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아나운서에 대한 내용은 성기영(아나운서) 문서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41e42> |
롯데 자이언츠 역대 감독 |
}}}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ed1c24> 초대 | 2대 | 3대 | 4대 | |
박영길
(1982~1983) |
감독 대행 강병철 (1983) |
강병철
(1984~1986) ★ ☆ |
성기영
(1987) |
어우홍
(1988~1989) |
|
<rowcolor=#ed1c24> 5대 |
6대
|
7대
|
|||
김진영
(1990) |
감독 대행 도위창 (1990) |
강병철
(1991~1993) ★ |
김용희
(1994~1998) ☆ |
감독 대행 김명성 (1998) |
|
<rowcolor=#000> 8대 | 9대 |
10대
|
|||
김명성
(1999~2001) ☆ |
감독 대행 우용득 (2001) |
우용득
(2002) |
감독 대행 김용희 (2002) |
백인천
(2002~2003) |
|
<rowcolor=#fff> 10대 | 11대 | 12대 | 13대 | 14대 | |
감독 대행 김용철 (2003) |
양상문
(2004~2005) |
강병철
(2006~2007) |
로이스터
(2008~2010) |
양승호
(2011~2012) |
|
<rowcolor=#fff> 15대 | 16대 |
17대
|
18대 | ||
김시진
(2013~2014) |
이종운
(2015) |
조원우
(2016~2018) |
양상문
(2019) |
감독 대행 공필성 (2019) |
|
<rowcolor=#fff> 19대 |
20대
|
21대 | |||
허문회
(2020~2021) |
서튼
(2021~2023) |
감독 대행 이종운 (2023) |
김태형
(2024~ ) |
성기영 成基永 |
|
출생 | 1937년 |
경상북도 달성군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부산상고 |
포지션 | 유격수, 2루수 |
투타 | 우투우타 |
소속팀 |
육군 야구단 대한통운 한국미창 해운공사 크라운맥주 한일은행 |
지도자 |
경북고등학교 감독 (1979~1980) 대구고등학교 감독 (1981~1982) 영남대학교 감독 (1982~1988) 롯데 자이언츠 감독 (1987) 태평양 돌핀스 2군 감독 (1991~1993) 쌍방울 레이더스 수석코치 (1994) |
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코치, 감독2. 선수 시절
부산상고 출신으로 미창 야구단 등에서 뛰며 한국실업야구에서 활동하다 은퇴했다. 국가대표 2루수로서 50~60년대를 풍미한 선수다.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경북고에서 류중일, 대구고에서 강기웅, 롯데에서 윤학길 같은 선수들을 길러낸 바 있다.3.1. 롯데 자이언츠 감독 시절
롯데가 강병철 감독과의 갈등으로[1] 인해 재계약을 포기하고, 원래는 수석코치 역할을 하던 도위창(일본명 도이 쇼스케) 코치를 임명하려고 했지만, 외국인 코치, 더군다나 일본인을 감독으로 앉히는 것에 대한 여론이 그다지 좋지 않자 차선책으로 당시 영남대학교 감독이던 그를 선택한다.그러나 이 당시 롯데는 프런트가
3.2. 구단 프런트 시절
고교 후배인 김응룡이 해태 타이거즈 감독 당시 팀의 스카우터였다.그 뒤 김응룡이 삼성 라이온즈로 옮겨가자 같이 이동하여 스카우트 부장을 지냈고 삼성 왕조 멤버들이 대거 드래프트로 입단하게 된다.[4], 일구회 감독을 맡는 등, 야구 원로로 활동하고 있다.
4. 여담
- 경북고 감독을 하기 전인 70년대 초반 여자농구 코오롱 팀에서 5년 정도 감독직을 맡은 적이 있다. 야구 감독으로서는 특기할 점.
[1]
일명 과자값 사건으로
이희수 코치의 재계약을 두고 계약금을
롯데제과의 과자값에 비유해 구단에 짤렸다(...). 까자값 사건이라고도 회자된다.
[2]
구단에서 86시즌 1승밖에 못 거둔
양상문을 트레이드하기 위해
정구선,
우경하,
정성만을 받고
임호균 등을 주는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대놓고 타격 보강을 위한 트레이드였으나 정구선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제 몫을 못해 주었고 아이러니 하게도
청보로 넘어간 양상문은 청보의 에이스가 돼 버린다.
[3]
이후 1990년
김진영 감독, 2002년
우용득 감독, 2015년
이종운 감독, 2019년
양상문 감독 등이 부임 첫 해에 물러났다. 김진영, 우용득, 이종운은 해임이었고 양상문은 자진 사퇴의 탈을 쓴 사실상의 해임이었다.
[4]
공교롭게도 그가 김응용과 함께 삼성을 떠난 뒤 삼성 야수팜은 핵폐기물 수집충 후배 스카우터들 때문에 황폐화가 들이닥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