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02:12:13

세르지오 파리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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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즈마 SC
Kazma Sporting Cl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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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세르지우 히카르두 지 파이바 파리아스
Sergio Ricardo de Paiva Farias
출생 1967년 6월 9일 ([age(1967-06-09)]세)
호라이마
국적
[[브라질|]][[틀:국기|]][[틀:국기|]]
신체 미상
직업 축구 감독
소속 감독 상 마테우스-ES (1993~1994)
다흐라 (1994~1995)
세라누-RJ (1995~1998)
브라질 U-20 (1998~1999)
CA 주벤투지 (1999~2000)
산투스 FC (2000 / 유소년 감독)
브라질 U-17 (2000~2001)
브라질 U-20 (2001)
산투스 FC (2002 / 유소년 감독)
우니앙 바르바렌시 (2003~2004)
포항 스틸러스 (2005~2009)
알 아흘리 SFC (2010)
알 와슬 FC (2010~2011)
광저우 푸리 (2012~2013)
두 케데카시아스 (2014)
수판부리 FC (2014~2015)
노스이스트 유나이티드 FC (2015~2016)
수판부리 FC (2016~2017)
알 힐랄 EC[1] (2018)
엘 가이쉬[2] (2019~2019.11)
움 살랄 SC (2021)
알 코르 SC (2021~2023)
카즈마 SC (2023~ )
국가대표 없음

1. 개요2. 선수 경력3. 감독 경력
3.1. 포항 스틸러스 시절 (2005 ~ 2009)3.2. K리그 이후3.3. K리그 복귀설
4. 이야깃거리

[clearfix]

1. 개요

브라질 축구선수 출신 감독. 현재 쿠웨이트 카즈마 SC 감독을 맡고 있다.

2005년부터 2009년까지 K리그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맡은 적이 있으며 5년간 포항을 맡으면서 K리그(2007), FA컵(2008), 리그컵(2009), AFC 챔피언스 리그(2009) 우승컵을 모두 들어올렸다. 1990년대의 부천 SK(현 제주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맡았던 발레리 니폼니시, 2000년대 후반 FC 서울의 감독을 맡은 세뇰 귀네슈와 함께 K리그에 변화를 가져온 외국인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2. 선수 경력

유소년 축구선수였으나 심각한 무릎 부상을 입고 18살에 은퇴하여 바로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3. 감독 경력

1988년 바스코 다 가마 유소년팀 코치를 시작으로 98-99년과 2001년에는 브라질 U-20팀, 00-01년에는 브라질 U-17팀을 맡아 호나우지뉴 아드리아누를 키워냈다. 03-04 시즌에 브라질 3부리그팀인 우니앙 바르바렌시를 리그 우승으로 이끌고 2005년 포항 스틸러스 감독에 취임, 팀에 브라질식 축구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3.1. 포항 스틸러스 시절 (2005 ~ 2009)

당시 포항에서 파리아스를 스카웃 하러 갔을 때 담당자는 한 눈에 '이 감독 뭔가 해낼 것 같다' 는 생각에 그를 구단에 추천했으나 정작 포항 구단에서는 그의 경력과 나이(당시 38세)에 고개를 갸웃했다고 한다. 그래서 담당자는 의도적으로 파리아스에 대해 뻥튀기를 해서 구단을 설득시켰다고 한다.

파리아스 취임 전 포항 스틸러스의 감독은 최순호였는데 당시 포항은 전년도 리그(2004)에서 전기리그 우승으로 후기리그 우승팀 수원과 챔피언 결정전에서 이운재(수원)가 김병지(포항)의 승부차기를 막음으로서 포항은 준우승에 그쳤다. 이미 오랫동안 서포터즈와 구단은 최순호에 대한 감정이 쌓여있었고 결정적으로 이 해 포항은 전기리그는 우승했으나 후기리그에서 꼴찌를 찍으면서[3] 90년대 포항의 화끈한 공격축구를 기억하는 포항팬들에게 몇년간 포항이 보여준 팀컬러(K리그의 고질적인 수비지향 축구)에 이미 많은 팬들이 포항을 떠난 상태라 포항으로서는 리빌딩 작업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구단도 처음부터 큰 성적을 기대하기 대신 장기적인 안목에서 감독과 스태프를 신뢰했고 이러한 전폭적인 지원 속에 감독으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면서 한국 축구에 남미 축구의 컬러를 입히는 데 성공했다.

전방 미드필더부터 강한 압박으로 상대방을 쉴새없이 두들기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K리그에 도입하여 스틸타카라 불리는 포항의 패스축구의 기틀을 마련하였으며, 같은 시기의 FC 서울의 외국인 감독 세뇰 귀네슈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며 뻥축구, 수비축구로 대변되던 K리그에 신선한 변화를 몰고 왔다. 더불어 2005년을 기점으로 수비축구에 물들어있던 K리그의 체질 자체를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한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특히 훈련과 경기에서 수비라인에서 백패스를 일절 금지시킬 정도로 공격적이고 안정적인 경기운영에 포커스를 두었다.

또한 유소년 조련에 일가견이 있어서 2005년부터 꾸준히 키워왔던 신인들의 포텐셜이 폭발했다.[4] 더욱이 뚜렷한 S급의 스타 선수가 없는 포항의 팀 특성상 포지션별로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여 대부분의 선수를 A급 선수로 만들었다.[5][6]
  • 2007년: 리그 우승, FA컵 준우승
    2008년: FA컵 우승
    2009년: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ACL) 우승, 피스컵 코리아(컵 대회) 우승[7], 리그 3위[8]
K리그, FA컵, 리그컵, AFC 챔피언스 리그를 모두 우승컵을 들어올린 외국인 감독으로는 세르지오 파리아스 감독이 유일하다. 더불어 2005년을 기점으로 수비축구에 물들어있던 K리그의 체질 자체를 바꾸는 데 큰 기여를 한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하다.

특히 2009 AFC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브라질을 우승시킨 스콜라리 감독과 당시 우승멤버 히바우두가 이끄는 분요드코르를 상대로 1차전 원정에서 1-3으로 패배하고도 홈에서 4-1로 역전승을 거두면서 고국인 브라질에서도 유명해졌다. 이 경기 결과로 브라질 지도자계에서도 주목을 받고 아시아 클럽들, 특히 오일머니로 무장한 중동클럽들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9]

승리보다는 경기 과정을 중시하며 경기를 이기더라도 경기 내용이 좋지 않으면 자기 팀 선수라도 가차 없이 질책할 정도의 실력을 우선한다.[10]

본인은 포항에서 사는게 너무 좋다고 하면서 가족을 전부 포항에 데려왔었다. 보통 K리그 팀을 지도했던 외국인 감독들은 이런 식으로 팀에 대한 애정을 나타낸 적이 없어서 꽤나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일례로 구단에서 재계약 직전 파리아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자동차 에쿠스를 선물했는데, 파리아스 감독은 "감독이 구단 사장보다 더 좋은 차를 탈 수는 없다."면서 몇 번이나 거절했다. 당시 사장이 탔던 차는 오피러스였다. 결국 사장에게 에쿠스를 타게 하고 사장이 타던 오피러스를 파리아스 감독이 가져갔다.

한국문화에도 완벽히 적응해서 인터뷰 중 난처한 질문이 들어오면 웃으며 한국말로 "몰라."라고 말하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브라질 출신에 포항에서 보여준 성과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 국가대표로 모시자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왔고, 본인도 피스컵 코리아 결승전에서 우승한 후 인터뷰에서 " 조국에서 열리는 월드컵에 감독으로 나서고 싶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맡고 싶은 나라가 한국이냐는 질문에는 웃으면서 한국어로 "몰라."라고 답했다. #

3.2. K리그 이후

2009년 중반 ACL에서 포항 스틸러스가 승승 장구하자 파리아스 감독은 일본과 중동 클럽들의 잇따른 러브콜을 받게 된다. 그러나 2009년 6월 포항 스틸러스는 파리아스 감독과 2011년까지 재계약에 합의했고, 파리아스 감독도 2011년까지 포항과 끝까지 간다고 팀에 대한 애정을 변함없이 밝혔다. #

2009 FIFA 클럽 월드컵 도중 파리아스 감독의 알 아흘리 이적설이 흘러나오고, 파리아스 감독은 이에 대해 사우디 클럽들의 언론 플레이라며 이적설 자체를 일축시켰다.

그러나 2009년 12월 20일 클럽월드컵 3위 결정전에서 승리한 후 팀을 떠나겠다고 선언하면서 축구단과 선수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유는 가족 때문이라면서 브라질에서 1년동안 쉬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팬들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웃으며 보내려 했지만 시즌 중에 계약기간이 6개월이나 남은 상태에서 라이벌 FC 서울과 협상을 벌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호의적인 포항 팬들에게마저 큰 충격을 안겨주었으며 일부 팬들은 심한 표현으로 배신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2009년 12월 21일. 사우디의 알 아흘리의 지휘봉을 잡는다는 소식이 났다. 계약 기간은 1년 6개월이며 총 계약금액은 30억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처음 포항을 떠나겠다고 밝혔을 때 표면적인 이유는 포항에 국제학교가 없어 자식교육이 힘들다는 것이었다.[11] 나름대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싶다였으나 막상 그 결과는 처음부터 이적설이 나돌던 알 아흘리로 이적이었고 팬들은 큰 배신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와 관해서 파리아스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이 끝난 이후 인터뷰에서 본인의 소신을 밝혔다. #

알 아흘리 감독 부임 이후 부진하는 모습을 보였고 2010 AFC 챔피언스 리그는 2승 4패를 기록하면서 조별 예선에서 탈락했고, 사우디 리그에서는 6위를 기록하면서 AFC 챔피언스 리그 진출에 실패했다. 결국 2010년 7월 30일자로 알 아흘리 감독직에서 경질됐다.

경질 이후 이틀 만에 UAE의 알 와슬 클럽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2011년 4월 리그 4위의 괜찮은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성적 부진을 이유로 경질됐다.

2012년 1월 1일, 시즌을 앞두고 중국 슈퍼리그의 광저우 푸리의 감독으로 부임했다.

2012 아시아 챌린지 컵 4강전에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성남 일화 천마에게 1-5로 대패를 당했다. 하지만 3위 결정전에서 사우스차이나를 승부차기 끝에 꺾어서 3위를 차지했다.

2012년에는 슈퍼리그 7위, 2013년에는 6위로 약간 성적이 오르지만, 기대한 것보다는 지도력이 미치지 못해서 결국 2013년 5월 사임했다.

광저우에서 경질된 뒤 2014년 2월 브라질의 두케 데 카시아스 (Duque de Caxias Futebol Clube) 감독으로 선임되어 잠시 소속된 뒤 2014년 12월 11일 태국 프리미어 리그 소속의 수판부리의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1년 계약 후 1년 연장 옵션이다. #

2015년 경질되었고, 인도 슈퍼 리그의 노스웨스트 유나이티드에 1년간 재임했다.

2016년 7월 9일 다시 수판부리에 부임했으나 2017년 4월 경질되었다.

이후 수단의 프로클럽 알 힐랄 EC을 거쳐 2019년 이집트의 엘 가이쉬의 감독으로 부임했으며, 중국 우한에서 열린 친선 대회에 참가한 뒤 방한하기도 했다. # 하지만 이후 계약 해지를 했다.

2021년 6월 움 살랄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3.3. K리그 복귀설

2010 시즌 포항 스틸러스에 후임으로 부임했던 와우데마르 레무스 감독이 경질당하기 전날 포항 프론트를 다녀갔다는 루머가 있었으나, 실제론 5월 중순 즈음에 직접 포항에 방문하였다. 이유는 포항과의 위약금 문제나, 국내에 납부하지 않은 세금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을 굳이 본인이 와서 해결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에 포항 복귀설이 나왔다.

구단에서는 "포항의 팬들이 진정으로 파리아스 감독의 복귀를 원한다면 우리도 고려할 수는 있다."면서 약간의 가능성은 열어두었다. 그리고 2010년 5월 14일, 포항 명예시민증을 받음과 동시에 포항과의 협의(AFC 우승에 대한 성과급 지급 및 계약불이행 지불 등에 대한)를 위해 전격 귀국하면서 파리아스 본인이 직접 "포항이 원한다면 돌아올 용의가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포항 구단에서는 2010 시즌은 박창현 코치 대행 체제로 간다고 못을 박음으로써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2010 전반기를 마치고 수원 삼성 차범근 감독이 성적 부진을 이유로 사임 이후 수원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루머가 돌았으나 후임으로 윤성효 감독을 선임하면서 잦아들었다.

또한 포항은 2010 시즌이 끝난 이후 현역 시절 포항의 레전드였던 황선홍 감독이 부임하면서 전성기 파리아스 감독 시절의 팀컬러를 되찾는데 성공하면서 포항과 파리아스 감독이 재회할 가능성은 더욱 더 낮아졌다.[12]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이 끝난 2014년 7월 16일, 스포탈코리아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K리그로의 복귀를 희망한다는 인터뷰를 했다. # 하지만 이후에도 하마평에 오를 뿐 K리그로 복귀는 갈수록 요원해졌다.

2015년 11월 황선홍 감독이 사임을 표한 이후 포항 스틸러스 감독을 부임설이 있었으나 포항은 후임으로 최진철을 선임했다.

4. 이야깃거리

2009년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이후 포항시에서 카 퍼레이드와 기념 축하 행사를 열어주겠다고 하자 오랫동안 숙원이었던 소방차 카 퍼레이드를 부탁했다. 그리고 포항시는 이를 승락했고, 원래 요청한 소방차 2대에서 3대로 늘려서 카 퍼레이드를 열어주었다. 이것 때문은 아니지만 2008년 12월 파리아스 감독은 포항시 남부소방서의 일일명예소방서장을 맡았고 그 자리에서 다음에 우승하면 소방차를 빌려달라고 부탁했었다. 하필 소방차인 이유는 파리아스 감독의 고국인 브라질에서는 축구 클럽이 우승하면 소방차로 물을 뿌리는 세레모니를 펼치기 때문이라고 한다. 브라질이 남미 열대 지방이라 이런 전통이 있다고 한다

2007시즌 우승의 주역이었던 따바레즈와는 사이가 안좋았다고 한다. 브라질 대표팀 각 급 엘리트 코스를 다 거쳐 자기애가 강한 따바레즈와 축구에 대한 철학이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바레즈는 브라질 U-17, U-20, U-23 대표팀 경력이 있는 선수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당시 2007년 팀의 전술 자체가 따바레즈를 중심으로 두는 전술이었기 때문에 따바레즈가 떠난 2008년에는 포지션과 스쿼드에 변화를 주느라 상당히 애를 먹었었다.

포항시에서 지어준 한국식 이름 "빠리다"가 있으며 백 네임으로 마킹한 팬들이 많았다. 본인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인터뷰에서 말하길 자신의 가문은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포항 스틸러스와는 안좋게 헤어졌지만 이후 한국에 방문하여 구단 프론트에 사과하고 위약금 문제도 해결하고 돌아갔다. 이후 2010 AFC 챔피언스 리그 8강 원정차 UAE에 입국한 포항 선수들에게 소속팀의 연습구장을 통째로 빌려주는 등 나름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1] 수단의 프로축구팀 [2] 이집트 프로 축구 팀 [3] 이 때문에 전기, 후기 리그의 제도에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4] 당시 포항은 FA로 영입하는 선수는 신통치 않고, 구단에서 생각대로 자신이 원하는 인재를 사주기는커녕 오히려 뺏기는 일이 계속되자 그냥 FA는 포기하고 감독 스스로 선수 육성에 더 매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5] 그 결과 2009 전반기에는 공격수보다 미드필더 선수들이 몰아넣은 골이 더 많은 진풍경도 연출되었다. [6] 대표적인 것이 파리아스 감독은 홈, 원정 경기를 가리지 않고 출전 선수 명단에서 항상 1명 더 많은 선수를 데리고 벤치에 들어간다. 이후 그 날 선수들의 상태에 따라 1명은 경기 시작과 함께 관중석으로 올려보내는 꽤나 독특하면서도 효과적인 선수 조련법을 썼다. [7] 컵대회는 2011년 러시앤캐시컵을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8] 리그를 2위로 마쳤으나, 당시 K리그는 플레이오프 제도가 있었다. K리그 챔피언쉽 플레이오프에 직행했으나 성남 일화에게 0-1로 일격을 당해 아쉽게 시즌 더블에는 실패했다. [9] 2004년에도 브라질 유망지도자 4인 중 한 명으로 꼽히기도 했지만 이 정도의 능력을 가졌다고 평가받지는 못했다. [10] 일례로 2009 피스컵 코리아 결승 1차전에서는 부산과 지리한 경기끝에 무승부를 기록하자 오늘 경기 평가를 묻는 기자들에게 "당신들이 보기에 오늘 경기가 결승전 같았나?"면서 포항 선수들을 비평했다. 2009 ACL 결승전 직후 인터뷰에서도 기쁨을 표시하면서도 "결승전과 8강전을 빼곤 그리 수준높은 경기를 하지 못했다"고 자평했다. [11] 파리아스 딸이 14세인데도 학교를 다니지 못했으며 5년동안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았다. 포항에는 국제학교가 없고, 포항에서 가까운 국제학교는 부산 해운대에 위치해있다. [12] 황선홍 감독과 파리아스 감독의 스타일은 다소 차이가 있는데, 백패스를 금지하다시피 하면서 매우 공격적인 스타일이었던 파리아스 감독에 비해, 황선홍 감독은 패스워크를 통한 미드필더의 우위를 가져감과 동시에 때에 따라선 백패스를 포함한 수비에도 신경을 쓰면서 공격수 없는 제로톱 전술에서, 파이브백의 잠그는 전술까지 상황별로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는 편으로 파리아스 시절의 장기는 살리면서 팀 밸런스가 한층 더 업그레이드 되었다. 또한 파리아스 시절에는 기본적으로 베스트 멤버간의 경쟁은 유도하되 포항 유스는 잘 안 쓰고 외부영입과 용병(데닐손, 스테보)에 의존했던 것에 비해, 황선홍 부임 이후에는 갈수록 구단의 재정상황이 악화되는 탓에 외부영입에 의존하지 않고 유스로 팀을 꾸려나가는 시스템을 완벽히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