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문서: 화한삼재도회
1. 개요
화한삼재도회 7권 인륜류(人倫類)의 소개와 본문에 관한 문서이다.' 인륜'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실제 내용은 도덕 개념이 아니라 사람들의 직업으로 이루어져있다.[1] 인간과 관련된 내용을 폭넓게 인륜이라고 지칭한 듯하다. 다음 권인 8권 친속(親屬) 역시 인륜(人倫)이라는 제목 밑에 친속(親屬)이라는 부제로 되어있다.
10권 인륜지용(人倫之用)도 내용이 약간 비슷하다. 10권의 주된 내용은 시집, 남색, 친구과 같은 인간 관계, 혹은 맹인 등의 상태를 나타내는 단어들이지만 도둑, 수감자, 여행자 등 7권에서 다룰 법한 것들도 있다. 굳이 가르자면 7권은 좀더 직업에 가까운 것인데 7권에도 거지가 있는 등 그 구별도 아주 명확하지는 않다.
나머지 8권은 가족 및 친척, 9권은 신분 및 호칭을 다루어 7~10권에서는 전반적으로 인간과 관련된 사회 개념들을 다루고 있다. 이후 11~12권은 인체에 대해서 다루는 부분으로 내용이 완전히 달라진다.
항목 수는 총 65개, 쪽 수는 1888년판 기준 70쪽이다. 앞의 7개 항목이 17쪽을 차지하고 있어 나머지 58개 항목은 53쪽 가량으로 대체로 1항 1페이지 정도의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앞 부분에 2페이지 가량의 긴 항목들이 많고 뒤로 갈수록 1~2줄짜리 항목들이 많아진다.
대략적인 순서는 왕/ 귀족 - 사농공상 - 의사[2] - 점술가 - 교육인 - 종교인 - 각종 직업 순으로 이어진다.
2. 본문
{{{#!wiki style="border: 1px solid currentColor; border-radius:5px"- 帝王
- 仙洞
- 太子
- 親王
- 内親王
- 后
- 公卿
2.1. 武士
[3][ruby(武士, ruby=ぶし)] |
무사 | ||||
별칭: 武音舞戈に从ひ、止に从ひ、戈を止め武をす義に取る。(戈과 止가 글자에 들어간 것은 戈을 멈추어(止) 武를 이룬다는 뜻에서 왔다.)/物の部、毛乃乃布(もののふ, 모노노후) | |||||
剛彊直理曰武威彊敵德曰武克定禍亂曰武刑民克服曰武學而居位曰士 神武天皇朝有熟美眞味命道臣命二人武功勝道臣命所司軍兵稱來目部熟美眞味所司軍兵賜物部姓于今武士稱物部 侍 訓左不良比 世俗呼武士爲侍蓋侍近也從也蓋近習伺候之義不凡下之謂乎隋文帝開皇十六年勅使工商不得仕朝進宮 天和二年有法令武士外農工商之輩禁佩二刀 萬葉 武士の・やそ宇治川の・あじろ木は・いさよふ波の・行衛しらずも 柿本朝臣人麻呂 [萬葉3-2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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剛彊直理なるを武と曰ひ、威彊、德に敵する武と曰ひ、克く禍亂を定るを武と曰ひ、民を刑し克く服するを武と曰ひ、學んで位に居るを士と曰ふ。 神武天皇の朝に[ruby(熟美,ruby=うま)][ruby(眞味,ruby=しまぢ)]の[ruby(命,ruby=みこと)]、道[ruby(臣,ruby=をみ)]の命、二人有り、武功勝れたり。道臣の命、司る所の軍兵を[ruby(來目部,ruby=くめぶ)]と稱し、[ruby(熟美,ruby=うま)][ruby(眞味,ruby=しまぢ)]司る所の軍兵、物部の姓を賜はる。今まで武士、[ruby(物部,ruby=もののふ)]と稱す。 [ruby(侍,ruby=さむらい)] 左不良比と訓す 世俗、武士を呼んで侍とす。蓋し侍は近なり、從なり。蓋し近習、伺候の義、凡下ならざる謂なり。隋の文帝、開皇十六年、勅して工商に[ruby(朝,ruby=みかど)]に仕へ宮に進を得ざらすむ。 天和二年、法令有りて武士の外、農工商の輩、二刀を佩るを禁せしむ。 萬葉集 [ruby(武士,ruby=もののふ)]の・やそ[ruby(宇治,ruby=うぢ)][ruby(川,ruby=がは)]の・あじろ[ruby(木,ruby=き)]は・いさよふ[ruby(波,ruby=なみ)]の・[ruby(行衛,ruby=ゆくへ)]しらずも 柿本朝臣人麻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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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직하고 이치에 바른 것(剛彊直理), 위엄이 있으며 덕에 맞서는 것, 능히 환란을 평정하는 것, 민중을 재단하고 복종시키는 것을 무(武)라 한다. 공부하여 정도에 이르는 것을 사(士)라 한다. 진무 천황(神武天皇) 치세에 우마시마지노미코토(熟美眞味命), 미치노오미노미코토(道臣命) 두 사람이 있어 무공이 뛰어났다. 미치노오미노미코토가 맡은 군졸들을 구메부(來目部)라 불렀고 우마시마지가 맡은 군졸들은 모노노후(物部)라는 성을 하사받았다. 오늘날에도 무사를 모노노후라 한다.
덴나(天和) 2년(1682년) 법령을 내려 무사 이외의 농부, 상공인들은 두 칼을 차지 못하도록 했다. 만요슈 (무사의)[7]・야소 우지 강 속의・어살 말뚝에・멈칫한 물결 같이・앞길 알기 힘드네 가키노모토노 아소미히토마로 [8] |
2.2. 農人
[ruby(農人, ruby=のうにん)] |
농부 | ||||
별칭: 農夫/畯音俊/䢉農本字/俗に云く、百姓。百姓は乃ち四民の通稱なり。惟り農を以て百姓とするは非ず。 | |||||
漢志云闢土殖穀曰農炎帝之時天雨粟始敎民植五穀故號神農天子以建辰月祭靈星以求農耕靈星天田星在於辰位故農字从辰管子云首戴茅蒲身服襏襫沾體塗足謂之農 通鑑綱目云后稷初名棄字度展爲成人遂好耕農故名后稷易大傳云神農斵木爲耜揉木爲耒以敎天下則耕稼之利其來久矣而百穀之備自后稷始也 △按日本紀云保食神死矣生於身五穀種天照太神喜之定天邑君即以其稻種始殖于天狹田及長田 大巳貴尊爲百穀耕農神和州三輪大明神是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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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志に云く、土を闢き穀を殖るを農と曰ふ。炎帝の時、天、粟を雨らして始めて民に五穀を植ることを敎ゆ。故に神農天子と號す。辰に建る月を以て靈星を祭りて以て農耕を求む。靈星は天の田星にして辰の位在り、故に農の字、辰に从ふ。管子に云く、首に茅蒲を戴だき身に[ruby(襏襫,ruby=あまごろも)]を服し體を沾し足を塗す。之を農と謂ふ。 通鑑綱目に云く、后稷初の名は棄字、度展成人と爲り遂に耕農を好む。故に后稷と名づく。易の大傳に云く、神農、木を斵り[ruby(耜,ruby=くは)]とし木を[ruby(揉,ruby=たは)]めて[ruby(耒,ruby=すき)]として以て天下に敎ゆ[9]。則ち耕稼[10]の利、其の來る[11]久きなり。而して百穀の備るは后稷より始めなり。 △按ずるに、日本紀に云く、[ruby(保食,ruby=うけもち)]の神、[ruby(死,ruby=まか)]れり[12]、身より五穀の種を生す。天照太神、之を喜び[ruby(天,ruby=あま)][13]の[ruby(邑,ruby=むら)]君を定め即ち其の稻種を以て始めて天の[ruby(狹,ruby=さな)][ruby(田,ruby=だ)]、及に[ruby(長,ruby=をさ)][ruby(田,ruby=だ)]に殖ゆ。[14] [ruby(大巳,ruby=をほあな)][ruby(貴,ruby=むち)]の[ruby(尊,ruby=みこと)][15]、百穀、耕農の神と爲る。和州、三輪、大明神、是れな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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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工匠
- 商人
2.3. 牙儈
[ruby(牙儈, ruby=すわひ)] |
흥정꾼 | ||||
별칭: 牙婆/駔,,音臧/須和比(すわひ, 스아이) | |||||
字彙云會合市人交易者曰牙儈 △按京師絹布及諸董噐賣買多有儈婆長崎堺大坂藥種亦多有儈夫呼曰須和比大坂酒有牙儈呼曰中次攝州平野庄草綿之儈夫曰女乃止一物而和名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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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彙に云く、市人を會合して交易する者を牙儈と曰ふ。 △按ずるに、京師、絹布、及び[ruby(諸董噐,ruby=こまもの)]、賣買に多く[ruby(儈婆,ruby=すあひ)]有り。長崎、堺、大坂の藥種、亦た多く[ruby(儈夫,ruby=すあひ)]有り。呼んで須和比と曰ふ。大坂、酒[ruby(牙儈,ruby=なかつぎ)]有り。呼んで中次と曰ふ 攝州、平野の庄、草綿の[ruby(儈夫,ruby=めのと)]如乃止と曰ふ一物、而して和名異な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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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휘》(字彙)에 이르길 시장 사람들과 만나 교역하는 이를 아쾌(牙儈)라 한다. △생각건대 교토에서 면이나 장신구를 판매할 때 스아이(儈婆, 흥정꾼)[16]가 많이 있다. 나카사키(長崎), 사카이(堺), 오사카(大坂)의 약재에도 스아이(儈夫, 흥정꾼)[17]가 많다. 스아이(須和比, すわひ)라 한다. 오사카의 술에는 나카쓰기(牙儈)가 있다. 나카쓰기(中次)라고 한다. 셋쓰(攝津) 히라노(平野)의 장(庄)의 초면(草綿)은 메노토(儈夫)라 한다. 메노토(女乃止)라 한다. 같은 것이나 일본어 명칭이 다르다. |
- 儒士
- 醫師
2.4. 鍼醫
[ruby(鍼醫, ruby=はりたて)] |
침술사 | ||||
별칭: 禁針の穴、三十一有り。支體部に詳なり。(침을 놓으면 안 되는 혈이 31개 있다. (12권) 지체부에서 더 상세히 다룬다.) | |||||
古者以砭石爲鍼黃帝命岐伯敎制九鍼此其始也而後晋皇甫謐著甲乙經及針經以針法大行焉徐文仲狄梁公並妙於針凡針有補瀉之法先以左手捫摸其處隨用大指爪重按切揷其穴右手置於穴上而補寫有法 | |||||
古へは砭石を以て鍼とす。黃帝、岐伯に命して九鍼を制らしむ。此れ、其の始なり。而して後晋の皇甫謐、甲乙經、及び針經を著し以て針の法、大に行る。徐文仲狄梁公、並に針に妙あり。凡そ針に補瀉の法有り、先に左の手を以て其の處を捫摸し、隨て大指の爪を用ゐて重々按し切に其の穴を[ruby(揷,ruby=と)]り、右の手にて穴の上に置く。而して補寫、法有り。 | |||||
2.5. 外科
[ruby(外科, ruby=げくわ)] |
외과 | ||||
별칭: 瘍醫/外治 | |||||
△按今用服藥內治者稱之本道用貼膏外治者稱之外科刺鍼治者稱之針立三家以別業苟不兼知者何爲得醫道矣近世薜己之外科樞要行於世矣又有南蠻阿蘭陀二流拔膿歛口之膏以爲家傳衆施治者爲良 | |||||
△按ずるに、今に服藥を用ゐて內治する者を之を本道と稱し、貼膏を用ゐて外治する者、之を外科と稱し、鍼を刺して治する者、之を針立と稱す。三家以て業を別ち苟、兼知せずんば何ぞ。醫道を得たりと爲ん。近世、薜己が[18]外科、樞要、世に行る。又た南蠻、阿蘭陀の二流有りて膿を拔き口を歛る膏、以て家傳とす。衆く治を施する者、良とす。 | |||||
△생각건대 약을 먹어 안을 치료하는 것을 본도(本道), 고약을 붙여 밖을 치료하는 것을 외과(外科), 침을 찔러 치료하는 것을 침립(針立)이라 한다. 세 종류로 나뉘어있으나 모두 겸비하고 있어야지만 의술의 도리를 알았다고 할 수 있다. 근래에 설기(薜己, 1487-1559)[19]가 외과의 주축을 세상에 알렸다. 또한 남만의 네덜란드에 2가지 유파가 있어 고름을 뽑고 입에 넣는 고약이 가문마다 전해진다. 대중에게 치료를 베푸는 자는 좋은 이이다. |
2.6. 按摩
[ruby(按摩, ruby=あんま)] |
안마 | ||||
별칭: | |||||
△按凡按摩經絡擦引痃癖之術保養中一事也素問奇恒論云爪苦手毒爲事善傷者可使按積抑𤸋[⿸疒界]後漢華佗按摩能活人 | |||||
△按ずるに、凡そ經絡を按摩し痃癖を擦引する術、保養の中の一事なり。素問奇恒論に云く、爪苦く手毒ありて傷づくことを善くするを爲す者、積を按し𤸋[⿸疒界]を抑へしむべし。後漢の華佗、按摩して能く人を活す。 | |||||
△생각건대 대체로 경락을 안마해 현벽(痃癖)[22]을 비비고 당기는 기술은 보양의 한 가지 방법이다. 《소문기항론》(素問奇恒論)에 이르길 손톱이 아프고 손에 독이 있어 생긴 상처를 낫게 하는 행위를 할 때에는 적취를 안마해 옴을 억제하도록 해야 한다. 후한의 화타는 안마를 통해 사람을 많이 살렸다. |
- 相人
2.7. 相印
[ruby(相印, ruby=はんはんじ)] |
점술가 | ||||
별칭: | |||||
南史云廋道愍善相笏相休祐笏以爲多忤休祐以褚彦回最爲謹密乃陰換之它日彦回見帝誤稱下官大被憎譴夫一手板棄之則溝中斷耳於人何與術固有不可知者耶[五雜粗5]又初學記云相手板法出於漢蕭何或曰四皓初出殆不行 △按唐選擧志試身言書判又魏氏春秋所謂許允善相印者是乎大抵花押有運點住處點眷屬點榮華點病厄點等定格而相墨色備知休咎得者無不中至知命期年月亦奇也比揣骨或相笏占者亦不難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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南史に云く、廋道愍、善く笏を相る。休祐が笏を相て以て忤ふこと多しとす。休祐、褚彦回が最も謹密なるが爲めを以て、乃ち陰かに之を換ふ。它日、彦回、帝を見て誤て下官と稱す。大に憎譴せらる。夫れ一手板、之を棄つれば則ち溝中の[ruby(斷,ruby=きのきれ)]のみ。人に於て何ぞ[ruby(與, ruby=あづ)]からん。術、固に知るべからず者有り。又た初學記に云く、手板を相る法、漢の蕭何より出づ。或は、曰く四皓より初めて出て殆ど行ばれず。 △按ずるに、唐の選擧志に、身言書判を試む又た魏氏春秋に所謂る許允、善く印を相る。者の是れか。大抵、花押、運の點、住處の點、眷屬の點、榮華の點、病厄の點等の定格有りて、而して墨色を相て備さに休咎を知る。得る者、中らざること無し。命期の年月を知るに至り、亦た奇なり。骨を[ruby(揣,ruby=く)]り、或は笏を相て占る者に[ruby(比, ruby=くら)]ぶれば、亦た難しとせ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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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사》(南史)에 이르길 수도민(廋道愍)은 홀(笏)의 모양으로 점을 쳤다. 휴우(休祐, 445-471)[24]는 홀로 점을 치는데 오류가 많았다고 한다. 휴우는 저언회(褚彦回, 435-482)[25]가 매우 조심스럽고 치밀하기에 몰래 홀을 바꿨다. 이후 언회는 황제를 보고 하관(下官)이라 잘못 불러 크게 미움을 사고 질책을 받았다. 1개의 수판(手板)도 버리면 도랑 속 나무토막일 뿐이다. 남에게 무엇을 맡기겠는가? 이 기술은 알 수 없는 점이 많다. 또 《초학기》(初學記)에 이르길 수판으로 점을 치는 법은 한나라 소하(蕭何, ?-193)로부터 왔다고 한다. 또는 사호(四皓)[26]로부터 처음 시작되어 거의 행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생각건대 《신당서》(新唐書)의 〈선거지〉(選擧志)에 신언서판(身言書判)[27]의 대한 시험을 보았다고 한다. 또 《위씨춘추》(魏氏春秋)에 이른바 허윤(許允, ?-254)은 도장으로 점을 잘 쳤다는 것이 이것일까? 대체로 화압(花押)[28]에는 운, 주거, 권속, 영화, 질병과 관련된 정해진 규격(定格)이 있어서 묵색을 보면 길흉[29]을 낱낱이 알 수 있다. 능한 이는 꿰뚫지 못하는 것이 없어 수명이 다하는 연월을 알기에 이르니 이 또한 신기하다. 뼈를 헤아리는 점, 홀을 보는 점에 비하자면 어렵다고 할 수는 없다. |
- 卜筮
- 師
- 幼學
- 晩學
- 弟子
2.8. 姆
[30][ruby(姆, ruby=おんなのし)] |
여스승 | ||||
별칭: | |||||
字彙云娒女師也婦人五十無子出不復嫁以婦道敎人者也又云加敎於女謂之妿 | |||||
字彙に云く、娒は女師なり。婦人、五十までに子無く出て復た嫁せず、婦道を以て人に敎ゆる者なり。又た云く、敎へを[ruby(女,ruby=めなこ)][31]に加ふ、之を妿と謂ふ。 | |||||
《자휘》(字彙)에 이르길 무(娒, 여스승 무)란 여스승이다. 여자가 50살까지 아이가 없고 결혼하지 않은 채 여성의 도리(婦道)로써 남을 가르치는 이를 말한다. 다른 호칭으로 여성(女)에게 가르침을 더하는(加) 것을 아(妿, 여자 스승 아)라고 한다. |
2.9. 覡
[ruby(覡, ruby=かんなぎ)] |
무당 | ||||
별칭: | |||||
玉篇云事神者在男曰覡在女曰巫國語云民之精爽不㩦貳者則神明降之 名寄 小夜更て・きふねの奧の・山風に・きねか鼓の・かたおろしなる 寂蓮 [名寄4-1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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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篇に云く、神に事る者、男に在るを覡と曰ひ、女に在るを巫と曰ふ。國語に云く、民の精爽、㩦貳せざる者には則ち神明、之に降る。 歌枕名寄 [ruby(小夜,ruby=さよ)][ruby(更,ruby=ふく)]る[33]・きふねの[ruby(奧,ruby=おく)]の・[ruby(山風,ruby=やまかぜ)]に・きねか[ruby(鼓,ruby=つづみ)]そ・かたおろしなる 寂蓮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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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巫
- 儈
- 尼
- 僊人
- 天人
2.10. 譯人
[ruby(譯人, ruby=つうじ)] |
통역관 | ||||
별칭: 囮音化/象胥[34]/今に云く、通事/寄東方/象南/狄鞮西/譯北 | |||||
說文云囮者譯也謂傳四夷及鳥獸之語 王制云五方之民言語不通嗜欲不同而達其志通其欲者東方曰寄南方曰象西方曰狄鞮北方曰譯 五雜粗云元時有必蘭納識里者貫通三藏及諸國語凡朝貢表牋文字無能識者皆令譯進左右執筆口授如流略不停思皆無差謬衆無不服其博識而不知其所從來 介葛盧解牛語公冶長侯瑾解鳥語陽翁仲李南解馬語唐僧隆多羅白龜年俱通鳥獸語成子楊宣皆解雀語夫鳥獸之音終身一律果能語耶至太原王氏因祭厠神而獲聞蟻言又奇矣[五雜粗6] 續日本紀云聖武天皇神龜[36]二年諸蕃異域風俗不同若無譯語難以通事仍仰粟田朝臣馬養。播磨直乙安。陽胡史眞身。秦朝元文[37]。元貞等五人各取弟子二人令習漢語[續日本紀10]此學譯之始也 △按今肥州長崎有官譯數輩咸能通中華及諸蕃語一事無遺謬其稱大通士者何愧必蘭耶如書寫寺性[39]空上人能通鳥獸言語且聞豆箕之音者僉非理所推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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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文に云く、囮は譯なり。四夷、及び鳥獸の語を傳るを謂ふ。 王制に云く、五方の民の言語、通せず。嗜欲同からず。而るを其の志を達し、其の欲を通る者、東方を寄と曰ひ南方を象と曰ひ西方を狄鞮と曰ひ北方を譯と曰ふ 五雜粗に云く、元の時、必蘭納識里なる者有り、三藏、及び諸國の語に貫通す。凡そ朝貢表牋の文字、能く識る者無き[40]、皆な譯をして進つらしむ。左右を筆を執らしむ。口授ること、流るが如く。略ぼ思を停めず。皆な差謬無し。衆、其の博識に服せざること無し。而して其の從て來る所を知らず。 介葛盧は牛の語を解き、公冶長、侯瑾は鳥の語を解き、陽翁仲、李南は馬の語を解きたり。唐の僧、隆多羅、白龜年、俱に鳥獸の語に通し成子、楊宣、皆な雀の語を解く。夫れ、鳥獸の音は身を終るまで一律なり。果して能く語らん。太原の王氏、因て厠神を祭るに而して蟻の言ふことを[41]聞くを獲たりに至り、又た奇なり。 續日本紀に云く、聖武天皇、神龜二年、諸蕃異域、風俗同からず。若し譯語無ければ以て事を通し難し。仍て粟田の朝臣馬養、播磨の[ruby(直,ruby=あたひ)]乙安、[ruby(陽胡,ruby=やこ)]の[ruby(史,ruby=ふひと)]眞身、秦朝元、文元貞、等五人に仰せて各々弟子二人を取り漢語を習はしむ。此れ譯を學ぶの始なり。 △按ずるに、今に肥州・長崎、官譯、數輩有り、[ruby(咸,ruby=み)]な能く中華、及び諸蕃の語に通し一事、遺謬すること無し。其れ大通士と稱する者、何ぞ必蘭に愧ん。書寫寺の性空上人、能く鳥獸の言語に通し且つ[ruby(豆箕,ruby=まめがら)]の音を聞く者の如きは[ruby(僉,ruby=み)]な理の推す所に非らず。 |
|||||
《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이르길 와(囮)란 역(譯)이다. 사방의 오랑캐(四夷)와 금수(禽獸)의 말을 전하는 자를 뜻한다. (《
예기》(禮記) 5권의) 〈왕제〉(王制)에 이르길 오방의 사람들은 언어가 통하지 않으며 원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이때 그 뜻을 헤아리고 원하는 바를 꿰뚫는 것을 동방에 대해서는 기(寄), 남방으로는 상(象), 서방으로는 적제(狄鞮), 북방으로는 역(譯)이라 하였다. 《오잡조》(五雜粗)에 이르길 원나라 시기 필란납식리(必蘭納識里, ?-1332)라는 자가 있어 삼장(三藏)과 여러 국가의 언어에 능통했다. 조공의 표전(表牋)[42] 문서의 양식을 잘 아는 이가 없어 모두 통역을 써서 진행했다. 좌우에 붓을 쥐고 받아 적는 것이 흐르는 것과 같고 생각을 멈출 틈이 없었으며 오류도 전무했다. 사람들은 그 박식함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때문에 그가 어디서 온 자인지 알지 못했다. 개갈로(介葛盧)는 소의 말을 알아들었고 공야장(公冶長)과 후근(侯瑾)은 새의 말을 알아들었으며 양옹중(陽翁仲), 이남(李南)은 말의 말을 알아들었다. 당나라의 승려 융다라(隆多羅)와 백귀년(白龜年)은 금수의 말에 능통했으며 성자(成子)와 양선(楊宣)은 참새의 말을 이해했다.[43] 금수의 소리는 하나로 이어져 있어 잘 알아듣기 어렵다. 태원(太原) 사람 왕씨(王氏)는 측신에게 제사를 올림으로써 개미가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게 되었다 하니 이 또한 신기하다. 《속일본기》(續日本紀)에 이르길 쇼무 천황(聖武天皇, 701-756) 진키(神龜) 2년(725년) 여러 제후국과[44] 지역에서 풍속이 달라 통역이 없으면 말이 통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아와타노 아손 우마카이(粟田朝臣馬養), 하리마노 아타이 오토야스(播磨直乙安),[45] 야코노 후히토 마미(陽侯史真身), 하타노 아사모토(秦朝元), 분노 겐테이(文元貞) 등 5명에게 분부하여 각자 제자 2명을 데려다 중국어를 배우게 했다. 이것이 번역을 배우게 된 시작이다.[46] △생각건대 오늘날 히젠(肥前) 나가사키(長崎)에는 역관(譯官)이 여럿 있다. 모두 중국어나 제후국의 언어에 능통하며 오류를 남기지 않는다. 대통사(大通士)라 불리는 이들로 가히 필란에 빗대어도 부끄럽지 않다. 쇼샤지(書寫寺)[47]의 쇼쿠(性空, ?-1007) 대승[48]은 금수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콩깍지 소리를 알아듣는 사람과 같은 이들은 모두 이치(理)를 제쳐두는 때가 없었다. |
- 鍛冶
- 焠
- 鑄冶
- 瓦工
- 陶工
2.11. 杇[49]人
[ruby(杇人, ruby=かべぬり)] |
미장이 | ||||
별칭: 圬[50]杇同、音鳥/墁人/墍者音忌/加倍沼利(かべぬり, 가베누리)/俗に云く、左官。 | |||||
字彙云墻壁之飾曰墁音滿杇乃塗墁噐[⿳吅工吅]故謂塗墁曰杇人古者有善墍塗者名曰獿音惱施廣領大袖以仰塗而領袖不汗 穀梁傳云天子諸侯之楹黝堊 △按堊音惡釋名曰亞也次也先泥之次以灰飾之也今云白壁也又加池澤黑泥則成黝色黝音憂微靑黑色今云鼠壁之類乎凡塗壁噐[⿳吅工吅]名泥鏝詳于百工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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字彙に云く、墻壁の飾を墁音滿と曰ふ。[ruby(杇,ruby=こて)]は乃ち塗墁の噐[⿳吅工吅]。故に塗墁を謂ひて杇人と曰ふ。古へは善く墍塗する者有り、名づけて獿音惱と曰ふ。廣き領、大なる袖を施し以て[ruby(仰,ruby=あを)]ぎ[ruby(塗,ruby=ぬ)]り領、袖、[ruby(汗,ruby=よご)]さず。 穀梁傳に云く、天子、諸侯の[ruby(楹,ruby=はしら)]は黝堊にす。 △按ずるに、堊音惡は釋名に曰く、亞なり、次なり。先に之を泥し、次に灰を以て之を飾る。今に云く、白壁なり。又た池澤の黑泥を加れば則ち黝色と成る。黝音憂は微靑黑色。今に云く、鼠壁の類か。凡そ壁を塗る噐[⿳吅工吅]、[ruby(泥鏝,ruby=こて)]と名づく百工の具に詳な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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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휘》(字彙)에 이르길 벽을 꾸미는 것을 만(墁)[음 滿(만)]이라 한다. 흙손(杇)[55]이란 벽을 칠할 때 쓰는 도구이다. 때문에 도만(塗墁)을 오인(杇人)이라고도 한다. 옛날에는 벽을 잘 칠하는 사람을 노(獿)[음 惱(뇌)]라 하였다. 넓은 옷깃과 큰 소매를 입고 일을 했기에 고개를 들고 벽을 칠할 때 옷깃과 소매가 땀으로 더러워지지 않았다.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 이르길 천자와 제후는 기둥을 검고(黝) 하얗게(堊) 칠했다. △생각건대 악(堊)[음 惡(악)]이란 《석명》(釋名)에 이르길 아(亞)이며 차(次)이다. 우선 벽을 칠한 뒤 그 다음 횟가루로 장식한다. 오늘날에는 백벽(白壁)이라 한다.여기에 늪지대의 검은 진흙을 더하면 유색(黝色)이 된다. 유(黝)[음 憂(우)]란 옅은 청흑색이다. 오늘날에 서벽(鼠壁)이라 하는 종류일까? 대개 벽을 칠하는 도구를 흙손이라 한다. (24권) 백공구(百工具)에서 자세히 다룬다. |
- 馬醫
- 相刀
2.12. 硎刀
[ruby(硎刀, ruby=とぎや)] |
칼갈이 | ||||
별칭: | |||||
羅山文集云後島羽院掄鍛冶之良手者易月代番令作御劒帝亦自有勅作于時洛陽人澤田國弘者善巧發硎令磨礳御劒子孫相續得磨工之名 | |||||
羅山文集い云く、後島羽の院、鍛冶の良手者を[ruby(掄,ruby=えら)]んで月に易へ番を代へて御劒を作せしむ。帝、亦た自ら勅作有り、時より洛陽人、澤田の國、弘なる[56]者、善く[ruby(硎,ruby=といし)]を發するを巧す。御劒を磨礳せしむ。子孫、相續て磨工の名を得る。 | |||||
2.13. 石工
[ruby(石工,ruby=いしきり)] |
석공 | ||||
별칭: | |||||
姓氏錄云和泉國石作連者火明命六世孫建眞利根命之後也埀仁天皇世爲皇后日葉酸媛命作石棺獻之仍賜姓石作大連公也[新撰姓氏録] △按泉州鳥取鄕諸邑多有石工此其子遺者乎近年攝州大坂石工多以同國御影山之石作諸石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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姓氏錄に云く、和泉國、石作の[ruby(連,ruby=むらじ)]は[ruby(火,ruby=ほ)]の[ruby(明,ruby=あかり)]の[ruby(命,ruby=みこと)]の六世の孫、[ruby(建,ruby=たけ)][58][ruby(眞,ruby=ま)][ruby(利,ruby=り)]の[ruby(根,ruby=ね)]の[ruby(命,ruby=みこと)]の後なり。埀仁天皇の世に皇后、[ruby(日,ruby=ひ)][ruby(葉,ruby=ば)][ruby(酸,ruby=す)][ruby(媛,ruby=ひめ)]の命の爲めに石の[ruby(棺,ruby=ひづき)]を作て之を獻る。仍て姓を石作の大連公と賜はる。 △按ずるに、泉州・鳥取鄕の諸邑に多く石工有り。此其、子遺なる者か。近年、攝州・大坂の石工、多く同國の[ruby(御,ruby=み)][ruby(影,ruby=かげ)]山の石を以て諸の石器を作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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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찬성씨록》(新撰姓氏錄)[59]에 이르길 이즈미(和泉) 국의 이시즈쿠리노[60] 무라지(石作の連)는 호노아카리노미코토(火明命)의 6세손이며 다케마리노네노미코토(建眞利根命)의 후손이다.
스이닌 천황(埀仁天皇)의 치세에 황후 히바스히메노미코토(日葉酸媛命)를 위해 돌로 된
관을 만들어 바쳤고 이로써 이시즈쿠리노 오무라지 공(石作の大連公)이라는 성(姓)을 하사받았다.[61] △생각건대 이즈미(和泉) 돗토리(鳥取) 지역의 여러 마을에는 석공이 많이 있다. 이들은 대대로 이어져온 것일까? 근래에는 셋쓰(攝津) 오사카의 석공이 많이들 같은 지역의 미카게 산[62]의 돌을 써 여러 석기를 만든다. |
2.14. 庖丁
[ruby(庖丁,ruby=はうてう)] |
요리사 | ||||
별칭: | |||||
廚吏曰庖丁莊子云庖丁爲文惠君解牛曰臣之刀十九年所解數千牛而刀刃若新發於硎 △按庖者宰殺之所截魚鳥獸肉也丁者仕丁與保呂也官家謂之膳夫俗稱料理人今以截肉刀爲庖丁者誤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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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 佛工
[ruby(佛工,ruby=ぶっし)] |
불교 공예가 | ||||
별칭: 今に云く、佛師 | |||||
敏達天皇六年始自百濟國佛工寺匠等來 定朝 光孝天皇六世孫也天祿二年賜法橋位佛工位階始于此 按阿彌快慶者康慶之弟子也湛慶子孫相續位佛工嫡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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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板彫
[ruby(板彫,ruby=はんゑり)] |
판각장이 | ||||
별칭: | |||||
五代史云後唐明宗皇帝長興二年宰相馮道李愚請令判國子𪉩[⿱塷皿]田敏校正九經刻板印賣朝廷從之後周太祖皇帝廣順二年印版九經成就頒行國郡此其始也 △按古之書版多以梓木彫之故稱繡梓其材軟易鐫而耗損今專用櫻木久埋土中後取出否則脆不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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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代史に云く、後唐の明宗皇帝、長興二年、宰相、馮道李愚、國子、𪉩[⿱塷皿]田敏をして判し、九經を校正し、板印を刻て賣んと請ふ。朝廷、之に從ふ。後周の太祖皇帝、廣順二年、印版の九經、成就して國郡に[ruby(頒,ruby=わ)]かち行ふ。此、其の始めなり。 △按ずるぬ、古の書版、多くは梓木を以て之を彫る。故に繡梓と稱す。其の材、軟にして鐫り易くして耗損す。今は專ら櫻の木を用ふ。久、土中に埋て後に取出す。否ざれば則ち脆して佳なら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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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 牧童
[ruby(牧童,ruby=うしかひのわらわ)] |
목동 | ||||
별칭: | |||||
牧守養六畜也 三才圖會云牧牛者所吹笛謂牧笛早暮招來群牧猶牧馬者鳴笳也嘗於村野間聞之則知時和歲豊寓于聲也每見模爲圖畫詠爲歌詩實古今太平之風物也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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牧は六畜を守養するなり。 三才圖會に云く、牛を[ruby(牧,ruby=か)]ふ者の吹く所の笛を[ruby(牧笛,ruby=ぼくてき)]と謂ふ。早暮、群牧を招來す。猶を馬を牧ふ者、笳を[ruby(鳴,ruby=な)]らすがごとし。嘗て村野の間に於て之を聞く。則ち時和、歲豊を知る。于を聲に寓するなり。每に模を見て圖畫を爲り詠して歌詩を爲る。實に古今太平の風物なり。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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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樵夫
[ruby(樵夫,ruby=きこり)] |
나무꾼 | ||||
별칭: 樵音譙木古利(きこり, 기고리)/芻音初蒭俗字久佐加利(くさかり, 구사카리)/蕘如招切、音饒之波加利(しばかり, 시바카리) | |||||
樵取薪者也刈草曰芻以飼牛馬之草也釆薪曰蕘以供燋火之草也 | |||||
樵は薪を取る者なり。草を刈るを芻と曰ひ、以て牛馬を飼ふ草なり。薪を釆るを蕘と曰ふ。以て燋火に供する草なり。 | |||||
나무꾼이란 섶을 모으는 사람이다. 풀을 베는 것을 추(芻, 꼴 추)라 하며 이를 통해 소와 말을 키운다. 섶을 찾는 것을 효(蕘, 땔나무 효)라 한다. 이를 통해 불을 땐다. |
2.19. 圉人
[ruby(圉人,ruby=むまかひ)] |
마부 | ||||
별칭: | |||||
圉人 周禮掌養馬芻牧之事者 龓人 即龓馬人日本紀云馬子 △按圉人今云馬飼主也龓人馬子驛人今云馬問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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圉人は周禮に、馬を養ふ芻牧の事を掌る者なり。 龓人は即ち馬[ruby(龓,ruby=ひ)]く人。日本紀に馬子と云く。 △按ずるに、圉人は今に云く、[ruby(馬,ruby=むま)][ruby(飼主,ruby=もち)]なり。龓人は[ruby(馬,ruby=むま)][ruby(子,ruby=こ)]。驛人は今に云く、馬の問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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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渉人
[ruby(渉人,ruby=わたしもり)] |
나루터 사공 | ||||
별칭: | |||||
文選江賦云渉人於是檥榜者是也 古今 久堅の[65]・天の河原の・わたしもり・君渡りなば・梶かくしてよ 無名 [古今-17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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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選、江の賦に云く、渉人、是に於て[ruby(榜,ruby=さほ)]を[ruby(檥,ruby=よそ)]ふ者、是なり。 古今和歌集 [ruby(久堅,ruby=ひさかた)]の・[ruby(天,ruby=あま)]の[ruby(河原,ruby=かはら)]の・わたしもり・[ruby(君渡,ruby=きみわた)]りなば・[ruby(楫,ruby=かぢ)]かくしてよ 無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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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文選) 12장 강부(江賦)에 이르길 나루터 사공이란 상앗대를 젓는 사람이다. 고킨와카슈 햇살 비치는・하늘 멀리 은하수・뱃사공이여・임이 건너 왔다면・노를 감추어 주길 저자 미상 |
2.21. 舟子
[ruby(舟子,ruby=ふなこ)] |
뱃사공 | ||||
별칭: | |||||
日本紀云應神天皇十三年幸淡路島而遊獵之於是西望之數十糜鹿浮海來之便入于播磨鹿子水門天皇謂左曰何糜鹿也則遣使見之皆人也唯以著角鹿皮爲衣服耳問誰人也對曰日向諸縣君牛年耆之雖致仕不得忘朝故以己女髮長媛而貢上矣天皇悅之令從御船是以時人號其着岸之處曰鹿子水門也凡水手曰鹿子蓋始起于是時也 新古今 ゆらのとを・渡る舟人・楫をたへ・行衛もしらぬ・戀のみち哉 曽禰好忠 [新古今11-1071] [68] △按今海舶起魁首曰船頭舵工曰祖翁言是船長之義乎從者十余輩抑櫓人曰水手炊飯者曰加志岐蓋此炊字訓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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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코킨와카슈 유라 해협을・건너는 뱃사공이・노를 잃듯이・갈 길 몰라 헤매는・사랑의 길이구나 소네노 요시타다 [69] |
2.22. 閽人
[ruby(閽人,ruby=みかどもり)] |
문지기 | ||||
별칭: | |||||
閽守門人也門者晨昏閉啓晨主於啓昏主於閉啓則任司守故稱守門者專言閽也 △按閽人今云門番也凡守其所防非常人稱番人俗稱也番音翻次也重也遞也更也蓋終日終夜一人以難成故爲一番二番之列而相更勤之故以守人稱番人 哨 音鍫與篍同吹筩以警也今屯戌之所防盜亦曰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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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蜑人
2.23. 獵師
[70][ruby(獵師,ruby=れうし)] |
사냥꾼 | ||||
별칭: 獵師、和名、加利比土(かりびと, 가리비토)/列卒、和名、加利古(かりこ, 가리코, "몰이꾼") | |||||
逐禽獸以除害曰獵春曰田夏曰苗秋曰獮冬曰獵 易繫辭曰庖犧氏之王天下結繩而爲網罟以佃以漁取之離封乃是自大昊始也 日本紀云火酢芹命能得海幸弟彦火火出見尊能得山幸而互易之兄取弟弓矢入山獵獸弟取兄釣入海釣魚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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禽獸を逐ひ以て害を除ぐを獵と曰ふ。春は田と曰ひ、夏は苗と曰ひ、秋は獮と曰ひ、冬は獵と曰ふ。 易の繫辭に曰く、庖犧氏の天下に王たる。繩を結て網罟とし以て[ruby(佃,ruby=か)]りし、以て[ruby(漁,ruby=すなど)]りす。之を離の封に取り乃ち是、大昊より始めなり。 日本紀に云く、[ruby(火,ruby=ほの)][ruby(酢,ruby=す)][ruby(芹,ruby=そり)]の命、能く海の[ruby(幸,ruby=さち)]を得る。弟の彦火火出見の尊は能く山の[ruby(幸,ruby=さち)]を得る。而して互に之を[ruby(易,ruby=か)]ふ。兄は弟の弓矢を取り、山入りて獸を獵し、弟は兄の釣を取り、海に入りて魚を釣る。 |
|||||
2.24. 漁夫
[ruby(漁夫,ruby=すなどり)] |
어부 | ||||
별칭: 漁子/漁翁/和名、以乎止利(いをどり, 이오도리)/又た云く、無良岐美(むらぎみ, 무라기미)[71]/今に云く、須奈止利(すなどり, 스나도리) | |||||
△按漁者捕魚者也日本紀神代旣有漁獵之事而至天武天皇四年制漁獵者莫造檻窂及施機槍等之類此時以來本朝人禁食六畜葢以六畜有益于世事者禁殺食之者宜哉本朝人其壽長於異國常食獸肉人且魚贏多有而食品不乏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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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按ずるに、漁は魚を捕ふる者なり。日本紀に、神代に旣に漁獵の事有り。而して天武天皇・四年に至り漁獵者に制して[ruby(檻,ruby=をり)]、[ruby(窂,ruby=ししあな)]、及に[ruby(施機,ruby=わな)]、[ruby(槍,ruby=やす)]等の類を造ること莫らしむ。此時より以來[72]、本朝の人、六畜を食ふことを禁す。葢し以るに六畜は世事に益有り者、之殺し食ふことを禁するは[ruby(宜,ruby=むべ)]なるかな[73]。本朝の人、其の壽、異國の常に獸肉を食ふ人より長し。且つ魚贏、多く有りて食品、[ruby(乏,ruby=とぼ)]しからず。 | |||||
△생각건대 어(漁)란 물고기를 잡는 사람이다. 《 일본서기》(日本書紀)에 이르길 신대(神代)에 이미 어렵을 해왔다고 한다. 그러다 덴무 천황(天武天皇) 4년(675년)에 이르러 어부와 사냥꾼들에게 명령하길 우리, 함정, 덫, 작살을 만들지 못하도록 했다. 이 시기 이래로 우리나라 사람은 6가지 가축을 먹는 것을 금했다. 이들 가축은 세상에 득이 되는 것이니 죽여서 먹는 것을 금지한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리나라 사람은 짐승 고기를 항상 먹는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수명이 길다. 또한 물고기가 많이 있어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다. |
- 鷹匠
2.25. 游偵
[ruby(游偵,ruby=しのびのもの)] |
닌자 | ||||
별칭: 謀者/細作/邏候/探伺/間諜以上、左傳の註に見る。/之乃比乃毛乃(しのびのもの, 시노비노모노) | |||||
游偵軍中反間也 五雜粗云漢時解奴辜張貂皆能隱淪出入不由門戶此後世遁形之祖也介象左慈于吉孟欽羅公遠張果之流及晉書女巫章丹陳琳等術皆本此謂爲神仙其實非也其法有五曰金遁曰木遁曰水遁曰火遁曰土遁見其物則可隱惟土遁最捷蓋無處無土也須煉遁神四十九日於空山無人之中獨坐結念更有符呪役百神若一念妄起便須重煉即大明有冷謙字哲敬導人入太倉庫事發被逮求飮即跳入甁中撲破片片皆應而竟不知所在此水遁者也正德年中有老翁脫太監流賊者又鍾髽䯽握土一塊遂不見土遁者也 △按游偵軍中必用之技術也今江州甲賀之人最善之皆有家秘而爲相續焉 |
|||||
游偵は軍中の反間なり。 五雜粗に云く、漢の時、解奴、辜張貂、皆な能く隱淪、出入するに門戶を由らず。此の後世、遁形の祖なり。介象左慈于吉孟欽羅公、遠張果の流、及び晉書の女巫、章丹陳琳等が術、皆な此に本づく。謂ひて神仙とす。其の實は非ず。其の法、五つ有り、曰く金遁、曰く木遁、曰く水遁、曰く火遁、曰く土遁。其の物を見れば則ち隱くるべし。惟だ、土遁、最も捷なり。蓋し處として土無きこと無し。須からく遁神を四十九日、空山、人無き中に獨坐、結念、煉るべし。更に符呪有り、百神を[ruby(役,ruby=つか)]ひ若し一念の妄、起れば便ち重て煉るべし。即ち大明に冷謙といふもの有り字は哲敬人を導て太倉庫に入る。事[ruby(發,ruby=あら)]はれて逮へられ飮を求ふときは即ち跳て甁の中に入る。撲破て片片、皆な應して竟に所在を知らず。此れ、水遁者なり。正德年中、老翁、太監流賊を脫れし者有り、又た髽䯽を[ruby(鍾,ruby=あつ)]め土一[ruby(塊,ruby=かたまり)]を握り遂に見へず、土遁者なり。 △按ずるに、游偵は軍中必用の技術なり。今に江州の甲賀の人、最も之善くす。皆な家秘有り、而して相續を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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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傾城
- 白拍子
- 乞食
2.26. 屠兒
[74][ruby(屠兒,ruby=ゑとり)] |
백정 | ||||
별칭: 旃多羅和名、惠止利(ゑとり, 에토리)。今に云く、[ruby(穢多,ruby=ゑた)]/屠保布留(ほふる, 호후루)と訓す。 | |||||
屠兒即屠牛馬肉取鷹雞餌之義也殺生及屠牛馬肉取賣者也 △按屠兒即古所謂餌取也今處處搆一村每屠牛馬猫犬剝皮爲業其穢不少故呼曰穢多又云加波多天武天皇詔天下禁食六畜肉以來神社忌其穢佛氏最禁殺生故忌避餌取者不許同居同火以異姓氏 |
|||||
屠兒は即ち牛馬の肉を[ruby(屠,ruby=ほふ)]り、鷹雞を取り、[ruby(餌,ruby=ゑば)]せしむるの義なり。生を殺し、及び牛馬の肉を[ruby(屠,ruby=ほふ)]り取り賣る者なり。 △按ずるに、屠兒は即ち古へ、所謂ゆる[ruby(餌取,ruby=ゑとり)]なり。今に處處、一村を搆へ每に牛馬、猫犬を屠り皮を剝き業とす。其の穢、少からず故に呼んで[ruby(穢多,ruby=ゑた)]と曰ふ。又た云く、加波多天武天皇、詔して天下、六畜の肉を食ふことを禁せしむ。以來、神社、其の穢を忌み、佛氏、最も殺生を禁す。故に餌取の者を忌み避け同居、同火を許さず。以て姓氏を異にす。 |
|||||
(백정을 뜻하는) 도아(屠兒)란 곧 마소의 고기를 도축하고 매나 닭을 잡아 고기로 만듦을 의미한다. 살아있는 것을 죽이고 마소의 고기를 도축하여 파는 자이다. △생각건대 백정은 옛날부터 소위 에토리(餌取)라 불리는 자이다. 오늘날에는 곳곳에 한 마을을 이루어 항상 말, 소, 고양이, 개를 잡아 가죽을 벗기기를 업으로 한다. 더러움(穢)이 많기에(多) 에타(穢多)라 부른다. 다른 명칭으로 가와타(加波多, かはた)라 한다.[75] 덴무 천황(天武天皇, 673-686)은 조칙을 내려 6개 가축[76]의 고기를 먹는 것을 금했다. 이 후 신사에서는 고기의 더러움을 꺼린다. 부처는 살생을 매우 금지했다. 때문에 백정을 꺼리고 피해 함께 사는 것을 금했다. 이로써 성씨를 달리하게 되었다. |
2.27. 扈從
[ruby(扈從,ruby=こぜい)] |
호종 | ||||
별칭: 小姓俗字 | |||||
師古曰扈從隨侍之義也石林燕語云從駕謂之扈從 △按扈音胡尾也從于人後故爲扈從今呼近習伺候人曰扈從衆或爲男寵隨侍美童亦曰扈從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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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乳母
[ruby(乳母,ruby=めのと)] |
유모 | ||||
별칭: 嬭音乃/㚷同上/和名、米乃止(めのと, 메노토)/又た云く、知於毛(ちおも, 지오모)/俗に云く、宇婆(うば, 우바) | |||||
日本紀云豊玉姬産鸕鷀草葺不合尊乃涉海徑去于時權用他姬婦以乳養皇子焉此世取乳母養兒之綠也 △按所謂他姬者乃豊玉姬之妹玉依姬也妻妹故和名曰女乃止畧言也 後拾遺 はかなくも思ける哉乳もなくてはかせの家めのとせんとは 匡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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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洗母
[ruby(洗母,ruby=とりあげうば)] |
산파 | ||||
별칭: | |||||
入門云十月氣足胎元壯健者忽然腹痛或只腰痛須臾産下天然之妙雖臍腹俱痛發動露頂而腰不痛者切莫倉𢡋[⿰忄皐]禁洗母動手 婦人良方偏産下云穩婆輕手正其頭向産門却令産母努力 △按胎衣連於臍帶兒旣生而胎衣未下時穩婆用竹刀切臍帶長九寸但土噐[78]二枚[79]重履而於其上切乏以苧可括切口其餘纏於穩婆跟俟胎衣下也葢此稱胎衣繼不謂切矣凡山島邊境産婦不借洗母手自繼胎衣不淨而嘗無血暈變症亦一異也 |
|||||
2.30. 奴僕
[ruby(奴僕,ruby=しもべのおとこ)] |
남자 종 | ||||
별칭: | |||||
奴者人之下也僕者侍從人 童僕古毛乃俗云童一 履奚俗云草履取 從後取收履者也 | |||||
奴は人の下なり。僕は人に侍從するなり。 [ruby(童僕,ruby=こもの)]古毛乃俗に云く、[ruby(童一,ruby=でっち)]。 [ruby(履奚,ruby=ざうりとり)]俗に云く、草履取後へに從て履を取り收る者なり。 |
|||||
노(奴)란 남 밑에 있는 자이다. 복(僕)이란 남에게 시중을 들어주는 자이다.
|
2.31. 婢
[ruby(婢,ruby=しもべのおなご)] |
여자 종 | ||||
별칭: | |||||
婢者女之卑者也古者以罪人爲奴婢 方言云荊淮海岱國郡之名之間罵奴曰臧罵婢曰獲 |
|||||
婢は女の卑き者なり。古へは罪人を以て奴婢とす。 方言に云く、荊、淮、海、岱國郡の名の間、奴を罵て臧と曰ひ、婢を罵て獲と曰ふ。 |
|||||
[1]
이와 비슷한 예로 본 문헌에서 '
인물'(
13권/
14권)은 사람 개개인이 아니라
중국인,
한국인 등 각 지역의 인구 집단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2]
화한삼재도회 개요에서 소개한 대로 이 책의 저자 데라시마 료안은 본업이
의사이다. 그래서 의술 관련 내용이 좀 더 충실한 감이 있다.
[3]
もののふ도 한자 표기 왼쪽에 부기되어있다.
[萬葉3-264]
# 만요가나식 한자 표기로는 物乃部能・八十氏河乃・阿白木尓・不知代經浪乃・去邊白不母이다. 화한삼재도회 원문에는 출전/저자 표기가 없다.
[5]
近習(きんじゅう)는 임금을 가까이서 섬기는 신하를 뜻한다.
[6]
凡下(ぼんげ)는 평범한 사람을 뜻한다.
[7]
특별한 의미 없이 들어가는 상투적 표현인 마쿠라고토바(枕詞)이다. 인용한 책 원문에서는 따로 번역하지 않고 '모노노후노'로 음차하였다.
[8]
한국어역 만엽집 2 - 만엽집 권 제3(2017), 이연숙 역, 박이정, 53쪽.
[9]
1715년본에는 ユトイフトキハ로 되어있다.
[10]
1715년본에는 タケヘン, コナエ로 훈독하고 있다.
[11]
1715년본에는 ルコト로 되어있다.
[12]
오늘날에는 주로 罷る로 적는다.
[13]
가나점은 마지막 음절 マ만 부기되어있다.
[14]
관련 내용 번역서
#
[15]
관련 링크
#
[16]
81권 가택류 - 邸家 항목에서도 이 직업을 언급한다. 해당 권에서는 牙儈라는 표기를 사용한다.
[17]
위 문장과 일본어 표현은 같으나 한자가 다르다.
[18]
1888년본에는 カ 훈점이 없다.
[19]
참고 링크
#
[⿸疒界]
[⿸疒界]
[22]
한의학에서 오랜
체증이 쌓여 생기는 병(적취) 중 하나이다.
[五雜粗5]
#
[24]
성은 류씨로 류휴우(劉休祐)이다.
#
[25]
본명은 저연이다.
#
[26]
상산사호(商山四皓)를 말한다.
진시황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은 4명의 선비를 말한다. 눈이 하얗게 세어 ‘호’(皓)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
[27]
중국 당나라 때에 관리를 선출하던 네 가지 표준. 즉 체모(體貌)의 풍위(豐偉), 언사(言辭)의 변정(辯正), 해법(楷法)의 준미(遵美), 문리(文理)의 우장(優長)을 이른다(표준국어대사전).
[28]
수결(手決) 또는 서명(署名)을 이르는 말(표준국어대사전).
[29]
원문은 휴구(休咎)이다. 길(吉)한 것과 흉(凶)한 것. 또는 복(福)과 화(禍)를 뜻한다(표준국어대사전).
[30]
표제어는 姆로 썼으나 본문에서는 娒로 쓰고 있다.
[31]
현대어로는 めのこ가 더 일반적인 것으로 보인다.
[名寄4-1244]
[33]
화한삼재도회 원문에는 て로 되어있으나 인용된 시가는 る가 맞는 것으로 보인다.
[34]
'상서'는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역관을 일컫는 말로 실려있다.
[五雜粗6]
원문에 줄바꿈이 되어있으나 여기까지《오잡조》의 인용이다. 《오잡조》구성으로는 필란보다 개갈로의 내용이 더 앞에 나온다.
#
[36]
화한삼재도회에는 진키 2년으로 되어있으나 인용된 《속일본기》 기사는 덴표(天平) 2년(730년)이 옳다.
[37]
1888년본에는 丈으로 되어있으나 맥락상 文이 맞다. 1715년본에는 文으로 되어있다. 아울러 구두점도 元과 文 사이에 오는 것이 옳다.
[續日本紀10]
179쪽. 덴표(天平) 2년(730년) 3월 27일 기사
#(왼쪽 면, 오른쪽에서 4~5번째 줄)
[39]
1888년본에는 牲처럼 보이나 1715년본은 性처럼 되어있다. 웹 검색 결과 性이 옳은 것으로 보인다.
[40]
1715년본에는 ときは로 되어있다.
[41]
1715년본에는 ものいふを로 되어있다.
[42]
본래 중국에 대한 사대문서(事大文書)로 국왕이 중국의 황제에게 올리는 글을 표문, 황태후·황후 또는 황태자에게 올리는 글을 전문이라 하였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보통은 表箋이라고 쓴다.
[43]
번역 참고
#
[44]
원문은
번(藩)이다.
[45]
가운데 써져있는 것은 성(姓, 가바네)이며 맨 앞에 써져있는 것은 씨(氏, 우지)이다.
[46]
번역 참고
일본어 위키백과 하리마노 오토야스(播磨乙安) 문서
[47]
효고현
히메지시에 쇼샤(書寫)라는 산이 있다. 쇼샤산에 엔쿄지(円教寺)라는 절이 있으며 후술할 쇼쿠 대승은 이 절을 기반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48]
上人(しょうにん)은 지덕을 갖춘 승려를 가리키는 경칭이다.
[49]
본문 내 자형은 ⿰木亐이다.
[50]
1888년본에는 杇로 되어있다. 통자를 설명하는 부분이므로 杇와는 다른 글자가 나와야 옳다.
[⿳吅工吅]
[⿳吅工吅]
[⿳吅工吅]
[⿳吅工吅]
[55]
원문은 こて이다. 이 단어는
인두를 뜻하기도 한다. こて라는 단어는 한국에도
고데기라는 외래어로 유명하다.
[56]
1718년본에서는 といふ이다.
[新撰姓氏録]
PDF 30쪽 맨 왼쪽 1-2줄
[58]
1888년본에는 タタ로 되어있으나 이전 본의 タケ를 잘못 본 오식으로 추측된다.
[59]
중국에도
당나라 시기에 나온 《성씨록》(姓氏錄)이라는 책이 있으나
# 여기서는 이어지는 내용을 봤을 때 일본에서 815년 편찬된 《신찬성씨록》을 가리키는 듯하다.
위키백과를 참고하면 일본에는 《성씨록》이라는 책은 없다. '신찬'이란 말을 붙인 것은 《씨족지》(氏族志)를 만들다 그만뒀던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한다.
[60]
이시즈쿠리는 석공, 혹은 그러한 일을 하는 사람을 뜻한다.
[61]
이를 모시는 이시즈쿠리 신사가
기후현에 있다.
#
[62]
현
고베시에 소재해있다. みかげいし라고 해서 이 일대의
화강암을 가리키는 표현도 일본어 사전에 실려있다.
[⿱塷皿]
[⿱塷皿]
[65]
ひさかたの는 天, 日과 자주 같이 나오는 상투적 표현인 마쿠라코토바(枕詞)의 일종이다. 해석은 아직 이견이 있다고 한다. 日射し方(해 비치는 쪽)이라고 해석하는 설도 있다.
# 정확히 동일한 어구가 바로 앞의 173수에도 나온다(あきかぜの・吹きにし日より・ひさかたの・天の河原に・立たぬ日はなし). 거기서도 '天の河原'와 함께 등장한다.
[古今-174]
역주서 高田祐彦의
新版 古今和歌集 現代語訳付き에서는 天の河原の渡し守よ。あの方が渡ってきたならば、(帰れないように) 楫を隠しておくれ。로 풀이하고 있다.
[新古今11-1071]
戀歌2. 원문엔 출전과 저자가 표기되어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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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원문엔 戀をする哉로 되어있으나 자료를 참고했을 때 戀のみち哉로 보인다. 戀をする哉도 와카에서 자주 나오는 시구이기에 혼동한 듯하다. 참고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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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신코킨와카슈 하(2016), 구정호 역, 삼화, 76쪽. 유라 해협은
와카야마현의 지명이다. '노를 잃듯이'는 다음 구절로 내용을 연결시켜주는 조코토바(序詞)이다.
[70]
훈독 かりうど(현대형 かりゅうど)도 부기되어있다.
[71]
村君라고도 쓴다. 《하리마국 풍토기》(播磨国風土記), 《화명류취초》(和名類聚抄) 같은 고문헌에도 나오며 무라기메(ムラギメ), 무라긴(ムラギン), 무라가미(ムラガミ) 등의 이형태가 있다. 오늘날에는
세토내해~
규슈 인근에만 남아있는 말이라고 한다. 참고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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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1715년본에는 このかた라는 훈이 붙어있다.
[73]
'마땅하지 않은가' 정도의 의미인 듯하다. 일본 사람 중에서도 처음 이 말을 들으면 좀 헷갈리는 이들도 있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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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ゑた도 병기되어있다.
[75]
皮田, 皮多라고도 적는다. 주로
간사이 지방에서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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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말, 소, 개, 양, 돼지, 닭을 의미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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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忄皐]
[78]
器의 속자이다.
[79]
1715년본은 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