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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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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jpg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
Le Sacre de Napoléon
화가 자크 루이 다비드
국가
[[프랑스|]][[틀:국기|]][[틀:국기|]]
제작 1807년
사조 신고전주의
종류 유화
기법 캔버스에 유화
크기 610cm × 931cm
소장
[[프랑스|]][[틀:국기|]][[틀:국기|]]
루브르
파일:external/yareah.com/Napoleon.jpg
왕관을 쓰는 조제핀 드 보아르네 부분 확대

1. 개요2. 상세3. 기타

1. 개요

Le Sacre de Napoléon (프랑스어)
The Coronation of Napoleon (영어)

자크 루이 다비드가 1807년에 그린 그림. 610×931㎝[1] 1804년에 스스로 황제를 선포하고 제위에 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대관식 장면을 그렸다. 현재는 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2. 상세


(나폴레옹의 대관식, 그림의 제작 과정을 묘사한 영상. 출처는 프랑스 드라마 <나폴레옹>(2002년작) 중에서) 프랑스 드라마라면서 대사가 온통 영어[2]

원래 다비드는 나폴레옹이 스스로 관을 쓰는 장면을 그리려다가 교황 측의 항의에 조제핀 드 보아르네에게 씌워주는 것으로 바꿨다고 한다. 실제로 나폴레옹이 스스로 관을 쓰는 모습을 그린 수정 전 스케치가 지금까지도 전해진다. 또 원래 다비드는 교황이 맥없이 손을 떨구고 나폴레옹을 바라보는 것으로 그리려고 했으나, 이 초안을 본 나폴레옹이 "대관식 구경이나 시키자고 짐이 교황을 로마에서 여기까지 모셔왔단 말이냐"며 버럭 하는 바람에 근데 맞잖아, 교황이 손을 들어 축복하는 모습으로 바뀌기도 했다. 어쨌든 그림 속 교황청 사람들의 씁쓸해 하는 표정은 당연한 셈이다.

그림에 나온 교황은 비오 7세로, 나폴레옹에 의해서 이리저리 끌려다니며 여러 번 감금당하는 수난을 겪은 교황이기도 하다. 하지만 비오 7세는 수도회 출신의 거룩한 성품과 인격을 구비한 사람이었으며, 결국 나폴레옹의 최후의 순간에 절해고도에 고해 사제를 파견하여 나폴레옹의 마지막을 지켜주도록 함으로써, 원수를 은혜로 갚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에선 다들 복장이 화려해서 누가 교황인지 알아보기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폴레옹 바로 뒤에 앉아 흰 주케토를 쓰고[3] 옷깃에 검은 십자가가 그려져 있으며 손을 들어 축복을 해주는 포즈의 검은 머리의 남자가 비오 7세이다.

이 그림에 관해서는 이야기가 몇 개 더 있는데, 조제핀과 나폴레옹 가족들의 관계는 지극히 나빠서 실제 대관식에서는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지아 보나파르트와 누이들 전부 참석하지 않았지만, 그림에서는 화목한 가정을 원했던 나폴레옹의 요청으로 근엄하게 즉위식에 참석한 가족들의 모습이 새로 그려졌다. 그림 중앙에서 약간 왼쪽 귀빈석 중앙에 흰색 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는 귀부인이 나폴레옹의 어머니 레티지아 보나파르트이다.

그리고 조제핀에 대해서도 역시 나폴레옹의 요청에 따라, 필요 이상으로 성녀 이미지로 미화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그에 다비드가 한마디 하길 "불만 있으면 황제한테 직접 가서 따지세요." 그림에서는 20대의 순결한 성처녀처럼 그려졌지만, 대관식 당시 조제핀은 40대였다. 물론 조제핀은 미모로 한가락하는 여자들로 우글거리던 당시 파리 사교계에서도 탑 레벨에 속하는 미인이었다.

다비드의 초안 스케치에서는 나폴레옹이 스스로 관을 쓰기 위해 몸을 뒤로 젖히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실제로 그릴 때는 똑바로 서서 관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변경했다. 그리고 몸을 뒤로 젖혔던 그 빈 공간에 사람을 하나 새로 그려넣었는데,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이다. 위 그림에서 나폴레옹 등 바로 뒤에 서있는 머리숱 적은 남자가 카이사르다. 시공간을 초월한 황제들의 만남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 자신은 로마 황제의 자리에 오른 적은 없지만, 서구 사회 모든 황제의 권위의 근본이 된 사람이다. 그의 이름인 '카이사르'가 로마 황제의 호칭 중 하나였고, 이후에도 '황제'를 뜻하는 명사의 어원이 되었다.[4]

여기까지 읽으면 눈치챘겠지만, 다비드의 이 그림은 나폴레옹의 대관식을 실제 그대로 묘사했다기보다는 황제의 권위와 위엄을 살리기 위해 대관식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상당 부분을 각색한 창작품에 가깝다.

나폴레옹은 다비드가 이 그림을 그릴 때 여러 번 찾아와서 보고 수정을 지시하곤 했었는데, 1시간 이상 그림을 묵묵히 보던 나폴레옹이 다비드에게 문득 “당신을 존경한다”고 말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 출처

이 그림은 두 가지 버전이 있다. 루브르에 걸려있는 것과 베르사유에 걸려있는 것이 있는데, 두 그림의 차이는 하나, 그림에 있는 나폴레옹의 여동생 중 폴린 공주의 드레스가 베르사이유 버전에선 핑크색으로 칠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비드가 그녀를 짝사랑했기에 그렇게 몰래 그렸다는 얘기가 있다. #

3. 기타

이 그림을 루브르 박물관에서 관객들이 지켜보는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다. 알려진 영문 명칭은 <The Public Viewing David’s "Coronation" at the Louvre>이다.( 보기)

나폴레옹은 대관식을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했는데, 이 성당은 고딕식이다. 헌데 이 다비드의 그림의 배경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실내를 보여주고 있다. 기록을 보면 나폴레옹은 대관식을 위해 성당을 치장할 것을 명했고, 성당 내부를 일시적으로 그리스 신전 느낌으로 장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영문)

[5]
2023년 12월 Apple TV+ 개봉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나폴레옹에서도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을 작중에서 구현한 클립이 공개되었다. 꿇어앉아 교황으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다음 왕관을 나폴레옹 자신이 일어나서 직접 집어들고는[6] "나는 프랑스의 시궁창에 버려진 왕관을 발견하고 내 칼끝으로 그것을 주워 정화하여, 국민의 투표에 따라 내 머리에 쓴다."고 말하고 머리에 얹는다. 대관식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는 다비드의 모습도 잠깐 등장한다.

장 베델 보카사가 1977년 중앙아프리카 제국의 황제 대관식을 할 때 완벽하게 나폴레옹의 모습을 모방하려 했는데, 그 일환으로 이 그림을 아주 세세하게 분석할 위원회도 꾸렸었다.

조선 고종 또한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로 즉위할 때에 나폴레옹 1세의 대관식을 모방했다고 한다.

뮤지컬 나폴레옹의 1막 마지막 장면은 이 그림을 오마주했다.


[1] 다비드는 자신이 가장 큰 그림을 그렸다고 생각했으나, 실제로는 같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가나의 혼인잔치' 그림이 약간 더 크다. [2] 참고로 해당 드라마의 영어 더빙은 모두 배우 본인들이 직접 맡아서 했다. [3] 천주교에서는 교황만이 흰 복장을 입을 수 있는 것에서 유래한 모습이다. [4] 카이사르의 이름 caesar는 독일어와 러시아어로 황제를 의미하는 카이저와 차르의 어원이다. [5] 대관식 장면에서 쓰인 음악은 하이든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의 마지막 곡인 Singt dem Herren alle Stimmen. [6] 해당 순간에 관중들 사이에서 놀라워하는 함성이 나온다. 원래대로라면 교황이 나폴레옹에게 씌워 줘야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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