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03 17:08:04

로버트 블레이크

로버트 블레이크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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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 TV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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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Blake
파일:robertblake.jpg
본명 마이클 제임스 구비토시 (Michael James Gubitosi)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출생 1933년 9월 18일
미국 뉴저지 주 너틀리
사망 2023년 3월 9일 (향년 89세)
미국 캘리포니아 주 로스앤젤레스
신장 163cm
학력 없음[1]
직업 배우
영화 데뷔 1939년, 'Bridal Suite'
활동 기간 1939년 ~ 1997년
가족 슬하 1남 2녀[2]

1. 개요2. 가족사3. 아내 피살 사건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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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배우

2. 가족사

가족사가 불운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공황 시절 두 번이나 낙태 수술을 했던 어머니는 실수로 로버트 블레이크를 낳았다. 어머니는 게다가 시동생과 부적절한 관계였다. 삼촌이 사실은 아버지일 수도 있어 실제 친부는 매우 모호한 상태였다. 법적 아버지는 대장장이였는데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을 쇼 비즈니스의 세계로 진출시키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이었다. 블레이크는 겨우 두 살 때 보드빌에 출연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 아동 학대까지 당했다.

결국 로스엔젤레스로 이주했고, MGM 시절 아워 갱 멤버로 데뷔해 큰 인기를 누렸다. 이외에는 레드 라이더(Red Ryder) 시리즈의 주인공 사이드킥인 리틀 비버(Little Beaver) 역으로 유명하고 <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1948)에도 잠깐 출연하기도 했다.

이후 스무 살에 입대해 알래스카로 갔는데 부대 근처에 사는 16세 소녀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소녀의 부모는 로버트가 딸을 강간했다고 주장했다.

제대 후 할리우드로 돌아와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성인 연기로는 주연으로 나온 < 냉혈한>(1967)과 형사 드라마 "Baretta(버레타)"(1975-78)가 유명하다. "버레타"는 미국 드라마 역사상 손꼽히는 명작 중 하나로 여겨지며, 방영 당시 큰 인기를 끌어 오늘날 1970년대 미국 대중문화의 주요 상징이기도 하다.[3]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도 성공적으로 배우 생활을 이어나간 몇 안 되는 할리우드 아역 배우 출신으로 손꼽히곤 했다.[4]
파일:Baretta_Robert_Blake.jpg

그러나 성격이 좋지 않은 데다가 업계와의 불화 끝에 반은퇴 상태였다가 1993년작 TV영화 <Judgment Day: The John List Story( 심판의 날: 존 리스트 이야기)>로 에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다시 주목 받았다. 어머니, 아내, 자녀 셋을 전부 살해하고 17년 동안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도피 생활을 했던 실존인물 존 리스트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1997년작 < 로스트 하이웨이>에 조연으로 나오기도 했다. 이때는 분장을 짙게 하고 기괴하게 나왔다.

하지만 2001년 아내 피살 사건에 휘말리면서 할리우드에서 완벽하게 매장 당했다. 형사에선 무혐의 처리 됐지만 민사에선 유죄로 판결됐으며, 소송료와 유족 위자료를 대느라 쫄딱 망하고 평판도 최악이 되었다.

이후 조용히 지내며 별다른 소득 없이 인터뷰 및 추억팔이 하며 지내다가 2023년 3월 9일 타계했다. 결국 <로스트 하이웨이>가 최후의 영화 출연작이 되었다.

3. 아내 피살 사건

1983년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한 로버트 블레이크는 67세 때인 1999년, 43살이었던 바니 리 베이클리(Bonny Lee Bakley)를 재즈 클럽에서 처음 만났다. 다음해인 2000년 6월 2일 딸 로즈 러노어(Rose Lenore)가 태어났다. 블레이크는 베이클리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혼전 합의서를 작성했다. 베이클리가 이에 동의한 후에야 두 사람은 11월에 식을 올렸다.

이때 블레이크는 이혼을 청구하는 당사자는 이혼을 당하는 상대에게 양육권 일체를 넘겨야한다는 조항을 달았다. 자신보다 훨씬 젊은 유명인사들과 몇 차례 염문이 있었던 베이클리가 자신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려는 전략이었으나 정작 자신이 베이클리를 떠나고 싶어졌을 땐 이 조항이 역으로 블레이크의 발목을 잡게 된다.

두 번째 아내가 된 베이클리를 불신한 블레이크는 흥신소를 이용해 뒷조사를 했다. 블레이크는 당시 근거없는 과격한 망상들에 빠져있었는데, 베이클리가 결혼생활 중에도 독신자 행세를 하며 애인 상대를 구인하고 있었다는 주장은 그나마 양호한 수준이었다. 블레이크는 베이클리가 자녀들의 영상을 찍어 아동성애자들에게 팔았던 전적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딸 로즈 러노어에게도 곧 그렇게 할 거라고 믿고 겁에 질려 있었다. 베이클리의 남동생이 경찰을 죽이고 시체를 은폐한 적이 있다며 아예 서에 신고한 적도 있다. 베이클리의 남동생은 마약 거래를 하는 등 떳떳한 인물은 아니었으나 사람을 죽인 일은 당연히 없었고, 당시 사건을 맡았던 경찰관은 훗날 블레이크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기 위해 법정에 서게 된다.

2001년 5월 4일 블레이크는 베이클리를 데리고 단골 식당에 갔다. 식사를 마친 뒤 베이클리는 식당 인근에 주차돼있던 블레이크의 차안에서 머리에 총을 맞은 채로 발견되었다.

블레이크는 베이클리가 총을 맞았던 시각에 자신은 깜빡 잊고 두고 나왔던 호신용 총을 되찾기 위해 식당으로 되돌아갔었다고 주장했다. 블레이크의 총은 베이클리의 살해에 사용된 무기는 아니라고 판명되었다. 실제로 범행에 쓰인 총은 쓰레기통 안에서 발견되었다.

그러나 2002년 4월 18일 블레이크는 자신이 오랫동안 고용해온 경호원과 동시에 체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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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블레이크 경호원

두 명의 스턴트맨이 블레이크가 청부살인을 의뢰하려고 자신들에게 접근한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청부살인 혐의 두 건, 살해 모의 혐의 한 건으로 기소된 블레이크는 1년여간의 감옥생활 후 2003년 3월 13일 150만 달러를 내고 보석되었다. 이후 자택구금 상태로 재판을 거쳤다. 검찰 측은 애정이 없어진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것이 블레이크의 살인 동기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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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에서 증언 중인 스턴트맨들

그러나 총기발사 잔여물은 블레이크가 소지하고 있던 개인 총에서 유래한 것일 수도 있었으며, 이외엔 유기적 증거가 없어 블레이크가 직접 총을 쏜 당사자는 아닌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2005년 증거불충분으로 무죄방면되었다.

그러나 베이클리의 자녀 넷을 대리하여 베이클리의 유산 집행인이 2002년 형사소송이 들어간 동시에 민사소송을 걸었고, 경호원의 여자친구는 블레이크와 경호원 둘 다 베이클리의 사망 원인이라고 증언했다. 2005년 민사법원은 블레이크가 베이클리의 타살에 책임이 있으며 유족인 자녀들에게 위자료 3천만 달러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결국 블레이크는 2006년 파산 신청을 했다. 2008년 항소법원 역시 블레이크가 유죄라는 결론을 그대로 유지했는데, 대신 위자료를 1천500만 달러로 경감했다.

피살 사건 발생 당시 11개월짜리 늦둥이였던 두 사람의 딸 로즈 러노어는 블레이크가 첫 번째 아내 사이에서 얻었던 딸이 입양해 키웠다. 즉 로즈 러노어는 언니를 엄마라고 부르고 형부를 아빠라고 부르며 자랐다. 이에 대해 베이클리가 이전 결혼에서 얻은 자녀들은 자신들의 이부형제이기도 한 로즈 러노어를 로버트 블레이크가 훔쳐간 거나 다름없다며 분개하기도 했다.
파일:Bonny_Lee_Bakley.jpg
파일:Rose_Lenore.jpg
두 번째 아내 바니 리 베이클리 두 사람의 딸 로즈 러노어

재판 중에 블레이크는 말런 브랜도의 아들 크리스천 브랜도가 딸 로즈 러노어의 친부일 것이고 베이클리를 살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베이클리는 1996년부터 블레이크와 사귀기 직전까지 크리스천 브랜도와 교제했었다. 그러나 유전자 검사 결과 로즈 러노어는 블레이크의 친딸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안 그래도 이복여동생의 남자친구를 죽여 복역했던 전과가 있던 크리스천 브랜도는 이 때문에 한동안 실제 살인범으로 몰려 상당한 피해를 보았다.

로즈 러노어는 19살이 됐을 때 아버지 블레이크와 처음 연락을 시도해봤다고 하며, 로즈 러노어 본인의 요청으로 부녀는 대화 중에 어머니 베이클리의 피살 사건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현재 배우로 활동 중이다.

블레이크의 아내 살해 혐의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에 등장하는 클리프 부스 캐릭터에 영향을 줬다고 한다.

4. 여담

  • 미국 배우 중 메이저 영화에서 bullshit을 말한 최초의 배우라고 한다. 해당작은 < 냉혈한>.
  • 살해 당한 두 번째 아내 바니 리 베이클리는 블레이크와의 결혼이 10번째이자 마지막 결혼이었다. 베이클리의 8번째 남편 글린 "스카티" 울프[5]는 도합 31번 결혼해 "세상에서 가장 많이 결혼한 남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했던 침례교 목사였다.
  • 2017년에 세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결혼했다가 2019년에 이혼했다.
  • 대표작이 범죄/경찰물로 이뤄져 있고 사람 죽이는 살인범 역할을 자주 맡았다. 심지어 마지막 출연작인 < 로스트 하이웨이>는 O. J. 심슨 사건을 모티브로 한 미스터리 호러였는데 [6], 기묘하게도 4년만에 O. J. 심슨풍 살인사건에 휘말려 몰락했다. 그래서 제2의 O. J. 심슨이라 불리는 경우도 좀 있다.


[1] 아역배우로 바로 데뷔하여 학력이 없다. [2] 이중 장남과 장녀는 첫 번째 부인 소생이고 차녀는 두 번째 부인 소생이다. [3] 다만 정작 블레이크 본인은 한동안 영화쪽이 안 풀려 TV 활동을 하게 된 것을 큰 수치로 여겼고 이 때문에 4기만에 하차하면서 드라마도 그대로 끝이 났다. [4] 이 당시는 셜리 템플이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를 제외하면 아역을 갈아넣는 걸로 말이 많았고 이로 인해 성인 배우가 되지 못하고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 아역들이 훨씬 많았다. 심지어 블레이크가 처음 인기를 얻었던 MGM은 그 중에서도 정도가 심해 주디 갈런드 미키 루니는 약물 주사 등 노골적으로 학대 당했고, 아직도 MGM 영화사는 이 일로 까인다. 추가로 블레이크는 갈런드나 루니 급은 아니었기에 (블레이크의 다른 대표작인 레드 라이더 시리즈는 B 영화 전문이었던 리퍼블릭 스튜디오 제작이었다.) 이런 변신이 제법 주목 받았다. [5] Glynn "Scotty" Wolfe. 1908 - 1997. [6] 단 블레이크는 여기서는 살인범이 아닌 린치풍 정체불명 떡밥 캐릭터를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