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8 16:14:42

이반 코르도바

이반 코르도바의 역임 직책
{{{#!folding ▼
콜롬비아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호르헤 베르무데스
(1998~2001)
이반 코르도바
(2001~2011)
마리오 예페스
(2011~2014)
}}} ||
콜롬비아의 前 축구선수
파일:이반 코르도버.jpg
<colbgcolor=#eeeeee,#191919> 이름 이반 코르도바
Iván Córdoba
본명 이반 라미로 코르도바 세풀베다
Iván Ramiro Córdoba Sepúlveda
출생 1976년 8월 11일 ([age(1976-08-11)]세)
콜롬비아 리오네그로
국적
[[콜롬비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73cm
직업 축구선수 ( 수비수[1] / 은퇴)
소속 <colbgcolor=#eeeeee,#191919> 선수 데포르티보 리오네그로 (1993~1995)
아틀레티코 나시오날 (1996~1998)
CA 산 로렌소 (1998~2000)
인테르나치오날레 (2000~2012)
기타 인테르나치오날레 (2012~2014 / 클럽 매니저)
베네치아 FC (2021~2024 / 고문)
국가대표 73경기 5골 ( 콜롬비아 / 1997~2011)

1. 개요2. 클럽 경력3. 국가대표 경력4. 플레이 스타일5. 은퇴 이후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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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콜롬비아 국적의 전 축구선수.

무려 12년을 인테르에 헌신한 레전드로[2], 트레블을 달성한 09-10 시즌 부주장을 맡았다. 콜롬비아 국가대표팀에서도 주장으로서 2001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었다.

170대 초중반이라는, 중앙 수비수로서는 매우 불리한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세계적인 수준의 플레이를 보여준 선수로, 지금도 단신 센터백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반드시 거론되는 이름들 중 하나이다.

2. 클럽 경력

1993년 고향팀인 데포르티보 리오네그로에서 데뷔한 코르도바는 좋은 활약을 펼치며 1995년 자국 명문인 아틀레티코 나시오날로 이적한다. 1년 만에 코르도바는 산 로렌소에 입단하면서 더 큰 무대인 아르헨티나로 진출했다.

1999년 코르도바는 산 로렌소에서의 활약으로 남아메리카 올해의 팀에 선정되었고, 2000년 겨울, 코르도바는 몇몇 유럽의 빅클럽들에게 제의를 받았는데, 바로 레알 마드리드 CF 인터 밀란이었다. 코르도바는 레알 마드리드로의 이적을 거절했고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다.

6개월 뒤 페루자에서 마르코 마테라치가 이적해왔고 코르도바는 그와 호흡을 맞추었다. 2002-03 시즌에는 파르마에서 파비오 칸나바로가 이적해왔다. 당시 감독이었던 엑토르 쿠페르는 쓰리백을 활용했고 코르도바-마테라치-칸나바로의 라인업이 주였다. 물론 코르도바-칸나바로라는 평균 신장 174.5cm라는 괴악한 센터백 라인으로 경기를 나온적도 있다.[3]

코르도바는 하비에르 사네티에 이어 팀의 부주장으로 임명되었는데, 2004-05 시즌 코파 이탈리아에서 AS 로마를 꺾고 우승을 차지할 당시 사네티가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에 소집되어 부재 중었고, 코르도바가 팀을 결합하여 우승을 이끌었다.

인터 밀란은 2005-06 시즌 3위를 차지했는데, 1, 2위였던 유벤투스 FC AC 밀란 칼치오폴리 승부조작 사건으로 징계를 받자 빼앗겼던 타이틀을 되찾았으며, 이후 세리에 A 5연패를 달성하게 되었다.

이후 왈테르 사무엘, 루시우 페헤이라 등의 수비수들이 영입됨과 동시에 본인의 노쇠화로 입지는 약해졌으나, 그래도 많은 경기에 출전하며 팀의 황금기를 빛냈다.

2009-10 시즌 주제 무리뉴 감독이 이끌던 인터 밀란은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UEFA 챔피언스 리그에서 모두 우승하면서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초의 트레블을 달성했는데, 코르도바는 주전은 아니었지만 교체 선수로서 제 몫을 다했다.

2010-11 시즌에는 인터 밀란 올해의 선수상을 받았고, 2011-12 시즌 코르도바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4]

3. 국가대표 경력

코르도바는 1997년부터 2011년까지 73경기 5골을 기록했으며 코파 아메리카 4회, 월드컵 1회 출전했다.

코르도바는 1997년 코파 아메리카에 출전했지만, 1998년 프랑스 월드컵은 1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1999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주전 수비수로 출전했는데, 콜롬비아는 3전 전승으로 조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으며, 코르도바는 아르헨티나전에서 페널티 킥 골을 넣었다. 하지만 8강에서 칠레에게 2:3으로 패해 탈락했다.

2001년 코파 아메리카에서는 주장으로 출전했으며, 조별리그에서 저번 대회에서 패했던, 칠레를 꺾으며 3전 전승을 거두었고, 페루 온두라스를 격파하며 결승전에 진출한다.

결승전에서 코르도바는 멕시코를 상대로 결승골을 뽑아내며 콜롬비아의 사상 첫 코파 아메리카 우승을 이끌었다.[5][6]

이후 2011년까지 콜롬비아의 주장으로 활약하다가 은퇴했다.

4. 플레이 스타일


173cm라는, 센터백으로는 최악의 신체 조건을 갖추었으나[7] 엄청난 스피드, 민첩성과 점프 능력 등 천부적인 운동신경으로 이를 커버했다.

코르도바의 주 플레이는 이러한 운동능력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윙백도 자주 담당할 정도로 준족이었던 스피드와 왕성한 체력이 강점이었다. 그렇다고 수비력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으며 대인수비와 타이밍을 뺏는 태클에 능숙해서 공격수 입장에서는 기술적으로 제치려니 태클이 날카롭게 들어오고, 속력으로 제치자니 뒤에서 달려와서 뺏어버리는 상황이 연출되며 코르도바와의 1대1 상황에서 우위를 점하기 쉽지 않았다. 상기했듯이 파비오 칸나바로처럼 키가 작음에도 경악스러운 점프력 덕분에 공중 경합에서 밀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173cm 선수가 세트피스 공격상황에서 주요 헤딩 루트가 되는 장면이 자주 연출되기도 했다.

실력적인 부분을 차치하더라도 탁월한 리더십으로 라커룸의 귀감이 되는 선수였기 때문에 이미 리더십으로는 정평이 나있는 하비에르 사네티와 함께 부주장으로서 인테르 선수단을 통제할 수 있었다.

5. 은퇴 이후

2011-12 시즌 밀라노 더비를 마지막으로 은퇴한 이후 인테르에 남아 클럽 매니저 역할을 수행했다.

2021년 베네치아 FC에서 고문직을 맡았고 2024년 6월 27일에 베네치아를 떠났다.

6. 여담

피파 22 FUT Heroes로 추가되었는데 작은 신장에도 불구하고 빠른 속력과 높은 수비,몸싸움 스텟 덕분에 세리에 대장급 수비 카드로 평가 받고 있다.

[1] 센터백, 풀백 [2] 호나우두와 함께 뛰었고 필리페 쿠티뉴가 영입되었을 때에도 팀에 남아 있었다 [3] 물론 둘 다 최정상급 수비수였기 때문에 신장 하나로 문제가 되진 않았다. [4] 은퇴 경기는 AC 밀란과의 더비 경기였다. [5] 그것도 전 경기 무실점으로 우승했다. [6] 2001년 코파 아메리카는 이변의 연속이었는데, 대회 전날 아르헨티나가 불참을 결정하자 급하게 소집된 북중미 초청팀 자격의 온두라스가 브라질을 8강에서 꺾었고 기존의 초청팀인 멕시코는 결승까지 올라갔다. [7] 아이러니하게도 역대급 센터백으로 꼽히는 선수들 중에는 180cm가 안되는 선수들이 수두룩하다. 대표적으로 프랑코 바레시(176cm), 가에타노 시레아(178cm), 다니엘 파사레야(173cm), 파비오 칸나바로(176cm), 로베르토 아얄라(177cm), 카를레스 푸욜(178cm) 등등.역대 최고로 불리는 황제도(182cm밖에(?)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