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12:35:58

엔초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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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colbgcolor=#412f19><colcolor=#ffffff> 엔초 페라리
Enzo Ferrari
OMRI[1]
파일:4D88C1BC-969F-4D7D-AD29-80369C3AB577.jpg
본명 엔초 안셀모 주세페 마리아 페라리
Enzo Anselmo Giuseppe Maria Ferrari
출생 1898년 2월 18일
이탈리아 왕국 모데나
(現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 주 모데나)
사망 1988년 8월 14일 (향년 90세)
이탈리아 마라넬로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직업 레이싱 드라이버, 기업인
배우자 로라 도미니카 가렐로 (1923년 결혼 ~ 1978년 사별)
자녀 장남 알프레도 페라리 (1932년 출생 ~ 1956년 사망)
차남 피에로 페라리 (1945년 ~ )
신체 187cm

1. 개요2. 생애3. 여담4. 어록

[clearfix]

1. 개요

이탈리아의 레이싱 팀 스쿠데리아 페라리와 자동차 제조사 페라리의 창업자.

2. 생애

1898년 이탈리아 북부 모데나에서 태어났다. 10살때인 1908년 볼로냐에서 자동차 경주를 처음 본 것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13세 때 부터 운전을 했으며 스포츠에 상당한 재능을 보여 15세 때 스포츠신문에 축구 기사를 기고해 이름을 날렸다.
파일:external/www.grandprixhistory.org/ferrari45.jpg
젊은 시절의 엔초 페라리

1915년 자신이 소속된 신문의 기사에서 이탈리아인 디 파르마가 1915년 미국 최대 레이싱 대회인 인디애나폴리스 500에서 극적으로 우승했다는 소식을 보고 과거 자신의 꿈인 레이싱 드라이버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20세에 꿈을 이루기 위해 자동차 회사의 트럭 운전사로 취직한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최고의 드라이버 중 한 명인 페리체 나지로를 만나 그의 소개로 스포츠카 메이커인 CMN사로 직장을 옮기고 운전 실력을 인정받아 레이싱에 데뷔하게 된다.

첫 출전한 레이싱은 50km의 산길을 달리는 경주로, 종합 11위를 기록했다.

1920년대 팀 알파 로메오의 드라이버였으나 1929년 자신만의 레이싱 팀인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만들었고 이것을 보통 페라리의 시작으로 본다. 오늘날 페라리의 양산차 앞 펜더에 달린 엠블럼의 SF는 이 이름의 약자이다. 그리고 이 팀은 전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레이싱 팀이 되었다.

1939년 알파 로메오 측에서 자신의 레이싱 팀 스쿠데리아를 흡수하고 자신을 내쫓으려는 의도를 알아챈 페라리는 알파 로메오와 결별하고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첫 생산차량은 1940년에 나온 Tipo 815.

그러나 4년이라는 시간 동안 알파 로메오와의 계약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를 생산할 수 없었다. 1947년에는 드디어 페라리의 진가가 포뮬러 1 르망 24시 레이스에서 본격적으로 발휘하기 시작했고, 이후 1988년까지 무려 5,000번의 우승 타이틀을 거머쥘 정도로 스쿠데리아 페라리는 막강한 팀으로 성장하게 된다.

1988년 8월 14일, 페라리는 90세의 일기로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심부전증으로 사망했다.

3. 여담

  • 아들인 알프레도를 끔찍히 아껴 차량을 만드는데 수많은 의견을 나눴으며 지병으로 알프레도가 죽자 그 이후 생산된 모든 페라리 V6 차량에 아들의 별명인 디노라는 이름을 붙였다. 단 디노는 페라리가 아니다. 이유는 페라리 엔진이 아닌 피아트의 엔진을 탑재하고 출시되었기 때문에 페라리 이름으로 판매하지 않았기 때문. 그런데 이것도 애매한 점이 디노 308모델의 경우 후기형부터는 페라리 로고를 붙여서 팔았다. 때문에 디노는 엄밀히는 페라리는 아니지만 사실상 페라리로 인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2]
  • 엔지니어로써의 실력과 회사를 일으켜세운 창업자로써의 능력은 분명 뛰어나다고 평가받지만, 자존심이 높은 것을 넘어서 오만하고 독선적인, 조금 과장해서 인간쓰레기 수준의 성격으로 악명이 드높았다. 이러한 성격 때문에 현재까지도 그의 명성에는 금이 가고 있으며, 예나 지금이나 그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서명은 항상 보라색 잉크를 채운 만년필로만 했다고 하며, 만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느낌을 줘 신비감과 위압감을 조성하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본사에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을 무조건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도 악명이 높았다. 그가 창업한 페라리 사 역시 이런 창업주의 성격을 그대로 반영했으며, 기업의 이미지를 훼손한다거나 하는 사유로 소비자인 고객에게 클레임이나 민사소송을 하는 갑질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심지어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 이러한 엔초의 불 같은 성격은 많은 일화를 남겼는데, 엔초와 연관된 창업 비화를 가진 슈퍼카 브랜드들을 보면 하나같이 앤초의 독선으로 불화를 겪은 일이 발단이 된 경우가 많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슈퍼카의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셈이다. 슈퍼카 시장의 발전이 필연적인 것이다손 처도, 결과적으로는 엔초의 독선적인 행보가 경쟁사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 여러 경쟁사들이 "저 놈의 코를 납작하게 해주자."라는 생각을 품도록 만들었으니 슈퍼카 시장의 기폭제 역할을 한 것이다.

    • 가장 유명한 일화는 슈퍼카 브랜드로 유명한 람보르기니의 창업 일화이다. 당시 트랙터를 비롯한 농기계를 만드는 사업가로 명성이 높은 페루치오 람보르기니가 본인이 소유한 페라리 차량의 문제점을 지적하러 엔초를 찾아오자 앞서 서술했듯 몇 시간씩 기다리게 하는 것으로 문전박대했고, 페루치오가 엔초를 겨우 만나자마자 '트랙터나 만드는 주제에 뭘 아냐며' 모욕을 주고 무시하는 바람에 분노한 페루치오가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 회사를 창업하여 엔초에게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놓게 되었다.[3] 이 창업 일화도 유명하지만 그 이후에도 엔초는 페루치오를 비웃었고 람보르기니 가문은 소박이라고 조롱하며 람보르기니와 적대관계가 형성되었다.
    • 60년대를 풍미했던 이소 리볼타[4]라는 같은 이탈리아 슈퍼카 회사가 설립된 계기도 람보르기니의 사례와 비슷하게 엔초의 모욕에 가까운 대응이 원인이었다.
    • 포드의 사례도 유명한데, 1960년대 초, 모터스포츠 국제 무대에 진출하려는 포드가 페라리와 협력을 요청할 때, 페라리는 레이싱에 집중하고 양산차 판매는 포드에게 맡긴다는 조항을 걸었으나 포드가 레이싱에 조금 개입하겠다는 말에,[5] 단숨에 조항을 깨버리고 미국인 주제에 무슨 레이싱 카를 만드냐고 디스하는 바람에 분노한 포드가 GT40이 만들게 되었다. 이 일화가 2019년 영화 포드 V 페라리의 배경이다.
  • 청년기의 외모가 축구선수인 메수트 외질과 매우 닮아있다. 공교롭게도 외질은 엔초가 사망하고 2개월 뒤에 태어났으며 둘 다 180cm 이상의 장신인 것도 비슷하다. 엔초가 187cm이고 메수트가 180cm.

4. 어록

You cannot describe passion, you can only live it.
열정은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저 열정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Aerodynamics are for people who can't build engines.
공기 역학은 엔진을 만들 줄 모르는 사람을 위한 것이다.
Ask a child to draw a car, and certainly he will draw it red.
아이들에게 자동차를 그리라고 하면 빨간색으로 칠할 것이다.
The horse pulls the carriage, not push them.
마차는 미는 것이 아니라, 끄는 것이다.
You know how to drive tractors. But you'll never learn how to drive a real Ferrari.
트랙터는 잘 모는 모양이군. 근데 진짜 페라리는 평생 배워도 제대로 몰지도 못할 걸세.
250 GT의 결함을 지적하러 찾아온 페루치오 람보르기니에게.


[1] Order of Merit of the Italian Republic [2] 탑기어에서 전 MC들이자 스포츠카 매니아인 제레미 클락슨과 리처드 해먼드가 이 때문에 입씨름을 한 적이 있는데, 저가의 슈퍼카를 구매해 진행한 특집에서 해먼드가 페라리 마크가 붙은 중고 디노 모델을 헐값에 사왔다. 해먼드가 잘 사왔다면서 자화자찬하자 클락슨이 "넌 가짜 페라리를 사왔잖아!"라고 극딜을 하고 해먼드가 이에 대해 "엔조가 비극적으로 요절한 자기 아들의 별명을 붙혀서..."라면서 진짜 페라리라고 반박하는 내용. 참고로 이 특집은 고작 약 310만원으로 미드십 엔진 슈퍼카를 구매하는 미션이라 3MC가 산 차들[6]은 다 폐차 직전의 폐급들이었다. [3] 이 일화 또한 훗날 프랭크 그릴로 주연의 영화 <람보르기니: 전설이 된 남자>의 배경이 된다. [4] 이 회사가 만든 대표적인 차종중에 하나는 BMW가 라이선스 생산했던 BMW 이세타이다. 이소가 개발하여 3년 정도 판매했었지만, 정작 창업자인 렌조 리볼타가 직접 타보고는 못 써먹을 쓰레기 같은 자동차라는 이유로 BMW에 이세타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싹다 털어 넘겨 버린다. 이후로는 페라리를 위해 차를 개발하던 기술자가 이직하자 그 기술력과 쉐보레 V8 엔진을 조합한 새 GT 카를 만들었고, 이세타는 다들 잘 알다시피 BMW가 10년동안 신나게 팔아먹었다. ( 참고 자료) [5] 포드가 반대하면 해당 레이스에 못 나간다는 조항이 있는데, 레이싱에 죽고사는 페라리에게 간 내놔라 쓸개 내놔라 하면 다 빼서 가져오라는 뜻이다. 사실상 포드가 시비 건 것이나 다름없었고, 페라리는 화가 안 날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