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13:05:12

미카엘 세르베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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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스페인의 방송국 안테나3가 스페인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스페인인 100명'을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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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 펠리페 6세 파블로 피카소 예수의 테레사 펠리페 곤살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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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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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ddd,#000><colcolor=#000,#ddd> 미카엘 세르베투스
Michael Servetus
출생 1511년 9월 29일
아라곤 왕국 비야누에바데시예나
사망 1553년 10월 27일 (향년 42세)
제네바 공화국 제네바
국적
[[스페인|]][[틀:국기|]][[틀:국기|]]
직업 의사, 신학자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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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페인의 의사 겸 신학자.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글을 썼으며 그로 인해 제네바에서 제네바 시의회에 의해 화형당했다. 장 칼뱅이 화형을 주도했다고 알려져있으나 사실 세르베투스의 화형을 주도한 제네바 시의회는 칼뱅과 척을 지고 있었다. 칼뱅은 세르베투스에게 제네바로 가면 살아남기 어려울 것으로 극구 말렸으나 세르베투스는 제네바에 있는 칼뱅의 적대자를 통해 그들과 힘을 합해 칼뱅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제네바로 간 것. 그러나 제네바 시의회는 세르베투스가 오자마자 그를 체포했고 이단과 신성모독 혐의로 만장일치로 화형 선고를 내렸다.[1]

그의 행적 중 일부에 대해서는 슈테판 츠바이크의 저서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에 나와있다.

[1] 16세기 유럽은 신앙의 자유라는 개념 자체가 없고, 기독교가 국가와 뿌리깊게 연관되어 있던 시기였기 때문에 로마가톨릭이던 개혁 진영이건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것 자체가 국가적으로 사형감이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 이후부터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아리우스파와 같은 입장들은 이단으로 정죄되어 사형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재에도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는 무신론을 주장하면 사형에 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