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55:54

사하 연맹

사하 연맹(항갈라스 토욘국)
Sakha/Yakut Confederation(Khangalas Toyonate)
саха конфедерацията(Хаҥалас улууһа)[1]
1540년대 ~ 1632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부족들 루스 차르국
종교 텡그리 신앙
수도 없음[2] 한갈라스[3]
언어 사하어
정치 토욘(Toyon)[4]
현재 국가
[[러시아|]][[틀:국기|]][[틀:국기|]](
[[사하 공화국|]][[틀:국기|]][[틀:국기|]])
야쿠트인들의 역사[5]

1. 개요2. 역사3. 영향4. 여담5. 같이 보기

1. 개요

사하 공화국 동남부 지역의 야쿠트인 부족들이 세운 나라들이자 통일하여 세운 준국가.

사하 통일 이전에도 여러 부족들 중심의 연맹 체제였다가 통일 이후에 본격적으로 '사하 연맹(또는 야쿠트 연맹)'이라고도 불렸다. 한갈라스 부족 중심으로 통일되어 연맹 체제가 이어졌기에 '한갈라스 토욘국'이라고도 부른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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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갈라스 부족을 비롯한 사하의 9개 이상의 울루스들은 주로 지금의 야쿠츠크 일대 등 주변 동남부 일대를 포함하여 정착 및 이곳들을 다스렸으며, 서서히 사하 북부에도 진출하기도 했다. 그리고 한갈라스 외의 주요 부족들로는 남(Nam), 보로곤(Borogon) 등의 부족들이 있었으며, 이후에는 80개의 독립된 부족들로 늘어났다. 당시 야쿠트인들의 인구는 15만명 이상이었다. #

그러다가 1620년대에는 한갈라스가 사하 공화국 남부 일대의 야쿠트인들을 통합하려 했다. 결국 1625년, 튀귄 다르한이라는 영웅이 나타나서 남부 지역에 한정하여 야쿠트인들을 통합시켜서 한갈라스 토욘국(Khangalas Toyonate)을 세웠다. 이후 야쿠트인들 뿐 아니라 기존의 토착민이기도 했던 퉁구스 민족들을 사하 남부에서 쫓아내기도 했었으며 그 외, 퉁구스족, 유카기르, 사모예드족 등 주변 민족들이 있는 곳들도 점령 및 복속시켜 사하 연맹으로 발전되었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북부 지역 부족들에 비해 한갈라스 부족들이 있었던 동부 부족들은 비교적 부유했다.

그러나 1628년 루스 차르국 코사크 및 루스 차르국 군대들이 사하까지 처들어간다. 야쿠트인들은 루스 차르국 군사들과 맞서 싸웠으나 총으로 무장했던 루스 차르국 군대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으며 결국 1632년 사하를 멸망시켰다.

3. 영향

그러나 이후에도 반러 저항운동 및 반식민지 운동이 일어났으며, 대표적으로 1633년 및 1634년까지의 봉기, 1636년부터 1637년까지 한 번 더 사하 연맹을 계승한 세력들의 부흥운동들이 나타났다. 그 외에도 1639년과 1640년, 1641년, 1642년까지도 남(Nam) 부족이 있었던 남부 사하 공화국 내륙 지역과 일부 동부 지역에서 여러 반란, 봉기들이 일어났다. 또한 비록 실패했지만 1681년 한갈라스 지역에서 '덴니크 토욘(Dennik Toyon)'이 다시 반러 반란 및 항쟁을 일으키기도 했었다. 이후 1805년까지 야쿠트인 반군들이 활동했다.

4. 여담

척박하고 인구가 많지 않은 북아시아 동부 지역에서 반쯤에 가깝긴 했지만 드물게 준국가로서 존재했다.[6]

기존의 튀르크계 민족들이 유목이었는데 비해 항갈라스, 사하 연맹 및 사하 공화국(자치국)을 세운 야쿠트인들은 대체로 예로부터 경제적으로 수렵채집사회 어로가 주된 사회였으며[7], 종교도 텡그리 신앙을 유지하는 몇안되는 튀르크 민족에 해당되는 등 문화적으로도 달랐다.[8]

5. 같이 보기



[1] 사하어. [2] 초기부터 1625년까지는 여러 부족들로 인한 분열기였다. 굳이 중심지대를 찾자면 지금의 사하 공화국 동남부 및 일부 중동부 내륙 지역이 해당되었다. [3] 지금의 한갈라스키 구(Хангаласский улус). 1625년 사하 통일 이후부터 수도가 되었다. [4] "토욘(Toyon)"은 17세기부터 사하 일대의 지배 귀족들을 가리키는 호칭으로서, 몽골족의 " 노얀(Noyan)"과 비슷한 개념이다. [5] 영상을 보는 법: 거꾸로 흘러가고 있으며, '야쿠트 연맹(confederation of yakuts)' 또는 '사하 토욘국(sakha toyonate)'이라고 쓰여져 있는게 한갈라스 부족 및 사하 연맹도 있었던 시기다. [6] 겨울에는 지리상 당연히 워낙 춥고, 라스푸티차 등 겨울이 지나 봄 후기가 되면 본격적으로 동토가 녹아 진흙이 되는 등 자연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살만한 곳이 되지 못해서 교통 등이 불편했고 이 점 때문에 북아시아 동부에는 나라가 세워질 조건들이 불리해서 나라들이 많지 않았다. 당장 항갈라스만 해도 부족들은 통합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한 나라로 갖추긴 애매했다. [7] 반유목을 아예 안한건 아니지만 워낙 춥기에 유목만 하기에도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순록을 방목하거나 다른 동물들도 사냥하는 수렵채집문화 및 어로가 발달되었다. [8] 물론 러시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정교회를 받아들였지만 어디까지나 식민지배 이후로 영향을 받은거였지, 전통적으로는 샤머니즘이나 텡그리 신앙을 믿었고, 지금도 이 전통종교들이 유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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