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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코드순. 전신 법인: 법인은 현존하나 계열이 변경된 경우. 우체국예금은 농협금융에 흡수된 후 재설립되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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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은행 | 대한민국의 비은행예금취급기관 | 각 기관의 코드 보기 |
한미은행 韓美銀行 | KorAm Ban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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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c63b7><colcolor=#fff> 법인명 | 주식회사 한미은행 |
株式會社 韓美銀行 | |
KorAm Bank | |
국가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설립일 | 1981년 9월 17일(한미금융, [age(1981-09-17)]주년) |
창립일 | 1983년 3월 16일([age(1983-03-16)]주년) |
상호 변경일 |
1983년
3월 5일(한미은행) 2004년 11월 1일( 한국씨티은행) |
후신 | 한국씨티은행 |
업종명 | 국내은행 |
상장 여부 | 상장폐지 |
상장 시장 |
유가증권시장 ( 1989년 11월 11일 ~ 2004년 7월 12일) |
종목 코드 | 016830 |
본점 소재지 |
서울특별시 중구 다동 39[1] |
은행 코드 | 027 |
SWIFT 코드 | KOAMKRSE |
웹 사이트 | (웹 아카이브) |
알차고 튼튼한 한미은행
[clearfix]1. 개요
1983년부터 2004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의 시중은행.2. 역사
1981년 재무부가 시중은행 민영화 후속 조치로 외국 자본 합작은행 설립을 담은 은행 설립 지침을 마련한 데서 비롯되었다. 1981년 5월 정수창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등을 주축으로 설립추진위원회가 구성된 뒤 1981년 9월 17일 한미금융으로 정식 설립됐으며 은행 설립 시 합작 대상자로 한국측은 삼성그룹과 대우그룹, 미국측은 뱅크 오브 아메리카로 각각 정했다.1982년 7월 22일 합작 은행 설립을 위한 주주 간 합의서를 조인하였고 1982년 9월 2일 금융통화운영위원회로부터 은행업 인가를 받아 1983년 3월 5일에 한미은행이 출범했다. 이는 신한은행에 이어 국내 7호 시중은행으로 출범한 것이다. 본점은 설립 초기 대우빌딩(현 서울스퀘어)에 임시로 입주한 후 1983년 3월 1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공평동 1번지(인사동5길 41)[2]에서 영업을 시작했다가 1997년 9월 1일 본점을 중구 다동의 청계천변으로 이전하였다.
초기에는 한국 50.1%, 미국 49.9%로 한국 지분율이 살짝 높았다. 미국 BOA측은 자체 부실로 인한 경영권 분쟁까지 겹쳐 한미은행에 대한 투자를 줄이게 된다. 1980년대 후반 들어 BOA 지분이 줄면서 경영권이 한국측으로 넘어감에 따라 국산 은행이 됐고 1989년 한미리스를 세우고 한국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1990년 영국령 홍콩에 처음으로 해외사무소를 열고 1991년 6월 스위프트 가입 후 비자카드 발급 업무를 개시했고 한미로얄센터를 연 뒤 홍콩사무소를 홍콩지점으로 격상시켰다. 1994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처음으로 신규 해외지점을 냈다.
1995년 대한상공회의소로부터 제1회 기업혁신운동 수범사례 금상을 받고 1996년 한미파이낸스를 세웠고 12월 총수신 8조원을 돌파했다. 1998년 3월 9일에는 정보통신부 우정국과 업무 제휴를 맺어 우체국의 금융 창구를 통한 거래가 가능해졌고 한국씨티은행으로 바뀐 후 2011년 7월 1일에 ATM까지 공동망을 전면 개방했다. 그러다가 1998년 6월에 퇴출은행으로 지정된 지방은행인 경기은행 자산을 자산부채이전(P&A) 방식으로 인수하면서 인천광역시 관내 점포망이 확대됐다.[3] 1999년 6월 18일에는 인천광역시 남동구 구월동의 경기은행 본점 건물을 360억원에 사들여 한미은행 인천영업부로 변경하고 전산센터도 인천영업부에 설치했다.
구월3동 인천영업부 전경. 바로 뒤의 까르푸는 현재의 홈플러스 구월점이다.
이후 당기순손실이 3,960억 원에 이르는 바람에 외자 유치에 나섰고 기나긴 줄다리기 끝에 2000년 9월 4일 미국의 사모 펀드 중 하나인 칼라일이 대주주로 올라섰다. 이 무렵에 규모를 키우려던 하나은행과 합병 논의도 있었지만 칼라일이 합병 시너지를 낮게 평가해 2001년 1월에 백지화됐다. 심지어 BOA조차 2001년 주요 주주에서 제외된 뒤 사실상 철수했고 칼라일은 2003년 말 한미은행 지분 매각을 선언했다. 국내의 타 은행들이 규모를 키우고자 눈독을 들여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여기에는 영국 스탠다드차타드 등 외국계 은행들 역시 참여하였다.
그러나 인수에 반대하는 노조와 직원들의 격렬한 반대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결국 2004년 2월에 미국 씨티그룹이 3조 원에 인수하는 것으로 확정되었다. 이후 한미은행 측 고용 승계 문제, 전산 통합 문제 등으로 노조가 2004년 6월 25일부터 2004년 7월 12일까지 무려 18일 동안의 장기 파업[4]을 하는 등의 진통이 있었으나 씨티그룹 측의 대폭 양보로, 마침내 2004년 11월 1일 한국씨티은행으로 출범했고 하영구 한미은행장도 한국씨티은행장으로 자동 취임했다.
2.1. 역대 로고
<rowcolor=#fff> 1983년 3월 ~ 1994년 7월 | 1994년 8월 ~ 2002년 12월[5] | 2003년 1월 ~ 2004년 11월 |
3. 역대 수장
- 한미금융 사장
- 이경훈 (1981~1982)
- 한미은행장
4. 자회사
- 한미캐피탈: 2006년 MBK파트너스 자회사 '오세이지유한회사'에 매각되었다가 2007년 우리금융그룹에 재매각 후 우리파이낸셜로 바뀌었으나, 2014년 KB금융지주에 매각되어 KB캐피탈로 사명변경.
- 한미파이낸스: 1999년 폐업.
5. 여담
- 한미은행장이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게시물이 인터넷에 꾸준히 돌고 있다.
- 수수료 지옥으로도 유명했는데 오죽하면 수수료의 10%를 환급해 주는 한미 OK캐쉬백 통장이 거의 주력 상품이었을 정도. 씨티은행과 합병한 이후에도 씨티 OK캐쉬백 통장으로 살아남았었으나 씨티원 통장 등이 런칭되면서 없어졌다. 신세계와도 관계가 깊은데 1998년부터 카드 제휴업무를 맡다가 2000년에 신세계로부터 카드사업부를 인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