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63년 12월 22일 카나리아 제도로 향하던 TSMS 라코니아에서 일어난 화재.2. TSMS 라코니아
라코니아호의 원래 이름은 요한 판 올덴바르네펠트(Johan van Oldenbarnevelt)로, 네덜란드에서 지어져 암스테르담과 동인도 사이를 오고갔다. 이름은 네덜란드의 역사적 인물 #에서 따왔다. 이후 요한 판 올덴바르네펠트호는 미국과 홀란트 사이를 오고 가며 승객들을 태웠다. 제2차 세계 대전때는 군인 수송선으로도 활약했다.1963년 3월 8일 요한 판 올덴바르네펠트 호는 그리스의 회사 Shipping Investment Corporation에 팔려갔고, 에어컨 추가, 흰색으로 도배, 객실 추가 등의 개조를 마치고 이름을 라코니아호로 바꾼 채 운영됐다. 라코니아호로써의 첫 항해는 같은 해 4월 24일이었다.
3. 사고 당시
12월 19일, 라코니아 호에는 승객 646명과 승무원 376명이 탑승했다. 승객들은 21명을 빼면 전부 영국인이었고, 승무원들은 대부분 그리스와 독일 출신이었다. 선장은 53세의 마치오스 자비스(Mathios Zarbis)였다. 배는 11일간 카나리아 제도로 향하는 크리스마스 크루즈 여행을 출발했다.배가 출발하기 전에 영국 해군으로부터 받은 안전 점검을 통과했고, 20일에 승객들과 같이 했던 대피훈련에서도 별 문제는 딱히 없었기에 큰 일이 일어날거라 생각한 이들은 없었다. 그런데 22일, 마데이라 제도로부터 180마일 가량 떨어진 지점, 승무원이 연기를 목격했다. 연기를 따라 가보니 선상 내 미용실에서 전선 문제로 화재가 발생했다. 승무원들은 소화기로 화재 진압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불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급히 화재 알람을 울렸으나, 소리가 너무 작아 승객들이 알람을 듣지 못했다. 마치오스 선장은 안내방송으로 화재 사실을 알리려 했으나 불이 방송장비를 손상시켜 방송을 할 수 없었다. 당시 승객들은 선상 내 볼룸에서 파티를 즐기던 중이었다. 그런데 연기가 점차 볼룸으로 스며들어오자 승객들은 그제서야 화재를 눈치챘다.
사람들은 배에서 빨리 대피하려 했으나 쉽지 않았다. 구명 보트들 몇몇은 이미 불이 번져 타고 있는데다 구명보트 두대는 아예 떠내려갔다. 그나마 멀쩡한 구명보트들도 체인이 녹 슨 채 기둥에 묶여있어서 풀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구명보트 중 절반 가량만 제 몫을 해냈다. 하지만 그마저도 승객들을 다 태우지는 못했다. 몇몇 승객은 불을 피해 뛰어내렸으나, 물에 닿기도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구명보트를 타고 탈출했음에도, 아직 불타는 선박에 100여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라코니아의 화재는 진압되지 않고 계속 타들어갔고, 아예 폭발까지 일어났다. 남아있던 사람들은 라코니아호 안에 있었던 아고라 쇼핑센터로 피신했다. 하지만 그곳에도 불이 번지기 시작해 밧줄을 타고 피신해야했다.
오전 3시 30분 경, 첫 구조요청을 한지 4시간이 지나서야, 제노바에서 온 아르헨티나 여객선 살타(Salta)가 도착해 구조를 도왔다. 영국에서 온 유조선 몬트캄(Montcalm)도 도착해 구조를 도왔고, 이 두 배는 475명의 승객을 구출하는데 성공했다. 시간이 더 흐르고 벨기에에서 온 샤를빌(Charlesville)과 브라질에서 온 화물선 리오 그란데(Rio Grande), 영국에서 온 여객선 스트라트덴(Stratheden), 파나마에서 온 화물선 메디(Mehdi)도 도착해 구조를 도왔다. 또 미 공군에서 C-54 비행기 4대를 인근 아소르스제도에서 보내 구명조끼와 신호용 플레어, 구명정등을 지원했다.
이 사고로 128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95명은 승객, 33명은 승무원이었다. 화재 자체로 사망한 사람보다 화재를 피해 뛰어내리거나, 이후 부상으로 사망한 사람이 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