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14:28:36

백태웅

白泰雄, Baik, Tae-Ung
1963년 ~

1. 개요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사회운동가, 법학자이다. 미국 하와이대학교 로스쿨 교수이며, 한국학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2. 생애

1963년 경기도 파주군(現 파주시)에서 아버지 백명인(白命寅, ? ~ 1985. 5. 13)과 어머니 류정옥 사이에서 아들로 태어났다. 부모님의 고향은 경상남도 거창군으로 일찍이 부산시로 이주해 부산성북초등학교, 부산진중학교, 부산동성고등학교를 거쳐 1981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81학번)에 입학하였다.

서울대학교 입학 후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1984년 3월 21일 서울대학교 학도호국단 총학생장에 선출되어, 1980년 5.17 비상계엄 전국확대 조치로 인해 해체된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를 부활하여 전국 최초로 학생 총투표로 선출된 총학생회의 출범을 주도하였고, 1984년 9월 27일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 선거가 치러 진 뒤 학도호국단 총학생장을 사퇴하고 학도호국단의 해체를 선언했다.

총학생회장 선거 기간 중이던 1984년 9월 전후 교내에서 소위 '가짜 학생'에 대한 프락치 혐의를 조사하던 학생들에 의해 벌어진 폭행 사건(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과 관련 경찰로부터 수배되었다. 피해자들은 백태웅, 유시민, 이정우, 윤호중 등 학생간부들이 이를 주도했다고 주장하지만 당사자들은 폭행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9월 28일에는 민주한국당 중앙당사에서 학원사찰의 중지를 정부에 촉구해줄 것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였고 1984년 9월 29일 서울대는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백태웅, 총학생회장 이정우(李政祐), 부총학생회장 백기영(白基榮),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 오재영(吳在瑛) 등에 대해 서울대에서 제명 처분한다.

1984년 11월 1일 경찰에 체포되어, 1984년 11월 29일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에 의해 기소된 뒤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징역 1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고, 6월 28일 항소심에서 징역 1년형을 받아 복역하였다.

1985년 11월 출소한 뒤 서울 구로.독산 지역에서 노동운동에 종사하였고 1986년 이후에는 수배된 상태에서 활동을 계속하였다. 1989년에는 박노해 등과 남한사회주의노동자동맹을 결성하였고 1992년 4월 29일 국가안전기획부에 체포돼 국가보안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등으로 1심에서 사형이 구형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1993년 항소심에서 징역 15년형이 선고되었다. 국제앰네스티와 국내 각계에서의 다양한 석방운동에 힘입어 1999년 8월 15일 김대중 정부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다.

출소 직후 미국 노터데임 대학교 대학원로 유학하여 국제인권법 전공으로 법학 석사 (LL.M.) 학위를 받았다. 2000년 8월부터는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 (HRW)에서 연구인턴 연구컨설턴트로 근무하였다. 2003년 미국 뉴욕주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고,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의 동아시아법연구 프로그램에서 비지팅 스칼라를 지냈고, 노터데임 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인권법 전공으로 법학 박사 (J.S.D.) 학위를 받았다. 2003년 부터 캐나다 밴쿠버 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법과대학에서 조교수로 근무하며 한국법 프로그램 디렉터를 역임했고, 이어 2011년 부터 미국 하와이 대학교 로스쿨로 옮겨 부교수를 거쳐 현재 교수로 재직하며 국제인권법과 비교법, 한국법 등을 가르치고 있다. 또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2015년 유엔 인권이사회 강제실종실무그룹에 아시아 태평양 지역을 대표하는 위원으로 선임 되었고 이후 부의장을 거쳐 의장을 역임하여 2022년까지 세계 각국의 강제실종 문제를 다루는 역할을 하였다. 2017년 부터 2018년까지의 안식년 기간에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의 법학연구소에서 방문학자로 연구하였다. 워싱턴대학교 로스쿨의 위트니 해리스 세계법 연구소의 인도에 반한 범죄 문제 자문위원회(Crimes Against Humanity Initiative Advisory Council)의 위원을 맡고 있다. 법무법인(유) 원의 고문변호사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