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0F8FF> 설유진 薛有珍 | Seol yuj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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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pad> | |
본명 | 설유진[1] |
출생 | 1979년 11월 30일[2] ([age(1979-11-30)]세) |
경상남도 창원시[3]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58cm, 46kg, B형 |
학력 |
창원초등학교 (졸업) 창원여중 (졸업) 한일여자고등학교 (졸업) 창원문성대학교 (국제통상학 / 학사) |
데뷔 | 1999년 제23회 MBC 대학가요제 ( 대상, 인기상) |
별명 | 철유진[4] |
장르 | 록, 얼터너티브 록, 메탈 |
링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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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록커. 본명은 설유진이며, 2008년 이전까지는 설지현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1999년 제23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작전타임’ 이라는 곡으로 대상과 인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주목받은 가수이다. 당시 그녀는 대학가요제 역사상 최초로 전문대학 출신( 창원문성대학교)으로 대상을 수상한 기록을 세웠으며, 인터넷 인기상까지 수상하는 이례적인 성과를 이뤘다.
2. 학창시절
2.1. 출생과 유년기
어려운 집안환경 속에서 할머니 손에 자라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음악적 감각을 보였다. 당시 그녀는 구멍가게 하나 없는 외진 시골[5]에서 자랐으며, 친구 하나 없고, 특별한 놀이 문화가 없던 환경에서 TV를 시청하며 노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고 한다.2.2. 초등학교(국민학교) 시절
어린 시절 TV를 보며 음악에 심취한 설유진은 넥스트의 리더였던 고 신해철을 광적으로 좋아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록 음악에 대한 열정을 키우며 음악적 기초를 다졌다.2.3. 중학교 시절
교내뿐만 아니라 인근 학교에서도 “노래 잘하는 학생”으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만큼 그녀의 보컬 실력은 학창 시절부터 두드러졌으며, 지역 내에서도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2.4. 고등학교 시절
힘든 집안 환경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하교길에 우연히 지하 연습실에서 들려오는 드럼 소리에 이끌려 무작정 들어가 오디션을 보았고, 이를 계기로 연합 밴드[6] 의 객원 보컬로 참여하며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첫 무대에서 부른 곡은 정경화의 ‘ 나에게로의 초대’였다.2.5. 대학 시절
1999년, 설유진은 창원문성대학교에 입학하며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대학 내 밴드에서 메인보컬을 맡아 활발하게 활동했으며,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장악력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밴드 선배들과 함께 유닛 팀을 결성해 한창 생겨나기 시작하던 라이브 카페에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그 실력과 존재감 덕분에 무수한 러브콜을 받으며 지역 음악계에서도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2.6. MBC 대학가요제 대상
1999년, 제23회 MBC 대학가요제에 솔로로 출전해 ‘작전타임’ 이라는 곡으로 그 해 대상을 받았다. 특히 인터뷰에서 선보인 박지윤과 심수봉의 모창은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네티즌 인기상까지 동시에 거머쥐었다.‘작전타임’의 특징
록의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대중적인 멜로디를 갖춘 모던록 곡으로, 특히 4옥타브 도(C5)까지 치솟는 고음과 폭발적인 음역대가 돋보인다. 이러한 가창력과 무대 매력은 심사위원단과 관객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록의 에너지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대중적인 멜로디를 갖춘 모던록 곡으로, 특히 4옥타브 도(C5)까지 치솟는 고음과 폭발적인 음역대가 돋보인다. 이러한 가창력과 무대 매력은 심사위원단과 관객모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3. 대학가요제 이후의 음악 행보
3.1. 데뷔 앨범과 활동 중단
1999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후, 설유진은 수많은 기획사들의 러브콜을 받았지만 불운의 씨앗이 된 서인기획을 선택하게 된다. 곧바로 앨범이 나왔어야 할 시점이었지만, 무려 1년 4개월의 지연 끝에 2001년에야 정규앨범 ‘약속대로’를 발매하며 본격적으로 가수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1집앨범 '약속대로'
01. 아무일도 없었어
02. 약속대로
03. 뭘봐
04. Holiday
05. Lcarus
06. Cool Boy
07. 깨몽
08. 고마운 사람
09. Mint
10. 약속대로 (Instrumental)
01. 아무일도 없었어
02. 약속대로
03. 뭘봐
04. Holiday
05. Lcarus
06. Cool Boy
07. 깨몽
08. 고마운 사람
09. Mint
10. 약속대로 (Instrumental)
그러나 첫 앨범 발매와 활동은 소속사의 어이없는 대처와 내부 갈등이 발목을 잡았다. 초기에는 지원을 받는 듯 보였으나, 소속사 대표의 잠적, 앨범 발매 지연, 숙소 월세 미납으로 전기까지 끊기는 상황이 발생해 활동중에도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전전해야만 했다. 특히 소속사는 그녀를 음악적 무대에 세우기보다는 타 가수의 투자금 유치에 집중하며, 설유진의 음악 활동을 방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발매된 1집 조차 문제투성이였다. 당시 프로듀서였던 가수 차진영과 참여한 여러 세션들 정기송, 강수호, 이태윤, 장혁(드러머) 등)[7], 뮤직비디오 감독 및 수십 명의 스태프들 모두가 기획사로 부터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3.2. 타이틀곡 논란과 방송 활동
당시 타이틀곡으로 확정됐던 곡 ‘아무 일도 없었어’[8]는 당시 백 모양 비디오 파문으로 심의 기준이 강화되면서 19금 가사 판정을 받고 방송불가가 되었다. 이에 소속사는 고민이나 가사의 수정조차 없이 미디엄 템포의 곡 ‘약속대로’를 타이틀로 급하게 내세웠고, 이 곡은 강렬한 록 보컬리스트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았다. 게다가 방송에선 어울리지 않는 의상과 메이크업으로 컨셉이 매번 달라지는 등 소극적인 홍보만 이어졌다. 결국 설유진은 MBC 음악캠프 1회, SBS 인기가요 1회 출연과 라디오 몇 회를 끝으로 더 이상 활동을 이어가지 못했고, 소속사와의 계약을 조기 파기하게 된다.소속사와 결별 후 고시원을 전전하며 생활을 이어가면서도 그녀의 음악을 향한 열정만큼은 멈추지 않았다. 행사 밴드 보컬로 활동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또한 서울과 경기 지역의 라이브 카페에서 다양한 장르를 소화하며 꾸준히 무대에 섰다.
3.3. 밴드 ‘설유진’ 결성
2010년대에 접어들어 설유진은 새로운 음악적 도전을 시도하게 된다. 뮤지컬 배우로 잠시 활동을 하기도 했고, 경기 예술단의 팝스 오케스트라 객원 보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1집 당시 작곡자였던 이제헌 작곡가와 재회하며 트로트 전향을 꿈꿨으나, 또 다시 미온적 태도의 제작사와의 만남으로 쇼케이스 콘서트 1회와 몇몇 행사를 끝으로 트로트 활동을 마무리 하게 되고 이후 밴드 ‘설유진’이 결성된다.[9] 밴드 이름이 ‘설유진’인 만큼 그녀를 중심으로 함께 활동하던 세션들과 굳어졌으며, 행사를 중심으로 다양한 장르의 곡을 선보이지만 밴드의 주 장르는 얼터너티브 록과 메탈이다.3.4. 활동 중단에 대한 오해
설유진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꾸준히 무대에 서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대중의 눈에 띄는 소속사 중심의 활동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활동이 중단된 가수’라는 오해를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라이브 카페, 행사, 밴드 공연 등 자신이 설 수 있는 모든 무대에서 음악을 이어갔으며, 팬들과의 소통을 멈추지 않았다. 설유진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녀를 멈추지 않게 했고, 오늘날까지도 무대를 지키며 자신의 목소리로 음악을 선사하고 있다.4. 트로트 가수로의 외도
4.1. 싱글 앨범 ‘1초만에’
2014년 12월, 설유진은 첫 트로트 싱글 앨범 ‘1초만에’를 발표하며 트로트 장르에 도전했다.싱글앨범 '1초만에'
경쾌한 리듬과 트로트 특유의 멜로디를 결합한 곡으로, 가사에 담긴 ‘사랑의 순간적 설렘’을 표현한 곡이다.
참여 아티스트
∙ 기타리스트 정기송[10]
∙ 베이시스트 김상배[11]
∙ 작곡가 이제헌
경쾌한 리듬과 트로트 특유의 멜로디를 결합한 곡으로, 가사에 담긴 ‘사랑의 순간적 설렘’을 표현한 곡이다.
참여 아티스트
∙ 기타리스트 정기송[10]
∙ 베이시스트 김상배[11]
∙ 작곡가 이제헌
싱글 앨범 ‘1초만에’의 수록곡 ‘따라라’는 설유진의 또 다른 음악적 깊이를 보여주는 곡이다. 오리엔탈 트로트 피아노와 첼로의 조화를 통해 동양적 감성과 트로트 특유의 정서를 결합했다.
설유진은 록과 트로트를 결합한 독창적인 닉네임, ‘트록커’ 로서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감행했다.
록과 트로트의 조화
“록의 에너지는 제 음악의 뼈대고, 트로트는 감성이라는 살을 붙이는 것이다.”
“록의 에너지는 제 음악의 뼈대고, 트로트는 감성이라는 살을 붙이는 것이다.”
설유진은 트로트를 통해 대중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갔지만, 그녀의 음악적 뿌리는 여전히 록과 메탈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트로트는 그녀의 새로운 실험이자 대중화의 기회였을 뿐, 록커로서의 열정과 에너지는 여전히 그녀 음악의 중심축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활동 중인 밴드 ‘설유진’은 이러한 음악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하며, 록과 메탈을 중심으로 다양한 무대에서 그녀만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5. 주요 활동 및 공연
5.1. 두 번째 싱글 ‘송인(The Unforgettable)’
2017년 발매된 ‘송인’은 떠나간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곡으로, 설유진의 감성적 보컬과 음악적 깊이를 보여준다.곡의 배경과 참여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그린 영화 ‘귀향’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이 곡의 감성을 살리기 위해 작사와 작곡 과정에 깊이 참여하며, 가사와 멜로디에 자신의 해석을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일제강점기 위안부 피해자의 아픔을 그린 영화 ‘귀향’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되었으며, 이 곡의 감성을 살리기 위해 작사와 작곡 과정에 깊이 참여하며, 가사와 멜로디에 자신의 해석을 더해 완성도를 높였다.
5.2. 세 번째 싱글 ‘Hands Up’
2017년 송인에 이어 발표된 싱글 ‘Hands Up’은 흥겨운 비트와 강렬한 기타 리프가 돋보이는 곡으로, 밝고 에너지 넘치는 사운드의 EDM과 록의 결합을 통해 음악적 변화를 선보였다.5.3. 네 번째 싱글 ‘LIE’
2017년 송인과 Hands up에 이어 발표한 싱글‘LIE’는 알앤비(R&B) 기반의 감성적인 곡으로, 설유진과 가수 유이란, 한채윤이 협업하여 완성되었다.곡의 작사, 작곡, 프로듀싱은 설유진 밴드의 리더 테리베어가 맡았으며, 클래식한 알앤비 사운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 특징이다.
6. 갑상선암 투병과 성대 마비, 그 후
설유진은 2022년 갑상선암 판정을 받고 갑상선 제거 수술을 받았으며, 이후 성대 마비로 약 1년간 노래를 할 수 없는 시기를 겪었다.[12] 그러나 수술 3개월 후부터 하루 3시간의 재활 훈련을 통해현재는 90% 이상 회복된 상태다. 오히려 수술 전에 비해 지금은 20대 시절에 버금가는 넓은 음역대를 되찾았다. 설유진은 강렬한 발성에 스크래치를 자유롭게 얹는 기법은 물론, 맑고 섬세한 노래도 완벽하게 소화하며, 하루 4시간씩 라이브 방송에서 4옥타브를 넘나드는 샤우팅을 선보이고 있다. 이런 강렬한 성대 때문에 “철유진”이라는 별명이 생겼고,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걱정 섞인 반응이나 악플을 받기도 하지만, 그녀는 자고 나면회복되는 ‘메탈 성대’ 를 보여주고 있다.6.1. 보컬 역량
설유진은 4옥타브 미(E5)[13]까지 무난하게 샤우팅이 가능하며, 특유의 쇳소리로 믹스 보이스와 자유자재로 스크래치를 넣고 뺄 수 있는 기술을 구사한다. 대학가요제 대상곡 ‘작전타임’에서도 4옥타브 도(C5)를 선보였던 그녀는 당시 20대 초반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40대 중반인 현재에도 변함없는 음역대와 더 깊어진 감성, 단단하고 강렬한 고음은 놀라운 결과다. 성대 마비에도 끊임없는 연습과 열정으로 만들어진 그녀의 보컬은 특별하고 독보적이다. 이런 보컬이 아직도 널리 알려지지 않은것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7. 온라인 활동
가수 설유진은 다양한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팬들과 활발히 소통하며 음악적 열정을 나누고 있다. 특히 틱톡은 설유진의 새로운 소통 창구로, 빠르게 팬층을 넓히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다.7.1. TikTok 활동
2024년 10월부터 시작한 틱톡은 설유진의 음악을 효과적으로 홍보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그녀는 짧은 커버 영상, 공연 하이라이트, 일상 속 노래 장면 등을 업로드하며 폭발적인 가창력과 감성을 짧은 영상으로도 강렬하게 전달하고 있으며 평일 저녁에는 라이브 방송을 선보인다.
7.2. 기타 플랫폼 활동
유튜브: 공연 영상, 커버곡 등을 공유하며 설유진의 음악 세계를 깊이 있게 전달한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아프리카TV 설유진은 각 플랫폼의 특성에 맞는 맞춤형 콘텐츠를 선보이며 팬들과의 소통을 강화하고 있다.8. 대중의 평가
가수 설유진은 뛰어난 가창력과 음악적 도전에도 불구하고 저평가된 비운의 락 보컬리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속사의 불합리한 대처와 상업성 위주의 음악 시장 흐름이 맞물리며 그녀의 진가가 제대로 알려질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8.1. 대학가요제 이후, 잊혀진 존재감
1999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은 설유진의 가창력과 음악적 재능을 입증하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후 소속사의 방치와 활동 제약으로 인해 대중의 기억 속에서 그녀의 존재감은 희미해졌다. 이것은 실제로 그녀가 음악을 멈춘 것이 아니라, 주류 방송과 매체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이었다. 설유진은 공연과 라이브 무대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노래를 이어갔지만, 대중이 이를 접할 기회는 부족했다.8.2.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재도약
설유진은 유튜브, 틱톡 등 온라인 플랫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 활동은 그녀의 음악을 더 넓은 청중에게 알릴 기회가 되었으며, 팬들에게 그녀의 음악적 열정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중요한 창구가 되고 있다.8.3. 숨겨진 보석, 재조명의 기대
설유진의 음악은 강렬한 보컬과 깊은 감성을 갖추고 있다. 저평가된 비운의 가수라는 평가 속에서도 그녀의 음악적 열정과 꾸준한 활동은 팬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고있다. 그녀의 음악이 다시금 조명될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남아 있다.9. 밴드 설유진
밴드 설유진은 대한민국 락을 기반으로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5인조 밴드로, 기타리스트 겸 리더 테리베어가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다. 기타리스트 윤정환, 드러머 황현식, 베이시스트 한주웅, 그리고 메인보컬 설유진이 모여 탄탄한 팀워크와 음악적 조화를 선보인다.9.1. 테리베어 (기타리스트, 리더)
밴드의 리더이자 작사·작곡 및 프로듀서.9.2. 윤정환 (기타리스트)
9.3. 황현식 (드러머)
9.4. 한주웅 (베이시스트)
[1]
2008년 개명 전: 설지현
[2]
음력
[3]
성장한 곳은
창원시
성산구이다. 이후 2022년 유튜브 영상에서 밝힌바에 따르면
경기도
파주시에 거주하고 있다.
[4]
매일 수시간씩 메탈 샤우팅에도 자고 일어나면 멀쩡한 메탈(철) 성대라고 팬들이 지어줬다.
[5]
경남 의령군 봉수면 서득리: 순창설씨 집성촌 중 하나
[6]
하교길에 한 지하 연습실을 지나다 드럼소리에 이끌려 무작정 들어가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7]
지금 보면 모두 거물급 교수로, 2000년대 초반 당시에도 최고 수준의 슈퍼 세션맨들이었다.
[8]
일본 가수 Rina Chinen의 노래 'Yes' 가 원곡이다
[9]
2017년 결성. 설유진밴드라고도 한다.
[10]
넥스트 1기 맴버
[11]
재즈 베이시스트
[12]
다시는 노래를 할 수 없을줄 알았다고 한다.
[13]
실제 음역대는 5옥타브 안팎일것으로 예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