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5 14:23:45

메논

1. 개요2. 등장인물3. 줄거리
3.1. 탁월함이란 무엇인가?3.2. 배움이란 무엇인가? : 상기설의 등장3.3. 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는가?
4. 여담

1. 개요

메논은 플라톤의 대화편이다. 부제는 '덕(탁월함)에 관하여'. 초기에서 중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저술된 과도기적 대화편으로 여겨진다.

2. 등장인물

소크라테스
메논[1]
아뉘토스[2]
메논의 노예[3]

3. 줄거리

3.1. 탁월함이란 무엇인가?

메논은 첫 문장부터 소크라테스에게 다짜고짜 탁월함[4]은 가르칠 수 있는 종류의 것인지, 아니면 타고나는 본성에 가까워 가르칠 수 없는지에 관해 물어본다.[5] 소크라테스는 테살리아인들이 부와 기마술로 유명했는데[6] 자네가 이렇게 자신감있게 따지러 오는 걸 보니 이제는 고르기아스의 가르침을 받아 지혜로도 유명해진 것 같다고 은연중에 비꼰다.[7] 하지만 자신은 무지한 사람이라 탁월함을 가르칠수 있는지를 알기는 커녕 탁월함이 무엇인가도 모른다고 주장하며 메논에 대해 모르면서 메논에 대해 말할 수 있겠냐고 반문한다.

메논은 그것이 사실인지 의심하며 그럼 고향에 소크라테스가 탁월함이 뭔지도 모른다고 알려도 되냐고 물으며 도발한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탁월함이 무엇인지 모르는 데다가 이를 아는 이를 한 명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물론 사실이니 말해도 된다고 한다. 메논은 거짓말하지 말라면서 당신은 고르기아스를 만나본 적 없는 거냐며 소크라테스를 힐난한다. 소크라테스는 물론 만나본 적 있지만[8] 자신은 기억력이 나쁘다면서[9] 메논이 탁월함을 알고있는 고르기아스에게 탁월함에 대해 배운 것 같으니 자신에게 탁월함이 무엇인지 알려달라고 요청한다.

메논은 자신감있는 태도로 남자의 탁월함은 나랏일에 참여하는 것, 여자의 탁월함은 남편에게 순종하고 가정을 잘 보살피는 것이며 어린아이, 노인, 노예에게도 각각의 위치에 걸맞은 탁월함이 있어 이들을 통틀어 탁월함이라고 답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런 사례 열거식 대답에 만족하지 못하고[10] 모든 탁월함을 포괄할 수 있는 정의를 말해달라 한다. 여러 종류의 벌들이 벌이라는 점이 다른게 아니라 벌이라는 점은 같으면서 세부적인 크기나 날개 등이 다른 것처럼 탁월함의 세부적인 요소를 포괄할 수 있는 이데아가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추가로 힘이나 커다람, 건강함에 있어서는 남자나 여자나 차이가 없다는 점과 나라를 돌보든 가정을 돌보든 간에 정의와 절제라는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탁월하다는 점을 들어 메논에게 탁월함이 성별, 나이, 신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한가지 가치임을 동의시킨다.

메논은 두번째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 탁월함의 정의라고 주장한다.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나 가정을 보살피는 것 모두 사람을 지배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타인을 지배하는 것이 복종이 미덕이어야 할 노예나 아이들에게도 적용되는 탁월함이 될 수 없지 않냐고 반박한다. 또 정의나 절제를 다시 언급하며 지배 중에서 정의롭지 못한 것은 탁월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메논이 이를 수용해 정의를 사람을 정의롭게 지배하는 것으로 바꾸자 정의, 절제, 용기 등은 탁월함 그 자체인지 탁월함의 부분인지 묻는다.[11] 메논이 정의, 절제, 용기 모두 탁월함이라고, 즉 각각이 탁월함 그 자체가 아니라 탁월함을 이루는 부분이라고 답하자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탁월함의 정의 속에 (절제, 정의같은) 탁월함의 부분이 들어가 있는 것은 말이 안되지 않느냐면서 제대로 정의내려달라고 부탁한다.

메논이 잘 모르겠다고, 직접 이데아를 정의내리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부탁하자 소크라테스는 늙은이에게 답변을 너무 많이 시키려 든다면서 툴툴대며 네가 잘생겨서 봐준다며 도형의 형태를 예시삼아 개념 정의를 몸소 보이기 시작한다. 그는 우선 형태란 사물들 중 가운데 유일하게 색깔에 수반되는 것이라고 정의내린다. 메논이 색깔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어떡하냐고 물으며 너무 순진한 정의 아니냐고 비판하자 소크라테스는 이를 비판하고 검토하는 것은 메논의 몫 아니냐며 투덜대면서도 정의 방식을 바꿔 한계짓는다는 단어의 용법을 엄밀하게 정의내린 후 도형을 한계짓는 것이 곧 형태라고 제대로 정의내린다. 메논이 색깔이 무엇인지는 아직 말 안했다고 딴지를 걸자 소크라테스는 메논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자꾸 들으려 하는게 짜증났는지 무례하다며 쏘아붙이면서도 친절을 베풀어 모든 사물이 유출물을 내뿜고 감각은 이 유출물을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엠페도클레스의 감각 이론을 들어 색깔이란 사물이 뿜어내는 유출물 중 시각이란 감각에 맞는 것이라고 정의내린다.[12]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시범을 보였으니 메논 또한 탁월함의 형상을 제대로 정의내려달라고 요청한다.

메논은 마지막으로 탁월함이란 훌륭한 것을 욕구하며 그것을 얻을 힘을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 소크라테스는 훌륭한 것을 욕구하지 않고 열등한 것을 추구하는 이들은 그것이 열등한 것인줄 알고 그러는 것이냐고 묻고 메논은 이에 일부는 그것이 열등한 줄 모르고 옳은 길인줄 알고 저지르지만 나머지 일부는 잘못된 길인줄 알면서도 그 길을 추구한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전자는 단지 무지할 뿐 훌륭한 것을 욕구한다는 점에서 탁월한 이와 똑같겠다고 하고 후자의 경우 열등한 것을 가진 이는 불쌍한 이인데 불쌍해지길 원하는 이가 있겠느냐면서 존재를 부정해 결국 탁월하든 아니든 모두가 훌륭함을 추구한다는 것을 동의시킨다.[13]

그렇다면 훌륭함을 원한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동일하니 탁월한 이와 아닌 이를 가리는 지점은 훌륭한 것을 얻을 힘을 가지는 것이지 않겠나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 다음, 메논이 말하는 훌륭한 것이 건강이나 부 같은 것을 말하는 거냐고 묻는다. 메논이 그것에 더해 명예까지 포함한다고 답하자 소크라테스는 정의롭지 못하게 돈을 얻으려 노력하는 것은 탁월하지 못한 것 아니냐고 주장하며 결국 메논의 마지막 주장 또한 정의롭게 힘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바꿔야 겠다고 한다. 메논이 이에 동의하자 소크라테스는 아까 정의나 절제같은 탁월함의 부분을 정의에 넣지 말자고 했는데 이를 어겼다면서 자신을 놀리는 거냐며 메논을 힐난한다. 그리고 고르기아스에게 배운 탁월함의 정의를 제대로 말해달라고 부추긴다.

3.2. 배움이란 무엇인가? : 상기설의 등장

메논은 말문이 막히고 논쟁에서 진 것이 분했는지 갑자기 급발진해서 소크라테스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남들이 말하는 것처럼 소크라테스가 교묘하게 논변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유도해 상대를 곤경에 빠트리고 이를 즐긴다는 것이다. 메논은 소크라테스가 외모로 보나 행동으로 보나 사람을 마비시키는 전기가오리와 같다며 비유로 모욕한다. 자신을 침으로 쏴 제정신 아니게 만들어 논의에서 헤메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전기가오리는 타인을 마비시키고 자신은 멀쩡한데 반해 자기도 논변에서 탁월함의 정의를 찾지 못했고 마비당한건 메논이랑 피차일반이라고 받아친다. 메논을 골탕먹일 목적같은건 없고 자신도 그저 무지한 개인일 뿐이란것이다.

메논은 여기서 소크라테스가 진짜로 전적으로 무지하면 탐구를 할 수 있긴 하는거냐고 물으며 소크라테스에게 공격을 한방 먹이는데에 성공한다. 소크라테스는 메논의 질문에서 논쟁적 의도를 간파하고 만일 무언가를 알고 있으면 알고 있으니 배울 필요가 없고 모른다면 무엇을 배워야 할지, 왜 배워야 하는지 알지 못할테니 배움이란 있을 수 없다는 주장 아니냐 한다.[14] 그러면서 자신은 이에 동의하지는 않는다며 사제들의 사후세계 주장을 인용하며 상기설을 주장하기 시작한다. 사제들[15]은 죽은 이의 영혼이 사후세계로 갔다가 기억을 잃어버리고 이승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말한다고 소크라테스는 언급한다. 소크라테스는 사제들의 사후세계 주장이 만약 사실이라면 우리는 전생과 사후세계에서 모든 것을 깨달았지만 이승에 다시 태어나며 이것들을 잊어버렸고 그렇다면 우리가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전생과 사후세계에서 배웠던 것을 다시 떠올려내는, 즉 상기하는 행위 아니겠냐고 한다. 메논이 자신은 그 주장을 이해 못하겠으니 예시를 들어줄 수 있겠냐고 하자 소크라테스는 메논에게 그의 노예를 한 명 데려와달라고 부탁한다.

메논이 노예 소년을 불러오자 소크라테스는 이 소년이 그리스어는 할 줄 알지만 기하학을 잘 모른다는 점을 확인하고 정사각형의 넓이를 두배로 늘리려면 각 변을 몇배 늘려야 하는지를 차근차근 가르치기 시작한다.[16] 소크라테스는 노예 소년이 틀린 주장을 할 때마다 틀렸음을 눈으로 보여주며 소년이 직접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해나간다.

노예 소년이 자기가 처음에 자신감있게 주장했던 내용이 틀렸음을 확인하고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며 소크라테스는 메논에게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자신감을 잃어버린 것이 노예 소년에게 있어서 더 좋은 일이라는 것에 동의를 얻어낸다. 전기가오리에 마비당하는 것이 괴롭더라도 진정한 참을 찾아갈 수 있게 해주니 더욱 이롭다는 것이다. 또한 노예 소년이 스스로 답을 찾아가고, 검토하고 확신을 얻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신은 무언가를 가르쳐주지 않았고 소년이 직접 깨닫고 검토해나가는 것을 돕기만 했다면서 이는 소년이 전생의 기억을 되살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상기설을 증명해낸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통해 메논의 난제를 해결한다. 사실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며 이를 상기시켜나가며 탐구하는 것은 가치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메논에게 무지를 깨닫는 것의 유용성과 탐구의 가치를 알았으니 탁월함의 정의를 다시 논의해가자고 제안한다.

3.3. 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는가?

하지만 메논은 탁월함이 무엇인가보단 자신이 최초에 제기했던 문제, 즉 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해보자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탁월함의 성질을 따져보기 이전에 그것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데에 동의했던 것을 잊었냐고 어이없어하면서도 탁월함이 무엇인지에 대해 가설을 세워가며 논의해볼 수는 있을테니 그렇게 하자고 한다.[17] 우선 탁월함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인식, 즉 앎이라고 가정하며 논답을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우선 탁월한 것은 훌륭하고 유용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돈, 건강, 명예 등이 유용하지 않냐고 메논에게 다시금 묻는다. 메논이 동의하자 그러한 것들은 절제, 정의, 용기, 지혜 등을 겸비하지 않고는 유용하지 않고 오히려 해롭다는 것 또한 거론한다. 또 앎 없이 행해지는 절제, 정의, 용기, 지혜등 또한 마찬가지라고 하며 좋은 것들은 영혼이 보살펴지지 않으면 오히려 해롭고 또 앎 없는 영혼은 이롭고 유용한 일을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낸다. 즉 무언가를 유용하게, 즉 탁월하게 만드는 것은 앎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앎, 즉 인식이라면 가르쳐질 수 (흑은 상기할 수) 있을테니 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메논이 이에 동의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자기 주장이 아름답게, 즉 엄밀하게 동의된 것 같지 않다고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모든 가르칠 수 있는 앎은 그것을 가르치는 선생과 배우는 학생이 있을텐데 탁월함을 가르치고 배우는 선생과 학생이 있는지 자신은 잘 모르겠으니 옆에 있는 아뉘토스에게 물어보자고 한다. 그의 아버지 안테미온은 자수성가했고 절제의 미덕을 갖춘 이로 소문났으니 탁월함을 지닌 아버지를 둔 아뉘토스야말로 이 문제를 물어보는 데에 적격 아니겠냐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아뉘토스에게 의술을 배우려먼 의사에게 가고 그림을 배우려면 화가에게 가야 하냐고 묻는다. 아뉘토스가 동의하자 그렇다면 무언가를 배우려면 그 무언가를 잘 안다고 주장하는 이에게 가야겠다고 묻는다. 아뉘토스가 이 점에도 동의하자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탁월함도 자기가 탁월함을 잘 안다고 주장하며 돈을 받는 이들, 즉 소피스트 들에게 배워야 하냐고 묻는다. 소피스트를 혐오하는 아뉘토스는 깜짝 놀라며 그럴리가 있겠냐며, 그자들은 오히려 해로운 이들이라고 길길이 날뛴다. 소크라테스는 그럼 그들이 잘 모르는 것을 속여서 아는 척 하면서 돈을 그렇게 많이 버는 것이었냐고 묻는다. 사실이라면 그들은 미친 이들에 불과하지 않겠냐면서

아뉘토스는 물론이라고 답하며 사실 소피스트 자신들보다 그 사기꾼들을 추종하는 청년들, 그리고 그들을 말리지 않는 가족들이 더욱 미쳤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아뉘토스의 태도를 보며 예전에 소피스트들한테 해를 입은적이라도 있냐고 묻지만 아뉘토스는 만난 적 없고 앞으로도 절대 안만나려 노력할 거라면서 소크라테스 또한 그런 이들과 만나지 않도록 노력하라고 한다.[18] 소크라테스가 그럼 탁월함은 누구에게 배워야 하냐고 묻자 아뉘토스는 아테네에는 소피스트 나부랭이들과는 비교도 안되는 훌륭한 이들이 매우 많고 특히 역사에 남은 이들은 더더욱 그렇다고 답한다.[19]

소크라테스는 아뉘토스가 거론한 훌륭한 이들이 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는지에 대해 의심을 품으며 테미스토클레스, 아리스테이데스, 페리클레스 같은 훌륭한 정치가들의 자식들은 아버지만큼 두각을 보이지 못했는데 그럼 부모가 자식에게 탁월함을 가르치지 못한 것 아니냐고 묻는다. 분명 그들이 자식 교육을 방기했을 리도 없고 여러 선생들에게 아이를 맡기며 기마술, 운동, 예술등을 가르쳤을텐데 그런 잡기술보다 훨씬 중요하고 정치가들 본인이 지니고 있던 탁월함이 자식에게 전수되지 못한 것은 탁월함이 가르쳐질 수 있는 것이라면 이상하다는 것이다.[20] 아뉘토스는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유명 정치가들을 자식 교육 못한 이로 폄하하고 있다고 화를 내며 퇴장한다.[21]

소크라테스는 반론을 해줄 것 같지 않는 아뉘토스를 제쳐두고 메논과 다시 토론을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메논에게 훌륭한 정치가들이 탁월함의 선생이라 생각하냐고 묻는다. 메논은 아닌것 같다고 답한다. 소크라테스는 그렇다면 소피스트들이 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겠나고 묻자 메논은 그들 또한 가르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없는 것 같다면서 부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고르기아스를 존경한다는 것이다.[22] 소크라테스 또한 테오그니스의 시를 인용하며 이 시에서는 탁월함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하다가 뒷부분에선 이를 번복한다면서 시인이나 훌륭한 이들도 이렇게 주장이 일관되지 않은걸 보면 아무래도 탁월함의 교사는 없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린다.[23]

소크라테스는 처음에 했던 가설이 문제있는지를 따져보자고 한다. 즉 탁월함이란 인식, 즉 앎이라는 것에 문제가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탁월한 이는 올바른 길로 인도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겠느냐면서 앎을 제외한 다른 방법으로 올바른 길을 찾는 방법이 있는지 살펴보기 시작한다. 소크라테스는 길찾기를 예로 들면서 길을 아는 이도 올바르게 찾겠지만 길을 모르더라도 확신을 가진 이가 가는 방향이 올바르다면 그 또한 올바른 인도 아니냐고 한다. 인식과는 다른 올바른 확신이라는 개념이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메논은 이에 동의하지만 올바른 확신은 인식보다 통념적으로 좀 낮게 취급되지 않느냐며 반론을 제기한다. 소크라테스는 이를 올바른 확신이 쉽게 풀려나기 때문이라는 비유로 설명한다. 올바른 확신이 떠나지 않게 묶는 행위가 원인이자 근거 파악이고 이렇게 묶인 올바른 확신을 인식이라 부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모르고 한 확신이 아무리 올바르더라도 인과관계를 나중에라도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탁월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가설이 인식과 올바른 확신 둘이겠다면서 그 중 가르쳐질 수 있는 인식은 탁월함이 될 수 없으니 올바른 확신이 탁월함의 본질일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런데 올바른 확신은 누군가가 가르친 것도 아니고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도 아니니 신적인 힘에 의거한 것이 아니겠냐고 한다.[24] 훌륭한 정치가들은 신적인 힘의 인도로 그러한 업적을 세운 것이기 때문에 자식에게 자신의 탁월함을 가르칠 수 없던 것이고 그들은 본인이 능력을 갖춘 훌륭한 기술자가 아닌 신의 인도를 받는 예언가에 가깝다는 것이다.

결국 탁월함을 가르칠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린 소크라테스와 메논은 흡족해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는 가설의 방법으로 세운 가정에 불과하고 탁월함이 무엇인지에 관한 논의가 더욱 필요하다고 다시 탁월함의 정의의 문제를 꺼내든다. 하지만 자신은 지금 일이 있어서 떠나야겠다면서 이는 나중에 논하고 메논에게 우선 논의 내용에 화가 잔뜩 난 아뉘토스를 설득시켜보라고, 그것이 아테네와 테살리아 모두에게 이득이 될 것이라 하며[25] 대화편을 마친다.

4. 여담

소크라테스적 대화편으로 불리는 초기 대화편과 플라톤의 대표 사상들이 드러나는 중기 대화편 사이의 과도기적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개념의 정의를 중시하는 초기 대화편적 주제를 지녔으면서도 이데아, 상기설, 가설의 방법 등 플라톤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키워드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첫 대화편이라 할 수 있다. 동굴의 비유로 유명한 이데아와 상기설이 처음으로 제대로 등장하는 대화편으로 국가, 파이돈, 향연 등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들을 읽을 때 개념 이해의 용이를 위해 같이 읽는 편이 좋다.

덕(탁월함)을 다룬 대화편으로 같은 주제를 다룬 초기 대화편 프로타고라스와 비교 대조 해볼 거리가 많다. 특히 덕의 부분이 덕 그 자체라 주장하는 프로타고라스의 젊은 소크라테스와 덕의 부분으로 덕을 정의할 수 없다는 메논의 늙은 소크라테스가 크게 대조되어 연구 소재가 되어왔다. 한편 저술시기는 플라톤의 1차 시칠리아 방문 전후로 추정된다. 고르기아스 저술 시기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되며[26] 시칠리아 방문 이전에 저술된 초기 대화편과 방문 이후 2차 방문시까지 저술된 중기 대화편의 과도기적인 시점이다.

한편 노예 소년을 가르치는 대목과 다른 대화편에서도 드러나는 소크라테스식 대화법, 교육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담은 메논의 난제 등은 교육학계에서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1] 테살리아의 젊은 귀족. 고르기아스의 제자로 그를 숭배한다. 크세노폰 페르시아 원정에 참여한 이이자 아리스티포스의 애인인 메논과 동일인물로 추정되며 크세노폰은 저서에서 그를 혹평했다. 대화편 시점에서는 정치적 이유로 아테네에 방문해 아뉘토스의 집에 머무르고 있다. [2] 아테네의 민주파 정치인. 크리티아스의 30인 참주정을 몰아내는 데에 트라시불로스와 함께 큰 역할을 하였다.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를 싸잡아 싫어하는 보수적 인물로 멜레토스를 앞세운 소크라테스 고발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이이다. [3] 무지하고 비천한 신분을 지녔지만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통해 기하학을 하나하나 깨우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노예의 모습은 상기설의 증거이자 소크라테스 문답법의 효용을 메논에게 알려주는 장치가 된다. 더불어 고귀한 신분이지만 탐구를 거부하려 드는 주인 메논과 대조되는 역할 또한 한다. [4] 보통 이라고 번역되는 Arete를 의미한다. 정암학당의 다른 대화편 역서에서는 주로 덕으로 번역되었지만 정암학당 메논 번역의 경우 Arete를 탁월함, 이에 대비되는 kakia를 열등함으로 번역하였다. 이 문서에서도 정암학당 메논을 따라 탁월함으로 적는다. [5] 덕을 가르칠 수 있는지의 여부 당대 소피스트들 사이에서 중요한 토론 소재였고 초기 대화편 프로타고라스에서도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6] 메논은 테살리아 출신이다. [7] 메논의 스승 고르기아스를 비롯한 소피스트들은 앎에 대한 확신에 가득차있는 경우가 많았고 소크라테스는 이에 반발해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앎을 중시했다. [8] 메논과 비슷한 시기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르기아스는 수사학과 정치윤리에 관해 고르기아스와 그 제자들과의 토론을 담고있다. [9] 당대 소피스트들은 암기를 통한 교육을 중시했는데 이를 비판하려는 의도도 있는 구절이다. [10] 이데아론을 제창한 대표적인 합리주의자인 플라톤(을 대변하는 소크라테스)의 눈에는 고르기아스식 경험주의의 영향을 받은 메논의 대답이 탐탁지 않았을 것이다. [11] < 프로타고라스>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온다. 하지만 <프로타고라스>의 소크라테스는 <메논>, < 라케스> 등 다른 대화편에서 덕(탁월함)의 부분을 덕 그 자체와 당연스럽게 나누는 모습과 달리 덕의 부분이 곧 덕 그 자체라는 덕의 단일성을 주장한다. <메논>과 <프로타고라스> 속 주장을 비교 대조해보는 것도 플라톤 연구의 주요 소재 중 하나이다. 대화편 내부 설정적으론 <프로타고라스>의 젊은 소크라테스가 나이들고 경험이 쌓이며 <메논>의 현명한 소크라테스로 성장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12] 철학과는 상관없는 사족으로, 현대 과학에 입장에서 엠페도클레스의 감각이론은 광자와 분자의 수용으로 정의내릴 수 있는 시각, 후각, 미각에는 과학적으로 들어맞으나 파동이나 힘의 수용에 가까운 청각, 촉각을 다룰 때는 틀렸다. [13] 소크라테스의 대표 사상으로 꼽히는 지덕합일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덕의 단일성과는 달리 프로타고라스에서의 소크라테스도 모든 좋지 못한 행실은 그것이 좋지 못하다는 사실에 무지하기 때문이라는 동일한 논지의 주장을 펼친다. [14] 이를 메논의 난제라고 부른다. [15] 피타고라스 숭배자 혹은 오르페우스 숭배자 집단으로 추정된다. [16] 의무교육을 이수한 현대인이라면 변의 길이를 √2배 늘려야 2배 넓이 정사각형이 나온다는 것을 알지만 기하학을 모르는 노예 소년은 자신의 직관대로 (실제로는 4배 넓이 정사각형을 만들지만) 변을 2배로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17] 가설의 방법을 설명하며 소크라테스는 어떤 도형이 원에 내접하는지를 예시로 든다. 이러한 기하학적 비유는 원문의 내용이 모호해 문제의 정확한 내용을 알 수가 없고 도형 재구도 학자마다 다르다. [18] 사실 아뉘토스는 소크라테스 또한 소피스트와 동류로 봐서 혐오했고 결국 불경죄로 사형시키는 데에 성공했다. [19] 정치와 사회 공동체에 참여해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중시한 고대 그리스에서는 정치적 능력이 시민이 가져야 할 가장 중요한 덕(탁월함)으로 꼽혔다. [20] 비슷한 주장이 프로타고라스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프로타고라스에서는 상대역인 프로타고라스가 소위 '위대한 연설'로 불리는 반론으로 이를 반박한다. 모든 부모가 덕을 가르치려고 혼신을 다해 노력하기 때문에 오히려 재능차이가 더 크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이다. 프로타고라스는 악기 연주가 기본 덕목인 사회를 떠올려보라며 그렇다면 훌륭한 연주가가 아닌 이들도 연주를 가르치기 위해 백방 노력할 것이고 그렇다면 연주를 배움에 있어서는 모두가 큰 차이 없을테니 연주를 가르쳐줄 수 있는 부모의 차이보단 선천적인 재능의 차이가 더 크게 드러나지 않겠냐고 한다. [21] 그가 소크라테스를 좋게 보고 있지 않고 후일 죽인다는 사실을 반영한 부분이다. [22] 고르기아스는 다른 소피스트들과는 달리 자신이 지혜를 가르친다고 공언하지 않았다. 자연히 자신을 소피스트라고 지칭하지도 않고 수사학 기술을 가르칠 뿐이라고 주장하고 다녔다. 또한 고르기아스에 나오는 고르기아스는 그의 수사학 기술이 옳지 않은 것으로 나오기는 하지만 인간적으론 신사적이고 논쟁에서 패했음을 담담히 인정하는 인물로 나온다. 하지만 메논 초반에 드러난 고르기아스에 관한 비판적 시야를 고려해면 플라톤 입장에선 고르기아스 역시 소피스트의 아종일 뿐이었다. [23] 여기서 1.소피스트들, 2.고르기아스, 3.아뉘토스를 비롯한 보수적인 정치가들, 4.소크라테스라는 네 유형의 집단이 등장한다. 이중 플라톤이 가장 긍정적으로 보는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와 (소피스트임을 부정하지만 사실 그 아류에 불과한) 고르기아스에 거리를 두며 동시에 아뉘토스를 비롯한 탐구를 부정하는 보수파들과도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인다. [24] 어떻게 보면 초기 대화편에서 주장한 덕은 앎, 즉 인식이라는 지덕합일을 부정하고 플라톤 고유의 형이상학, 종교적 관점으로 대체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한편 훌륭한 정치가들 역시 덕을 지니고 있는게 아니라 그저 우연을 따랐을 뿐이라고 결론짓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25] 부정적인 행보를 벌일 아뉘토스를 설득시키는 것이 장차 좋을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고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술을 통해 진리를 탐구하는 법을 습득한 메논이 이를 실제로 사용해보면서 갈고닦는 것이 장차 좋을 것이라는 의미로 읽을수도 있다. [26] 메논에서도 그래서인지 고르기아스 관련 언급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