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前 SK 와이번스 소속 야구선수 박재상의 선수 경력을 정리한 문서.2. 프로 시절
2.1. 신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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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시절 |
2001년 서울고등학교를 졸업한 후[1] 2차 9라운드로 SK와이번스에 입단하였다. 중학교 때부터 야구를 시작해 프로에 온 천재형 선수이다. 2군에 있을 무렵에 찍은 EBS 다큐멘터리 '맞수'에 양승학과 함께 출연한 것은 유명하다.
2001년 입단한 뒤에 부상 등으로 인해 1군에서 별 기회를 얻지 못하고 2군 멤버로만 지내다가 2002년 말 1년 선배 조동화와 함께 상무에 입대하여 군 복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2년간의 군 복무 후 2005년 제대하여 조범현 당시 감독의 눈에 들어오며 1군에 올라와 외야 백업으로 간간히 출장, 1년 선배 조동화, 입단 동기 김강민과 외야 한 자리를 두고 경쟁을 펼치게 되었다.
조범현 감독이 물러나고 김성근 감독이 SK의 신임 감독으로 부임한 뒤 박재상을 2007 시즌 주전 좌익수로 점찍었고, 그해 규정타석을 채우지는 못했으나,[2] 123경기에 출장하며 타율 0.269, 10홈런을 기록하며 SK의 주전 외야수로 발돋움하였고, 데뷔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였다.
2008년에는 부상으로 94경기에 출장하는데 그쳤으나, 40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우기도 하였다.[3]
2.2. 200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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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플래툰 시스템을 중시하는 김성근 감독 아래에서 유일하게 전 경기 선발 출장을 달성했고[4] 3할 타율 달성에는 실패하였으나, 정근우와 함께 SK의 테이블 세터를 이끌어가며 타율 0.295, 15홈런 81타점에 33도루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2번 타자로 활약하는 등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두산 베어스와의 2009년 플레이오프에서는 전 경기 선발 좌익수 겸 2번 타자로 출장하여 23타수 5안타 타율 .217, 장타율 .565, 출루율 .217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2009년 한국시리즈에 진출하였다.
KIA 타이거즈와의 2009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해 28타수 9안타 2볼넷 타율 .321, 장타율 .429, 출루율 .367을 기록했고, 특히 4차전에 7회초 김상현의 홈런성 타구를 잡아내는 호수비를 보여주며 팀 승리에 기여했다.
2.3. 201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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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에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지 0.255, 6홈런 42타점에 그치면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 최정과 함께 까야 제맛의 양대 산맥으로 등극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서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14타수 3안타 2볼넷 1사구(死球) 1타점 3득점, 타율 .214, 장타율 .286, 출루율 .35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2010년 12월 11일에 결혼식을 올렸는데 김태균도 그 날 결혼식을 올려 묻혔다. 그래서 SK 와이번스 갤러리에서는 결혼도 미미하다면서 탄식했다.
2.4. 2011 시즌
시즌 전 어깨 수술을 받았고, 수술 여파로 인해 2011년 중후반기에 복귀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어느새 개막전 엔트리에 들어와서 활약했다. 그러다가 다시 2군으로 내려가서 조동화가 주전으로 주구장창 나왔다. 그리고 다시 미미하게 올라와서 미미하게 활약해서 이 문서도 미미하게 작성되었다.KIA 타이거즈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2타수 4안타 5볼넷 2타점 2득점 타율 .333, 장타율 .583, 출루율 .529를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9타수 3안타 3볼넷 1타점 타율 .158, 장타율 .211, 출루율 .273을 기록하였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팀이 시리즈 전적 2패로 지던 2011년 10월 28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1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스코어 0:0인 4회말 1사에서 저마노를 상대로 문학구장 왼쪽 담장을 미미하게 넘기는 솔로 홈런을 쳤다. 그런데 저 미미한 홈런이 2011년 한국시리즈의 첫 홈런이었다. 이날 박재상은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3타수 1안타 1홈런 1타점 1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1:2로 이겼다.
2011년 10월 29일 문학 야구장에서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5:1로 지고 있던 7회말 무사 1, 2루에서 정인욱을 상대로 문학구장 왼쪽 담장을 넘기는 미미한 쓰리런 홈런을 쳤다. 이날 박재상은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4타수 1안타 1홈런 1볼넷 3타점 1득점을 기록했고, 팀은 스코어 8:4로 패하고 말았다.
박재상은 2011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15타수 4안타 2홈런 3볼넷 4타점 3득점 타율 .267, 장타율 .733, 출루율 .389를 기록하였다. 타율은 좀 그랬으나 2011년 한국시리즈에 출전한 모든 선수 중 장타율이 가장 높았을 뿐만 아니라 팀 타자들 전원 부진의 늪에 빠진 속에 그나마 타점을 많이 뽑아냈다. 시리즈 전체 팀 득점이 7점 뿐인데 그 중 4점을 혼자 뽑아냈으니 대차게 말아먹은 SK 타자들 중 유일하게 밥 값을 한 선수였다. 하지만 박재상이 미미하지 않은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팀은 1승 4패로 준우승했다. 지못미.
박재상은 2011년 포스트시즌에서 46타수 11안타 2홈런 11볼넷 7타점 5득점 타율 .239, 장타율 .478, 출루율 .386을 기록하였다.
2.5.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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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선제 솔로포를 치고 기뻐하는 모습. |
스프링캠프 연습 경기에서는 NPB 니혼햄전에서 2타점 결승타, KIA 타이거즈전에서 3타수 3안타, 한화 이글스 전에서 결승 투런 홈런을 치는 등 엄청난 활약을 하였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의 오버페이스때문에 허리 부상으로 인한 스프링캠프 조기 귀국조치 당했고, 시즌 시작하자 급격하게 페이스가 급전직하. 2번타자 자리는 임훈에게 빼앗겼으며 팬들은 시즌 내내 같은 박씨 좌타인 박정권과 함께 쌍박사기단이라 부르며 2군행을 기원했다. 타율 0.216 4홈런 23타점을 기록하며 풀타임 주전이 된 이후 커리어 최악의 성적을 찍었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16타수 5안타 3볼넷 2도루 2타점 3득점, 타율 .313, 장타율 .563, 출루율 .421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에서 선발 좌익수 겸 2번타자로 출장하여 23타수 3안타 1홈런 2타점 3득점, 타율&출루율 .130, 장타율 .261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박재상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39타수 8안타 1홈런 3볼넷 2도루 4타점 6득점, 타율 .205, 장타율 .385, 출루율 .262를 기록했다.
시즌이 끝나고 개최된 프로야구 선수 쓰리쿠션 대회에서 김상현에게 아쉽게 패배해 준우승에 올랐다.
2.6. 2013 시즌
기존에 오랫동안 써오던 등번호 1번은 조동화에게 넘겨주고, 등번호를 11번으로 변경했다.신인 외야수 한동민과 이명기가 좋은 타격을 보여주며 완전히 주전 경쟁에서 탈락하나 싶었지만, 타격 능력이 좋지만 수비를 못 하는 이명기 탓에 아직 주전 경쟁에서 완전히 밀리지는 않은 듯 하다. 사실 이명기가 뼈에 부상을 당했던게 컸다. 타격 능력도 예전보다 많이 좋아진 편이고. 하지만 4월 한 달동안 타율 0.192로 2할도 못 찍었다.
508 대첩에서 4타수 3안타 2타점 3득점으로 맹활약했다. 8회 추격을 알리는 홈런포도 쐈고, 9회 정상호와 함께 주루센스가 보이는 더블스틸도 성공시키며 팀 승리의 당당한 주역이 되었다.
그러나 5월 중순 이후부터 다시 타격부진에 빠지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조동화에 빌려 대수비요원으로 전락해버렸다. 몇몇 팬들은 김상현에게만 기회를 주지말고 박재상에게도 기회를 주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말해보자면, 김상현의 5월 성적(SK로 온 뒤부터)은 19경기 73타수 타율 0.301, 1홈런 10타점으로 기대했던 역할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박재상은 5월 22경기 63타수 타율 0.222, 2홈런 7타점으로 더 안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6월엔 김상현이 20경기 61타수 타율 0.213, 2홈런 7타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여줬고 박재상도 21경기 34타수 타율 0.206, 1홈런 6타점으로 마찬가지의 성적을 기록했다. 게다가 김상현이 OME급의 수비로 욕을 먹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런 팬들의 의견이 그저 이만수 까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다가 후반기에 SK의 상승세에 일조했고, 8월 타율은 0.393이었다. 7월 타율이 1할에 가까운 0.105였던 걸 보면 정말 격세지감. 9월달에도 3할에 가까운 타격으로 팬들에게 다음년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 정도 품게 됐다. 그리고 9월에만 5홈런을 치며 팬들이 기대했던 박재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국내야구 갤러리에서는 박재상 골글설이 흘러나오고 있다. 누군가가 "솔직히 박재상 골글확정 아니냐" 이러면 덧글로 "박재상은 골글이 아닌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해야" 이러는 식.
2.7. 2014 시즌
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9번으로 변경하면서 1년만에 등번호를 또 바꾸게 되었다. 기존에 11번을 달던 임훈과 서로 등번호를 바꿔 달아보기로 했다고 한다.시즌을 정상적으로 마치면 FA 자격을 얻는 해였지만 FA로이드라도 아무나 마시는게 아닌 듯 그의 아트스윙은 터지지 않고 여전히 아트삼진 모드. 모든 SK 팬들은 그가 대타로 나왔다고만 해도 넌덜머리를 내는 수준에 이르렀고, 결국 그는 김재현, 루크 스캇, 이명기, 조동화, 김상현, 한동민에게 밀리게 되고 말았다.
5월 9일에 말소되었다가 6월 19일 다시 등록되었지만 여전히 미미한 모습을 보여줬고 6월 27일에 다시 말소되어 2군으로 간 후에는 시즌이 끝날 때까지 1군에 올라오지 못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당연히 FA 자격도 취득하지 못하며 1년 미뤄지게 되었다.
2.8. 2015 시즌
시범경기와 스프링캠프에서도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해 1군 진입은 힘들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김강민이 kt wiz와의 시범경기 도중 무릎 부상을 당해 8주간 결장함에 따라 기적적으로 개막엔트리에 승선했다.하지만 4월 초에는 원래 주 포지션인 좌익수에 이명기가 버티고 있는데다 약점으로 지적받던 수비까지 나아진 모습을 보여 자리가 애매해진 상황. 시범경기 동안 중견수와 우익수로도 출장했으나 수비 안정성 면에서는 주장 조동화에 밀리고 공격력 측면에선 외국인타자 브라운과 임훈에 밀리며 경기 후반 대타로 한 두 타석 들어서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하지만 임훈이 다시 타격이 부진하며 2군으로 내려간 사이좋은 타격감을 보여주며 이명기, 조동화 등과 번갈아 가며 출장 중이다.
4월 9일 KT와의 3차전에 선발 출전하여 1회 투런 홈런을 비롯한 3안타 4타점 경기를하면서 경기 MVP가 되었다. 하지만 타팀 경기에서 마야의 노히트 노런, 테임즈의 사이클링 히트등이 나오면서 상대적으로 묻혔다.
5월 6일 롯데와의 경기에서 3회초 1안타를 기록하면서 박기택 주심이 교체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날의 기록은 3루타 하나를 포함 4타수 2안타.
5월 7일 롯데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서 3회초 투런홈런을 때려 팀의 선취점을 뽑아냈지만, 다음 타석에 올라온 조동화가 귀신같은 백투백홈런을 때리는 바람에 파묻혀 또다시 미미본능을 과시했다.
시즌 초반 활약을 종합해 보면 확실히 FA로이드를 맞은 듯 하다. 지난 3년간 2할 초반대에 헤매던 타율은 꾸준히 3할 언저리에 형성되고 있고 장타도 종종 터지며 테이블 세터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 더불어 중견수 자리도 소화하며 김강민의 빈자리를 훌륭히 메워주고 있다는 평. 5월 중순부터 타격페이스가 뚝 떨어졌다. 5월 10경기에서 타율은 1할도 되지 않은 0.097를 보여주면서 재작년, 작년의 부진했던 모습으로 돌아가 버렸다. 4월말 0.333이던 타율도 5월말 0.274로 떨어진 상황. 6월 5일 트윈스전에서는 대타로 나와 한 번 걸어나가고 12회 말 수비땐 보살을 시도했으나.[5]
6월에는 더욱더 심각하게 부진했는데 6월동안 24타수 1안타.. 타율 0.042로 그동안 2군으로 안 보낸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6월 24일 윤중환이 1군으로 등록되면서 2군으로 내려갔다.[6]
8월 11일에는 사직에서 홈런을 기록했다. 선제 투런포.
2.8.1. FA
2015 시즌 후 FA 자격을 취득했으며, 우선협상기간에 계약을 맺지 못하고 시장평가를 받으러 나갔다. 이후 다른 FA 선수들이 한명씩 미래를 결정하면서[7] 두산 베어스에서 풀린 고영민과 함께 유이하게 갈 곳이 없어진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SK 측에서는 FA 자격 취득 그 자체로 능력이 있다는 점. 나주환의 선례를 들어 받아는 주겠다는 입장이지만, 좋은 대우는 하지 않겠다고. 다만 나주환에 대한 동정여론이 있는데다 박재상은 처음부터 좋은 계약조건을 제시받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의외로 크게 깎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건 원 소속 구단 복귀는 거의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결국 2015년 12월 7일 1+1년 5.5억이라는 금액으로 원 소속팀 SK에 잔류했다. 처음 제시 금액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난해의 선례를 보고도 나간 걸 보면 이전의 계약내용이 그걸 감안해도 상당히 불만족스러웠을 가능성이 높음을 짐작하게 하는 건 사실이다.
한때 박재상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으나 동명이인인 가수 싸이의 신곡 발표 때문이었다.
2.9.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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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박재상/선수 경력/2016년 문서 참고하십시오. |
비록 두 차례의 부상으로 인해 규정타석은 채우지 못했지만, 부진한 이명기와 조동화의 공백을 메워 주는 등 알토란 같은 활약을 보여줘 팬들이 찬사를 보냈다.
2.10. 2017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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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식 날의 모습. |
스프링캠프에 참여했으나 전년도 막판에 당한 무릎 부상이 재발해 중도귀국했다.
개막전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못했고, 2군 리그에서도 몇 경기 나오지 못했는데, 맹장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2군에서 23경기 동안 2할 2푼 치고 있다. 현재까지 1군에 콜업된 적이 아예 없으며 7월 18일 출장을 끝으로 2군 기록도 없다.
확장 엔트리 때에도 콜업되지 못했으며, 은퇴설이 조금씩 도는 중이었다가 9월 3일자로 은퇴 의사를 밝혔음이 확인되었다. 은퇴식은 9월 9일에 있을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열렸으며, 은퇴 후 코칭스태프로 합류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사 박재상의 경우 2001년 SK 와이번스에서 데뷔한 뒤 17년 동안 이적 없이 한 팀에서만 쭉 뛰다가 은퇴하게 되며 SK 구단 두번째 원 클럽 플레이어가 되었다.
9월 9일 은퇴식 날 SK 선수들 모두가 박재상의 이름과 그의 등번호인 7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했으며, 스캇 다이아몬드가 8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 제이미 로맥이 시원한 끝내기 홈런[8]으로 끝내면서 은퇴하는 박재상에게 멋진 선물을 안겨줬다. 경기 후에 은퇴식을 갖고 공식 은퇴하였다.
[1]
성남서고에 입학하였다가 전학했다.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한서고등학교 야구부 선발투수
채병용과 맞대결한 적이 있다.
[2]
경기 중반 교체되거나 플래툰 덕후인 김성근 감독에 의해 좌투수가 선발 등판하면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는 경우가 잦았다.
[3]
2008년 4월 23일~6월 10일
[4]
전 경기 출장 역시 박재상이 유일하다.
[5]
송구는 비교적 정확했으나,
허웅이 공을 놓쳐
정성훈이 홈에서 살아 그게 끝내기 점수가 되었다. 참고로 안타를 친 주인공은
채은성.
[6]
비록 FA 일수는 다 채웠지만 부진한 성적이 지속된다면 보상 선수 없이 FA 영입이 가능한
kt wiz에게도 외면받을 가능성이 농후하기에 FA 재수를 선택하거나 지난 시즌
나주환의 사례처럼 헐값에 계약을 하는 수밖에 없다.
[7]
박정권과
채병용은
SK 와이번스에 잔류했으며,
윤길현은
롯데 자이언츠,
정상호는
LG 트윈스,
정우람은
한화 이글스로 이적하게 되었다.
[8]
게다가 이 홈런타구는 박재상의 수비 위치였던
좌익수 쪽으로 날아가 그의 은퇴식 현수막에 착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