
다만 완구 판매 실적은 몇몇 작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전대가 메탈히어로보다 우세였다.
[2]
예로 일본에선 화약으로 펑펑 터트리는 연출을 좋아하는데 미국 쪽에 보여주니 "이게 뭐가 멋있죠?" 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었다고 한다.
[3]
투장 다이모스 때 10대로 데뷔한
이즈부치 유타카의 디자인을 보고 대단하다 생각해 나중에 불렀다고 한다.
과학전대 다이나맨,
초전자 바이오맨,
전격전대 체인지맨,
초신성 플래시맨이 이즈부치 디자인 작품.
[4]
슈트 제조기술 부족, 자금 문제 등.
[5]
다만 마스크맨의
그레이트 파이브는 슈트 내부가 비좁아 슈트 액터가 도저히 이거 입고 연기 못 하겠다고 해서 중반부터 퇴출되었다.
[6]
그래서 예전의 한국의 특촬, 전대 커뮤니티에서는 과거 노선으로 회귀했던
공룡전대 쥬레인저와
초력전대 오레인저가 그렇게 환영받지 못하기도 했다. 다만 세월이 흐르고 개그 전대가 점점 늘어나면서 이러한 작품도 받아들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