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1 21:26:16

김만일(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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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일
金萬一 | Kim Man-il | Ким Ман Иль
파일:북한 김만일.jpg
사진에서 제일 오른쪽에 있는 아이가 김만일이다.
왼쪽부터 김정숙, 김정일, 김일성.
김일성의 품에 안겨 있는 아기는 김경희.
출생 1944년
소련 러시아 SFSR 하바롭스크
사망 1947년 (향년 3세)
평양시
본관 전주 김씨 (全州 金氏)[1]
국적
[[북한|]][[틀:국기|]][[틀:국기|]]
부모 아버지 김일성, 어머니 김정숙
가족 김정일, 여동생 김경희
이복남동생 김평일, 김영일
조카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 김여정
조카손자 김한솔, 김금솔, 조카손녀 김솔희, 김주애
친척 작은아버지 김철주, 김영주
사촌 김정현, 김영성
오촌당숙부 김창주, 김원주

1. 개요2. 생애3. 가계4. 죽음에 관한 논란5. 여담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김일성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난 2남 1녀 중 둘째 아들. 김정일의 남동생, 김경희의 작은 오빠이기도 했다.

2. 생애

1944년 소련 러시아 SFSR 하바롭스크 인근에서 출생하였다. 만일이라는 본명보다 슈라라는 러시아식 이름으로 많이 불렸으며 ' 샤샤'로 불리기도 했다.[2] 1947년 7월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청사 (오늘날의 당창건사적관) 앞에 있는 분수대에서 놀다가 익사하여 향년 3세의 나이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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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인 불과 3살에 사망했으므로 배우자도 자녀도 없다.

===# 가계도 #===
한성희
홍일천
김혜경


2
신정희
(리씨)
김혜순
리혜경
김솔희
홍영숙
서영라
김이순
장길선
김영숙
김춘송
(자녀)
(부인)
(장남)

3
(셋째)
(아들)
(남편)
(딸)
(딸)
김경진
김인강
(부인)
김은송
김성강
(부인)
(자녀)
제갈순복
김송죽
김백연
김형록
김영성
(부인)
(부인)
김정현
(부인)
김원주
김구일녀
김형실
김형복

4. 죽음에 관한 논란

KBS의 다큐멘터리 <대기획 김정일>에선 김정일이 겁을 먹었기 때문에 동생의 익사를 보고만 있었다고 하였고 같은 방송의 다른 다큐멘터리 <김정일, 금지된 과거>에서는 아예 김정일이 동생이 익사하는 걸 방치하는 수준이 아니라 분수대에서 기어올라오는 동생을 걷어차서 자꾸만 물속에 처박았다는 주장을 소개했다. 반공고육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지던 시기인 1987년 통일홍보원[3]에서 김만철 일가 탈북사건을 위주로 만든 반공 교재인 "최근의 북한 현실"이나, 월간지 "어린이 자유' 등에는 이 설을 정설인 것처럼 소개하였다.

일단 북한의 공식적인 주장에 따르면 김정일과 김만일이 놀고 있었는데 알 수 없는 어떤 이유로 김만일이 물에 빠졌다고 한다. 김정일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김일성의 당시 주치의의 아들인 세르게이 리는 "당시 유라(김정일)와 슈라(김만일) 둘만 거기 있었는데 대체 어쩌다가 빠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놀란 김정일이 허겁지겁 아버지를 불러왔으며 놀란 김일성이 다시 자신의 주치의를 불러왔지만 이미 김만일은 숨진 후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6세, 3세 정도 되는 어린아이들을 보호자 없이 방치했을 때 정말 기상천외한 사고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은 아이를 키워 본 부모라면 누구든 알고 있다. 성인이 된 김정일의 막장 행적을 불문하고 간에 6세밖에 안 된 아이가 의도적으로 동생을 살해했을 가능성보다 그냥 사고사했을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김일성 암살설 이상으로 허무맹랑한 음모론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김일성의 먼 친척인 강명도는 해당 루머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영상을 보면 북한 내에서는 유명한 소문인 모양. 물론 그만큼 김정일에 대한 북한 주민들의 반감이 크다는 증거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

5. 여담

만약 김만일이 사망하지 않고 장성했다면 김일성의 후계자 자리를 두고 형 김정일, 이복동생 김평일, 숙부 김영주 등과 경쟁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가 능력이 있었다면 김정일 대신 북한의 수령이 됐을 확률도 있다. 이후 김정일이 후계자가 되었다면 숙청되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김정일은 자기 가족만큼은 잘 챙겨주는 성격이라 자신의 눈 밖에 난 장남 김정남도 그는 나쁜 아이가 아니니 죽이지 말라고 김정은에게 유언으로 남겼을 정도였으며 아래에도 나오지만 여동생 김경희에게도 잘해주었다. 때문에 김만일이 김정일의 권력을 위협하지만 않는다면 숙청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김만일은 엄연히 김정일의 이복동생이 아닌 동복동생이었던 만큼 김평일처럼 해외를 떠돌며 외교관 생활을 했을 가능성도 높지 않고 김영주처럼 명예직을 맡으면서 편하게 살거나 김정철처럼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한량처럼 살았을 가능성이 높다. 만일 김만일이 김정일보다 장수하고 정치적 역량도 충분했다면 김정일 사후 역으로 장성택처럼 숙청당하지 않았더라면 김경희처럼 조카들인 김정남, 김정철, 김정은을 후견하면서 막후의 실권자로 행세하거나 아예 조카들을 제치고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김만일이 사망한 후 김일성은 그 분수대를 철거하고 메꿔버렸다. 김만일이 물에 빠져 죽을 때 김정일이 겁을 먹고 그저 보고만 있었는데 나중에 김일성이 김정일을 책망할 때마다 두고두고 이때의 일을 이야기했다고 한다.[4] 김정일도 이때의 충격 때문인지 자신의 유일한 친동생인 김경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품었으며 김정일 본인의 자서전에도 이 일화가 소개되어 있다.

6. 관련 문서


[1] 33세 혹은 34세손이라는 얘기가 있다. [2] 형 김정일은 '유라'로 불렸다. [3] 현재의 통일부. 1972년 설립된 국토통일원이 전신인 외청 조직으로, 정부조직이 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였다. [4] 위의 글들을 읽어봐도 알겠지만 김만일이 사망한 것에 대한 책임은 결국 둘의 아버지이자 둘이 보호자 없이 분수대에 있도록 내버려둔 김일성에게 있으므로, 전형적인 유체이탈 화법이자 가스라이팅이다. 이는 북한 사회가 자국민들에게 가하는 가스라이팅과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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