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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고비아 공작 인판테 하이메

<colbgcolor=#C4E4EE><colcolor=#000> 세고비아 공작 인판테 하이메
Infante Jaime, Duque de Segovia
파일:Jaime_Enrique_de_Borbón.jpg
이름 스페인어 하이메 레오폴도 이사벨리노 엔리케 알레한드로 알베르토 알폰소 빅토르 아카시오 페드로 파블로 마리아 데 보르본 이 바텐베르그
(Jaime Leopoldo Isabelino Enrique Alejandro Alberto Alfonso Víctor Acacio Pedro Pablo María de Borbón y Battenberg)
프랑스어 자크 레오폴 이자벨랭 앙리 알렉상드르 알베르 알퐁스 빅토르 아카스 피에르 폴 마리 드 부르봉
(Jacques Léopold Isabéllin Henri Alexandre Albért Alphonse Victor Acace Pierre Paul Marie de Bourbon)
출생 1908년 6월 23일
스페인 왕국 세고비아 라 그랑하 데 산 일데폰소 궁전
사망 1975년 3월 20일 (향년 66세)
스위스 장크트갈렌 장크트갈렌 주 병원
배우자 에마누엘라 데 담피에레 (1935년 결혼 / 1947년 이혼)
샤를로테 티데만 (1949년 결혼)
자녀 알폰소, 곤살로
아버지 알폰소 13세
어머니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지니 공녀
형제 알폰소, 베아트리스, 페르난도, 마리아 크리스티나, 후안, 곤살로
종교 가톨릭
1. 개요2. 생애3. 후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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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 보르본 왕조의 왕자이자, 프랑스의 왕위 요구자이며, 부르봉 왕조, 카페 왕조의 전체 당주. 프랑스 왕위 요구자로서 자칭한 왕호는 자크 2세(Jacques II)앙리 6세(Henri VI).

스페인 국왕 알폰소 13세 빅토리아 유지니의 차남으로, 후안 카를로스 1세의 둘째 큰아버지이자 펠리페 6세 큰할아버지이다.

2. 생애

1908년 6월 23일에 스페인의 알폰소 13세와 빅토리아 유지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의 형이자 후안 카를로스 1세의 둘째 큰아버지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에 받았던 수술의 영향으로 인해 청각 장애를 앓았다. 1933년에 세고비아 공작위를 받았다.

1935년에 이탈리아 왕국 로마에서 프랑스 귀족 여성인 에마뉘엘 조제핀 드 담피에르(1913년 ~ 2012년)와 결혼했다. 이는 엄밀히 말하면 귀천상혼이였으나, 알폰소 13세는 허락했다. 슬하 2남을 두었고, 1947년 5월 6일 이혼하였다. 1941년에 아버지였던 알폰소 13세가 사망하여 명목상 프랑스 왕위 계승권을 승계받았다. 처음에는 퍼스트 네임인 하이메(Jaime)를 프랑스식으로 치환한 자크(Jacques)를 왕호로 하여 자크 2세(Jacques II)로 자칭했으나,[1] 1957년 이후에는 미들 네임인 엔리케(Enrique)를 프랑스식으로 치환한 앙리(Henri)를 왕호로 한 앙리 6세(Henri VI)를 자칭했다.[2]

1949년에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독일의 가수인 샤를로테 루이제아우구스테 티데만(1919년 ~ 1979년)과 재혼했다. 자녀는 없었다. 같은 해 하이메의 첫째 아내였던 에마뉘엘 조제핀은 안토니오 소차니와 재혼하였다.

1969년 7월 19일, 조카 후안 카를로스 1세를 스페인의 왕위 계승자로 인정했다.

이후 1975년 3월 20일, 스위스에서 사망하였으며, 명목상 프랑스 왕위와 카페 왕조 전체 수장 자리는 장남인 카디스 공작 알폰소가 물려받았다. 하이메의 유해는 엘 에스코리알에 안장되었다.

3. 후손

조지 6세처럼 차남인데 왕이 된 것도 아니고, 오토 폰 합스부르크처럼 마지막 황태자 같은 거창한 타이틀도 없지만 명목상 프랑스의 왕위를 소유했으며, 동시에 850년 유서 깊은 유럽 최대의 왕조인 카페 왕조의 수장이었다. 원칙대로라면 위트레흐트 조약으로 인해 보르본 왕조는 부르봉 왕가 프랑스의 왕위를 계승할 수 없었지만 그는 본인이 스페인 왕위는 포기했으니, 아무튼 위트레흐트 조약을 어긴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게다가 알폰소 13세의 자녀들중에서 유일하게 남계후손이 이어지는데 형 알폰소는 자녀 없이 사망, 동생 페르난도와 곤살로는 요절, 그나마 남동생 중 하나인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이 2남 2녀를 낳았지만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의 차남 알폰소는 1956년 총기 사고로 요절했고, 장남 후안 카를로스 1세의 아들인 펠리페 6세가 딸만 두 명을 낳아서 바르셀로나 백작 후안의 남계후손도 단절되었다.

반면 하이메는 슬하 2남을 두었고, 두 아들 중 차남 곤살로는 사생아 딸 한 명만 두었지만, 장남 카디스 공작 알폰소가 슬하에 2남을 두었고, 알폰소의 2남 중 장남 프란시스코가 자동차 사고로 사망하면서, 차남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 왕자가 부르봉 왕조, 카페 왕조의 당주가 되어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하 간단한 가계도
  • 하이메 (1908 ~ 1975)
    • 1남 알폰소[3] (1936 ~ 1989)
      • 1남 프란시스코 데 아시스 (1972 ~ 1984) - 자동차 사고로 사망.
      • 2남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 (1974 ~ )
        • 1녀 에우헤니아 (2007 ~ )
        • 1남 루이스 (2010 ~ )
        • 2남 알폰소 (2010 ~ )
        • 3남 엔리케 (2019 ~ )
    • 2남 곤살로 (1937 ~ 2000)
      • 사생아 딸 1명

증조할아버지인 알폰소 12세 이사벨 2세의 사생아 의혹이 있었던지라 스페인 보르본 왕조와 대립하는 카를로스파가 이 의혹을 두고두고 잘 써먹었는데 하이메와 그의 후손들(부르봉앙주 가문)이 부르봉 본가의 당주가 되자 이들과 대립하게 되는 부르봉오를레앙 가문도 역시 알폰소 12세의 사생아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세를 펼쳤다.

이후 부르봉오를레앙 가문과도 소송이 있었지만 승소하면서 하이메와 그의 후손(부르봉앙주 가문)이 부르봉 왕조의 수장이자 카페 왕조의 수장임을 인정받았다.

장남 카디스 공작 알폰소가 알퐁스 2세란 이름으로 자리를 이어받았고, 알폰소의 차남인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 앙주 공작이 현재 부르봉 왕조의 수장이자, 카페 왕조의 당주다.


[1] 역대 프랑스 국왕 중에서 자크 1세가 없는데도 왜 자크 1세가 아니라 자크 2세로 자칭했냐면, 1883년 앙리 5세의 사후 일부 정통왕당파에게 프랑스 왕위 요구자로 지지받은 카를로스파의 수장들 중에 자크 1세라 불렸던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2] 사족이지만 오를레앙파 쪽 프랑스 왕위 요구자에도 앙리 6세라 자칭한 왕위 요구자가 있다. [3] 프랑스 왕위 요구자로서 쓴 왕호는 알퐁스 2세. 자기 친할아버지에 이어 알퐁스란 왕호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