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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게리 뉴먼 Gary Nu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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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게리 앤서니 제임스 웹 Gary Anthony James Webb |
출생 | 1958년 3월 8일 ([age(1958-03-08)]세) |
영국 런던 해머스미스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73cm |
배우자 | 젬마 오닐 (1997-) |
학력 | 버크셔 공업학교 학사 |
소속 |
튜브웨이 아미 (1977-1979) 민 스트리트 (1977-1980) 샤프 & 뉴먼 (1985-1989) |
장르 | 신스팝, 뉴 웨이브, 인더스트리얼 록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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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81년.
2014년.
글램의 요소가 풍부한 영국의 뮤지션 게리 뉴먼(Gary Numan)은 본격적으로 신스 팝 시대를 개척한 주역으로 앨범 <Pleasure Principle>에 수록된 싱글 'Cars'는 갓 개화한 일렉트로닉 팝 시대의 첫 번째 글로벌 히트곡이 되었다. -
정혜림, 음악 평론가(
IZM 소속)
영국의 뮤지션. 그에 대한 간단한 소개는 이 곳에서 읽어볼 수 있다.
2. 생애
2.1. 유년시절
버스 기사인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밑에서 태어나 공항 근처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버크셔 공업학교에서 비행기에 대해 공부하였다.학교를 다니면서 그는 트럭 드라이버, 맨션단지 관리인(...) 등의 잡다한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고, 그러던 중 아버지가 깁슨 레스폴 기타를 선물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 때 그의 나이 15살이었다. 그는 그 이후로 여러 밴드들의 곡을 카피하는 카피 밴드의 일원으로 Mean Street, The Lasers의 발표곡들을 주로 카피했다.
그렇게 활동하는 뉴먼의 실력을 눈 여겨 본 뉴먼의 삼촌이자 훗날 초기 뉴먼의 음악성에 큰 영향을 끼친 그의 인생의 동료, 제스 리드야드(Jess Lidyard)가 정식적으로 활동하는 밴드를 만들자고 제안, 그는 1978년 20살의 나이에 삼촌과 함께 뉴 웨이브 역사에 나름의 족적을 남긴 밴드, 튜브웨이 아미(Tubeway Army)를 결성한다.
2.2. 가수 활동
2.2.1. 튜브웨이 아미 (Tubeway Army) 시기
그 후 뉴먼은 삼촌인 제스의 도움으로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프로듀싱을 한 데모 테이프를 가지고 기획사들에 다니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Beggars Banquet Records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기에 이른다.뉴먼은 음반사와 계약을 체결하자 마자 튜브웨이 아미의 데뷔 싱글 'That's Too Bad'와 후속 싱글 'Bombers'를 연달아 발매하였지만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나온 첫 정규 앨범 Tubeway Army는 영국 차트에 진입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뉴먼은 몇 개월 동안 준비기간을 거친 뒤, 다음 해인 1979년에 훗날 자신의 불멸의 히트 넘버가 될 튜브웨이 아미의 세번째 싱글, Down In The Park를 발매한다. 오리엔탈적이고 몽환적인 신스와 어두운 분위기의 전주, 구성의 이 곡은 안타깝게도 전작들에 비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되려 당시에는 생소하며 어두운 곡 분위기로 인해 실패하고 말아버린다. 하지만...[1]
연이어 뉴먼은 Down In The Park와는 다르게 판타지 적이고 몽환적인 요소를 더 가미한 4번째 싱글, Are 'Friends' Electric?을 발매해 발매와 동시에 Lee Cooper Jeans와 광고를 촬영하기에 이른다. Are Friends Electric?은 발매 후 4주동안 영국 싱글차트의 1위 자리를 수성하며 골드 인증(50만장 판매)을 받는 등 메가 히트하는 데 성공했고, 6월에는 이들 싱글들의 타이틀 곡과 새로운 곡들을 수록한 두번째 정규앨범 Replica를 발매해 UK차트 1위 자리에 오르며, 싱글에 이어 앨범 역시 골드 인증을 받는데 성공한다.[2]
몇 개월 뒤 뉴먼은 본격적으로 해외 진출도 시작해, 싱글 'Cars'[3] 로 영국 차트 1위 수성 뿐만 아니라 캐나다 차트에도 1위로 진출하고, 해를 넘긴 1980년에는 미국의 빌보드 핫 100에서 Cars가 9위까지 기록하는 등, 전 영미권 국가적으로 뉴웨이브/신스팝 열풍을 불러일으키는데 공헌을 하며, 이러한 컬트적인 인기에 힘입어, 그는 Cars 하나로 1980년에 영국 교통공익광고까지 찍게 된다.
2.2.2. 솔로 활동
하지만 그는 밴드로서의 튜브웨이 아미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여실히 느꼈고, 솔로 앨범을 통해 본격적인 솔로 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는데, 이러한 생각으로 만들어지게 된 앨범이 바로 1979년 말에 발매된 'The Pleasure Principle'이다.
이 앨범 또한 UK차트 1위를 기록하며 광풍을 기록하자, 뉴먼은 해를 넘긴 1980년에 앨범의 이름을 딴 전국투어 'The Touring Principle'을 성공적으로 개최하며 그 다음으로 2집 정규앨범의 리드싱글 'Complex'를 발표해 영국 싱글차트 6위에 랭크 인 시킨다.
또한 1980년 9월 발표한 정규2집 'Telekon' 또한 UK차트 1위를 기록하며 승승장구 한다.
그 후로는 1981년에 정규앨범 'Dance'를 발표하였고 그 외에 많은 앨범들을 발표하였으며, 1997년에 자신의 곡들을 모은 베스트 앨범 'Gary Numan Primer Golden Hit'를 발매하였다. 또한 2000년대에 들어서도 왕성한 활동을 진행하였으며, 2010년대인 현재에도 활발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처음 데뷔한 80년대에는 뉴 웨이브 성향의 음악 스타일을 보였지만 90년대 중반부터는 인더스트리얼 성향의 스타일로 변화하였다.
3. 여담
- 아내인 젬마 오닐은 자신의 팬 클럽 멤버였다고 한다. 자신이 앓았던 아스퍼거 증후군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해 완쾌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등, 부부사이가 돈독하기로 유명하다. 주변 지인들 또한 사적으로도 그가 애처가라고.
- 1997년 베스트 앨범 발매와 함께 본인의 유년시절과 성장기, 튜브웨이 아미로 활동한 기록과 이야기를 담은 자서전, '외계인으로부터의 기도 (Praying To The Alien)'을 출판하기도 하였다.
- 결혼 후에는 아내와 같이 이스트서식스 주로 내려가 2012년 미국 로스 엔젤레스로 이사할 때 까지 살았다고 한다.
- The Pleasure Principle의 경우는 기본적으로 록 음악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놀랍게도 정작 앨범에는 전기기타가 일절 사용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기타 소리가 들리는 것은 뉴먼이 전자 키보드로 전자기타를 대신하는 기행(...)을 저질렀기 때문. 다만 The Touring Principle같은 라이브 공연에서는 세션으로 밴드를 기용해 그 자신도 기타로 연주하기도 하였다.
- 2020년 자서전에서 퀸(밴드)과의 훈훈한 일화를 소회했다. 일본에서 우연한 기회로 퀸 멤버들과 식사 자리를 가진 뉴먼은 일본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힘들어했는데, 이를 안타깝게 여긴 프레디 머큐리가 매니저를 통해 그가 먹고 싶어했던 맥도날드 햄버거를 가져다주었다고 한다.
- 2021년 1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스트리밍 횟수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규모의 수익이 돌아왔다며 음원 스트리밍 회사들을 비판했다. #
[1]
이듬해인 1980년 영화 'Times Square' OST에 수록되면서 시들은 곡의 인기가 다시 차트를 역주행하기 시작했고, 라이브 버전 또한 1981년 음악영화인 'Urgh! A Music War' OST에 수록되면서 게리 뉴먼의 인기를 더욱 올리기에 이른다.
[2]
이 앨범 재킷에서 뉴먼은 펑크록 가수와
크라프트베르크를 합친 것 같은 외양을 하고 경직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데, 본인 말에 따르면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던 영향이라고 한다.
[3]
동년인 1979년에 발매된 자신의 솔로 앨범 The Pleasure Principle에도 수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