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22 21:35:34

광복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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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독립운동 단체에 대한 내용은 대한광복회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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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光復會
Heritage of Korean Independence
파일:광복회 로고 가로형.jpg
<colbgcolor=#0047a0><colcolor=#fff> 설립 1965년 2월 27일 ([age(1965-02-27)]주년)
전신 광복구락부[1]
회장 이종찬 (23대)
사업비 정부지원금 및 민간기부금 등
위치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62길 15,
광복회관 4층 ( 여의도동)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와 유래3. 역대 광복회장4. 논란 및 사건 사고
4.1. 만화가 윤서인 독립운동가 비하 사건 발언 고소 사건4.2. 김원웅 회장 시기
4.2.1. 김원웅 회장의 정치 중립 위반 관련 논란4.2.2. 김원웅 회장의 광복회 적격성 논란4.2.3. 추미애 당시 법무부장관에게 수상 논란4.2.4. 고문변호사의 독립운동가 후손 비하 논란4.2.5. 광복회장실 오물 투척 사건4.2.6. 김원웅 맥아더 장군 관련 역사왜곡 두둔4.2.7. 김원웅의 광복회 사유화 및 비리행위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후손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현직 회장은 이종찬이다.

대규모 국가보조금, 민간 기부금 등의 사업비(각종사업에서 수억~수십억 사업비투입)가 운영되는 보훈단체이다.

2. 역사와 유래

대한민국은 정부수립 직후에는 국가유공자를 위한 보훈(원호) 제도를 마련할 형편이나 여유가 되지 않았고, 6.25 전쟁을 거치며 '군사원호'라는 명칭하에 전몰군경의 유족 및 상이군경에 대한 원호 제도를 간신히 마련함에 그쳤다. 그러다 1962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독립유공자에 대한 훈·포장이 수여되고 독립유공자와 그 유족·후손에 대한 원호제도가 구상되기 시작하였다. 이에 생존한 독립유공자나 독립유공자의 유족·후손이 모여 1965년에 처음으로 광복회를 결성하였는데, 이 당시의 광복회는 단순한 민법상의 사단법인에 불과하였고,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원호도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제1조(목적) 이 법은 대한민국상이군경회,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대한민국전몰군경미망인회, 광복회, 4ㆍ19민주혁명회, 4ㆍ19혁명희생자유족회, 4ㆍ19혁명공로자회, 재일학도의용군동지회 및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를 설립함으로써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이 상부상조(相扶相助)하여 자활(自活) 능력을 기르고 순국선열과 호국전몰장병의 유지(遺志)를 이어 민족정기를 선양(宣揚)하고 국민의 애국정신을 함양하며 자유민주주의의 수호 및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제평화의 유지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던 중 1973년이 되어서야 종전의 「군사원호대상자단체설립에관한법률」이 개정되어 「원호대상자단체설립에관한법률」이 되면서 기존의 사단법인 광복회가 위 법률상의 법인으로 간주되었고, 광복회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이루어지게 되었다. 현재는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이 광복회의 설립 근거 법률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주관하는 3·1절 기념식에서 기미독립선언서의 낭독은 생존한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분이 하는 관례가 이어졌는데, 마지막 생존자인 이갑성 애국지사가 1981년 타계하자 그 이후부터는 광복회장이 낭독하는 것이 새로운 관례로 자리잡게 되었다.

1965년 설립 당시의 초대 광복회장은 이갑성 애국지사였으며, 회장은 총회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다. 이전에는 생존 독립운동가들이 회장을 맡다가 이들이 고령으로 대부분 사망한 이후로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회장을 맡고 있다.

김원웅 회장 취임 이후에는 적극적인 反보수야당( 자유한국당 - 미래통합당 - 국민의힘) 활동을 벌였다. 이에 아래 문단에서와 같은 다양한 논란 및 사건사고가 발생했고, 보수야당은 '광복회 사유화'라며 반발했다. #

김원웅 전 회장의 횡령 의혹과 사퇴로 내홍을 겪은 광복회가 2022년 3월 1일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분골쇄신'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

2022년 5월 31일 장호권 회장이 선출되었으나 선출 과정에서 담합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이와 관련된 설전을 하는 과정에서 권총으로 보이는 물건을 보이며 협박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후 장호권 회장의 직무가 정지되고 김진 전 대한주택공사 사장이 직무대리를 맡기로 했으나 일부 회원들 임시총회 소집 무효 가처분 신청을 하였고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자 2023년 1월 13일 국가보훈처에서 최광휴 변호사를 직무대리로 지정하였다.

이후 2023년 5월 25일 제23대 광복회장으로 우당 이회영의 손자인 이종찬 전 국정원장이 선출되었다. #

3. 역대 광복회장

4. 논란 및 사건 사고

이전에는 정치적 중립 스탠스 전통을 지켜나가며 정치에 개입하지 않았기에[3] 이미지가 비교적 좋은 편이었고 비판항목이 전무했으나 2019년에 당선되어 부임한 김원웅 회장이 좌편향 발언과 비리도 저지르면서 온갖 논란이 형성되었다. 하술된 비판 중 윤서인 관련만 빼고 다 김원웅 회장 재임시기에 등재된 사건사고이다.

4.1. 만화가 윤서인 독립운동가 비하 사건 발언 고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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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월 12일, 윤서인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조롱하고 친일파에 대한 두둔 발언을 하여[4] 김원웅 광복회장과 광복회의 자문변호사인 정철승 변호사가 그를 고소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4.2. 김원웅 회장 시기

4.2.1. 김원웅 회장의 정치 중립 위반 관련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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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취임한 김원웅 전 회장은 전두환 정부 당시의 민주정의당에서 정치를 시작해 이후 민주당계 정당과 보수정당을 옮겨 다니며 국회의원 생활을 해 왔다. 김원웅 회장은 취임 이후 광복회장으로서 정치 중립 위반으로 언론으로부터 비판 받고 있다. 또 김원웅 회장이 광복회의 이름으로 친북· 반미 성향 노선을 따르는 것에 대하여 회원들 사이에서 반발이 발생하고 있다. 김원웅 회장이 정당 성향이 다른 지회장을 커트하겠다고 하고 이석기를 칭송하는 등 광복회의 정치적 중립을 명시한 정관을 위반한 이유로 내부 상벌위원회에 제소되는 등 내분이 끊이지 않고 있다.
2020년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 논란
김 회장은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에서 “이승만은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를 폭력적으로 해체하고 친일파와 결탁했다”며 이로 인해 친일 청산을 완수하지 못한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친일 행적이 드러난 안익태가 작곡한 노래가 애국가로 쓰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국립현충원에 묻힌 친일파의 무덤을 파헤쳐 묘를 이장하는 국립묘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일민족반역자 비호하는 미래통합당은 해체하라]
한국 사회의 모순은 친일 미 청산에 기인한다.
친일 청산은 적폐 청산의 핵심이다.
한국 사회의 분열도 청산되지 않은 친일 세력이 조장하고 있다.
해방 후, 집권한 이승만은 친일파와 결탁하여 반민특위를 폭력으로 해체시켰고, '독립운동이 죄가 되는 나라'에서 우리 후손들은 눈물과 한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광복회 김원웅 회장의 광복절 75주년 기념사는 광복회원들의 가슴에 맺힌 한과 후손들의 애국 열정을 담고 있다.
미래통합당이 김원웅 회장의 친일 청산 요구를 비난하는 것은 스스로 민족 반역세력임을 고백하는 행위이다.
이에 광복회 전국 지부장들은 이러한 친일 반민족 사고에 뿌리를 둔 미래통합당의 해체를 강력히 요구한다.
2020년 8월 19일
서울특별시지부장 장호권, 부산광역시지부장 권병관, 인천광역시지부장 김우영, 광주광역시지부장(代) 문대식, 전라남도지부장 송인정, 대구광역시지부장 노수문, 울산광역시지부장 이경림, 경기도지부장 황의형, 강원도지부장 이종호, 충청북도지부장 장기영, 충청남도지부장 안상우, 전라북도지부장 이강안, 경상북도지부장 이동일, 경상남도지부장 장상진, 제주특별자치도지부장 김률근, 세종특별자치시추진위원장 이공호.
광복회는 정부의 막대한 예산을 지원받는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과거 종북단체인 '위인맞이 환영단'의 (김정은이) '‘왜 위인인가'를 주제로 공개세미나에 참석해서 "한미동맹은 거짓말이다. 미일동맹에 남한을 종속시킨 것이 한미동맹의 핵심"이라며 "친일의, 친일에 의한, 친일을 위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게 나라냐. 이런 나라를 지킨다고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느냐", "'김정은 찬양'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해선 안 된다"는 반미종북성향의 축사를 한 전력이 있는 김원웅을 선거를 통해 회장으로 당선시켰었기에 광복회 회장 자격으로 행한 이번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와 맞물려 광복회라는 단체의 성격에 대한 세간의 의혹과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

2021년 4월엔 아예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의 손자마저도 토착왜구같이 행동한다(...)며 비난받는 일까지 터졌다. 정치 중립을 건의했다는 이유로 독립지사 후손인 광복회원들을 교묘히 친일파로 몰아세웠다고 한다. 인터뷰

4.2.2. 김원웅 회장의 광복회 적격성 논란

광복회는 대한민국 독립유공자 및 그 유족·후손들이 결성한 단체이다.

하지만 인우보증을 통해 독립운동자로 등재된 전월순의 독립운동에 대한 기록은 조선의용대와 광복군 사료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으며, 개혁모임에서 (김 회장의 부친) 김씨가 자신의 공적서에서 '1931년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무국 비서관 직책을 거쳐 1935년 5월 난징에서 조선의열단에 입단했다'고 했지만 당시 임정에는 경무국도 없었고 경무국 비서관이라는 직책도 아예 없었다.

이에 '김원웅 광복회장 부(김근수), 모(전월선) 가짜독립가 의혹 진상조사 청원' 에 만명에 가까운 청원인이 몰리기도 하였다.

4.2.3. 추미애 당시 법무부장관에게 수상 논란

2021년 1월 22일, 친일재산 국가환수 노력을 했다는 명목으로 당시 법무부 장관이었던 추미애에게 '독립운동가 최재형상'을 수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최재형기념사업회 측에서는 특정 정치인 수여는 정치활동에 속한다고 반발하였다. #

4.2.4. 고문변호사의 독립운동가 후손 비하 논란

2021년 4월 12일, 광복회 고문변호사인 정철승 변호사가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독립운동가 후손을 비하하는 듯한 글을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정 변호사는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대개가 가난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고 온전한 직업도 갖기 어려웠다”며 “그러다 보니 더러는 태극기 집회에 나가서 ‘박근혜 탄핵 무효’를 외치기도 하고, 더러는 광복회관 앞에서 ‘김원웅 빨갱이’라고 시위하기도 한다”고 주장했다. #

더더욱 어이가 없는 것은 바로 그 윗윗 문단의 광복회 고문변호사와 동일 인물이라는 점. 독립 운동가들의 후손을 비하하던 윤서인을 비판하면서, 정작 자신도 똑같은 논리를 사용했다.자기 자신과의 싸움

지난 11일 광복회 행사에서 김원웅 회장의 정치적 행보에 항의하며 멱살을 잡은 광복회원에 대해서는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자부심 외에 자신을 드러낼 성취가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고도 하였다. # 심지어 항의하는 독립운동가 후손 분들에게 이 하룻강아지 같은 작자야 와라, 전부 유치장에 처넣어줄 테니라는 문자메세지를 보내서 더욱 사람들에게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어떻게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국민의힘 민주당 사이에 정치적 중립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발언에서 알 수 있듯 정철승 변호사는 '보수정당=친일'이라는 전제를 깔고 편향된 당파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가 언급한 광복회원 김임용씨는 독립운동가 김붕준 선생의 후손으로 김붕준 선생은 6.25 전쟁 때 북한군에 강제 연행되어 비참하게 사망했다. 따라서 그 후손으로서는 북한에 적개심을 갖거나 친북 성향의 인사나 정당, 정권에 반감을 갖는 것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정철승 변호사의 외조부인 윤기섭 선생도 광복 후 국학대학 학장을 지내고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등 정치권에서 주류적 인물로 활동하던 중 6.25가 터지면서 납북되었다. 윤기섭 선생이 납북된 후 장녀(정철승 변호사의 모친)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전화교환원으로 집안 생계를 꾸려야 하는 고생을 했다. 이 외에도 많은 독립운동가가 전쟁 중에 납북되었으며, 또 납북 피해를 받지 않았더라도 피흘려 쟁취한 독립국가가 분단되고 전쟁을 피해를 입은 것에 대해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은 반공 성향을 갖거나 친북에 반대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구나 홍영표 전 원내대표를 비롯해 신기남, 김희선 등 민주당 내에 친일파 후손들이 있으며 김원웅 광복회장도 "민주당 내에 친일을 비호하는 정치인이 있다"고 했고[5] 또 소속 윤미향 의원이 위안부 할머니 이용·학대 의혹과 논란을 일으키는 등 독립운동가 후손이면 민주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전제 자체가 왜곡돼 있음을 보여준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 보수 정당에 들어가 당선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4.2.5. 광복회장실 오물 투척 사건

2021년 6월 28일에 광복회 개혁모임에서 김원웅 광복회장의 부모가 허위유공자라고 분개하여 광복회 회장실에 처들어갔다. 그러나 거기에는 김원웅이 없어서 광복회장실에 오물 두 병을 투척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 일을 벌인 광복회 개혁모임 대표 이문형은 감옥에 가는 한이 있어도 독립운동가들을 모욕한 김원웅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

4.2.6. 김원웅 맥아더 장군 관련 역사왜곡 두둔

김원웅 광복회장이 "미군은 해방군이 아니라 점령군"이라고 발언했다가 비판이 쏟아지자, 광복회가 2021년 7월 1일 공식 보도자료로 김 회장을 두둔했다. 그 공식자료엔 맥아더가 한국인을 '개무시'했다는 표현이 담겼다. 또한 "해방 후 한반도에 진입한 미군과 소련군은 각각 포고령을 발표했다. 소련군 치스차코프는 스스로 '해방군'임을 표방했지만, 미군 맥아더는 스스로 '점령군'임을 밝히고, 포고령 내용도 굉장히 고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차이가 크다. 국사편찬위원회가 공개한 당시 맥아더 사령부 포고문을 보면, '조선 영토를 점령한다'는 표현이 들어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 뒤에 곧바로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라는 연합국의 결심을 (맥아더군이) 명심하고" "(조선) 점령의 목적이 항복문서를 이행하고 그 인간적 종교적 권리를 확보함에 있다"고 적시했는데도 이 내용은 쏙빼고 마치 맥아더 장군이 조선의 식민지화를 위해 점령한 것처럼 왜곡했다. #

4.2.7. 김원웅의 광복회 사유화 및 비리행위

2022년 1월 26일, 조선일보에서 전 광복회 간부를 인터뷰를 통해 김원웅이 광복회가 운영하는 국회의사당 지점 카페의 수익금(독립유공자 후손에게 지원예정인 금액)을 개인용도로 4천5백만원 가량 착복하였다며 보도하였고 그 다음날 광복회 건물 4층에 가족들이 운영하는 회사의 자리까지 제공해주고 공공기관과의 거래 및 골재사업을 주도했다는 추가비리까지 폭로하였다. #

당연히 김원웅은 "난 모르는 사안이고 맡겼던 부하의 일탈"이라며 꼬리자르기성 발언을 하며 부정, 조선일보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며 겁박하는 와중 사안이 심각하다고 판단한 국가보훈처에서 감찰을 진행하기로 한다.

1달간의 감찰결과 조선일보가 보도한 비리내용이 전부 사실로 밝혀졌는데 광복회서 운영하는 카페에서 허위발주와 원두원가 조작을 통해 6100만원을 비자금 착복을 가족회사건도 김원웅이 관여됐고 광복회 건물에 사무실 부지 제공이 사실로 밝혀지며 서류도 등재되지 않은 문서가 발견됨에 따라 수사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도 김원웅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결국 광복회장 해임안을 표결하는 총회까지 잡히는 등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다 2월 16일, 김원웅이 사퇴 의사를 표명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1] 1964년 4월 설립 [2] 전임회장 김원웅의 사퇴로 치러진 보궐선거 [3] 다만 친일 관련 논란이 있었던 교학사 교과서 사태나 국정교과서 사태 등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한 적이 있다. [4] "친일파 후손들이 저렇게 열심히 살 동안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도대체 뭘 한걸까? 100년 전에도 친일파들은 열심히 살았던 사람들이고 독립운동가들은 대충 살았던 사람들 아니었을까?" [5] 물론 이 발언 역시 많은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