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8 16:50:07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2775C4 0%, #4b92db 20%, #4b92db 80%, #2775C4)"
{{{#!wiki style="margin: 0 -10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25px"
초대 제2대 제3대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트뤼그베 리 파일:스웨덴 국기.svg 다그 함마르셸드 파일:버마 연방 국기.svg 우 탄트
제4대 제5대 제6대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쿠르트 발트하임 파일:페루 국기.svg 하비에르 페레스 데 케야르 파일:이집트 국기.svg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제7대 제8대 제9대
파일:가나 국기.svg 코피 아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반기문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안토니우 구테흐스 }}}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

제6대 UN 사무총장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1]
Boutros Boutros-Ghali
파일:boutros-ghali-un.jpg
<colbgcolor=#4b92db><colcolor=#ffffff> 출생 1922년 11월 14일
이집트 왕국 카이로
사망 2016년 2월 16일 (향년 93세)
이집트 카이로
재임기간 이집트 외무부 장관
1977년 ~ 1978년
제6대 UN 사무총장
1992년 1월 1일 ~ 1996년 12월 31일
초대 프랑코포니 사무총장
1997년 11월 6일 ~ 2002년 12월 31일
서명
파일:부트로스 부트로스갈리 서명.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4b92db><colcolor=#ffffff> 부모 아버지 유수프 부트로스갈리, 어머니 사펠라 미하일 샤루빔
친척 할아버지 부트로스 갈리[2]
배우자 릴리 카힐(결혼날짜 불명~2002)[3]
학력 카이로 대학교 ( 법학 / 학사)
파리 대학교 ( 국제법 / 박사[4])
종교 콥트 정교회
경력 카이로 대학교 국제법·국제관계 교수
컬럼비아 대학교 풀브라이트 장학금 연구원
헤이그 국제법 아카데미 연구소장
파리 대학교 법학부 객원교수
이집트 외무부 외교관
사우스 센터 소장
}}}}}}}}}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1992년 1월 1일부터 1996년 12월 31일까지 5년간 제6대 유엔 사무총장을 역임한 인물. 아프리카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유엔 사무총장이 되었다.

2. 생애

1922년 이집트 카이로 콥트 정교회 가정에서 태어났다. 이집트의 총리인 부트로스 갈리의 손자이다. 이름인 부트로스는 아랍어 베드로라는 뜻이다.

1946년 카이로 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한 후, 파리 대학교에서 국제법 석사 및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49년부터 카이로 대학교에서 국제법과 국제 관계를 강의하는 교수로 지내다가 1977년부터 공무원 외교관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77년에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동행하였고, 이에 대해 이집트 외무장관인 이스마일 파미가 항의하면서 외무부 장관직을 사퇴하자 그 후임으로 이집트 외무장관 자리에 취임하였다. 이집트 외무장관으로서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분리/평화정책을 추진하면서 국제적 명망을 얻었다. 1978년 캠프 데이비드 협정의 산파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아프리카에서 국제분쟁이 발생할 때마다 능동적으로 개입하였고, 1990년에는 넬슨 만델라의 석방에 기여하였다.

1991년 12월 3일 아프리카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UN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강조한 그는 재임 기간(1992년 1월 1일~1996년 12월 31일) 동안 미국과 여러 차례 충돌하였고, 결국 미국의 연임 거부권[5]으로 인하여 역대 사무총장 중에서는 유일하게 단임으로 머물고 말았다. 유엔 내부에서는 부트로스 갈리 전 총장에 대해 "미국에 맞서 유엔의 독립성을 높였다"는 긍정적 평가가 나오는 반면 "무엇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는 혹평"이 엇갈린다.

유엔 사무총장 퇴임 이후 1997년부터 2001년까지 프랑코포니 사무총장을 지냈다. 정치학과 국제 사건에 관한 저서를 많이 썼고, 특히 논문은 100편을 넘게 썼다. 약 20개가 넘는 나라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2016년 2월 16일 향년 94세의 일기로 사망하였다.


[1]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하이픈을 제외하기 때문에 '부트로스갈리'라고 읽는다. [2] 제18대 이집트 총리 [3] 폐질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4] 논문 주제는 역내 기구에 관한 연구였다. [5] 게다가 고의적으로 UN 분담금도 내지 않아 15억 달러에 이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