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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자동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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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자동차
三星自動車 | Samsung Motors
파일:삼성자동차 로고.svg
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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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1]
기업명 정식: 삼성자동차 주식회사
영어: Samsung Motors Co., Ltd.
한자: 三星自動車 株式會社
국가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설립일 1995년 3월 28일
해산일 2000년 12월 22일
후신 르노삼성자동차
업종명 승용차 및 기타 여객용 자동차 제조업
기업 규모 대기업
상장 유무 비상장기업
주소 부산광역시 강서구 삼성자동차대로 61 ( 신호동)(현 르노코리아 부산공장)

1. 개요2. 역사3. 매각 이후4. 여담5. 역대 임원6. 생산 차량7. 컨셉트 카/베이퍼웨어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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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성이 만들면 다릅니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있었던 삼성 계열 자동차 제조사이다.

2. 역사

SM5의 1차 티저 광고 SM5의 2차 티저 광고
10년 이상을 생각하고 만듭니다. 탈수록 가치를 느끼는 차, SM5
삼성자동차, SM5 광고 중에서
호암 이병철 회장 시절에도 자동차 사업 진출에 대한 고민은 있었지만 이병철 회장은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지 않았다.[2][3] 1987년 11월 삼성그룹을 물려받은 이건희 회장은 자동차 매니아이며 자동차 사업 진출에 착수했다. 1990년대 즈음 현대그룹 현대전자를 세워 전자/반도체 산업에 진출하면서 삼성그룹을 쫓아오고 있었는데, "현대는 삼성이 하는 건 다 하고 있지만 삼성은 현대가 하는 것을 다 하지 못한다"는 인식 때문에 그룹의 브랜드 가치에 잠재적인 위협 요소가 되고 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자동차 산업은 그룹의 미래 먹거리를 분명히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확고했기에 더 늦기 전에라도 뛰어들기 위한 노력을 백방으로 해왔었다.

하지만 자동차 산업의 과잉 투자에 대해 우려하던 당시 노태우 정부의 산업 정책에 가로막혀 실패에 부딪혔다. 이 당시에는 중산층을 중심으로 자동차 보급이 한창 진행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딱히 미래먹거리론이 아니더라도 자동차 산업진출이 구미에 당기는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정부의 판단은 틀리지는 않아서 IMF 시절 삼성자동차,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 쌍용자동차 현대자동차를 제외한 국내 자동차 기업들이 모두 도산하고 말았다.

그러나 14대 총선에서 민자당이 참패하고,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이 유력 대권주자로 부상하자, 민자당과 삼성그룹 모두 다급해졌고, 그리하여 삼성그룹의 자동차 시장 진입이 부분적으로 허가되었다. 1992년 7월 삼성그룹은 정부로부터 자동차(상용차) 제조 사업 인가를 받았고, 상용차(트럭)을 출시했다. 이는 승용차 진출을 허가받지 못한 상황에서 삼성중공업에서 상용차를 출시하여 우회적으로 자동차 산업에 진출하기 위한 시도였고, 결론적으로 이는 성공적인 전략이 되었다.

1993년에는 기아자동차를 인수하기 위해 삼성생명을 통해서 기아의 주식을 매입하기도 했었다. 삼성차 법인 설립 이후에도 기아를 인수하려 지속적으로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 삼성자동차의 현장 영업 사원들에게 배포된 자료에, 당장 부족한 정비망에 대한 질문이 고객으로부터 있을시에 "조만간 기아자동차를 인수하여 전국적인 인프라를 확보 할것" 이라는 응대 매뉴얼이 있을만큼, 기아 자동차의 인수에 진심 이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자동차 공장 부지로 세 곳을 후보지로 고려했는데,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텃밭인 부산의 민심을 노리기 위해 부산 신호공단을 공장 부지로 선택했다. 이후 부산 지역 여론이 앞장서서 삼성자동차를 허가를 촉구하였다.

1994년 4월 닛산과 승용차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김영삼 정부는 1994년 여름까지도 삼성자동차 불허 방침을 거듭 밝혔고, 이에 삼성 관계자들은 크게 낙담했다. 그러나 부산 지역 민심의 목소리, 그리고 삼성중공업에서 이미 상용차를 성공적으로 출시한 경험은 정부가 삼성자동차를 불허 입장을 고수하는 걸 어렵게 만들었다.

1994년 12월 정부로부터 승용차 사업 허가를 받았다.

1995년 3월 삼성자동차가 출범하였다.

1995년 4월 부산광역시 강서구 신호동 녹산국가산업단지에 공장 기공식을 가졌다.

1998년 3월에 첫 양산 모델인 SM5를 출시하였다. 생산 차종은 SM5 단일 모델이었다. 닛산의 경영난을 이용해 닛산 세피로/ 맥시마의 설계와 라이선스를 사들여 전후면부 디자인만 바꾸어 출시한 차였다.

하지만 당시 국내에는 현대, 기아, 대우, 쌍용이라는 경쟁자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기묘하게도 SM5 출시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터진 1997년 외환 위기로 타격을 입어 삼성자동차는 물론 경쟁사들도 역시 현대자동차만 빼고 다 망했다.[4]

뿐만 아니라, 사장 이하 전 직원을 자동차 정비 학원에 보내어 정비 자격증을 따게 한 일화는 유명하다. 자동차를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차를 팔수 있느냐.. 는 이건희 회장의 직접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초기 영업 팀장급 (경쟁사 스카웃 및 계열사 대리급 사원) 들을 6개월 여의 시간을 투자하여, 일본에서 시행 하고있는(지금 현재도 시행중) 중고차 사정 시스템을 도입, 주먹 구구식이고 불투명한 중고차 처리 방식을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하고자 하였으나 아쉽게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결국 무리하게 부산에 입주하느라 초기 비용이 지나치게 많이 소요 됨으로서 1997년 외환 위기 한 방에 조기 자본잠식을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정부의 빅딜 지시로,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의 빅딜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결국 정부, 삼성, 대우 간의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해 빅딜이 깨졌다.[5]

1999년 6월 30일 누적 적자로 법정관리를 신청하였고,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자동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삼성생명 주식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사재를 털어 삼성자동차에 투입하기로 하였다. 다만, 삼성생명의 주식 시장 상장이 늦어지는 바람에[6]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법정 관리 이후 정부는 대우그룹 등에 인수 혹은 자산 매각 및 부채 이전을 추진했으나 무산되었다.

2000년 프랑스 르노가 세운 신설법인 '르노삼성자동차'로 자산이 매각, 승계되면서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편입되었다. 반면 기존 법인은 청산법인으로 전락해서 정리 절차를 밟았다.

3. 매각 이후

삼성자동차의 실패는 삼성그룹 역사상 가장 크고 뼈아픈 실패로 남아있다. 만약 삼성이 자동차 사업을 유지했다면 현재 삼성전자의 기술력과 상당한 시너지를 냈을 수도 있다며 아쉬워 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삼성그룹이 다시 완성차 분야에 진출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삼성은 자동차 관련 전장부품을 판매하여 꾸준히 이익을 거두고 있으며 오히려 삼성그룹이 완성차 분야를 매각하고 전자 분야에 집중했기 때문에 지금의 삼성이 될 수 있었다는 평가도 있다.

만약 삼성이 완성차 업계에 진출하는 순간 현재 삼성으로부터 전장부품을 구매하던 자동차 제조사들이 고객이 아닌 경쟁사가 되어버린다.[7] 굳이 삼성이 이런 손해를 감수해가면서, 그것도 이미 한번 실패한 경험이 있는 완성차 분야를 다시 진출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4. 여담

  • 당시 닛산과 제휴를 했는데 닛산은 대우자동차와도 관계가 긴밀했고 삼성자동차가 대우자동차와 여러 협력을 하거나 실제 빅딜로 통합될 뻔 하는 등 대우자동차와 연관성이 깊으며 현재도 한국GM과 르노코리아가 서로 협력하고 있다.

5. 역대 임원

  • 대표이사 부회장
    • 임경춘 (1995~1997)
    • 이대원 (1997~1999)
  • 대표이사 사장
    • 홍종만[8] (1997~1999)
  • 법정관리인
    • 홍종만 (1999~2000)

6. 생산 차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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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0 -10px -5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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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034ea2,#191919> 차급 단종 차량
중형 세단 SM5
소형 트럭 야무진
대형 트럭 SM트럭
22.5톤 덤프트럭 MAN 22.5t 덤프트럭
}}}}}}}}} ||

7. 컨셉트 카/베이퍼웨어

라인업 구축을 위해 세단, 왜건, 스포츠카, 미니밴 양산을 목표로 개발했지만 1998년 연말에 빅딜 대상 기업으로 지정되면서 이 프로젝트들은 중단되었다.

8. 관련 문서


[1] 일명 삼성 태풍로고. 삼성상용차 시절부터 사용된 로고이며, 삼성상용차 이후 삼성자동차의 후신인 구 르노삼성자동차가 출범한 시점까지 메인 BI로 사용되었으며, 르노코리아자동차 출범 이후에도 한동안 시장 로고나 차량용 엠블럼으로서 혼용했다가 2024년 4월을 기해 르노와 동일한 다이아몬드(로장주) 로고로 통일했다. [2]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과의 사업 이야기에서 전자와 자동차 중에서 이맹희가 자동차 사업을 하자는 의견을 내자 이병철 회장은 "전자제품의 그램 당 부가 가치가 자동차의 10배 가량인데 전자가 낫지 않겠냐?"고 되묻고서는 전자 산업에 진출했다. 이로 인해 초등학교 동창이자 사돈이었던 구인회와의 사이가 소원해졌고, LG그룹과도 경쟁구도가 형성되었다. -출처 : 이건희 스토리 - [3] 또한 1976년 아시아자동차가 매물로 나왔을 시기 강력한 인수후보였으나, 인수를 거절하고, 결국 기아산업이 인수한 예로 볼 때 이병철 회장 시절부터 자동차 사업 진출이 숙원사업이였는지는 의문스럽다(당시에는 대기업이 부도날 무렵에는 정부에서 인수대상 기업을 지정하여 인수요청을 했다. 국제그룹 공중분해되었을 때에도 인수 대상이 정권에 의해 이미 지정된 상태다.). [4] 기아는 국제 입찰을 거쳐서 현대자동차에 인수되었다. 대우는 외국 자본으로 흡수당해 공중 분해 되었고, 쌍용자동차도 법정관리되었다. 사실 현대자동차마저도 상황이 비슷했으나, 현대자동차는 2세 승계 과정에서 그룹이 갈라지면서 현대차가 살아남게 되었다. 그렇게 계열 분리가 되어 프랑스 PSA 그룹( 푸조- 시트로엥, 현재는 스텔란티스로 통합.)과 비스무리한 현대-기아 그룹이 탄생하게 된다. [5] 당시 대우그룹의 부채가 너무나도 심각해서 그랬다는 것이 중론. [6] 삼성생명의 상장은 한참 지난 2010년에야 이루어진다. [7]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가 우위를 점할 수 있었던 이유가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이다. 기술이 유출되거나 잠재적 경쟁자가 될 위험이 없기 때문에 부담없이 일감을 맡길 수 있다.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아무리 좋아도 파운드리 분야에서 TSMC에 비하면 한계는 명확하다. [8] 퇴임 이후 넥센타이어 부회장 및 회장 역임. [9] 삼성중공업에서 진행하던 프로젝트 였으나 이후 르노삼성 자동차로 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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