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0 20:25:06

사마소/기타 창작물

1. 개요

정사 연의를 제외한 다른 창작물에 등장하는 사마소를 다루는 항목.

2. 게임

2.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파일:삼국지3사마소.png
삼국지 3
파일:Sima_Zhao_5_(1MROTK).png 파일:external/vignette2.wikia.nocookie.net/Sima_Zhao_%28ROTK10%29.png 파일:external/vignette3.wikia.nocookie.net/Sima_Zhao_%28ROTK11%29.png
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0 삼국지 11
파일:external/san.nobuwiki.org/0329.jpg
삼국지 12, 13
파일:사마소.jpg
삼국지 14

사마사와 함께 뛰어난 능력치로 후반부에 활약한다. 비교해 보면 통솔력과 무력, 지력은 형보다 약간 못하지만 대신 정치력과 매력에서 약간 앞서는 편.[1] 다만 통솔은 과소평가가 된 것이 아쉬운 편이다.

삼국지 9을 기점으로 일러스트가 점점 간웅화돼가고 있다. 정확히는 행적이 조조와 비슷[2]한 것도 반영이 된 건지 12의 일러스트는 완전히 조조의 문관 버전이다.

초대판 삼국지 1에서는 출생연도가 제일 늦은 무장으로 나온다.

삼국지 3에서는 육지 75, 수지 72 ,무력 66, 지력 85, 정치 82, 매력 70에 야망 10, 운 8, 냉정 10, 용맹 6이라 그저 B급 군사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사마씨 가문이라 그런지 야망과 냉정이 준수한 편이다.

삼국지 4에서 능력치는 통솔력 79 / 무력 65 / 지력 86 / 정치력 87 / 매력 71이다. 특기는 외교, 인재, 작적, 구호, 풍문, 첩보, 보병, 화계, 내분, 연환, 수복, 호통을 가지고 있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74/55/90/83. 지력도 높고 의리도 일단 지력을 감안했을 때 이간에 당하지 않을 만큼의 의리(의리 5 야망 14)는 있으니 형(의리 2 야망 15)보다 쓸만하다. 다만 병법은 이 쪽도 조금 아쉬운 게 사실. 제사, 혼란, 덫 정도가 쓸만하며 그 이외의 병법으로는 투석과 매도가 있다.

삼국지 10에서의 능력치는 76/55/89/90/80에 군사/명사 특기를 모두 가지고 있는 사기 캐릭터. 전체적으로 특기는 상업, 치안, 화시, 반목, 유인, 항변, 반론, 군사, 명사, 간첩. 총 10개다.

삼국지 11에서의 보유 특기는 침착이라 혼란 걱정은 안 해도 되지만, 지력이 80대 후반이라서 어지간해선 계략 걸릴 일이 없으니 역시 효율이 좋다고 하긴 어렵다. 병종적성은 오히려 사마사보다 좋으나, 성격이 냉정이라 설전에선 상대적으로 약하다. 일러스트는 전통적으로 아버지 사마의 못잖게 냉혹 음험한 정객의 이미지가 강했으나, 삼국지 12에서는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원만한 표정으로 나왔는데 자세히 보면 왼손으로 손짓을 하고 있다. 무쌍 시리즈나 왕원희 등장의 영향을 받은 듯.

삼국지 12에서 능력치는 통솔력 76 / 무력 57 / 지력 87 / 정치력 88 이다. 병종은 궁병에 전법이 허유엄살, 특기는 상재, 수집, 감시, 군사를 가지고 있다. 역시 쓸만한 무장이다.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76/57/87/88이다. 특기는 상업 4, 설파 6, 교섭 7(왕원희 인연 효과), 언변 7, 신속 6, 귀모 2. 중신특성은 병참관리로 전수특기는 언변이며 전법은 위보교란.

삼국지 14에서는 일러스트가 오른손을 위로 올리면서 손짓하는 모습으로 변경되었으며 능력치는 통솔 76, 무력 57, 지력 87, 정치 90, 매력 82로 전작에 비해 정치력이 2 상승했다. 개성은 궤계, 침착, 신중, 사역, 주의는 아버지, 형과 같은 패도, 정책은 화계연구 Lv 4, 진형은 안행, 학익, 정란, 고유 전법은 적군의 공군과 사기를 동시에 저하시키는 심모원려이며 기타 전법으로는 화시, 진정, 정란, 친애무장은 사마사, 사마유, 사마의, 왕원희, 주태, 진태, 혐오무장은 없으며 PK에서는 교사 개성이 추가되었다. 출진 화면에서 궤계 개성 설명 때 "나의 궤계는 그 누구도 간파하지 못 한다."라는 전용 대사가 뜬다.

이전작들에 비해 영웅집결 시나리오에서 왕원희가 왕랑 소속에 있어서 사마소로 하여금 아내를 사마의 소속으로 빼내올 수 있지만 역으로 왕랑 소속으로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2.2. 영걸전 시리즈

삼국지 영걸전에서는 주술사로, 삼국지 공명전에서는 군사로 나와 최후까지 저항한다. 그리고 공명전에서는 위연에게 썰려 죽는다.

파일:external/static.inven.co.kr/image_samaso0.png

삼국지 조조전 온라인에서 등장. 연의에서는 문앙전의 악역으로 나온다. 사마의전 연의에서는 어머니 장춘화가 사마소에게 너는 스스로 아니라고 여길지 모르지만 정이 많은 아이다 이 집안이 네가 처한 상황이 평범하였다면 이 어미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겠지만 놓인 길이 가시밭길 뿐이니 네 여린 마음이 찢겨나가지 않을까 두렵다라고 유언을 남기고 사마의가 독기가 가득한 동굴에 맹독을 품은 꽃이 한 송이가 있는데 그 꽃은 처음부터 독초였는가 아니면 점차 동굴의 독기 때문에 독초가 된 것이냐는 질문에 형인 사마사는 처음 부터 독초 였다고 답한 것과 다르게 환경이 성장에 영향을 끼치니 독초가 되었다고 답하는 등[3] 사마씨 집안에서 인간미가 있는 인물로 묘사 된다. 연의 이외 컨텐츠에서는 주어진 특성이 좋지 않아서 고유외형과 고유음성이 있는 장수임에도 거의 쓰이지 않는 상태.

2.3. 진삼국무쌍 시리즈

사마소(진삼국무쌍) 참조.

3. 영상 매체

3.1. 84부작 삼국지

극후반부부터 등장. 서신을 내팽개치는 게 특기인지, 몇몇 장면에선 서신을 내팽개친다. 조모의 잠룡시를 읽고는 내팽개치고, 조모 앞에서도 내팽개치고, 등애의 서신을 두번이나 내팽개쳤다. 유선을 연회에 불러다 놓고 "촉이 그립지 않소?" 드립을 쳐서 그 반응하는 꼴을 보고 웃다가 죽는다. 숨 넘어가기 직전에 가충에게 사마염을 가리키며 보좌를 부탁하는 암시를 남겼고, 가충이 급히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사망. 곧이어 사마염의 즉위식이 잠깐 나오며 드라마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3.2. 삼국

파일:사마소(삼국).jpg

배우는 유국광(刘国光). 한국 더빙판 성우는 한복현/ 정재헌, 일본어판 성우는 노무라 켄지.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배우는 모습을 보여준다. 참고로 조비의 황위 찬탈 때도 나오는데 실제 이 해에 사마소는 고작 9살짜리 어린애였는데 여기서는 벌써 성장한 모습으로 나온다.

하지만 아직 미숙한 면이 있는지 위의 조정에게 배척받는 부친에게 조정에 대한 분노를 토해내다가 싸다구를 얻어맞고는 어안이 벙벙해서 '여태껏 한번도 절 때리신 적이 없었는데'라고 중얼거리는 일까지 있다.[4] 그래도 막 대드는 일이 없고 나중에는 정주의 존재까지 인정할 만큼 아버지를 잘 따른다.

음평 전투에서도 사마의가 사마소더러 적진 정탐을 직접 하라고 시키며 상황 설명과 제갈량의 의도를 파악해보라 했는데, 처음에 머뭇거리자 사마의가 조상과 비교를 하면서 사마소의 무능함을 한탄한다. 사실 그것을 노렸는지 제갈량의 의도와 해결책을 술술 내놓자, 사마의가 차를 직접 따라주면서 아들의 능력을 다시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상방곡 전투에서 사마의가 공명의 계략에 빠져 불타죽게 되자 사마의의 항복하라는 명령도 거부하고 아버지를 안고 "싫어요, 아버지. 항복은 안 돼요."라며 우는 모습은 상당히 찡하다. 여러 모로 버프를 받아 사마사보다 출연 비중도 훨씬 높은데 능력 면에서 사마사보다 한 수 위인 듯한 암시[5]를 작중에서 한다.

별개의 이야기지만 출생 년도가 211년인데, 정작 여기서는 조조가 죽을 때 조비가 정주를 줄 때 나오는데 나이를 봐도 9살 꼬맹이가 수염을 달고 있는 고증오류가 된 부분이다. 유선과 더블어 액면가 크리.

3.3. 대군사 사마의

배우는 삼국기밀에서 조비 역을 맡은 아이돌 가수 출신의 배우 단건차이다. 본작에서의 사마소는 야심과 자신을 증명하려는 욕구로 똘똘 뭉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작중 그려지는 모습을 보면 실제 역사에서 그려지는 사마사의 모습과 더 가까우며, 사마사의 작중 모습이 실제 사마소의 모습과 부합하다.[6] 젊은 시절에 자신의 야심이 존재하는지도 몰랐고 그저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 몸을 최대한 사린 아버지 사마의와는 달리 사마소는 자신의 야심을 드러내는 것을 꺼림칙하게 생각하지 않는데다, 워낙 혈기왕성하다보니 감정에 휘둘려 계속해서 실수를 유발한다.

그래서 사마의는 작중 내내 사마소의 이런 지나친 권모술수의 경향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해 칭찬에 인색하고 믿음을 주지 않는다. 이러다보니 오히려 사마소는 더 오기가 생겨서 사고를 치고 다니는 편. 이는 자신과 달리 완벽초인에 가까운 형 사마사에게서 느끼는 열등감도 한 몫했다.

백령균이 아들인 사마륜에게 사마소를 평하길, '포부는 크나 아직 경험이 부족한 자'라고 하였다.

본작에선 하후휘를 죽이는 인물도 사마사가 아니라 사마소이다. 사마소는 형수가 시집오는 그 날부터 쭉 몰래 형수를 연모하고 있었는데, 사병을 양성하는 현장을 목격한 형수 하후휘에게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함께 도망치자고 애원하다 그녀가 침을 뱉으며 극렬하게 거부하자 목을 졸라 죽여버렸다. 사마사는 자신의 부인이 왜 죽었는지도 모르는 설정을 둔다.

사마사가 하후휘를 독살한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장남인 사마사가 자신의 부인을 독살하려는 계획을 사마의가 몰랐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이것만 보고 사마의가 주도적으로 하후휘를 죽였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비약이 될 수 있겠지만 최소한 사마의가 아들의 역심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는 분석은 가능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본작의 사마소가 하후휘를 죽였다는 각색은 사마사와 사마의의 역심을 감추는 묘사로 비춰질 여지가 다분하다.

고평릉 사변과 그 후 조상 일파의 처리 과정에서 사마소는 그간 숨기고 있던 잔혹함을 내보이며 조상 일파를 남김없이 숙청하고[7] , 심지어 자신이 하후휘를 죽였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던 백령균의 시비 소원마저 살해한다. 이 일로 인해 차남의 폭주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었던 사마의는 직접 사마소의 목숨을 거두려하고, 두 부자의 대화를 통해 장남 사마사도 아내를 죽인 범인이 친동생이라는 걸 알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사마소는 "설마 제가 아버지 명령없이 제 독단으로 모든 일을 처리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라는 말을 남기며 위기를 넘기고, 결국 사마사는 가문의 안위를 위해 동생의 그간의 행적들을 불문에 붙이기로 하고, 사마의 또한 그것이 장남의 선택이니 어쩔 수 없다면서 사마소의 목숨을 거두는 것을 단념한다.

4. 만화

4.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파일:전략사마소.png

형인 사마사보다는 비중이 적다. 마지막 등장은 등애, 종회에게 촉 정벌을 명령하고는 끝이다.

4.2. 삼국전투기

파일:삼국전투기_사마소.jpg

청의 엑소시스트 오쿠무라 유키오로 나온다. 그 때문인지 그의 형인 사마사 오쿠무라 린으로 나왔다. 덤으로 낙가 전투(6)에서 다이아몬드 에이스의 카타오카 텟신으로 코스프레하기도했다. 또한 466편인 전투 외편(6-1)의 첫 컷에서의 ‘내 권세는 하늘을 뚫는 권세다.’라는 대사는 천원돌파 그렌라간에서의 ‘내 드릴은 하늘을 뚫는 드릴이다.’를 패러디한 것이기도 하다.[8] 정사 위주로 인물과 스토리를 설정한 본작을 고려할 시, 형과 대등한 수준의 인재로 전반적 고평가되어 그려졌으며, 그가 서진의 난맥상을 제공했다는 내용이 영 부각되지 않는다.또한 그가 뛰어난 리더였다고 평가했다.

낙곡 전투 편에서 처음 등장. 하후현의 친구로, 하후현이 촉 정벌에 관해 사마의가 뭐라 했냐고 묻자 바보짓이라는 한 마디만 했었다고 답했다. 이후 하후현이 대장부라면 한 번쯤 바보짓을 해볼 필요도 있다며 따라올 것을 청하자 거기에 동의하여 하후현과 함께 한중 정벌에 참여했다.

하후현이 흥세산 위에서 진을 친 촉군을 뚫을 방법이 없어 고민하며 계속 시간만 버리자 사마소는 자신들이 잘못 판단하고 너무 급하게 온 것이니 퇴각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하며 하후현에게 퇴각을 제의했지만 그는 끝까지 주저했고 결국 사마의의 서신이 도착한 뒤에야 퇴각을 결정한다.

전투외편 3편에서는 흥세에서의 패전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고 비웃음거리로 전락한 하후현을 위로해 주기도 했다.

전투외편 4편에서는 사마의, 사마사와 함께 고평릉 사변을 벌였고 사마의, 사마사와 함께 낙양을 점거했다.

신성 전투 편에서는 사마의의 지시로 조상 일파가 마구잡이로 만들어 놓은 법령 등을 수정, 보완하는 임무를 맡았다.

적도 전투 편에서는 적도 지원을 위해 군을 끌고 낙양에 와서 입궐했었다. 그리고 사마사에게 군을 빌려줘서 조방을 폐출하는 것을 도왔다.

낙가 전투 편에서는 사마사가 관구검의 난을 진압하러 직접 출진한 동안 낙양 수비 임무를 맡았다고 언급되었다. 관구검의 난 진압 후 사마사가 죽으며 사마소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겼기에 그 위치를 이어받았으며, 동시에 유망주였던 가충과 종회를 눈여겨봤다고 묘사되었다.

수춘2 전투 편에서는 황제 조모가 군은 부하에게 맡겨 두고 허창을 수비하라고 명을 내렸지만 가볍게 무시하고 군을 끌고 낙양에 입성한 뒤 대장군에 오르며 파워게임을 제압했다. 이후 가충의 제안을 받아들여 최고위에 오른 걸 피로할 겸해서 사방장군에게 사람을 보내 위로하기로 정한다. 그렇게 가충이 정동대장군 제갈탄에게 찾아갔다온 뒤 제갈탄이 머지않아 반기를 들 것이라고 말하자 역시 그런 거냐는 반응을 보였다. 사마소는 가만히 있는 제갈탄을 다짜고짜 공격할 수도 없으니 난감해했지만, 가충의 제안으로 사공 임명을 빌미로 제갈탄을 불러들이는 작전을 사용했다.[9]

작전이 성공해 제갈탄이 먼저 움직였고, 신하 1명이 한시라도 빨리 진압에 나서야 된다고 했지만 사마소는 이전 관구검이 빠르게 움직이다 훅 간걸 생각해 제갈탄은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말했고, 대신 오와 손을 잡으려 할 테니 서두르기보다는 철저히 준비해 움직이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마소는 제갈탄의 난 진압을 위해 인재들을 요소에 척척 배치해 두고 본인은 종회와 가충... 에 더해 느닷없이 동행하기로 결정한 황제 조모까지 끼고 직접 수춘으로 출진했다.

오의 전휘, 전의 형제가 투항하고 종회가 이들을 이용하여 수춘에 있던 전씨 일족을 모두 투항하게 만든 뒤, 사마소는 슬슬 수춘의 식량이 다 떨어져갈 때가 됐다고 예견하여 일부러 수춘에 오의 지원군이 거의 포위망에 다가왔다는 거짓 소문을 퍼트려 제갈탄 세력이 급격하게 식량을 소모하게끔 유도했다.

사마망이 가문과 황제 사이에 끼어서 고민하다 어떻게든 보신을 위해 자신을 최전방에 보내 달라 자원하자 그의 속내를 꿰뚫어보고 빵빵한 보좌가 있는 서량 방면에 꽂아 줬다고 언급되기도 했다.

제갈탄군의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문흠까지 사망했기에 문앙이 위에 투항했을 때 위 진영에서는 그를 죽여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지만, 사마소는 문앙을 죽이는 대신 그를 살려둔 다음 투항을 유도하는 광고판으로 써먹었다. 당자를 비롯한 오군을 포로로 사로잡은 뒤에도 강남에 처자식이 있는 이들이니 진심으로 귀순하지 않을 것이므로 전부 산채로 파묻어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으나 사마소는 관용을 보여줘 이미지 메이킹을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라는 걸 이유로 이들을 살려뒀다.

7년에 걸쳐 수춘에서 사마 가문에 반감을 가진 왕릉, 관구검, 제갈탄의 난이 연달아 일어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난들은 오히려 사마 일족의 힘을 더 강하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언급되었다.

전투외편 6편에서는 제갈탄의 난을 제압하며 사마소의 파워가 정점에 달했다고 묘사됐다. 한편 제갈탄의 난을 계기로 가충보다 종회를 중하게 여겼고 이에 가충이 종회를 너무 가까이 하지 말라고 반쯤 시기심이 섞인 조언을 했지만 사마소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묵살했다.

한편 제갈탄의 난에서의 공으로 조모는 사마소를 상국에 임명하려 했으나 사마소가 이를 아홉 번이나 거절하며 무산되기도 했다. 사마소가 굳이 상국(승상)직을 사양할 이유도, 조모가 그걸 또 굳이 아홉 번이나 다시 내릴 이유가 없으니 이는 처음부터 사이가 나쁘던 두 사람의 감정싸움이 극에 달한 결과라고 묘사되었다.

전투외편 7편에서는 왕침, 왕업에게서 조모가 직접 사마소를 치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난감해했다. 한편 가충이 독단적으로 성제를 시켜 황제를 죽여버리자 자신을 역적으로 만들 생각이냐며 크게 당황했고 일단 가충이 자기가 무마시켜보겠다고 하긴 했으나 그럼에도 불안을 떨치지 못해 대책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의견을 내지 못하자 사마소는 진태가 임기응변이 있고 일을 깔끔하게 해치운다고 들었다며 진태를 찾았고, 진태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순의를 시켜서 진태를 불러오게 하였다. 사마소 앞에 불려온 진태는 가충의 목을 벤다면 일이 풀릴 것이라고 했지만 사마소는 이를 듣지 않았다.

진태의 말은 무시했지만 달리 대안이 없었으니 결국 사마소는 그냥 정신이 나가 미쳐 날뛰던 조모를 성제가 죽였다고 모든 죄를 성제에게 떠넘기는 식으로 일단락지었고, 새로운 황제로 조환을 추대했다.

이후 호열이 형주에서 대치중인 오의 18개 지역 둔장들이 귀순할 뜻을 비쳤다는 정보를 전달하자 사마소는 형주가 위의 손에 들어온다는 이야기와 다를 게 없다며 왕기를 시켜 오의 둔장들을 영접하게 하려 했지만, 왕기가 분명히 거짓일 거라며 강경하게 나오자 그냥 출병을 철회했다. 다른 사람들은 사실을 왜곡해서라도 자신의 말을 따르려 난리인데 왕기는 정말 충직하다며 칭찬한 건 덤.

검각 전투 편에서는 촉의 강유가 자꾸 자신들을 자극하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대신들에게 물었고, 순욱이 이에 아예 촉을 정벌하자고 주장하자 그 말이 옳다고 여겨 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른 대신들은 낙곡에서의 실패 때문에 전부 주저했지만 종회만은 가능하다고 했고, 이에 사마소는 기뻐하며 종회를 진서장군으로 임명하고 대촉정벌 사령관의 임무를 맡겼다.

사마소는 낙곡에서의 패전으로부터 18년이 지났으니 후유증도 가셨을 거라 판단했고, 동시에 제갈탄을 잡은 후 4년 가까이 전투가 없었으니 전력 낭비도 없었으며[10], 강유와 유선의 사이가 별로라는 첩보까지 있으니 강유만 서쪽에 묶어 놓으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이라 간단히 꺾을 수 있다고 여겨 종회에게 착실히 정벌을 준비시키고, 촉 정벌에 회의적이던 등애를 설득해 납득시켰다고 서술됐다. 그렇게 촉 정벌을 준비한 지 1년이 지나고, 종회가 출진할 때 건투를 빌어 줬다.

성도 전투 편에서는 종회에게 자화자찬투성이 보고서를 받기도 했고, 등애가 촉 멸망 후 지나치게 텐션이 올라가 오 정벌 등의 프로젝트를 남발하려는 모습을 보이자 위관으로 하여금 진정시키게 했다. 종회가 여러 가지 발언을 꼬투리삼아 등애를 모함했을 때는 가충에게 진짜 등애가 반란을 일으킬 것 같냐고 의견을 묻기도 했고, 가충이 보고서가 사실이라면 거의 틀림없을 거라고 하자 가충에게 종회를 믿지 못하겠냐고 물었으며, 이에 가충이 대장군은 종회를 믿냐고 역으로 묻자 사마소는 가충이든 종회든 자신은 일을 맡겨 놓은 수하를 아무런 근거 없이 의심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그리고 등애의 이야기도 들어볼 필요가 있다며 등애를 낙양으로 소환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후 종회에게 서신을 보내 이번에 잡아오라고 한 등애가 만만찮은 인물이라 그의 난동에 종회가 상을 입을까 걱정된다는 구실로 가충을 야곡으로 보내고 자기도 군사 10만을 끌고 장안에 주둔하기로 했다는 내용을 전달했다.

가충 앞에서는 일을 맡긴 수하를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그건 가충이나 종회나 그놈이 그놈이라 대충 답한 거고 실제 본심은 아내 왕부인이나 비서 소제와 이야기할때 살짝씩만 드러냈다고 묘사됐다. 소제가 종회를 촉으로 보내면 반란을 일으킬 지도 모른다고 하자 종회가 촉을 정벌하고 그 병력을 흡수한다 해도 그 촉의 병력들은 예기가 꺾이고 피로해져 있을 것이고, 10만이 넘는 기존의 병력은 전부 가족이 위에 있으니 그 상황에서 제대로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다며 그 정도 계산도 못 한다면 딱 거기까지가 종회의 가치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고 등애의 체포령을 내렸을 당시 소제가 사마소에게 종회의 병력만으로 능히 대처가 가능할 텐데 굳이 직접 장안에 갈 필요가 있겠냐고 묻자 사마소는 정말 등애가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면 험담이 담긴 보고서나 쓸 시간에 당장 등애를 잡아버렸을 것이라며 역심이 있는 건 종회 쪽이니 자신은 등애가 아니라 종회를 잡으러 가는 거라고 답했다.

모든 사태가 일단락된 후 낙양에 들어와 살게 된 유선을 연회에 초대하기도 했으며, 유선에게 촉 땅이 그립진 않냐고 묻기도 했다. 그리고 유선이 이곳이 즐겁기에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답하자 그거 다행이라며 크게 웃기도 했다.[11]

전투외편 8편에서는 촉을 평정한 공으로 진왕이 되었다고 묘사됐다. 촉이 없어진 김에 국가 전반의 시스템 정비를 꾀하기도 했으며, 이후 후계자를 결정하고자 하는데, 본디 사마소는 두 아들 중 동생 쪽인 사마유를 조금 더 아껴 사마유를 사마사의 양자로 보내 후계자로서의 근거를 만들어 준 뒤 사마유를 후계로 세우려 했지만 가충 등의 측근들이 일제히 반대하면서 결국 그냥 큰아들인 사마염을 후계자로 세웠다. 그리고 사마소는 의상, 수레, 악대부터 칭호까지 전부 황제의 것과 동일하게 맞춰 제위 등극의 반석을 다져 놓지만 얼마 안 가 마치 짠 것처럼 갑작스럽게 죽었다고 묘사됐다.

작가는 사마소의 짧은 통치기간 동안 인구와 경제가 살아났다는 걸 근거로 사마소를 좋은 리더라고 판단했다. 물론 그런 작가도 사마소의 인격까지 실드치진 못했다.

4.3. 화봉요원

1화에서 사마의가 꾸는 예지몽에서 형과 함께 등장한다. 괴물이 된 요원화가 아버지를 죽이러오니 아버지에게 어서 피하라고 하나 사마의는 듣지 않는다. 결국 형과 함께 아버지가 죽임당하는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본다.

근데 아버지는 그렇게 나이를 먹고도 수염 하나 없는데 형제가 둘 다 수염이 있어서 아버지보다 더 나이가 많아보인다... 아버지, 어머니가 둘 다 미형인데 외모는 형제가 둘 다 부모를 닮지 않은 듯하다.

조조가 마초의 공격으로 목숨의 위기를 겪는 시점에서 업에서 장춘화가 견밀과 대화할 때 장춘화가 품에 안고 있는 것으로 등장했다.

4.4. SD건담 삼국전

애니에는 나오지 않고, 코믹스에서만 등장한다. 크시 건담[12]로 등장하며, 사마의 사자비의 아들로 나온다. 사마사 페넬로페와 함께 사마염 자쿠2를 감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사마사 페넬로페, 사마염 자쿠2와 함께 낙양 궁전의 옥새상 앞에서 부활의 제를 올리며 소원을 비는 장면에서 첫등장하고, 상황이 어떠한지 묻는 사마의에게 내부 상황은 순조롭다고 보고한 뒤 외부 상황[13]에 대해 듣자 기뻐한다. 이후 오장원에서 사마의가 치우를 소환할 때, 사마사 페넬로페, 사마염 자쿠2와 함께 암흑옥새 사이코 건담에게 제물로 바쳐지고, 그 암흑옥새도 치우 노이에 질의 제물이 되어 전신합신 치우 건담의 일부가 된다. 이후 현무장 여포 톨기스가 전신합신 치우 건담을 박살내자, 그 여파로 사마사 페넬로페와 함께 사망.[14] 이후 곽가 버사고가 마장모드로 파워업 할 때 흡수된 데 이어 그의 흉부 파츠는 나중에 곽가 버사고가 마인모드로 파워업 할 때 오른쪽 어깨에 장착된다.

4.5. 삼국지톡

시즌 9 12화에서 형과 같이 첫 등장한다. 둘 다 자는 모습인데다 사마소는 형 위에서 자고 있어서 얼굴은 제대로 보이지 않지만 등장 당시 7살인 형보다 3살 어린 4살이었다. 아버지 사마의의 언급으로는 눈만 마주치면 싸우는 다른 집안 형제들과는 달리 형과 같이 짝꿍처럼 붙어서 논다고.

시즌 12 15화에서 군권을 빼앗기고 2년을 집에서 놀게된 사마의와 함께 등장. 잘생긴 외모로 나온 형 사마사에 비하면 비교적 수수한 인상이다. 성장한 형 사마사가 시즌 12에서 재등장한 당시 19살이었기에 2년이 지난 시점에서는 사마사는 21세, 사마소는 17세의 고2가 된다.

5. 기타

5.1. 반삼국지

아버지 사마의와 형 사마사와 함께 촉군에 대항하지만 낙양 부근에서 퇴각할 때 하필이면 살인머신 조운을 만나서 단칼에 목숨을 잃는다.

5.2. 와이파이 삼국지

성우는 이규창. 사마의가 완성에 지낼 때 짤막하게 등장하고, 추풍오장원 이후 다시 짤막하게 등장한다. 분량이 왠만한 엑스트라보다 없다.


[1] 다만 삼국지 6에서 통솔이 93이며, 삼국지 9에서는 지력이 90이다. [2] 차이가 있다면 자신을 내치려는 황가에 대항해서 조조는 황후를 죽였고, 사마소는 황제를 직접 죽였다 정도. 다만 조조는 스스로 기반을 만들었고, 동탁 때 이미 망했다고 보는 한조를 20년 넘게 유지했지만 사마소는 아버지 사마의가 찬탈한 기반을 형을 통해 물려 받았다라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다. 즉 조조와 조비 중간인 인물이다. [3] 이는 고평릉 사변에 대해서 전 날까지 알지도 못했던 초창기 시절과는 달리 형이 죽은 뒤 본격적으로 과격한 행보를 보였던 사마소 본인의 인생과도 비슷하다. [4] 사실 사마의가 시첩으로 받은 여인 정주가 조비의 첩자인데 그 때 마침 사마의 옆에 앉아서 일부러 때린 듯하다. [5] 한 예로, 사마사는 황제의 사신이 오기 직전에야 눈치를 챘지만, 사마소는 이미 눈치를 챘는지 밖에서 돌아오며 사마의에게 황제의 사신이 왔다고 알린다. [6] 정사에서 보여지는 사마소의 모습은 형과 다르게 어수룩하거나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병을 은밀히 양성하며 사서인 진서에서조차 "위나라에 대한 충심이 없었다."고 까이는 과 달리, 사마소는 고평릉 사변 아버지가 일으키려 한다는 것을 그 전날에야 알았으며 이로 인해 사마소는 형과 다르게 불안속에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고평릉 사변 이후에도 하후현이 형을 암살하려다가 실패하고 처형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하후현과의 친분을 이유로 형을 암살하려고 한 하후현을 감싸는 등 인간미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도 형의 자리를 물려받은 이후에는 제갈탄의 반란을 잔혹하게 진압하고, 황제마저도 암살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완전 흑화된 모습을 보인다. 사마사의 자리를 물려받기 전 보여준 모습들은 사실 일종에 이미지 관리고, 실세가 된 후에는 굳이 이미지 관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여겨 본색을 드러냈다는 의견도 있다. [7] 심지어 조상의 아내인 겸가가 조린의 고통을 덜어주려고 망나니가 마시는 술을 마시게 하자 씨익 비웃으면서 거기다 대고 건배까지 하는 장면은 한국팬들은 물론이고 현지팬들마저 경악했다고 한다. 이게 나쁘게 말하면 싸이코패스의 끝판왕 같은 행동이기 때문이다. [8] 사실 손침도 이렇게 말했다. 그 결과는... [9] 제갈탄을 중앙으로 불러오면 이후 제거하기가 훨씬 쉬워지고, 설령 본편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반기를 들더라도 이를 빌미로 찍어누를 수가 있다. [10] 이 전력을 동오에 쏟아붓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사마소는 촉의 산보다 오의 강이 훨씬 부담스럽다고 판단했다. [11] 해당 연회 장면 한정으로 사마소에게 콧수염이 붙었다. 일제강점기 시기의 일제 관료와 비슷한 이미지라는 의견도 있긴 하지만 정말 그걸 노린 건지는 확실치 않다. [12] 멧서, 페넬로페와 함께 섬광의 하사웨이에 나오는 기체 중 하나. [13] 서량과 남만, 굉국 모두 암흑의 수중에 떨어졌다는 소식 [14] 프라 동봉 코믹스에서는 사마사 페넬로페와 함께 살아남는 것으로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