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31:57

목(관직)

1. 개요2. 역사3. 관련 글

1. 개요

고대 중국 한나라 관직. 후한 13주 장관.

2. 역사

전한 전기 군현제에서 기본적으로 의 상위 행정구역이라기보단 감찰구역에 가까웠기 때문에 주지사 주자사는 상급 광역 지방행정구역의 장관으로써 태수의 상관이 아닌 조정에서 각 군의 민권과 군권을 가진 태수를 감찰하기 위해 파견된 감찰관이었다. 이렇게 주자사의 권한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군현제에 대한 통치체계를 확고히 하기 위하여 성제 수화 원년(기원전 8년) 자사를 목으로 명칭을 바꾸어 녹봉도 태수와 동급인 2천 석으로 가증했다. 애제 때 자사로 다시 개칭했다가 목으로 도로 개칭했었으며 후한 때는 다시 자사로 복원했다.

후한 말기 영제 중평(重平) 5년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유언(劉焉)이 군 태수의 군권으로는 반란이나 여러 혼란을 평정하기 어려워 각 주에 목을 설치하고 주목(州牧)에게 군권을 부여해야 한다는 제청을 했는데,[1] 이때 목을 부활시켰다. 자사는 원래 군권이 없었고 비상시 칙령(勅令)에 한해서 군대를 일으킬 수 있었지만 목은 처음부터 군권이 있어 지방의 권한이 크게 강화되었다. 그러나 주에 군권을 내려 그 군사력으로 국가적 통합을 지키려는 의도와는 달리 군권을 쥔 주목이 역으로 군벌로써 할거하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며 후한의 지방 통치체제가 더욱 문란해져 약화되었고, 그 결과 신나는 삼국지 후한 삼국시대 군웅할거 난세가 펼쳐진다.[2]

이 목은 한국사 고려, 조선에서 행정구역으로 전화되기도 하였다.

3. 관련 글


[1] 유언은 이 주목으로 교주에서 자립할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 [2] 유언은 익주에서 자립하여 아들 유장에게 세습되어 유비에게 타도될 때까지 파촉에서 실질적으로 분리독립을 누렸다.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다니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76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76 ( 이전 역사)
문서의 r ( 이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