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플라톤의 저서. 플라톤의 대표적인 중기 대화편 중 하나이다. 수많은 테마에 대해 논하고 있는데, 해당 주제는 올바름(Δικαιοσύνη), 영혼론, 이데아(ἰδέα), 사회철학, 예술철학, 인식론 등 수많은 부분에 걸쳐있다. 주된 대화의 주도자는 소크라테스이며, 그의 대담자로서 1권에서는 케팔로스와 트라시마코스, 이후에는 플라톤의 두 형인 글라우콘과 아데이만토스가 주된 대화자로 나타난다. 글라우콘의 경우 그 유명한 동굴의 비유의 대담자였기도 하다.2. 상세
국가론은 흔히 영어권에서 The Republic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고, 때문에 일본의 번역본 제목 역시 '국가(國家)'가 되었다. 이후 일본의 학문적 영향을 받은 한국에서도 그러하게 번역되었다. 그러나 그리스어 원어의 뜻은 '정치체제(政體)'에 좀 더 가깝다. 때문에 『국가』의 대표적 번역자 중 한 명인 박종현 교수는 번역본의 제목을 『국가·정체』[1] 라고 하였다. 박종현은 일본의 1926년생 고전철학 원로학자 가토 신로도 정체라는 번역어에 대해 상당한 반응을 보였다고 말한다.총 10권으로 이루어져 있다.[2] 책이 처음 시작되는 테마는 인간의 올바름, 정의에 관해서이다.
여기서 재미난 부분이 있는데 거스리도 고대 그리스 철학에 관한 자신의 저작에서 지적한 바 있지만 현대의 우리들이 느끼는 정의나 올바름에 관한 개념은 상당히 추상적인 부분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에게 정의가 무엇이냐 하고 물어본다면 justice라든가, 혹은 義와 같은 개념을 염두에 두기 마련이다. 이러한 개념은 상당히 추상적으로, 뭔가 도덕적인 부분과 강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대단히 정교한 고도의 법칙 혹은 우리 인간들의 마음을 뜨겁게 울리는 것 또는 너 나 우리가 다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든가 등등, 아마 청소년만 되어도 정의가 무엇인가 하는 물음에 관해 진지하게 논할 때는 상당한 추상화를 거치게 된다.
반면 고대 그리스 인들의 대답은 간단하기 그지없는데 대충 정리하면 각자에게 몫을 잘 분배하거나 빚을 잘 갚는 등등의 종류, 또 여기에 더해서 친구에게는 잘해주고 적에게는 엄격하게 대하는 종류, 그리고 노모스와 퓌시스에 관한 소피스트들의 학설 내용이 있다.[3] 심지어 소피스트들의 학설마저도 그 디테일을 파고들어가보면 대단히 즉물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고대 그리스인들의 정의관은 그야말로 물질적이고 직접적이다. 반면 플라톤은 정의를 논하기 위해 소크라테스를 시켜 '자, 여러분 사회는 큰 것이고 인간은 작은 것인데 그것들은 서로 닮았으니, 큰 것인 사회를 살펴봅시다. 왜냐면 작은 것보다 큰 것을 관찰하는 게 더 쉬울 테니까요.' 대충 이런 얘기로부터 정의를 추적한다. 이런 부분은 실로 비범한 시도라 아니할 수 없다.
플라톤은 약간의 문학적인 장치를 통해 이처럼 부드럽게 사회와 인간의 관계로 시각을 돌리며, 양자 사이에서 최적의 균형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앞서 언급되었던, 정의관에 관한 3가지의 고찰이 상당히 단순했던 점을 돌이키면 감흥이 생길 만한 지점이다.
또한 왜 플라톤이 영혼에 대해서 말하는가? 그가 최소한 어느 정도는 종교적인 사람임은 의심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와 개인의 관계와 정의 등등에 대해 얘기하는데, 영혼이 등장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 현대적인 관점에서 생각해 볼 때, 정의와 사회를 논하는데 갑자기 영혼 얘기를 하면 납득하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국가에서 앞서 언급되었던, 고대 그리스 세계에서 정의에 관해 논하던 3가지의 대표적인 입장도 대부분 물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영혼 같은 영적인 소재가 등장할 여지는 적다.
하지만 플라톤이 영혼을 끌어들이는 것은 정의에 관한 물음에서 탁월한 선택이 되는데, 소피스트들의 주장에 대해 결정적인 반박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소피스트의 주장은 설득력은 대단히 강해서, 소위 말하는 정의라는 것이 그 자체로 우리에게 이득이 되고 즐겁고 그래서 추구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겠는데요? 라는 물음에 관해서는 과연 설득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반례 중에 하나로 나온 것이, 묵묵하게 이타적인 일만 하면서 명성을 추구하지도 않다가 타인들에게 핍박을 받는 인간상이었으니까, 이런 인간상을 예시로 들면서 과연 정의가 그 자체로 추구할 만하고 즐거운 것인가요? 라는 물음에 쉽게 답을 하긴 어렵다. 더더군다나 고대 그리스인들의 주장은 대부분 약속을 잘 지켜라, 친구를 잘 대해줘라 같은 것이었으니 더욱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이 끌고 나온 것이 영혼이다. 어떤 것이 진정 우리에게 좋은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해 물질 세계에서 소피스트들을 완벽히 반박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영혼, 영적인 세계의 개념을 끌고 나와야 소피스트들을 효과적으로 논파할 수 있었다. 물질적인 얘기를 하면서 모든 것은 상대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라도, 영적인 차원으로 논의의 무대가 옮겨지면 움찔하게 된다. 물론 영혼 등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는 그리스인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들의 학설이 대중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이 사후세계와 영혼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던 시점에서 플라톤의 주장은 강한 설득력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국가는 그리스 어느 동네 아무개의 임사체험담으로 마무리가 된다. 작중에서 제자들은 정의가 단순히 그것 자체만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달라고 소크라테스에게 부탁했고 또 소크라테스도 정의는 어떤 보답이나 이득 없이 그것 자체만으로 좋은 것임을 보여주겠다고 말하지만, 그 문답이 무색하게 국가라는 책은 영혼을 갈고 닦은 사람들이 사후세계에서 복락을 누리는 반면 영혼을 더럽힌 사람들이 어떤 비참한 처지가 되는지 장엄하게 묘사하면서 끝나게 된다.
플라톤은 인간의 영혼의 존재를 믿었던 사람인데, 그는 인간의 영혼은 크게 지혜, 용기(andreia), 절제의 세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이 세 가지의 덕 중에 한 가지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게 된다. 즉,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지혜의 덕에 탁월함(arete)을 보이고, 어떤 사람은 용기의 덕에, 또 어떤 사람은 절제의 덕에 탁월한 능력을 가진다고 본 것이다. 국가편에서 나타난 영혼 삼분설은 플라톤의 후기 대화편이라고 할 수 있는 법률편에서 영혼 이분설로 이어지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대표적으로 학자로는 보보니치(c. bobonich) 교수가 있다. 물론 영혼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느냐는 문제와 달리 영혼이 이성에 의해 통제되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후기까지 계속 일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플라톤은 국가를 구성하는 계층을 세 개로 나누었는데, 지배자 계층, 군인 계층, 생산자 계층이 그것이다. 결론적으로, 사람들이 각자의 탁월한 덕에 따라 그에 맞는 역할을 담당하여 지혜, 용기, 절제의 덕이 조화를 이루면 그 국가나 사회는 정의롭게 된다고 플라톤은 주장했다. 하지만 이 조화는 용기와 절제가 이성(지혜)에 의해 통제받고 있는 상태이다. 인간의 영혼이 이성에 의해 통제받아야 하는 것처럼 국가체제 역시 지혜로운 사람에 의해서 다른 계급들이 통치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혜를 소유하고 있는 철학자들이 군인과 생산자계층을 통치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 대화편에 써져 있는 플라톤의 주장을 보다 보면 확실히 그 당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아테네의 패배와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나고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엄청난 혼란을 겪고 나자, 플라톤의 관심이나 호의가 스파르타의 검소하고 집단주의적인 사회 체제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중 긍정적으로 제시하는 많은 사회상들이 스파르타의 모습과 비슷하다. 그러나 최후 저작인 법률에서는 스파르타가 망해서 그런지 국가에서 보여줬던 이런저런 집단주의적이고 금욕주의적인 주장을 많이 철회한 편이다.
아마도 철학과에 갓 들어온 1학년 학생들이 가장 먼저 접하게 될 '철학책다운 철학책'이기도 하며, 스승인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에 따라 대화체로 쓰여 술술 잘 넘어간다. 하지만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의 이해가 쉽다고
모든 철학자들의 저서가 그렇지만 국가의 경우 플라톤 철학의 정수이기 때문에 당연히 곱씹어 생각하다보면 생각할 거리가 끝도 없이 나오며, 감동적인 부분도 때때로 나온다. 다만 제멋대로 새 단어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현대 철학자들이나 이중, 삼중 부정 문장이 책 처음부터 끝까지 도배하고 있는 다른 철학자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에 비하면 매우 직관적인 명문이다.
3. 여담
- 《플라톤, 「국가」를 넘어서다》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데, 플라톤의 헌법 이론에 관한 종래의 연구가 《국가》에 치중되어 있었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법률》의 해당 내용을 연구한 저작이다. 저자(이황희)는 출간 당시 헌법연구관이었고, 후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되었다.
[1]
원래는 그냥 <<정체>>라고 하려다가 출판사 측에서 그러면 책이 국가론인 줄 사람들이 모르고 묻힐 것 같다, 그럼 <<국가(정체)>>로 하자니까 그러면 또 책 제목에 괄호 넣게 되는 게 좀 그렇다 등등 하도 까탈스레 구는 바람에 아잇 그냥 알아서 하세요 그랬더니 지금 같은 묘한 제목이 됐다고 한다.
[2]
현대 책 기준으로 10권이 아니라 옛날 책 기준이고 옛날 책은 요즘에 비하면 상당히 분량이 적다. 동시대 중국의 기록매체인
간독을 참고해보면 될 것이다.
[3]
나무위키 소피스트 항목을 대충 참조하거나 플라톤 항목을 참조해도 좋고, 나무위키에서 이에 관해 말하는 소피스트 목록만 훑은 다음 영어 위키피디아에 들어가서 소피스트 항목에 들어가면 대충 다 나와 있다. 아니면 스탠포드 철학 백과사전에 들어가거나.
[4]
아마도 교수가 이해하기 쉽게 분석적으로 딱딱 정리해주는 수업을 받았던 모양인데 그냥 독해하는 수업으로 들어가면 절대 쉬울 일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