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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100%><tablebordercolor=#315288> 대한민국 보물 제1595-1호, 제1595-2호 | |||
<colbgcolor=#315288> 목장지도(2008-1), 목장지도(2008-2) 牧場地圖(2008-1), 牧場地圖(2008-2) Mokjang jido (Maps of Ranch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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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대로 201,
국립중앙도서관 (반포동,
국립중앙도서관)[A] 부산광역시 금정구 부산대학로63번길 2 (장전동) 부산대학교도서관[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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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유물 / 과학기술 / 천문지리기구 / 지리[C] | |||
수량 / 면적 |
1책 24장[A] 1책 24장[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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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연도 | 2008년 12월 22일[C] | |||
시대 | 1678년( 숙종 4년)[C] | |||
소유자 (소유단체) |
국유[C] | |||
관리자 (관리단체) |
국립중앙도서관[A] 부산대학교[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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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목장지도〉 표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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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선 시대에 편찬된, 목장과 목축에 관한 지도와 책.2. 역사
2.1. 조선 이전의 목축 기록
한반도에서 목장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따르면 신라는 174개의 목장을 만들었고 이를 거(阹)라고 불렀으며, 왕실 목장은 속내소(屬內所)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외 삼국시대 목장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고려 시대에는 목장을 관리하는 태복시(太僕寺)라는 기관이 만들어져 국영목장을 관리했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다. 하지만 고려사 권제76, 37장 앞쪽에 250여자 정도 기록되어 있는 것이 전부이며, 역시 상세한 기록은 전무하다. 대체적으로 불교 문화로 인해 육식 문화가 크게 쇠퇴했던 당대 상황 상 전투용, 농사용으로 쓰이는 소규모 목축을 제외한, 식육 목적으로 키우는 가축의 수는 매우 적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기록상의 목장은 용양(龍讓), 은천(銀川), 양란(羊欄), 좌목(左牧), 회인(懷仁), 상자원(常慈院), 엽호원(葉戶院), 강음(江陰)의 8개 소의 목마장(牧馬場) 뿐이다. 또한 지방에까진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여 개경 주변의 국영목장만을 관리했고 지방의 목장들은 호족들이 각자 따로 소유, 관리했다.
원 간섭기에는 제주도에 도거(島阹)라는 말 목장이 많이 세워졌다는 기록이 있지만 몽골의 탐라총관부에서 관리했다.
2.2. 조선 전기의 목축 기록
조선 태조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기 이전부터 이미 함흥 지방에 개인 사유 목마장인 도련포(都連浦) 목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목축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이에 태조는 조선 건국 후 지금의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 중랑구 면목동 2개동 부지에 직접 거대한 전관목장(箭串牧場)을 설립했고, 사복시(司僕寺)가 전국의 목장들을 체계적으로 건립, 관리토록 했다. 이후 세조에 의해 강원도 일대에 거대 목장들이 폭발적으로 설치되었다.
이러한 목장 건립으로 인해 임진왜란 전까지 전국에 159개의 대형 국립목장이 건설되었고, 기록에 따르면 제주도의 김만일(金萬鎰)이란 사람이 해마다 조정에 수백 필의 말을 상납하고 혼자 말 1만 필을 사육할 정도로 목장이 전국적으로 크게 활성화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인조 13년(1635년) 4월에 장유(張維)가 목장지도를 만들어 올리는데, 임난 후 119개의 목마장이 남아있었다.
3. 허목의 목장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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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315288> 〈사복시 관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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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헌마정색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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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부 지도〉 |
위에서 봤듯이 목장지도의 편찬은 허목이 최초가 아니다. 조선 전기에 제1차로 편찬하였고, 1635년에 장유가 제2차로 편찬하였으며, 효종 9년, 1658년에 정태화가 제3차로 편찬하였다. 이후 허목이 4차로 최종 완성하여 국왕에게 바치고 그 부본을 만들어 그 한 본은 사복시에 소장하고 또 하나는 춘추관에 보관하였다.
목장지도는 사복시가 국가의 중대한 마정(馬政)의 정책 수립에 활용하기 위하여 전국의 감목관에게 명하여 목장의 실태를 그림과 지리적 지식을 보고하게 하여 이를 토대로 정리 편찬한 것으로 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으며, 회화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제일 첫 장에는 〈진헌마정색도(進獻馬正色圖)〉라는 채색 그림이 있으며, 서울 광진구, 중랑구, 성동구 일대의 21마리의 진헌마를 그렸다. 목장 안에는 화양정(華陽亭)과 말을 치료 또는 관리하는 것으로 보이는 환장(環場), 그리고 자마장(雌馬場)과 전관(箭串) 등이 그려져 있다. 이후 각 도에 산재한 138개소의 도별, 군별의 목장소재지 채색 지도가 있고 현존 및 폐장된 목장의 수, 소와 말의 수, 목장 면적, 감목관(監牧官) 등에 대한 기록 등을 상세히 적고 있다. 그리고 이전 선조 때의 목장수와 감목관의 배치 상황과 함께 전국 목장의 소장관계(消長關係)에 관한 내력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마정과 목장에 관한 시책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고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보물 제1595-1호가 소장되어 있으며, 부산대학교에 제1595-2호가 소장되어 있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 목장지도 (牧場地圖) 제1595-1호
문화재청 홈페이지 - 목장지도 (牧場地圖) 제1595-2호
4.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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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해관문서 |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 | 수선전도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95호 | |||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 司僕寺箭串牧場圖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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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서울시립대로 163 ( 전농동, 서울시립대학교 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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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유물 / 과학기술 / 천문지리기구 / 지리 | ||
수량 / 면적 | 1점 | ||
지정연도 | 2010년 2월 11일 | ||
시대 | 조선 후기(1789년 ~ 1802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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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ae1932>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11] |
1789년에서 1802년 사이에 사복시가 관장하던 성동구 일대의 살곶이 목장에 대한 기록물과 그 목장을 그린 지도책.
살곶이 목장의 전반적인 상황에 대해 상당히 자세한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조선 후기 마정사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다.
문화재청 홈페이지 - 사복시 살곶이 목장지도 (司僕寺箭串牧場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