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1:31

금전교

1. 개요2. 설명3. 매체에서4. 자본주의는 종교인가?5. 관련 문서

1. 개요

현대 대중의 심리에 깊게 자리잡은 황금만능주의 종교에 비유하는 농담.

2. 설명

좁게는 화폐, 넓게 보면 화폐 또는 화폐의 용도와 비슷한 일정한 가치를 갖는 것을 사용하면 모두 금전교 신자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특정 조직이나 단체를 통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보다는 민간 신앙형태에 가깝다.
돈의 모습에 건곤(乾坤)의 형상이 있으니, 형처럼 친애하고 자(字)를 공방(孔方)이라 한다. 덕망이 없어도 존귀하고, 세력이 없어도 유명하여 궐문을 미치고 궁중으로 들어간다. 위태로운 자를 편안히 하고, 죽을 자를 살게 하고, 귀한 자를 천하게 하고, 살 자를 죽게 한다. 이런고로 분쟁은 돈이 아니면 이기지 못하고[1], 관직은 돈이 아니면 트이지 못하고, 원수는 돈이 아니면 풀지 못하고, 명성은 돈이 아니면 떨치지 못한다. 붉은 옷을 입고 요직을 담당한 낙양의 사족들이 나 가형(家兄)을 좋아하는 것이 모두 끝이 없어서, 나의 손을 잡고 시종 나를 안고 있으니, 무릇 지금 사람들은 오직 돈만 알 뿐이다.
노포(魯褒), <전신론(錢神論)>, 통감절요 권26 진기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마태오의 복음서 6장 24절 (공동번역 성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사태 장기화 및 세계적인 확장적 재정 정책에 따라 화폐보다는 금, 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수도권 신축 아파트 같은 자산을 선호하는 쪽으로 숭배의 방향이 바뀌고 있었지만 대상이 달라졌을 뿐, 결국 본질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3. 매체에서

  • 성룡의 영화 용형호제 시리즈 1편에서 "나는 만능이자 만악인 금전교를 믿는다. 우리 교주님의 이름은 '돈'이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gif 짤방으로 나온 적이 있다. 이 장면은 돈과 권력에 미친 사이비 종교 교주인 최종보스에게 비꼬는 말로 던진 농담 같은 대사이지만, 실제로 실용성과 부를 중시하는 중국인에게 가장 어울리는 영화 대사라는 의견도 있다.[2]
  • 던전 크롤 스톤 수프의 고자그는 바로 돈과 탐욕의 신이다. 돈이 곧 신앙도이며, 돈을 바칠 때마다 신에게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돈으로 적들을 매수할 수가 있다(...).
  • 샤먼킹에서는 아사쿠라 하오 이전 샤먼킹이었던 인물인 후라 야비스가 돈으로 상대를 매수하거나 수많은 부하들을 모아 상대의 약점을 찌르면서 기권시키는 방식으로 샤먼킹이 된 다음 자본주의 세계를 만들었다. 자신이 만든 자본주의 세계를 완벽하다고 여기고 다음 왕이 된 하오가 세상을 바꾸는 걸 막으려 한다.

4. 자본주의는 종교인가?

한편, 자본주의를 종교로 여기는 사람도 있다.
  • 그렇다: 반자본주의자, 철학자 강신주 자본주의는 종교나 다름없다고 했다. 돈을 받고 또 그 돈을 써야만 하는 구조이므로 벗어날 수 없으며, 돈에 소비재 이상의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강의 중간에 돈을 태우고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을 보이자 종이에 종이 이상의 것을 보았기에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 아니다: '근거 없는 믿음'이어야 종교에 비유할 수 있다. 부적과 지폐는 다르다. 부적에 종이 이상의 것을 본다거든 '근거 없는 믿음'일 수 있으나 지폐는 실제로 일반 종이보다 큰 가치가 들어 있으므로 종이 이상의 것을 보는 것이 사실이다. 이 가치는 사회, 특히 국가와 은행에서 보장해준다. 일반 지폐를 불태우는 것은 부루마불 지폐를 불태우는 것과는 달리 이밥에 고깃국을 얻을 권리가 증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식당에 들어가서 만 원짜리 백반정식을 시킨 후 밥이 나올 때 바로 밥상을 뒤엎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사람들이 이걸 보고 놀란다고 해서 사람들이 백반정식을 종교로 여기는 것인가? 당연히 아님을 알 수 있다. 백반정식에 그것을 먹을 때 누릴 수 있는 배부름과 거기서 오는 즐거움을 알고 있기 때문에 놀랄 뿐이다. 그렇다면 그 백반정식과 교환할 수 있는 표식인 지폐는 백반정식 하나와 거의 동일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셈이고, 그걸 태우는 건 밥상을 뒤엎는 것과 거의 같은 셈이다. 즉, 사람들이 돈에 소비재 이상의 가치를 부여했기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라, 강신주가 오히려 소비재를 단순한 종이 하나로 가치를 폄하한 것이다.

    어느 체제든 '먹고사는 문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돈을 쓸 줄 모르는 염전노예들도 먹고 살기 위해 일한다. 공산주의에서도 공짜로 밥 안 주며, 일 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란 말도 있다. 그 일이 농사가 아닐 수 있을 뿐. 아예 무정부 상태에 가까운 아포칼립스 작품에서는 '식량' 때문에 죽고 죽이며, 효녀 심청이도 공양미 삼백석에 인신매매당했다. 무서운 이야기 2에서는 절벽에 조난당한 두 친구가 '초코바' 하나로 다투다 살인한다. 그래서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도 있는 것인데, 체제와 상관없이 곳간이 비면 코로나 초기 마스크 쟁탈전처럼 누구든 탐욕스럽게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다들 배불러서 다이어트가 사회문제가 된 자본주의 한국사회니까 이밥에 고깃국을 버려도 '아깝네' 수준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지, 먹을 게 없어 흙이나마 파먹다가 병에 걸린 아프리카 기아 어린이들 앞에서 그러면 안 될 것이다. 과소비도 물론 좋은 게 아니지만 과 저축 시장경제를 해칠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해지지 않는 선에서 적절히 쓸 필요도 있다. ( 결합 오류 관련 글 1, 2)

    역설적으로도 공산주의자들이 상상하는 지상락원이야말로 종교의 사후세계와 유사한 면이 있으며, 그 하나인 '이밥에 고깃국'은 자본주의에서 성취됐다. 대중과학자 칼 세이건은 과학과 종교의 중요한 차이점으로 '자기 비판'을 들었는데, 저서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사후세계가 존재할 확률은 0에 가깝지만, 대중들이 그것을 믿고 싶어 하기에 팔아먹는다고 비판했다.[4] 사후세계와 지상락원의 문제점은 그것이 존재한다는 근거가 없으며 그저 '언젠가' 현실의 모든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리라는 '메시아적 믿음'에 가깝단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통계'를 통해 입증해보였으니 사회과학이며, 노숙자들이 무료급식소에서 반찬 많이 남기는 모습도 이론에만 존재하는 '종교적 환상'이 아니고 현실이다. 체제는 종교가 아니기에 당면한 현실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는 체제가 좋은 것이며, 100년이고 200년이고 기약없이 기다려야만 하는 체제에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아무리 이론으로 멋져보여도 정작 현실에서 쓸 수가 없으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일 뿐인 것이다.

    니키 헤일리 유엔 미국대사는 자본주의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사회주의는 정부가 개인의 생명까지도 통제하는, 대안이 될 수 없는 체제라고 했고, 전 세계 극빈 인구가 200년 전에 94%였다가 2020년에 10%로 준 것이 지난 40년 동안에 이뤄진 일이며 소련과 동유럽 국가, 즉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중국이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가능했다고 말했다. # 특히 사회주의의 문제점으로 국가에 너무 거대한 권력을 주는 점을 지적했고, 이같은 사회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자본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기본적인 권리를 말한다고 강조했다. 사회주의가 되면 국가가 '신'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5]

    정상적인 자본주의 국가에선 '사유재산 인정'이라는 뿌리로부터 국가의 권력이 축소되고 개개인의 권리가 늘어나기 때문에 대개 민주주의도 겸하고 있으며, 자본주의를 까는 걸로 돈을 버는 것조차 용인되는 체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자유'로 귀결되기 마련이다. 이슬람 국가에서 이슬람을 까는 걸로 먹고 살거나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회주의를 까며 먹고 사는 사람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자본주의에선 그게 가능하다. 자살자가 증가하면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고 자본주의도 까듯이 국가의 책임도 묻고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추모도 하는 것이 한 예이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주의 비판했다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지는 않으며, 오히려 자본주의 까는 걸로 자본을 축적하여 먹고사는 사람들도 많고, 까인 자본주의의 문제점이 보완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 생존자 편향'으로서 자본주의만 마치 악의 근원처럼 착각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종교나 미신이 지배하는 체제에서 개인의 목숨은 허망하기 그지 없는데, 반자본주의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체제를 신격화하고 성서무오설 수준으로 '완벽하다고' 간주하면서 인민이 사회주의를 비난하며 국가에 책임을 묻는 것을 불경한 신성모독 행위로 여기기에 고인 물이 썩는 모습을 많이 보인다. 중국인들은 탄압을 피해 해외로 탈출해도 자유롭지 못하고 중국 비밀 경찰서에 감시된다. # '매의 눈' 수준의 감시망을 벗어날 수 없는 중국인들이 해외라고 함부로 '사회주의'에 대해 입을 놀렸다간 실종될 수도 있다. 고작 히잡을 안 쓴 여성이 무참히 살해되거나 인신공양 제물로 전락하기도 하고, 프랑스에서조차 이슬람 풍자만평 올린 언론사가 테러를 당하고 죽었다. ' 지상락원' 북한도 비판점을 개선하여 지상락원이 된 것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김일성의 습성대로) 원천봉쇄의 오류처럼 아예 비판하는 자들을 전부 죽이고 찬양하는 자들만 남겨 지상락원이 됐을 뿐이다. 그래서 절대권력은 절대부패한다는 말이 있는 것이다.

    2023년에 북한에서 식량난 심화로 자살자가 증가하자 김정은은 자살을 사회주의에 반역을 저지르는 행위로 규정하고 방지대책 강구를 긴급히 지시했다고 했다. 개인의 목숨조차 맘대로 할 자유가 없고 통제당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종교에서는 전태일 자살 때처럼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추모도 하지만 북한에선 그저 반역자인 것이다. 일부 사이비 종교에서는 자살자에게 오죽했으면 죽었겠냐는 동정의 시선 말고 신에게 죄를 지었다고 죄악시하며 지옥에 있을 거라는 등으로 자본주의에서보다 더욱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종교 관계자 입장에서는 자살하면 헌금이 줄어드니까 싫어할 수 있으며, 김정은 입장에서도 자살하면 노예가 줄어드니까 싫어할 수 있다. 물론 자본주의에서도 자살은 손해니까 결코 권장하지는 않지만, 굳이 자살한 사람에게 '자본주의에 대한 반역'이라거나 '자살했으니 지옥에 갔을 것'이라는 고인드립을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사람을 죽였다며 책임을 묻기도 하고 일정 부분 책임을 통감하며 제도를 개선하려는 노력을 보이는 모습이 차이점이다. 또한, 이처럼 헌금을 밝히는 사이비 종교야말로 상술된 금전교에 비유할 수 있는 셈이다.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1341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단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1341 ( 이전 역사)
문서의 r157 ( 이전 역사)

5. 관련 문서


[1] 17개국 중 유일하게 한국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물질적 풍요(돈)를 꼽았단 2021년 조사도 있다. 돈이 있어야 가정폭력이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셈. [2] 정확히는 상하이 계파. 중국은 넓고 중국인은 많기 때문에 각각 지역따라 중국인들 특성도 다 다르다. 예를 들어 베이징 계파의 경우에는 실용성보다는 화려함, 부유함보다는 명예를 중시한다. 상하이 계파와는 극상성(...). [3] 금전교 관련은 아니지만 대체로 내면의 힘이나 신념인 성스러운 빛을 끌어내는 부류와 신성 마법의 클리셰대로 초월자를 섬겨서 힘을 하사받는 부류로 나뉜다. [4] 다만, 과학만능주의에 빠지면 이곳에 서술된 종교처럼 될 수 있다. [5] 국가 자체에는 아무런 능력이 없고 국가를 운영하는 것 또한 사람이니 정확히는 국가 운영자가 신처럼 될 수 있는 것이다. 국가는 화폐로, 국가 운영자는 으로 비유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