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프로레슬링 단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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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EAT | 도쿄 죠시 프로레슬링 |
해산/활동 중지 프로레슬링 단체 | ||
UWF | WRESTLE-1 |
All Japan Pro-Wrestling [ruby(全日本, ruby=ぜんにほん)]プロレスリング[ruby(株式会社, ruby=かぶしきがいしゃ)] |
|
국가 | <colbgcolor=#ffffff,#2d2f34> 일본 |
설립일 | 1972년 10월 22일([age(1972-10-22)]주년) |
창립자 | 자이언트 바바 |
임원진 |
후쿠다 츠요키(대표이사 사장 겸 CEO) 토에다 토시키(사외이사, 2AW 대표이사 회장) 스와마 코헤이(전무이사) |
본사 |
도쿄도
분쿄구 유시마3쵸메 14-9 유시마빌딩 8층 東京都文京区湯島3-14-9 湯島ビル8階 |
링크 |
홈페이지 유튜브 트위터 |
1. 개요2. 역사
2.1. 1970년대-1980년대:
자이언트 바바와
점보 츠루타2.2. 1990년대:
전일본 사천왕과
왕도 프로레슬링2.3.
미사와 체제와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2.4. 2000년-2014년: 바바 모토코 체제 암흑기,
무토 체제와 프로레슬링 LOVE, 시라이시 노부오 체제 암흑기
3. 게임4. 주요 대회5. 타이틀2.4.1. 관련 문서
2.5. 2014년~2019년 :
아키야마 쥰 체제2.6. 2019년 ~ 현재 : 후쿠다 츠요키 체제5.1. 현재 챔피언 및 차기 도전자
6. 연중 토너먼트 & 리그전7. 유명 인물8. 소속 선수9. 역대 별점 5성 이상 경기1. 개요
1972년 자이언트 바바가 설립한 프로레슬링 단체.오늘날 신일본 프로레슬링, 프로레슬링 NOAH와 함께 일본 3대 메이져 프로레슬링 단체로 꼽힌다. 그 상징은 자이언트 바바가 제창한 것으로 유명한 왕도 프로레슬링. 200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많은 부침을 겪었으나 2017년 무렵을 기준으로 다시 바닥에서부터 반등하며 팬들을 다시금 불러 모으고 있다.
국내에서는 OSB 동양위성TV에서 1970~1980년대 초반까지의 경기들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2. 역사
2.1. 1970년대-1980년대: 자이언트 바바와 점보 츠루타
1972년에 자이언트 바바가 설립. 역도산의 두 아들이 합류하고 기존의 여러 챔피언 벨트들을 물려받았다는 점에서 역도산의 단체 일본 프로레슬링(JWA)의 적통을 잇는다고 여겨진다. NWA의 정식 가맹 단체였기 때문에 북미 레슬링계의 탑 레슬러들을 초빙해올 수 있었으며, 이를 토대로 정통 아메리카 프로레슬링 스타일을 선보일 수 있었다. 처음부터 그런건 아니었다. 외국인 선역인 펑크 형제, 외국인 악역이었던 압둘라 더 부처, 타이거 제트 싱, 스턴 한센, 브로디 브루저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 이는 상대적으로 북미 스타들을 데려오는데 어려움을 겪어 종합격투기 등 다른 방향을 모색한 안토니오 이노키의 신일본 프로레슬링과 대조되는 부분.1980년대에 들어 일본인 에이스의 자리는 점보 츠루타로 넘어갔으며, 그 일본인 라이벌로 활약한 텐류 겐이치로 역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다. 1980년대 후반에는 초슈 리키 역시 저팬 프로레슬링 소속으로 전일본 링에서 활약하기도 한다.
1980년대 세계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하이라이트 컴필레이션 |
2.2. 1990년대: 전일본 사천왕과 왕도 프로레슬링
1990년대에 접어들며 전일본은 큰 변화를 겪게 된다. WWF가 북미 프로레슬링계를 통일함에 따라 NWA 체제는 붕괴했고 전일본 역시 NWA에서 탈퇴한다. 그에 이어 간판 스타였던 텐류 겐이치로를 필두로 한 일련의 레슬러들이 단체를 이탈하고 점보 츠루타 등 노장들 역시 출전이 줄어듦에 따라 로스터가 급격히 주는 위기가 발생한다.하지만 이는 역으로 미사와 미츠하루, 카와다 토시아키, 코바시 켄타, 타우에 아키라 등 젊은 전일본 4천왕이 활약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들이 선보인 왕도 프로레슬링은 충성심 있는 팬덤을 만들어냈고, 데이브 멜처를 비롯한 북미권 레슬링 매니아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친다.
역대 최대의 프로레슬링 흥행은 1995년 4월 2일에 벌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오니타 아츠시는 가시철선 야구배트로 라이벌 킹 포고에게 풀 스윙을 날려 전류폭파 가시철선에 날려버리고 핀을 한 뒤, 여느 때처럼
도쿄 돔을 가득 채운 관중들에게서 갈채가 쏟아지길 기다렸습니다.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모든 관객들은 그 다음에 벌어질 것을 기대하며 침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습니다.
"미사와! 미사와! 미사와!"
열화와 같은 챈트가 쏟아졌습니다. 전일본 레슬러들의 입장곡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날 최고의 호응이 터져나왔습니다. 관중들이 전일본에 얼마나 열광했던지, 전일본의 심판이 오니타나 타카다 노부히코 같은 레전드들보다도 큰 반응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스탠 핸슨이나 코바시 켄타가 받은 호응 그 이상은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미사와의 호응은 그날 밤 최고였습니다.(...)
그 전 4시간 반 동안 나온 그 모든 큰 기술들, 다양한 기믹들, 실제 싸움, 그리고 최고의 스타들과 카리스마틱한 퍼포머들은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루 테즈가 스크린으로 역도산과 싸웠던 옛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시울을 붉힌 것, 휠체어를 탄 김일이 생애 마지막으로 링을 떠나며 링포스트에 키스하고 오열한 것조차 말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흥행 초반에 관객들이 너무 열광하게끔 하는건 후반에 쉽게 지치는 지름길이니 하는 얘기는 이미 벌써 앞선 몇 시간 사이에 거듭해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탑 스타들은 그저 전세계 그 누구와 비교해도 최고였기 때문입니다.
데이브 멜처, WON 미사와 미츠하루를 추억하기 (2009/06/22)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기력이 월등함에도 불구하고 보유 레슬러들을 상업적으로 파생시킬 수 있는 요소들이 근본적으로 부족하다는 한계로 인하여 그 흥행 규모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비해 떨어졌다. 좋은 예로 신일본은 자본력으로 도쿄돔에 자주 입성하는 등 대형 이벤트를 많이 벌여왔지만 그에 반해 전일본은 소, 중형구장에서 주로 시합을 가졌다.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는 것은 좋은 점이지만 단체 규모면에선 신일본에 떨어지게 된 것. 전일본의 전성기를 이끈 4천왕의 수장격인
미사와 미츠하루조차 선수들의 네임벨류만으로 흥행을 매진시키는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부러움을 느꼈다고."미사와! 미사와! 미사와!"
열화와 같은 챈트가 쏟아졌습니다. 전일본 레슬러들의 입장곡이 시작하기 직전까지 이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날 최고의 호응이 터져나왔습니다. 관중들이 전일본에 얼마나 열광했던지, 전일본의 심판이 오니타나 타카다 노부히코 같은 레전드들보다도 큰 반응을 얻을 정도였습니다. 스탠 핸슨이나 코바시 켄타가 받은 호응 그 이상은 불가능할 것 같았지만, 미사와의 호응은 그날 밤 최고였습니다.(...)
그 전 4시간 반 동안 나온 그 모든 큰 기술들, 다양한 기믹들, 실제 싸움, 그리고 최고의 스타들과 카리스마틱한 퍼포머들은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루 테즈가 스크린으로 역도산과 싸웠던 옛 모습을 지켜보면서 눈시울을 붉힌 것, 휠체어를 탄 김일이 생애 마지막으로 링을 떠나며 링포스트에 키스하고 오열한 것조차 말입니다. 흔히들 말하는 흥행 초반에 관객들이 너무 열광하게끔 하는건 후반에 쉽게 지치는 지름길이니 하는 얘기는 이미 벌써 앞선 몇 시간 사이에 거듭해서 깨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그 순간,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탑 스타들은 그저 전세계 그 누구와 비교해도 최고였기 때문입니다.
데이브 멜처, WON 미사와 미츠하루를 추억하기 (2009/06/22)
당시 신일본에 비해 전일본 레슬러들이 보수가 낮아 불만사항이 많았을거라는 추측이 있고, 자이언트 바바의 카리스마로 어떻게든 단체의 붕괴는 막았지만 결국 사후 레슬러들의 불만이 폭발하고 말았다.[1][2][3]
1990년대 "4천왕" 왕도 프로레슬링 컴필레이션 |
2.3. 미사와 체제와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
1999년 자이언트 바바의 사망 이후 미사와 미츠하루가 사장으로 취임해 그 명맥을 이었다. 미사와 미츠하루는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경영상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수정하기 위한 개혁을 주장하지만 바바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려던 보수적인 경영진과의 계속되는 트러블로 인해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의 중심 미사와 미츠하루는 스스로 전일본을 탈단해 단체를 창설한다. 그리고 미사와를 따르던 사대천왕(단 카와다 토시아키는 전일본에 잔류한다.) 및 전일본의 주축 선수들이 집단 탈단하여 단체를 정립하는데 바로 프로레슬링 NOAH이다. 프로레슬링 NOAH 역시 전일본의 왕도 스타일을 계승하고 있다. 즉 전일본을 뿌리로 둔 파생(2계) 단체라고 말할수 있다. 다만 프로레슬링 NOAH는 전일본의 일부 문제점들이 보완되어 진보적인 단체성향을 띄우게 된다.[4][5] 프로레슬링 NOAH는 교류에 폐쇄적이던 전일본과 달리 타단체와의 교류 등으로 전일본 시절의 폐쇄적인 장막을 걷어내기도 했다.전일본에 남은 일본인 레슬러는 결국 카와다 토시아키와 후치 마사노부 뿐. 후치 마사노부는 급기야 전통적인 라이벌이었던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링에 등장하여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세그먼트를 남기고 교류전을 펼친다.
오랫동안 전일본 프로레슬링과 신일본 프로레슬링 사이엔 무척이나 두꺼운 벽이 있었습니다. 오늘 그 벽을 부수러 왔습니다. 전 선언한대로 혼자 여기에 왔고,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남은 선수는 둘 밖에 없습니다만, 간판의 크기와 프라이드는 신일본에 지지 않습니다!
2.4. 2000년-2014년: 바바 모토코 체제 암흑기, 무토 체제와 프로레슬링 LOVE, 시라이시 노부오 체제 암흑기
전일본 교류 당시 신일본 프로레슬링은 악명높은 이노키즘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던 형편이었다. 이런 상황에 넌더리를 느끼던 신일본의 에이스 무토 케이지는 코지마 사토시 등과 함께 전일본으로 전격 이적하여 스트롱 스타일과 왕도 스타일 모두와 차별화된 새로운 스타일을 추구한 경영을 시작한다."프로레슬링 LOVE"라는 슬로건에 바탕을 둔 엔터테인먼트 중심의 과감한 개혁을 통해 전일본은 단체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성공하며, 대규모 선수이탈로 무너질듯했던 전일본을 3대 메이저 단체로 유지하는 데에 성공한다. 하지만 쿠리야마 류 사건, 소속 레슬러 TARU의 폭력 사건 같은 악재로 인해 무토 케이지는 결국 그 책임을 지고 사장 자리에서 내려오고 2012년 무토 자신과도 친분이 있던 스피드 파트너스의 사장 시라이시 노부오(白石伸夫)에게 전일본이 인수된다.
그런데 난데없이 시라이시 노부오는 부시로드 체제 신일본 프로레슬링에 대한 원색적 비난, 이노키즘을 연상케하는 실전 프로레슬링론 제창 등을 통해 무토의 뒤통수를 치고, 결국 제2차 전일본 선수 이탈사건을 통해 무토를 비롯한 많은 레슬러들이 전일본을 나가 WRESTLE-1을 설립한다. 시라이시 노부오는 반대급부로 노아를 탈퇴하고 BURNING이라는 스테이블로 전일본에 프리 신분으로 출전하고 있던 아키야마 준, 카네마루 요시노부, 스즈키 코타로, 아오키 아츠시, 시오자키 고를 정식입단 시키고[6], 이후 무토 케이지에 의해 소속 선수에서 해고 되었지만 프리 신분으로 계속 출전하고 있는 노장 후치 마사노부도 소속선수로 복귀시킨다. 아케보노 타로도 정식입단하였다. 하지만 시라이시가 단체를 운영하며 선수 인원도 부족하고 흥행 부진에 악재가 많았고 2014년 전일본 경영을 포기하고 소속 선수 아키야마 준이 새로 만든 법인에 단체를 매각하게 된다.
2.4.1. 관련 문서
2.5. 2014년~2019년 : 아키야마 쥰 체제
전일본 운영을 잡게 된 것은 프로레슬링 NOAH를 탈단하여 'BURNING'의 일원으로 전일본에 출전하고 있던 전 오강 출신 아키야마 쥰. 하지만 2015년 가뜩이나 정식 소속 선수의 인원도 적은 상황에 BURNING 출신의 시오자키 고, 스즈키 코타로, 카네마루 요시노부가 전일본을 탈퇴, 이후 아케보노 타로도 단체를 탈퇴하면서 경기력이 퇴보, 그리고 사장 아키야마 쥰에 대한 안좋은 소리까지 나와서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그러나 Wrestle-1, 카이엔타이 도장 등 다른 독립 단체를과 활발한 교류를 진행하고, 프리랜서로 참전했던 미야하라 켄토, 제우스 등을 정식 소속으로 영입하고, 신인들을 육성하고 단체의 흥행에 프리랜서 선수와 외부 단체 선수들을 참전시키면서, 신일본 급의 흥행력은 아니지만 일본 현지 팬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 시작한다. 2017년 신일본 프로레슬링의 신인 선수들을 위한 프로젝트 흥행인 라이온스 게이트에 소속 선수인 아오야기 유마를 출전시키고, 2017년 8월 이후의 흥행에 신일본 소속 선수인 코지마 사토시, 타이치를 초청하여 참전시키며, 시라이시 노부오 체제 시절부터 사이가 안좋았던 신일본 프로레슬링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있다.
아키야마 쥰이 사장이 되면서 특히 사사키 켄스케의 제자 중 한명인 미야하라 켄토를 중심으로 다양한 젊은 선수들을 영입하면서 생각보다 상황이 좋아진 편이다. 특히 미야하라 켄토와 이시카와 슈지의 라이벌전이 인기를 모으면서 예전만큼은 아니라지만 팬들도 호의를 보내고 있고 상황도 꽤나 호전되고 있는 편이다.[7] 최근들어는 한국계 일본인 레슬러인 사이 료지의 개인 인맥으로 한국인 레슬러들이 간혹 얼굴을 비치는 일본 메이저 단체이기도 하다. 2017년 11월 3일 이벤트에서는 한국인 선수인 김남석과 닥터 몬즈 JR이 아시아 태그 타이틀에 도전하기도 했다. 2019년 1월에는 프리신분으로 정기 참전하던 이시카와 슈지가 정식으로 입단하였고 단체는 일정하게 유지를 하고 있다. 6월에는 전일본 프로레슬링 선수회장이던 아오키 아츠시가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전일본 프로레슬링도 월 900엔에 경기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 무려 한국어를 지원한다! 다만 사이트의 텍스트를 번역기에 돌린 수준이다.
2.6. 2019년 ~ 현재 : 후쿠다 츠요키 체제
2019년 7월 아키야마 쥰이 사장직에서 물러나고 GM이라는 직책으로 부임했고 후쿠다 츠요키가 사장에 부임하였다. 2020년 1월 프리랜서 신분으로 정기 참전하던 요시타츠가 정식입단하였다. 2020년 7월 아키야마 쥰이 DDT 프로레슬링으로 렌탈 이적하였고 이후 헤비급 선수인 스와마가 후쿠다 사장을 위시한 경영진과 탈 아키야마를 슬로건으로 내놓으며 탈바꿈시키는 중이다.[8] 2021년 1월 프리랜서로 참전중인 TAJIRI와 혼다 류지가 정식입단하였다. 2021년 10월 18일 제우스가 기자회견을 하며 12월 31일을 끝으로 단체를 탈단한다고 발표했다.[9]2022년엔 신일본과 마찬가지로 창단 50주년을 맞이하였다. 50주년 기념으로 일본무도관에 진출하게 되었다.
또한 고라쿠엔 홀 60주년을 기념하여 신일본과 함께 합동 흥행을 치른다.
2022년 1월 과거 WRESTLE-1 소속으로 활약했다가 프리신분으로 정기 참전 중인 아시노 쇼타로와 에히메 프로레슬링 소속의 라이징HAYATO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정식 입단하였다. 2022년 4월에는 선수 겸 전무이사인 스와마가 모교인 주오대학 후배인 안자이 유마를 스카웃 하며 전일본 프로레슬링 정식소속 선수로 영입한다.
2022년 12월에는 제이크 리, TAJIRI, 이자나기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탈단하게 된다.
2023년 정식 소속 선수가 줄어든 상황이지만 타단체 소속 선수와 프리랜서 신분의 선수들을 참전시키며 외부 교류를 활성화 하고 있고 미야하라 켄토, 아오야기 형제, 라이징HAYATO, 안자이 유마, 오오모리 호쿠토, 사이토 브라더스 등 젊은 선수들이 준수한 활약을 펼치며 주목받고 있다.
흥행력과 별개로 오너인 후쿠다 츠요키가 이례적인 행보로 익스트림 걸즈라는 단체와 협약을 맺는것과 NOAH 탈단 후 전일본에 프리신분으로 참가하고 있는 나카지마 카츠히코가 전일본과 창립자인 자이언트 바바의 왕도 스타일에 반대되는 안토니오 이노키의 스트롱 스타일을 내세우며 이례적인 관심을 끌고 있고 후쿠다 사장이 푸쉬를 주는것과 WWE와 해외교류를 하게 되는데 12월 연말과 2024년 1월 연초 대회에 WWE 메인 로스터도 아닌 NXT 로스터 찰리 뎀프시가 출전하게 되면서[10], WWE의 하위 단체로 격하되는 모양새로 비춰지는 우려속에 일부 선수들이 불만을 갖고 있으며 전일본 프로레슬링 암흑기가 시작되려는 위기가 보여지고 있다.
2023년 12월 31일에는 요시 타츠, 오오모리 타카오가 탈단했고, 2024년 1월 31일에는 이시카와 슈지, 블랙 멘소~레가 탈단하였다. 그리고 1월 14일 스와마의 긴급 기자회견으로 또 단체의 운영에 문제가 생겼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또 단체의 운명이 위기에 맞이했다.
2024년 3월 30일에는 JTO 퇴사 후 프리신분으로 정기 참전하던 아야베 렌이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정식 입단하였고, 7월 20일에는 미치노쿠 프로레슬링 퇴사 후 프리신분으로 정기 참전하던 MUSASHI가 전일본 프로레슬링에 정식 입단하였다.
3. 게임
전일본 프로레슬링은 수많은 게임으로 발매되기도 하였다. NCS에서 개발한 2D 시절의 게임은 그저 그런 평가였으나 3D게임으로 재현된 전일본은 상당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3.1. 주요 게임들
3.1.1. 전일본 프로레슬링: 왕자의 혼
PS1으로 개발된 게임으로 지금은 도산한 HUMAN사에서 개발하였다. 스태미너가 너무 줄어들어 짜증나는 점이 있긴 하지만 게임성은 우수하다는 평가. 이 게임의 시스템은 "킹오브 콜로세움"으로 이어진다.3.1.2. 전일본 프로레슬링: 왕도계승
N64로 개발된 게임으로 WWE 노머시를 만든 AKI사가 개발했다. 버추어 프로레슬링2 엔진을 개량하여 만들었으며 하이브리드 레슬링개념을 도입하여 MMA VS 프로레슬링 대결 구도를 형성하여 WWE NOMERCY보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위로 올라타는 마운트가 가능한 MMA 스타일 프로레슬링 스타일 두가지 재미를 느낄수 있다.3.1.3. 자이언트 그램 시리즈
SEGA 사에서 전일본을 베이스로 만든 프로레슬링 게임. 아케이드, 드림캐스트로 출시되었다. 원조는 STV로 발매된 전일본 프로레슬링 : 피처링 버추어 빠른 전개와 버튼 타이밍에 의한 연계기 밎 심리전으로 왕도 스타일에 가장 가까운 재현율을 보이고 있다. 게이지가 차오르면 단발성으로 봉인기 등을 사용할수 있고 조건에 의한 숨겨진 기술살인기 등이 존재한다.팬서비스를 위해 버추어 파이터 캐릭터인 울프, 제프리, 카게 등이 참전하기도 했다.
그 이후 "전일본 프로레슬링"을 타이틀로 한 게임은 발매되지는 않고 있다.
4. 주요 대회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주요 대회 일람(2025년) |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New Year Wars 2025 | 익사이티드 시리즈 | 드림 파워 시리즈 | 챔피언 카니발 |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5. 타이틀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챔피언십 타이틀 | ||||
삼관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 | 세계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 ||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십 | GAORA TV 챔피언십 | 전일본 TV 6인 태그팀 챔피언십 |
5.1. 현재 챔피언 및 차기 도전자
- 선수 이름 아래에 표시된 별표(★)는 타이틀 방어전 승리 횟수이다.
현재 챔피언 및 차기 도전자 | ||||
삼관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 세계 태그팀 챔피언십 | 세계 주니어 헤비웨이트 챔피언십 | ||
데이비 보이 스미스 주니어 (74대) |
사이토 쥰 &
사이토 레이 (99대) ★★★★★★ |
도이 나루키 (69대) ★★★★★ |
||
도전자: 사이토 쥰 | 도전자 팀 : 스즈키 히데키 & 세키모토 다이스케 | 도전자: TBD | ||
올 아시아 태그팀 챔피언십 | GAORA TV 챔피언십 | 전일본 TV 6인 태그팀 챔피언십 | ||
라이징 HAYATO &
안자이 유마 (125대) ★ |
미야모토 유코 (28대) |
오오모리 호쿠토 &
사이러스 &
쿠마아라시 (9대) ★★ |
||
도전자 팀: 미야하라 켄토 & 이노우에 료 | 도전자: 타무라 단 | 도전자 팀: 아오야기 유마 & 아베 후미노리 & 사토 히카루 |
6. 연중 토너먼트 & 리그전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연중 토너먼트 및 리그전 | ||||
챔피언 카니발 | 세계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 왕도 토너먼트 | 주니어 BATTLE OF GLORY | 주니어 태그 BATTLE OF GLORY |
대회 이름 | 최근 우승자 | 년도 | 비고 |
챔피언 카니발 | 미야하라 켄토 | 2024 | |
왕도 토너먼트 | 아야베 렌 | 2024 | |
세계최강 태그 결정 리그전 |
사이토 브라더스 사이토 쥰 & 사이토 레이 |
2024 | |
주니어 BATTLE OF GLORY | 타무라 단 | 2023 | |
주니어 태그 BATTLE OF GLORY |
블랙 제너레이션즈 인터내셔널 이시다 카이토 & 스즈키 코타로 |
2023 |
7. 유명 인물
- 자이언트 바바
- 스탠 핸슨
- 점보 츠루타
- 텐류 겐이치로
- 후치 마사노부
- 전일본 사천왕
- 아키야마 쥰
- 무토 케이지
- 모모타 미츠오
- 그레이트 코지카
- 타카야마 요시히로
- 스즈키 히데키
- 스와마
- 아오키 아츠시
- 미야하라 켄토
- 제이크 리
- 이즈미다 쥰
- 요시에 유타카
8. 소속 선수
자세한 내용은 전일본 프로레슬링/선수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전일본 프로레슬링의 군단 | ||
전일본 본대 | Evolution | 사이토 브라더스 |
ELPIDA | 호쿠토군(北斗軍) |
9. 역대 별점 5성 이상 경기
자세한 내용은 전일본 프로레슬링/역대 별점 5성 이상 경기 참조.
[1]
당시 왕도 프로레슬링을 표방하여 온갖 살인기를 몸으로 받아내던 전일본 레슬링은 신일본에 비해 보수가 적었지만, 자이언트 바바가 그렇게 적은 급료를 주면서
미사와 미츠하루같은 특급 신인들은 일부러 다른 선수보다 더 보수를 준다거나, 외국인 선수로
앙드레 더 자이언트나
스턴 한센등을 데려와서 그들과 매치업을 잡아 일본 내에서 전일본 프로레슬링의 이름을 알리게 해줘서 CF촬영이나 미디어 출연을 권장한다든지 어떻게든 바바의 사업 수완과 신인 발굴이라는 설득으로 넘어갈수 있었다. 하지만 바바 사후 그런게 사라지니 정말로
열정페이만 남은
블랙기업이 되어 레슬러들이 떠나게 된 것.
[2]
아이러니한것은 그 자이언트 바바의 신인우대와, 외국인선수와의 매치업 등으로 키워준
미사와 미츠하루가 그 전일본을 분열시킨 전일본 이탈사건의 핵심이었다는 것이다. 당시 미사와는 선배들이 온갖 왕도 프로레슬링으로 살인기를 맞으며 시합을 할때, 자신은 특급대우로 연습생 급료가 5만엔인데, 자기만 7만엔을 받았고 베테랑만 갈수 있는 북미 원정도 신인 자격으로 가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고, 당시 전일본 선수들도 미사와가 차기 에이스니 그럴만했다. 식으로 응했다. 문제는 바바 사후 그 미사와가 사장에 취임하게 되면서 이런 전일본의 상황을 개선하려 했지만, 거기에 바바의 부인인 바바 모토코가 간섭해서 실제로는 바지 사장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장직을 그만두고 나가려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일본 프로레슬링 업계가 모두 미사와를 비난했으나, 이후 진실이 밝혀지자 그렇게 특급대우를 받던 미사와도 불만을 가질정도로 전일본 재정상태가 말이 아니다.라는 인증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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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미사와 이전 전일본의 에이스였던 점보 츠루타도 처음에는 전일본을 떠난 미사와를 비난했지만 나중에 실태를 알고 탄식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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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성 일부 도입, 기술의 강도 완화, 교류 강화, 젊은 선수들 육성, 화려한 등장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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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단체 운영시스템과 경기 외적인 홍보나 제도 등은 합리적으로 개선되었지만, 경기 내용 자체는 오히려 왕도의 원류를 추구하는, 즉 접수를 극한까지 감내해야 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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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야마, 카네마루는 재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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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기준으로 2015 - 16 2년동안 신일본의 악역 스테이블인
스즈키군의 노아 침공으로 이슈와 흥행력을 키웠던 프로레슬링 NOAH는 모기업이 바뀌고 스즈키군과의 대항전 종료이후 팬들의 반응도 냉랭하고 단체흥행의 관중동원율이 떨어지고 있다. 반면 전일본은 아키야마 준 사장이 프리선수와 타단체 선수의 문호를 개방하고, 전일본 선수와 타단체, 프리 선수와의 경기력 조화가 잘어울려지다보니 좋은 경기를 양산하고 있고 팬들의 반응을 이끌어내며 불과 1년전과 다르게 전일본과 NOAH의 입지가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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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야마는 2020년 12월 말을 끝으로 전일본 프로레슬링과 DDT 프로레슬링 선수계약이 끝나고 프리 신분이 되었다가 몇개월 뒤에
DDT 프로레슬링에 전속계약으로 재입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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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본을 그만두고 이후 칸사이 지방 중점으로 활동하는 오사카 프로레슬링에 이적하며 동시에 사장으로 취임하며 선수 겸 사장으로 활동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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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뎀프시는 윌리엄 리걸의 친아들답게 실력 자체는 매우 뛰어나지만 WWE 메인 로스터가 아닌 NXT 로스터에 아직 20대의 젊은 나이고 위상도 그리 높은 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