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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24B48><colcolor=#fff> 마이클 만 Michael Man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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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마이클 케네스 만 Michael Kenneth Mann |
출생 | 1943년 2월 5일 ([age(1943-02-05)]세) |
일리노이 주 시카고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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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영화감독, 영화 제작자, 각본가 |
활동 | 1968년 – 현재 |
신체 | 173cm |
가족 |
배우자 써머 만(1974년 결혼 ~ 현재) 자녀 아미 만, 애런 만 |
학력 |
위스콘신 대학교 (영문학 / 학사) 런던 영화 학교 (영화학 / 석사) |
링크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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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감독.선이 굵고 사실적인 범죄 영화를 위주로 사회 체제와 인간 사이의 균열과 갈등을 조명하며 동년배의 유명한 대다수의 감독들보다 선명한 정체성을 확립했다.
2. 생애
2.1. 1960년대 ~ 1970년대
1943년 2월 5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세속적인 유대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잭은 시카고의 식료품점 주인이었다.[1] 1964년 마이클 만은 프리드리히 빌헬름 무르나우와 게오르크 빌헬름 팝스트(G.W. Pabst )의 작품들과 스탠리 큐브릭의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를 우연히 보고 영화 감독을 꿈꿨다. 위스콘신 대학교에 다니던 시절 영문학을 전공한 만은 항상 선과 악의 싸움에 끌렸지만, 큐브릭의 풍자극에서는 구원할 만한 인물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는 후일 절대적인 것을 다루고, 어려운 결정을 내리는 마이클 만의 등장인물들에 영향을 줬다. 1960년대는 젊은 영화인들에게 사회 규범의 변화와 충격적인 헤드라인 뉴스가 그 세대의 창조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면서 돌파구를 마련하는 시기였다. 마이클 만 역시 이런 시기에 큰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했다.마이클 만은 1967년에 런던 영화 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리들리 스콧, 마이크 리, 앨런 파커, 에이드리언 라인 같은 영화 감독들도 이 학교를 졸업했다. 영화학교 재학중에 텔레비전 CF와 다큐멘터리를 연출하기도 했다. 이듬해에 만은 68운동 당시, 시위를 펼치는 학생들을 촬영한 단편 영화 '반란(Insurrection)'을 공개해서 본격적으로 영화 감독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1971년에는 프랑스를 휩쓴 사회적 불안을 기록한 단편 영화 '자누푸리(Jaunpuri)'를 연출해서 칸 영화제에서 상을 수상했다.
1974년, 마이클 만은 텔레비전 각본가 로버트 르윈(Robert Lewin)의 휘하에 들어가면서 텔레비전 업계에 진출했다. 르윈은 ' Hawaii Five-O', ' 제5전선'같은 수사물이나 첩보물 드라마로 유명한 각본가였으며, 드라마 각본가로서 만에게 대본을 쓰는 방법에 대해 가르쳐주기도 했다. 현재 마이클 만은 영화 감독으로 유명하지만, 커리어 초창기에는 드라마 작가나 드라마 제작자로 대중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1976년 형사 드라마 '브롱크(Bronk)'로 본격적으로 각본가로 데뷔했으며, 액션 드라마 '스타스키 & 허치(Starsky & Hutch)'와 형사 드라마 '폴리스 스토리(Police Story)'에 각본을 써서 호평을 받았다. 1978년에는 라스베이거스를 무대로 한 범죄 드라마 '베가스(Vega$)'를 제작했다.
1979년 3월 18일, TV 영화 '더 제리코 마일(The Jericho Mil)'을 공개했다. 마이클 만이 연출과 각본을 맡은 작품이며, 감독 데뷔작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2] 미국에서는 TV로 방영되었지만, 유럽에서는 극장에서 공개됐다. '더 제리코 마일'은 고전적인 마이클 만의 설정을 가지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장르는 감옥 스릴러인데, 내용을 요약하자면 1막은 피터 스트라우스가 감옥에서 그의 삶을 받아들이고 그의 달리기 재능을 발견하는 것을 다뤘고, 2막은 피터가 올림픽을 위해 몸을 단련할 수 있는 훈련을 다뤘으며, 3막은 그 여파를 다뤘다. 이 작품은 당시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감독 조합상 연출상과 에미상 미니시리즈 부문 각본상을 수상했다.
2.2. 1980년대 ~ 19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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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의 거리' 촬영 당시의 마이클 만(왼쪽) | '마이애미 바이스' 촬영 당시의 마이클 만(오른쪽) |
1981년 3월 27일, 장편 영화 데뷔작이자 느와르 영화 ' 비정의 거리[3](Thief)'를 공개했다. 드라마 업계에서 5년을 보낸 후, 영화 감독, 영화 각본가로서 마이클 만의 첫 장편 영화였다. 제임스 칸이 주연을 맡아 열연을 펼쳤으며, 튜즈데이 웰드, 짐 벨루시, 로버트 프로스키, 윌리 넬슨 등이 출연했다. '비정의 거리'는 제34회 칸 영화제에서 경쟁 부문에 출품했고, 평론가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로저 이버트가 "내가 본 것 중 가장 지능적인 스릴러 영화들 중 하나"라고 평하며 극찬을 보내기도 했다. 이 작품은 마이클 만이 영화 감독으로서 처음으로 두각을 나타낸 작품이며, 초창기 대표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마이클 만의 세련되고 스타일리쉬한 감각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흥행에서는 55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져서, 1,15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둬들여 본전치기를 기록했다. '비정의 거리'는 ' 브레이킹 배드', ' 오자크', '배리' 같은 드라마들의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83년 12월 16일, 공포 영화 '악마의 성(The Keep)'을 공개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루마니아 시골 마을에 들어온 나치 독일군이 봉인된 십자가를 건드려 거대 악마 몰라사르[4]가 나오는 이야기다. 스콧 글렌이 주연을 맡았으며, 당시 연극 배우로 유명했던 이안 맥켈런도 출연했다. '악마의 성'의 오리지널 버전은 상영 시간이 210분이 넘는 엄청나게 긴 영화였는데, 120분 버전의 테스트 상영이 관객들의 호응을 얻지 못한 후, 96분 버전으로 대폭 짤려서 개봉했다. 결과적으로 흥행과 비평 모두 실패를 기록했다. 저예산으로 만들어졌음에도 흥행수익은 337만 달러에 그쳤다. 마이클 만이 인터뷰에서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을 정도로 크게 실패했다. 그래도 2009년 인터뷰에서 "프로덕션 디자인과 영화의 형태가 내용보다 더 좋은 형태였기 때문에 그런 측면에서는 좋아한다"라고 말했다.
'악마의 성'으로 실패를 겪은 마이클 만은 1년 만에 절치부심해서 자신이 가장 잘하는 장르로 돌아왔다. 당시 만은 범죄 드라마 ' 마이애미 바이스'를 제작해서 큰 성공을 거뒀다. 마이클 만은 텔레비전 업계에서 쇼러너(Showrunner)의 역할을 개척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연출을 맡지는 않았지만, 드라마의 일상적인 운영에 더 명확하게 관여했다. 어떤 스토리라인이 다루어지고, 어떤 게스트 스타들이 드라마에 출연하는지 관여했으며, 드라마의 전체적인 톤, 그리고 사용할 음악과 심지어 등장인물들의 옷과 같은 더 작은 세부 사항들에 대해 관여했다. '마이애비 바이스'는 80년대를 대표하는 미국 드라마 중 하나이며, TV 역사의 굵직한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또 파일럿 에피소드는 역대 최고의 에피소드 중 하나라고 회자되고 있다. 지나치게 폭력묘사가 많다는 비난을 들으면서도 보수적 매체인 TV에서 당대 미국의 어두운 초상을 거의 초현실적으로 보일 만큼 실험적인 화면에 담아냈다.
1986년 8월 15일, 소설가 토마스 해리스의 ' 레드 드래곤'을 각색한 스릴러 영화 '맨헌터(Manhunter)'로 3년 만에 영화계에 복귀했다. ' 양들의 침묵'의 전편에 해당하는 작품이며, 해리스의 한니발 렉터 시리즈를 영화화한 최초의 작품이다. 배우는 윌리엄 피터슨, 톰 누넌, 데니스 패리나, 브라이언 콕스 등이 출연했다. 이 작품에서 주어진 일을 이뤄내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다루면서 색채, 세트, 카메라 움직임, 음악 등 영화의 시청각적 요소를 모두 동원했다. 개봉 당시 미국에서 86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박스오피스에서 저조한 성적을 거두었다. 평론가들의 반응도 호의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어느정도 재평가를 받고 있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마이클 만 특유의 스타일리쉬한 비주얼이 모두 후대에 더 긍정적으로 평가됐기 때문에, 지금은 호평하는 평론가들이 더 많다.[5]
또 이 해에 범죄 드라마 '크라임 스토리(Crime Story)'를 제작했다. 이 드라마는 한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플롯 라인이 등장하는 최초의 드라마 중 하나였다. 이러한 특징은 현대의 시청자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만이 텔레비전 환경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방법이다. 마이클 만은 '마이애미 바이스'와는 달리, '크라임 스토리'에 더 많은 제작에 관여했다. 수많은 에피소드를 쓰고 연출했으며, 드라마의 야심찬 수십 년의 줄거리를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크라임 스토리'는 여전히 마이클 만 팬들의 큰 지지 덕분에 상당한 팬층을 보유하고 있는 수작이다. 이 드라마는 1986년부터 1988년까지 방영됐고, 팬들은 만의 다음 영화를 위해 6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1992년 9월 25일, 소설가 제임스 페니모어 쿠퍼의 소설을 각색한 역사 영화 ' 라스트 모히칸'으로 6년 만에 영화계에 복귀했다. 1990년 ' 나의 왼발'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다니엘 데이루이스를 주인공 호크아이로 캐스팅했다.[6] 마이클 만은 이 작품이 하워드 혹스의 작품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클래식 할리우드 영화에 영향을 받은 작품이기 때문에, 만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고전적인 영화'라고 평가받고 있다. 개봉 이후 '라스트 모히칸'은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으며, 로저 이버트는 '원작 소설을 초월했다'라고 평했다. '라스트 모히칸'은 TV 드라마 출신의 감독에서 대번에 주류 감독으로 만의 위치를 올려줬다. 이 작품으로 만은 처음으로 아카데미상에서 인정을 받았다. 만 자신은 후보에 오르지 못했지만, 사운드 디자인으로 아카데미 음향상을 수상했다. 다니엘 데이루이스는 영국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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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트' 촬영 당시의 마이클 만(오른쪽) | '인사이더' 촬영 당시의 마이클 만(왼쪽) |
'라스트 모히칸'으로 어느정도의 성공을 거둔 마이클 만은 로스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 장대한 범죄 영화 ' 히트'를 만들기로 결정했다. 만은 1989년에 TV 영화 'LA 테이크다운(LA Takedown)'을 연출했는데, 이 작품이 '히트'의 원작이 되었다. '히트'를 궁극적인 범죄 사가(Saga)로 만들기 위해서 제작 과정에서 엄청난 노력을 퍼부었으며, 마이클 만 커리어 사상 가장 많은 제작비(6,000만 달러)가 들어가기도 했다. 연출뿐만 아니라 각본도 상당히 신경을 썼는데, 범죄 생활의 사소한 세부 사항들이 인간의 상태에 대한 깊은 성찰로 장식되어 있다. 또 20세기 후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배우 알 파치노와 로버트 드 니로가 주연으로 출연해 열연을 펼쳤다. '히트'는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았으며, 1995년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에서도 상당한 히트를 기록했지만, 아쉽게도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는 데 실패했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마이클 만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90년대를 대표하는 범죄 영화의 클래식에 반열에 올랐다. 또 마이클 만의 스타일리쉬한 연출의 정점으로 평가받고 있다.
1999년 11월 5일, 실제 사건을 각색한 영화 ' 인사이더'를 공개했다. 알 파치노와 러셀 크로우[7]가 공동 주연을 맡았다. 거대 기업의 일급 비밀을 알게 된 연구자 제프리 와이갠드와 시사 프로그램 연출자 로웰 버그먼이 각각 자신들이 몸 담고 있는 거대 조직에 맞서면서 실존에 위협을 느끼는 내용을 그렸다. 만은 영화에 묘사된 사건들을 연구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모으며 철저하게 취재해 사실성을 높였다. '인사이더'는 완벽하게 연출, 각본, 연기, 촬영, 편집된 드라마 작품으로 만의 최고작 중 하나이다. 마이클 만이 단순히 장르 영화만 잘 만드는 감독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는 흥행에 실패했지만, 만은 아카데미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후보를 포함하여 3개의 후보에 올랐다.[8] 지금까지도 그의 최고작으로 꼽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고 있다.
2.3. 2000년대 ~ 2010년대
2001년 12월 25일, 전설의 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의 전기 영화 ' 알리'를 공개했다. 알리가 어떻게 가장 위대한 복싱 선수 반열에 올랐는지에 대한 영화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마이클 만은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만은 알리를 문화계에서 중심적인 인물로 만든 것의 정치적, 문화적 측면을 파고들며, 그가 어떻게 시와 라임을 사용하여 반대자들을 물리쳤는지, 그리고 가장 결정적으로 알리가 1960년대 미국에서 반전 운동의 지도자가 되었는지를 보여줬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평은 어느정도 호불호가 갈렸으며, 박스오피스에서도 고전을 면치 못했다. 다만, 주인공 알리를 연기한 윌 스미스가 커리어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등 어느정도 성과도 있었다. '인사이더'와 '알리'가 총 2억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갔고, 두 영화 모두 흥행에서 실패를 하자 만은 명백한 블록버스터가 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다.2004년 8월 6일, 네오 느와르 영화 ' 콜래트럴'을 공개했다. 톰 크루즈와 제이미 폭스가 주연을 맡았다. 이 작품은 디지털 카메라로 촬영된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 중 하나로 주목할 만하다.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디지털 영화 촬영이 보편화되어 있지만, '콜래트럴'의 영화 촬영은 당시 최첨단의 기술이었다. 마이클 만은 디지털 촬영의 초기 지지자였고, '콜래트럴'의 모든 액션이 밤에 일어나는 것을 보고 디지털이 로스앤젤레스의 빛을 포착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이 작품은 만이 각본을 작성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대표하는 요소들이 가득 담겨있다. 만은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바탕으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고, 즉흥적으로 장면의 온도를 바꿀 수 있는 연출력을 보여줬다. '콜래트럴'은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았고, 박스오피스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2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으며, 지금까지도 마이클 만의 가장 큰 히트작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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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래트럴' 촬영 당시의 마이클 만(오른쪽) | '마이애미 바이스 극장판' 촬영 당시의 마이클 만 |
2006년 7월 20일, 80년대에 본인이 제작했던 드라마 ' 마이애미 바이스'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리메이크 영화를 공개했다. 2001년 '알리'의 시사회에서 제이미 폭스가 마이클 만에게 접근해 자신을 주연으로 '마이애미 바이스' 리메이크를 만들어달라고 제안했다. 그리고 2005년 만이 직접 연출을 맡으면서 제작이 결정됐고, 무려 1억 4천만 달러가 넘는 제작비가 들어갔다. 마이클 만의 사실주의에 대한 엄청난 집착 때문에, 이 영화는 위험한 환경에서 촬영되었고, 실제로 도미니카 공화국의 영화 세트장 근처에서 총격전이 발생했다. 촬영 현장이 굉장히 하드해서 콜린 페럴은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마이애미 바이스'는 개봉과 동시에 비평가들과 관객들에게 극단적으로 호불호가 갈렸으며, 흥행에서도 엄청난 실패를 거뒀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도 만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이다. 말도 안 되는 엉망진창의 영화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으며, 만의 걸작이라고 극찬[9]하는 일부 의견도 있다.
2009년 6월 19일, 존 딜린저의 전기 영화 ' 퍼블릭 에너미'를 공개했다. 조니 뎁과 크리스찬 베일이 주연으로 출연했다. 갱스터 존 딜린저의 실화를 조사하여 글로 써낸 브라이언 버로의 논픽션을 원작으로 삼았다. '마이애미 바이스'가 흥행이나 비평적으로 참패를 했기 때문에, 이 작품은 비교적 심플하게 제작됐다. 마이클 만은 이 작품에서 관객이 관찰하게 만들고 싶을 때는 좀더 정적인 카메라를 사용해 연출했으며, 실제 그 안에 있는 것같이 느껴지게 만들고 싶다면 보는 이들이 캐릭터들과 더 잘 어우러지도록 친근한 스타일로 연출했다고 말했다. '퍼블릭 에너미'는 개봉과 동시에 평론가들로부터 대체적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국내 평론가들은 비교적 더 우호적이었다. '가장 건조한 갱스터 영화'라는 평을 듣기도 했다. 전세계적으로 2억 1,4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며 흥행적으로 어느정도 성공을 거뒀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마이클 만은 경마 업계를 주제로 한 드라마인 '럭(Luck)'를 제작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텔레비전 업계로 잠깐 돌아왔다. 더스틴 호프먼이 주연을 맡은 이 드라마는 HBO의 야심작이었으나 낮은 시청률과 미온적인 비평적 반응으로 어떤 지표로도 성공하지 못했다. 또 촬영 중 사고로 말이 세 마리나 죽으면서 한 시즌도 다 못채우고 캔슬되었다.
4년 후인 2015년 1월 8일, 액션 스릴러 영화 ' 블랙코드'로 6년 만에 영화계에 복귀했다. 주연 크리스 헴스워스는 일련의 해킹 사고를 막는 임무를 맡은 컴퓨터 해커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마이클 만 커리어 사상 최악의 흥행 실패를 기록했으며, 평론가들의 반응도 부정적이었다. 미장센, 촬영, 총격씬을 제외하면 서사적으로 마이클 만의 개성이 거의 담기지 않은 영화였기 때문에, 마이클 만 팬들 사이에서도 호평을 받는 영화가 아니다. 다만, 일부 비평가들이 저평가된 영화라고 호평을 하기도 했다.
2.4. 2020년대
2021년, HBO 맥스 드라마 '도쿄 바이스(Tokyo Vice)'의 에피소드를 연출하면서 오랜만에 감독으로 복귀했다. 마이클 만이 연출한 회차(1화)는 평론가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듬해인 2022년 8월에는 스릴러 작가 멕 가디너(Meg Gardiner)와 공동 집필한 소설 '히트 2(Heat 2: A Novel)'를 발표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 히트'의 후속작도 연출할 예정이다.2023년에는 엔초 페라리의 전기 영화인 ' 페라리'를 공개할 예정이다. 무려 8년 만의 영화 감독 복귀작이며, 애덤 드라이버가 주연을 맡았다. 마이클 만이 2000년부터 제작하려고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공개된다.
영화 베테랑의 리메이크 제작을 맡는다고 한다. #
3. 작품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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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의 특기는 장르적 즐거움이 풍부한 대규모 예산의 서사시와 스릴러물, 화려한 세트피스,
다니엘 데이루이스,
윌 스미스,
톰 크루즈와 같은 영화배우들을 무겁게 다루는 것이다. (중략) 만의 예술적 특징은 고심하는 사실주의의 핵심을 확립하고, 그 주변에 때때로 환각적이고 마초적인 캠프(camp) 같은 것으로 중심을 만들 수 있는 고조된 시각적이고 감정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것은 만이 1980년대의 제작한 획기적인 경찰 드라마 "
마이애미 바이스"를 감독하면서 탐구하기 시작한 미학이다. 그 이후로, 그는 강철 같은 얼굴들 위에 쓸쓸한 전자 기타 소리를 냈다. 그는 잘생긴 남자들이 방탄조끼를 입고 느린 동작으로 걷거나 최면에 걸린 추상적인 생각으로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수역을 사색적으로 바라보거나 선글라스를 낀 채 전용기 옆을 활보하는 모습을 촬영했다. (중략) 만은 일반적으로 다른 감독들 보다 더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그런 종류의
컬트적인 숭배를 즐긴다. 그의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덜 알려진 영화들과 노골적인 폭탄들이 그렇듯 맹렬한 빨치산들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들은 확실하게
재평가되고 보상받는 경향이 있다.
― 뉴욕 타임스 #
― 뉴욕 타임스 #
1981년 '비정의 거리'를 시작으로 비슷한 연배인 마틴 스코세이지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같은 이들과 달리 좀 늦게 영화감독으로서의 필모그래피를 구축하기 시작했고, 1980년대 미국 인기 드라마 마이애미 바이스의 제작자로 활동하면서 본격적인 필모그래피는 이보다 좀 더 늦게 시작한다. 그러나 70~80년대의 범죄 영화를 집대성했다는 평가를 받는 95년작 히트부터 시작해 탄탄한 작품 세계를 구성해오고 있으며, 2000년대 초반부터 상당한 비평적 위치를 확보한 감독이기도 하다.
(그 전부터 끼가 보이기는 했지만) 마이애미 바이스 극장판 이래로 갑자기 바뀐 스타일에 대한 찬반이 많이 나뉘는 편이지만, 동시에 그런 논쟁을 불러일으킬 만한 위치에 서 있는 감독.
3.1. 연출 스타일
"
하워드 혹스,
샘 페킨파,
폴 슈레이더,
마틴 스코세이지와 나란히 그의 작품들은 남성성에 대한 연구와 특히 전문적인 남성의 사회와의 불편한 협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형식적으로 대담한 그의 영화는 감상적이거나 노골적으로 감정적인 경우가 거의 없다; 그는 캐릭터들의 의식을 발굴하기 위해 복잡하지만 감정적으로 분리된 성격 연구를 제공한다."
― Contemporary North American Film Directors
― Contemporary North American Film Directors
"마이클 만의 영화에는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시각적인 기쁨, 꿈 같은 감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의 연구의 세부 사항과 이야기 세부 사항에 대한 특별한 헌신에 의해 추진되는 스토리텔링의 기능에 의해 추진됩니다.
미학은 그것으로부터 성장합니다. 저는 그렇게 하는 다른 영화 감독들을 모릅니다."
― 크리스토퍼 놀란 #
― 크리스토퍼 놀란 #
요약하자면, 90년대부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비주얼리스트이자 스타일리스트로 꼽히는 감독이며, 도시와 어울리는 현대적이고 차가운 영상미가 일품인 감독이다. 차갑고 남성성이 강한 미장센 때문에 남성 관객에게 인기가 많은 감독이며, 90년대 작품임에도 비주얼이 세련된 편이라 현재도 인기가 많은 감독이다. 영상미 못지않게 액션에도 능한 감독이며, 추격신이나 자동차를 이용한 액션도 상당히 잘 찍으며, 특히 철저한 고증과 사운드가 생생한 총기 액션으로 제일 유명하다. 특히 총기 액션은 히트에서 액션 외에도 총기 사운드까지 신경쓰면서, 정점을 찍었다.
범죄 영화를 통해 명성을 쌓았다는 점 때문에 마틴 스코세이지에 비교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마이클 만 감독이 중시하는 요소들은 마틴 스코세이지와는 굉장히 다르며,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의 방향도 두 사람 사이에 차이가 있다. 마틴 스코세이지는 커리어 초반부터 ' 비열한 거리', ' 택시 드라이버'에서 사회와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의 우스꽝스럽고 위험한 모습을 묘사하며 이들을 낳은 사회구조를 비판하는 블랙 코미디적인 성향을 강하게 보여 왔다.[11] 범죄 세계를 그리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스코세이지와는 달리 마이클 만 감독은 세계의 구조와 질서를 공고히 세우고 그 사이에 다른 어떠한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혹자는 이를 두고 '다른 사람들 영화와는 달리 마이클 만 감독 영화는 꼭 각 잡고 봐야할 것만 같다'고 말한다. 이러한 점에서 드러나는 마이클 만 감독 영화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대단히 남성적인 전문가주의다. 마이클 만 감독의 주인공들은 많은 경우 그들이 하는 일로 정의되며, 그들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것은 주인공들이 하는 일이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모습을 보이는 주인공들은 가장 전형적이고 극단적인 남자들이다. 마이클 만의 영화에는 자신의 일이나 의무 때문에 가족에게, 애인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고 끝없이 갈등을 빚거나 사회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 인사이더'와 같은 영화에서 이 부분이 가장 뼈아프게 그려진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담배 회사 전 부회장인 제프리 와이건이 담배의 유해성에 대해 고백하는 인터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단체와 개인 간의 충돌을 그린다. 인터뷰 방영을 막기 위해 방송국과 담배 회사에서 수많은 압박과 위협이 가해지며, 와이건과 60 Minutes의 PD인 로웰 버그먼은 인터뷰를 방영하고 프로로서의 자신의 위엄을 지키기 위해 사생활의 엄청나게 많은 부분을 희생해야만 한다. 마지막에 결국 인터뷰가 방영될 때 몰려오는 씁쓸함과 묘한 감동이야말로 마이클 만의 진정한 장기다.
커리어 초반의 마이클 만은 이런 인간들을 무작정 우러러 본다. 그래서 영화를 보다 보면 불편해지는 순간들도 있다. 데뷔작 '비정의 거리'(Thief)가 특히 그런데, 프로 보석 강도인 주인공이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부분들은 멋지게 느껴지지만, 그가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프로포즈랍시고 하는 말들을 보면 할 말이 안 나온다. 2011년 개봉했던 니콜라스 빈딩 레픈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를 보면 '비정의 거리'를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많다. 한 여자에게 별 이유없이 꽂힌 프로정신 가득한 남자라든지, 그 남자가 비정상적인 복수에 나선다든지. 다만 '드라이브'는 그러한 행동을 하는 주인공이 뭔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진행하는 영화라는 점이 다르다.
이후 마이클 만 감독의 대표작 히트 역시 이러한 부분들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남자들의 내면을 묘사하는 데에는 최선을 다했으나 여자들이 끼는 순간 대사들이 느끼해지고 상황이 공감이 가지 않는 등의 문제들이 자주 일어난 바 있다.[12] 그래도 많은 범죄 영화가 여자들을 다루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히트 정도면 애교라고 봐주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최근 들어서는 여성 캐릭터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그려내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이게 가장 잘 드러나는 건 ' 마이애미 바이스'. 마이클 만이 자주 그려내는 것 중에 하나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에 일에 모든 것을 바치는 프로이기 때문에 생기는 묘한 유대감이다. 후기 작품들로 올 수록 남성 캐릭터들 뿐만이 아니라 여성 캐릭터들에게도 이러한 측면들을 부여함으로써 히트까지 상기의 이유로 마이클 만 감독의 영화에 대해 비판할 부분들이 있었던 사람들이 2000년대 이후 영화들을 비교적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마이애미 바이스부터 영화가 점점 탐미적인 연출이 점점 늘어나면서 ' 퍼블릭 에너미'를 기점으로는 아예 영화가 전보다 불친절해지고 있다.
캐릭터에 대한 설명이 최소화되고 끝없이 행동만을 그려내는데, 기존의 팬들은 원래부터 그와 가장 비슷하던 감독 장피에르 멜빌의 스타일을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면서 열광하는 사람들과, '히트'와 '인사이더'와 '콜래트럴'을 만들던 마이클 만 감독이 더 좋다고 하는 사람들로 좀 갈렸다. 그래도 최근작들은 '그 영화 다시 보니까 괜찮더라'는 식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꽤 많은 걸 보면 나이가 들면서 감을 잃은 것은 아니라는 건 거의 분명해 보인다.
3.2. 사실성에 대한 집착
리얼리티와 남성다움에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이 점에서는 스코세이지와 상당히 유사하면서도 다르다. 스코세이지는 주인공들의 드라마에서 철저하게 리얼리티를 추구하고 인간 군상들의 가장 날것의 모습을 보여주는 감독이다. 반면 영화 속 소재에 대해서는 과장을 더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분노의 주먹 권투신을 보면 리얼한 권투 시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이크 라모타의 심리를 보여주기 위한 과장된 장치로 사용된다.반면 마이클 만 감독은 드라마에선 낭만성을 추구하는 반면 소재에선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알리가 최고의 권투 영화라고 한다면 그건 반박의 여지가 있겠지만 최고로 리얼한 권투 영화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정도로 알리의 권투 장면들은 실제 시합을 보는 듯한 생동감을 자랑한다. 이를 위해 배역에 전직 프로권투 선수들을 뽑은 다음 윌 스미스를 KO시키지 않는 한 실제로 때려도 된다고 하였다. 복서들이 보고 놀랄 정도.
또 마이클 만의 총기류에 대한 집착은 히트, 마이애미 바이스, 콜래트럴의 놀랍도록 리얼하고 생동감 있는 총격전을 만들어 낸다. 실제로 경찰에게 사격을 가르치는 교관들을 불러와서, 최신의 실제 사격술을 영화에서 선보였다. 리얼리티를 위해 갱단 역에 전직경찰을 배역하기도 했다. 단적으로 히트부터 모든 만 영화의 총소리는 실제 총기를 발사하여 얻은 총격음이다. 리얼함에 집착하는 마이클 만의 영화 속 액션에서는 여느 블록버스터에서 느낄 수 없는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이는 18세기가 배경인 영화 라스트 모히칸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전장식 총기를 사용했던 시대 특성을 감안하여 화약이 젖어 총을 장전하지 못하는 상황이나 장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적의 장전된 총기를 주워 사용하는 등의 상황들을 디테일하게 표현했다.
물론 이에는 영화 속 배우들의 고생이 동반된다. 윌 스미스는 근육을 불리고 엄청난 강도의 복싱 트레이닝을 받았고 톰 크루즈는 4개월 동안 SAS 출신 전술교관 "믹 굴드"에게 고난이도의 전술적 무기 훈련을 받았다.
미군 훈련 조교가 히트의 발 킬머를 보고 병사들에게 "니네도 저만큼만 해봐라" 라고 말한 건 너무도 유명한 일화. 참고로 히트의 전술 자문은 영국 육군 특수부대 소속으로 걸프전에 참전했고, 이후 자신의 경험담을 브라보 투 제로로 출판해서 유명해진 앤디 맥넵이다.
2000년대 이후 사용하고 있는 디지털 카메라 촬영도 사실성을 높이기 위한 것. 콜래트럴에서 LA의 밤거리, 특히 코요테 장면과 같은 빛의 양이 적은 풍경을 사실적으로 잡아내기 위해 2004년 당시 소니에서 출시한 바이퍼 HD 카메라를 메이저영화로는 처음으로 도입하였으며 마이애미 바이스 극장판과 퍼블릭 에너미도 계속 디지털로 찍고 있다. 이러한 촬영은 자연조명이나 최소한의 조명으로도 대상을 선명하게 잡아낼 수 있지만, 사실적이다 못해 너무 선명하거나 '드라이하다'는 불평도 많다. 후기 만 영화가 호불호가 갈리는 이유 중 하나.
아무튼 대부분의 영화가 남성 영화로서 손색이 없다. 대부분의 영화가 남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의무감, 고초, 인생 풍파, 후회를 현실적으로 설득력있게 그리면서도 화끈한 총격전을 집어넣어 관객을 '무조건 생각하는 사람'으로만 만들지 않으려고 균형을 맞춘다.
4. 필모그래피
4.1. 영화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181818><tablebgcolor=#181818>
마이클 만 감독 장편 연출 작품
||<rowcolor=#fff> 년도 | 제목 | 연출 | 각본 | 제작 | 기획 | 비고 |
1981년 |
비정의 거리[13] Thief |
○ | ○ | |||
1983년 |
악마의 성[14] The Keep |
○ | ○ | |||
1986년 |
맨헌터[15] Manhunter |
○ | ○ |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 | ||
공모지대[16] Band of the Hand |
○ | |||||
1992년 |
라스트 모히칸 The Last of the Mohicans |
○ | ○ | ○ | ||
1995년 |
히트 Heat |
○ | ○ | ○ |
2022년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169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 |
|
1999년 |
인사이더 The Insider |
○ | ○ | ○ | ||
2001년 |
알리 Ali |
○ | ○ | ○ | ||
2003년 |
바다스[17] Baadasssss! |
○ | ||||
2004년 |
콜래트럴 Collateral |
○ | ○ |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 | ||
에비에이터[18] The Aviator |
○ |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 선정 | ||||
2006년 |
마이애미 바이스 Miami Vice |
○ | ○ | ○ | ||
2007년 |
킹덤[19] Kingdom |
○ | ||||
2008년 |
핸콕[20] Hancock |
○ | ||||
2011년 |
텍사스 킬링 필드[21] Texas Killing Fields |
○ | ||||
2015년 |
블랙코드 Blackhat |
○ | ○ | |||
2019년 |
포드 V 페라리[22] Ford v Ferrari |
○ | ||||
2023년 |
페라리 Ferrari |
○ | ○ | |||
미정 |
히트 2 Heat 2 |
○ | ○ | ○ |
4.2. TV
<rowcolor=#fff> 년도 | 제목 | 연출 | 각본 | 제작 | 비고 |
1978년 ~ 1981년 |
베가스 Vega$ |
○ | |||
1984년 ~ 1990년 |
마이애미 바이스[23] Miami Vice |
○ | ○ | ||
1986년 ~ 1988년 |
크라임 스토리 Crime Story |
○ | ○ | ○ | |
2002년 ~ 2003년 |
강도 살인 사건과 Robbery Homicide Division |
○ | ○ | ||
2011년 ~ 2012년 |
럭 Luck |
○ | ○ | ||
2022년 |
도쿄 바이스[24] Tokyo Vice |
○ | ○ |
5. 여담
- 히트가 한국에서 개봉될 때, 수입사인 제일기획은 성인관람가였던 이 영화에서 일부를 가위질하여 15세 관람가로 내놓았다가, 이를 알게된 마이클 만 감독이 매우 분노했다고 한다. 하지만 2002년에 영화 알리가 개봉할 때도 수입사인 아름다운 영화사가 30분을 가위질을 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후 사람들은 마이클 만 감독이 이런 한국에 대한 분노로 혐한내용을 담은 영화를 만들까 걱정했고, 위의 콜레트럴에서 한국인 갱단이 등장하자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다행히 마이애미 바이스, 퍼블릭 에너미 등등 이후 작품들에선 영화 배경이 배경이라 딱히 한국 요소가 안나왔지만 블랙코드에서 다시 코리아 타운이 등장했다. 그냥 주인공들이 잠깐 방문하는 식당 정도로 나왔지만 하필 악역의 하수인이 운영하는 곳이라 전투씬이 벌어진다.
- 그의 작품에는 한국계 미국인, 한글 등 한국과 관련된 소재가 자주 등장한다. LA를 배경으로 하는 히트, 콜래트럴은 물론이고 블랙코드, 도쿄바이스등에서도 한국과 관련된 내용이 꼭 한번 씩은 등장한다. 이는 감독 자신이 코리아타운을 LA의 중요한 풍경 중 하나로 보았기 때문이라고. 극도로 사실주의를 추구하고, 로스앤젤레스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마이클 만의 성향으로 보았을 때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 극장에서 히트는 15세 관람가로 개봉되고 대폭 가위질됐지만 정작 완전판은 MBC에서 3시간의 러닝 타임에도 불구하고 주말의 명화에서 방영되었다. 한국에 발매된 DVD를 포함해서도 가장 완벽한 상영. 영화 히트 처럼 극장에서 가위질 되었던 영화 알리도 MBC 주말의 명화에서 제대로 방영되었다.
- 제69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상을 받는데 도움을 줬다고 한다. 또한 happisu라는 트위터 유저의 증언에 따르면, 어떤 기자가 원래 황금사자상은 다른 영화가 받을 거였는데 피에타가 대신 받았다는, 당시에 국내에서 꽤 널리 퍼졌던 소문[25]에 대해 묻자 버럭 화를 내며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 페라리에 대해서도 깊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술된 연출작들인 마이애미 바이스나 포드 v 페라리에 다수의 페라리가 등장하는 장면이 있으며 감독 자신의 취향대로 주문한 페라리 599 GTO도 있고[26] 엔초 페라리의 일대를 다룬 영화를 연출하기도 했다. 피오라노 서킷에서도 페라리 F12베를리네타를 주행하였다. #
- 법 집행에서 경험적 연구를 통해 얻은 범죄와 경찰 절차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일본의 영화 평론가
하스미 시게히코가 마이클 만의 지지자다. 다음은 2006년 하스미 시게히코가 한 발언이다.
#
예를 들어, ' 거스 밴 샌트와 마이클 만 중 어느 쪽이 좋은가'라는 질문을 가정했다고 칩시다. 둘 다 좋다고 해서 비평이 안 되고 억지로 선택하는 것의 비평성이라는 게 있는 거죠. 거스 밴 샌트도 꽤 좋은 선(線)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어딘가에 의문이 남아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화 작가라기보다 필름에 의한 예술가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반면 마이클 만은 TV 마이애미 바이스 시리즈(1984-89)의 프로듀서로, 그 마이애미 바이스(2006)를 21세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찍어버리니, 거기에는 어색함이 따라다닙니다. 그러나 영화의 정통성이라는 점에서 마이클 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긴 콜래트럴(2004)이 마이애미 바이스보다 좋았다고 생각합니다만, 이 사람은 역시 대단하다는 것과는 다르군요, 그는. 하지만 저는 마이클 만이 거스 밴 산토보다 귀중한 영화작가라고 단언해 버리는 것이 지금 영화 비평가들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22년 하스미는 "코폴라 이후의 토니 스콧이나 마이클 만 같은 뛰어난 영화작가들이 몇 명 나왔고, 저도 그들의 작품을 각별히 아끼고 있지만, 두 사람의 평가는 미국에서는 극히 애매한 지점에 그치고 있어 유감스럽기 그지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 2022년 사이트 앤 사운드 선정 역대 최고의 영화 투표에서 다음과 같은 영화를 역대 최고의 영화 10편으로 꼽았다. #
- 전함 포템킨 (1925,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 잔 다르크의 수난 (1928,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 시민 케인 (1941, 오슨 웰스)
- 과거로부터 (1947, 자크 투르뇌르)
- 닥터 스트레인지러브 (1964, 스탠리 큐브릭)
- 마른 꽃 (1964, 시노다 마사히로)
- 지옥의 묵시록 (1979,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 분노의 주먹 (1980, 마틴 스코세이지)
- 비우티풀 (2010,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 고백 (2010, 나카시마 테츠야)
- 써머라는 이름의 예술가와 1974년부터 결혼하여 슬하의 네 명의 딸이 있다. 다니엘 데이루이스는 만에 대해 "자녀 양육으로 유명하지 않은 도시에서, 그는 아주 가까운 이 멋지고 견고한 가족을 가까스로 키웠다. 당신은 그들의 집에 가면, 그것은 오아시스이다."라고 말했다. 장녀 아미 카난 만은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딸의 영화인 '텍사스 킬링 필드'에 제작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차녀 애런 만은 프로덕션 디자이너로 활동 중이다.
- 범죄 소설 작가 에드워드 벙커(Edward Bunker)와 절친한 친구였는데, 1973년에 출간된 소설 《No Beast So Fear》를 함께 각색한 이후부터 친해졌다.
6. 외부 링크
[1]
제2차 세계 대전의 참전하기도 했다.
[2]
하지만 이 작품은 TV 영화이기 때문에, 대부분 1981년 개봉한 비정의 거리(Thief)를 데뷔작이라고 본다.
[3]
도둑이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 있다.
[4]
몰라사르는 무슨
저예산 특촬물에 나오는 괴인처럼 생겨 뭔가 이질감이 보인다.
[5]
현재 로튼토마토에서 93%의 지수를 얻고 있다.
[6]
이 작품은 다니엘 데이루이스의 첫 블록버스터 영화이기도 했다.
[7]
원래는 크로우 대신에
발 킬머를 캐스팅하려고 했다.
[8]
당시
아메리칸 뷰티가 상을 싹쓸이해서 수상은 실패했다.
[9]
마이애미 바이스 극장판은 지금까지도 일부 영화팬들에게
컬트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10]
퍼블릭 에너미의 한줄평이다.
[11]
스코세이지의 이러한 블랙 코미디적인 특징은 80년대 중반의 '
특근', '
코미디의 왕'과 같은 순도 높은 블랙 코미디들과 90년대 그의 대표적인 범죄 영화인 '
좋은 친구들', '
카지노'로도 이어진다.
[12]
굉장한 작품성을 가진 영화지만 이 영화는 철저히 남성 캐릭터들 위주의 영화라 여자 캐릭터들은 철저히 남성 위주의 시선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를 즐겨보는 관객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 캐치하기 어렵지만 여자 입장에서 보면 크게 공감하기 힘든 영화. 물론 다른 범죄 영화에서 소품으로만 활용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다.
[13]
밴드
탠저린 드림이 음악에 참여했다.
[14]
소설이 원작이며 2권짜리 만화책으로도 나온 바 있다.
이안 맥켈런,
가브리엘 번,
스콧 글렌 같은 배우진들이 나오고 역시 음악을 탠저린 드림이 맡았다.
강렬한 오프닝과 음악. 악마의 성은 89년 비디오 출시 제목이고 한국 미개봉작.
KBS1에서 <은십자가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93년
식목일 오후 3시 50분에
더빙방영한 바 있으며 삭제씬도 거의 없다.
[15]
교양서적 '클라시커 50'의 영화편에서는
에드워드 노튼이
주연으로 출연한 버전보다 더 높게 평가했다.
[16]
폴 마이클 글레이저 연출작
[17]
마리오 반 피블스의 주연 및 감독 연출작
[18]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연출작.
[19]
피터 버그 감독 연출작.
[20]
피터 버그 감독 연출작.
[21]
딸 Ami Canaan Mann의 감독 연출작.
[22]
제임스 맨골드 감독 연출작.
[23]
국내에서는 '마이애미의 두 형사'라는 제목으로도 알려져있다.
[24]
제이크 아델스타인의 회고록을 원작으로,
안셀 엘고트,
와타나베 켄이 주연.
[25]
해당 영화는
폴 토머스 앤더슨의
마스터라는 의견이 많았다.
[26]
핫휠에서 마이클 만 스페셜 컬러로 1:18 모형으로도 발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