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3 01:46:16

마츠쿠라 유지

마츠쿠라 유지
[ruby(松倉, ruby=まつくら)][ruby(友二, ruby=ゆうじ)] |Yuji Matsukura
파일:마츠쿠라 유지.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출생 1972년 2월 27일 ([age(1972-02-27)]세)
교토부
국적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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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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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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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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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기업인
소속 J.C.STAFF (제작본부장)

1. 개요2. 경력3. 특징4. 인맥5. 참여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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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J.C.STAFF 소속이며 집행임원 및 제작본부장을 맡고 있다. 주로 제작 프로듀싱을 담당하고 있으며, 때때로 방송/기획 프로듀서까지 겸하기도 한다.

2. 경력

고등학교 재직 시절인 18세부터 20세까지 잠시 토세라는 게임 회사에 들어가 견습으로 일했다고 한다.[1] 졸업 후에는 토세에서 계속 일하려고 했는데 어느 날 J.C의 사람들과 우연히 술을 마실 일이 있어서 같이 술자리를 했는데 무슨 짓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다음 날 J.C에서 "너 우리 회사로 출근해." 라는 전화를 해서 J.C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요요기 애니메이션 학원 오사카 학교를 1992년에 졸업 후 J.C.STAFF에 입사하고 1993년 アップフェルラント物語[2] 의 제작진행으로 업계 일을 시작했다. 원래는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그래픽 실력과 인맥을 쌓고 다시 게임 업계로 돌아갈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 후 바로 받은 제작진행 일이 초시공세기 오거스 02이었는데, 이때 타카야마 후미히코 감독의 각본과 콘티를 보고 감명을 받아 애니 업계 일을 계속하기로 마음 먹었다고 한다. [3]이 때가 불과 20세였으나 새빨간 신인이 캐릭터 원안자인 미키모토 하루히코에게 바로 캐릭터 설정을 올렸다는 점에서 업계인들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를 기점으로 업계 인맥이 많이 생겼다고 한다. # 그 후 4년 뒤인 1997년 소녀혁명 우테나의 제작진행을 담당하고 이 작품이 크게 히트를 치면서 본인도 J.C.STAFF 내에서 승진을 거듭해 이듬해에는 앨리스 SOS로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로 데뷔한다. 데뷔 후에는 J.C.STAFF의 제작본부장까지 승진하여 오늘날까지 J.C.STAFF의 모든 작품을 총괄하고 있다.

3. 특징

업계 인맥이 굉장히 많고 본인도 제작 프로듀서부터 기획, 방송 프로듀싱까지 모두 담당할 수 있기 때문에 1998년부터 오늘날까지 25년 가까이 J.C.STAFF 작품의 프로듀싱을 담당해오고 있다. 사실상 J.C.STAFF의 작품은 마츠쿠라가 거의 다 담당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다만 마츠쿠라가 직접 제작 프로듀싱까지 하는 작품들의 경우[4] J.C.STAFF 작품 중에서도 퀄리티가 높은 경우가 많다. 히트작이 많아 업계에서는 별명이 '홈런 제조기'라고 하는데 자신은 그 정도는 아니라면서 '안타 제조기'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보통 현장에서 직접 뛰는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업무는 힘들어서 짬이 차면 안 하고 기획 업무만 보게 되고 현장과 자연스럽게 거리가 멀어지는데 자신은 2022년 기준 31년째 기획한 작품도 전부 현장에 나가서 뛰었다고 한다. 감독에게 전부 던지는 건 하기 싫다고 한다. 직접 프로듀스한 작품 수는 자신이 업계 최다일 것이라고 한다.

전부 현장에서 뛰면서 배워서 스승은 없으나 마음의 스승은 미나미 마사히코라고 하며 미나미와 같은 작품을 만드는 프로듀서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자신이 현장에서 직접 뛰는 것도 미나미의 영향이라고 한다.

굉장한 게이머이며 슈팅 게임을 특히 좋아한다. 가정용 게임에 머물지 않고 고가의 아케이드 게임 기판을 수집할 정도라고 한다. 프로듀스한 하이스코어 걸은 자신의 인생이 담긴 작품이라고 한다. J.C에서 프로듀서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 잼 크리에이션'이라는 에로게 회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자신이 에로게 원작을 만들고 그걸 애니화 하면 돈이 자신한테 들어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잘 안 되어서 접었다고 한다.

자신은 모든 장르를 할 수 있다고 자부하는데 딱 하나, 로리콘을 대상으로 한 작품은 절대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작품은 의뢰를 받으면 전부 거절한다고 한다. 낮게 잡아봐야 중학생이고 초등학생을 성적으로 다루는 작품은 절대 용납 못한다고 한다. 제로의 사역마 같은 것도 만들었지만 자신의 취향은 아니라고 한다.

애니메이션은 꼭 잘 움직여야 재밌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하며 그래서 백 스트리트 걸스: 조폭 아이돌 극주부도 시리즈는 작화매수를 극도로 줄여서 만들었다고 한다. 반면 하이스코어 걸은 비디오 게임과 어울리는 영상을 만들겠다며 60프레임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자신이 만든 작품 중 자신있고 좋아하는 작품은 되살아나는 하늘 -RESCUE WINGS- , 푸른 꽃, 첫사랑 한정이라고 한다. 아즈망가 대왕 THE ANIMATION, 허니와 클로버, 백 스트리트 걸스: 조폭 아이돌, 극주부도 시리즈도 알기 쉬운 추천작이라고 한다.

4. 인맥

친한 감독은 사쿠라이 히로아키, 사쿠라비 카츠시, 타카야마 후미히코, 야마카와 요시노부, 콘 치아키, 니시키오리 히로시가 있고 친한 애니메이터로는 하시모토 타카시[5]가 있으며, 친한 음향 감독으로는 아케타가와 진이 있다.

2010년대 들어서는 다들 거물이 되어서 연락이 곤란해 같이 작업하지 않지만 신인 시절에는 신보 아키유키 사단, 가이낙스, 스튜디오 헤라클레스[6] 쪽 하고도 인맥이 있었다. 그래서 신인 시절 작품은 애니메이터, 연출가 동원력이 대단했다.

미즈시마 세이지하고도 친하다는데 활동 회사가 갈려 같이 한 작품은 많지 않다. 접점이 전혀 없어보이지만 아라키 테츠로와도 아는 사이로 보인다.[7] 애니메이터 온지 마사유키(音地正行), 후지이 마사히로, 키모토 시게키를 발굴해 키워주었다. 연출가는 오오하타 키요타카, 나가이 타츠유키를 자주 기용한다. 소녀혁명 우테나 때의 인연으로 자신의 감독 작품 이외의 게스트 연출은 잘 안 하는 이쿠하라 쿠니히코를 콘티 연출로 불러올 수 있는 몇 안 되는 프로듀서이다. 성우에도 관심이 깊어 자신의 작품의 성우는 자신이 지명할 때가 많다고 한다.

J.C.STAFF 제작본부장으로서 여러 프로듀서 꽃나무들을 리드하고 가르치고 있는데, 대표적인 후배로 카시와다 신이치로가 있다.

작화는 때때로 하청을 쓰고 어떨 때는 그로스 하청을 발주하기도 하지만 WEB계 애니메이터는 거의 기용하지 않는다. 그래서 전반적인 J.C.STAFF 작품들은 WEB계 작화를 찾기 힘들다. 예외로 제작총괄로 참여한 원펀맨 2기는 1기 느낌을 내기 위해 WEB계를 썼는데, 이 당시 신인이었던 WEB계들의 실력에 실망했는지[8] 이후로는 다시 안쓰고 있다.[9]

5. 참여작

아래 목록은 사실상 J.C.STAFF의 모든 작품이라 봐도 무방하다. 다만 그 중에서도 제작총괄, 애니메이션(제작) 프로듀서로 크레딧된 작품은 직접 현장에서 뛴 작품이므로 퀄리티가 보증된다.


[1] 아침에는 학교, 오후에는 게임 회사, 밤에는 게임 센터에서 알바라는 하드워크였다고 한다. [2] 다만 비슷한 시기에 다른 작품도 해서 이게 제작진행 데뷔작이 아닐 수도 있다고 한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3] 다만 타카야마가 일을 정말 느리게 해서 매우 힘들었다고 한다. [4] 제작 프로듀서나 애니메이션 프로듀서로 기재되는 작품들을 말한다. [5] 하시모토는 초시공세기 오거스 02 때 신인이던 마츠쿠라를 좀 많이 부려먹었는데 마츠쿠라가 흔쾌히 다 받아주는 걸 보고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느껴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6] 와타베 케이스케, 키자키 후미노리, 오오츠카 켄, 이시노 사토시, 치바 미치노리가 있는 작화 스튜디오. [7] 서로 페이스북 친구가 맺어져있다. 아라키 테츠로는 친구수도 적다. 접점도 약간 있긴 한데, 아라키 테츠로가 어떤 과학의 초전자포에 참여한 이력이 있다. [8] 이때 참가했던 Chris 같은 애니메이터들은 이후로 실력이 성장했지만, 당시엔 신인이라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었다. [9] 그러나 원펀맨 3기도 제작사가 J.C.STAFF로 결정되었는데, 2020년대부터 WEB계 애니메이터들의 실력이 매우 올라갔기 때문에 마츠쿠라가 WEB계의 가능성을 아예 포기한게 아니라면 다시 쓸 수도 있다. [10] 스즈키 슌지 말로는 마츠쿠라가 돌아다니며 스태프를 모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