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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E3DD><colcolor=#000000> 호엔로에랑엔부르크 공비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르가리타 공주 Πριγκίπισσα Μαργαρίτα της Ελλάδας και της Δανία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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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르가리타 (Μαργαρίτα της Ελλάδας και της Δανίας) |
출생 | 1905년 4월 18일 |
그리스 왕국 아테네 구왕궁 | |
사망 | 1981년 4월 24일 (향년 76세) |
서독 바이에른 바트 비제 | |
배우자 |
호엔로에랑엔부르크 공 고트프리트 (1931년 결혼 / 1960년 사망) |
자녀 | 크라프트, 베아트리체, 게오르크 안드레아스, 루프레히트, 알브레히트 |
아버지 |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
어머니 |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 |
형제 | 테오도라, 케킬리아, 소피아, 필립 |
종교 | 그리스 정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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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스와 덴마크의 공주. 필립 마운트배튼의 첫째 누나[1]로, 엘리자베스 2세의 시누이이자 찰스 3세의 맏고모다.2. 작위
-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르가리타 공주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Margarita of Greece and Denmark (1905년 4월 18일 ~ 1931년 8월 17일)
- 호엔로에랑엔부르크 공세자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The Hereditary Princess of Hohenlohe-Langenburg (1931년 4월 20일 ~ 1950년 12월 11일)
- 호엔로에랑엔부르크 공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Princess of Hohenlohe-Langenburg (1950년 12월 11일 ~ 1960년 5월 11일)
- 호엔로에랑엔부르크 선공비 전하 Her Royal Highness Dowager Princess of Hohenlohe-Langenburg (1960년 5월 11일 ~ 1981년 4월 24일)
3. 생애
1905년 구궁전에서 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와 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의 장녀로 태어났다. 어머니를 통해 빅토리아 여왕의 첫 현손으로 태어났다. 당시의 관습과는 달리 아버지 안드레아스 왕자는 할머니 올가 왕비의 조언에 따라 앨리스 왕자비가 마르가리타를 낳을 때 옆에 있어줬다. 마르가리타는 연년생인 동생 테오도라와 가장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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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도라(좌)와 어머니 앨리스 왕자비와 마르가리타(우) |
마르가리타와 동생 테오도라는 동생들에 비해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났기 때문에 어린 시절 유럽 각국의 친척들과 교류했다. 특히 어머니의 외가인 헤센에서 오촌인 헤센의 에른스트 루트비히 대공의 아들들과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의 자녀들과 자주 교류했다.
1912년 발칸 전쟁을 시작으로 마르가리타의 남은 유년시절은 혼란스러웠다. 두번의 망명을 떠났으며 성인이 될 때까지도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결혼할 나이가 된 마르가리타와 동생 테오도라는 자주 영국으로 가 외할머니인 헤센의 빅토리아 공녀와 함께 살았다. 두 조카들의 샤프롱 역할을 해내던 이모 루이즈와 함께 버킹엄 궁전에서의 무도회와 춤, 생일, 정원 파티, 경마 등을 포함하여 1920년대에 영국 귀족의 대부분의 행사에 참석했다. 영국에서는 샌드링엄 궁에서 알렉산드라 왕비의 단골 손님이었던 친할머니 올가 왕비와 같이 많은 친척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망명생활로 돈이 부족했던 마르가리타는 구혼자가 거의 없었다. 대신 아직 미혼이었던 마르가리타의 샤프롱이자 이모 루이즈가 스웨덴의 구스타프 아돌프 왕세자와 결혼했다.
1926년 여름 마르가리타는 헤센 대공 에른스트 루트비히와 함께 타라스프에 머무는 동안 프랑수아-조셉 디장부르-비르슈타인 왕자의 장남인 프랑수아-페르디난드 디장부르-비르슈타인을 만났다. 두 사람은 서로 좋아했으며 그들의 가족은 이듬해 초에 만나기 까지 했다. 마르가리타는 그녀의 구혼자와 그가 살았던 지역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프랑수아-페르디난드는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르가리타는 정교회 신앙을 포기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결혼은 없던 일이 되었다.
1930년 25살 때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자인 호엔로에-랑엔부르크의 고트프리트를 만나 결혼했다. 고트프리트의 어머니는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알렉산드라로 빅토리아 여왕의 차남 알프레드의 셋째 딸이었다. 또한 빅토리아 여왕의 이부언니인 페오도라의 증손자이기도 했다.
마르가리타는 수많은 자선 사업에 참여해 전 호엔로에-랑엔부르크 공국의 주민들의 존경을 받았다. 마르가리타는 주변 친척들처럼 1937년 5월 1일 남편과 동시에 나치당에 가입했다. 그 후 부부는 영국과 나치 정권의 화해를 촉진하기 위해 가족 관계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정찰 부대를 지휘했던 동부 전선에서 중상을 입은 고트프리트는 왕실 혈통의 사람들이 군대에서 복무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으로 군대에서 해임되었다. 이후 랑엔부르크로 돌아가 그곳에서 가족의 성을 병원으로 바꾸어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1963년 마르가리타의 거주지인 랑엔부르크 성이 불에 타 부상자는 없었지만 마르가리타의 귀중한 물품들이 많이 훼손되었다.
마르가리타는 76번째 생일 6일 후인 1981년 4월 24일 바이에른 주 바트 비제에 있는 클리닉에서 사망했다. 남동생 필립공이 참석한 장례식은 랑엔부르크에서 열렸고 마르가리타는 남편과 함께 묻혔다.
4.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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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고트프리트와 마르가리타 |
4.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그리스와
덴마크의 마르가리타 공주 (Princess Margarita of Greece and Denm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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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와 덴마크의 안드레아스 왕자 (Prince Andrew of Greece and Denm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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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요스 1세 (George 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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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9세 (Christian IX)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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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센카셀의 루이제 공녀 (Princess Louise of Hesse-Kasse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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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올가 콘스탄티노브나 여대공 (Grand Duchess Olga Constantinova of Russ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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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제국의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 (Grand Duke Konstantin Nikolayevich of Russia)[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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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알텐부르크의 알렉산드라 공녀 (Princess Alexandra of Saxe-Altenbu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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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베르크의 앨리스 공녀 (Princess Alice of Battenbe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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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텐베르크의 루트비히 공자 (Prince Louis of Battenbe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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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센의 알렉산더 공자 (Prince Alexander of Hesse and by Rh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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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리아 하우케 여백작 (Countess Julia von Hau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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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센의 빅토리아 공녀 (Princess Victoria of Hesse and by Rh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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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센 대공국 대공 루트비히 4세 (Louis IV, Grand Duke of Hesse and by Rhi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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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앨리스 공주 (Princess Alice of the United Kingdom)[3] |
4.2. 자녀
1931년 7촌인 슈탄데스헤어 가문인 8대 호엔로에랑엔부르크 공 고트프리트(1897~1960)와 결혼해서 4남 1녀를 두었다. 원래는 딸 하나가 더 있었지만 사산되었다. 손자녀는 6명이다.- 딸(사산됨)
- 장남 크라프트 폰 호엔로에랑엔부르크 - 슬하 1남 2녀
- 장녀 베아트리체 - 자녀 없음[4]
- 차남 게오르크 안드레아스 - 슬하 2녀
- 삼남 루프레히트 - 자녀 없음
- 사남 알브레히트 - 슬하 1남
장남 크라프트(1935~2004)는 슬하 1남 2녀를 두었고 현재 장손이자 당주인 필리프(1970~)는 2남 1녀를 두었다.
5. 여담
- 안드레아스 왕자와 앨리스 공녀의 5남매 중에서 유일하게 슈탄데스헤어 가문[5] 출신의 귀족이랑 결혼했다. 첫째 여동생 테오도라는 바덴 대공국의 후손인 바덴 변경백 베르톨트[6]와, 둘째 여동생 케킬리아는 헤센 대공국의 대공세자인 게오르크 도나투스와, 막내여동생 소피아는 첫번째로 헤센-카셀의 크리스토프 공자[7], 두번째로 하노버의 게오르크 빌헬름 왕자[8]와 결혼하면서 모두 독일의 왕공족과 결혼했다. 물론 독일 자체가 마르가리타와 그녀의 자매들이 결혼하기도 전인 1918년 독일 11월 혁명으로 모든 군주제가 폐지되고, 공화국으로 전환되었으니 현존하는 왕실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와 결혼한 남동생 필리포스를 빼면 나머지 동생들도 비슷하긴 하다.
- 조카딸 앤 공주의 대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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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공주의 세례식. 마르가리타는 중앙에 서 있다. |
5.1. 글로리아 벤더빌트 사건
1934년 10월 글로리아 모건 밴더빌트가 자신의 딸 글로리아 밴더빌트[9]의 양육권 문제로, 시댁과 소송전을 벌이면서 고트프리드와 마르가리타는 글로리아 모건 밴더빌트를 위해 증언하기 위해 뉴욕을 방문했다. 남편 고트프리트는 마르가리타 이전에 글로리아와 약혼했던 사이었고, 마르가리타는 외숙모 나데이아 마운트배튼을 통해 글로리아와 아는 사이였다. 재판 중 글로리아 모건 밴더빌트의 시댁은 그녀가 유럽에서 고트프리드와 함께 방탕한 삶을 살면서 딸을 버렸다고 주장하며 비난했다. 심지어 재판 중 한 고용인이 글로리아와 마르가리타의 외숙모 나데이아가 연인관계라고 주장했다. 덕분에 타블로이드는 이 사건에 열광했다. 따라서 마르가리타는 남편과 함께 재판에 참여함으로써 가족의 명예를 회복하는 데 힘썼다.
[1]
필립 공과는 무려 16살 차이가 난다.
[2]
니콜라이 1세의 차남이다.
[3]
빅토리아 여왕의 차녀이다.
[4]
한때 이종 사촌이자 바덴 대공가 당주 막시밀리안과 잠시 약혼하기도 했다.
[5]
1815년
빈 회의 때 성립.
[6]
막시밀리안 폰 바덴의 아들이다.
[7]
헤센카셀 방백 프리드리히 카를과
프로이센의 마르가레테 공주의 5남이다.
[8]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와
프로이센의 빅토리아 루이제 공주의 차남이다.
[9]
앤더슨 쿠퍼의 어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