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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론 Πύρρων | Pyrrho |
|
이명 |
엘리스의 피론 Πύρρων ὁ Ἠλεῖος | Pyrrho of Elis |
출생 | 기원전 360년경 |
그리스 엘리스 | |
사망 | 기원전 270년경 |
그리스 엘리스 | |
직업 | 철학자 |
학파 | 회의주의 학파 (창시) |
[clearfix]
1. 개요
회의주의 학파의 창시자.2. 생애 및 일화
피론은 엘리스[2] 사람으로 플레이스타르코스의 아들이다. 그는 처음엔 명성이 없었고 가난한 화가였다.[3] 이후 스틸폰[4]에게 배웠고 그 후 아낙사르코스[5]를 따라다니면서 인도의 나체 현자와 마고스[6]들을 만나며 교류했다. 한번은 어떤 인도사람이 아낙사르코스를 비난하며, '그가 왕의 궁정에서 봉사하고 있는 한, 다른 누군가를 훌륭하게 가르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듣고는 깨닫는 바가 있어, 은둔해서 고독하게 살기 시작했다고 한다.그는 동시대인들과 다르게 산파였던 자신의 누이와 같이 살면서 때에 따라서는 가축들을 팔러 몸소 시장에 가져가기도 했고 스스럼없이 집안 청소를 하기도 했다. 또한 스스럼없이 돼지를 씻기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또한 언제나 똑같은 마음 상태를 가지고 있어서, 비록 어떤 사람이 그가 말하는 도중에 그를 내버려 두고 가더라도 자신에게 그 이야기를 끝까지 다 했다고 한다. 이렇듯, 평소에도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걸고 대답하는 것을 즐겼는데, 주변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묻자 "훌륭해지는 연습을 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또 한번은 아낙사르코스가 물웅덩이에 빠졌는데 그가 옆을 지나가면서도 도와주지 않았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를 비난했지만, 아낙사르코스는 도리어 제자의 '무차별심'과 '무심함'을 칭찬했다.
심지어 그는 그의 염증부위에 염증치료제를 바르고 그 부위를 수술하는 중에 이맛살조차 찌푸리지 않았다고 사람들은 전한다.
무엇보다도 그와 관련해서 가장 유명한 일화는 바로 '폭풍 속의 돼지'일 것이다. 그는 자신과 함께 배를 탄 승객들이 폭풍으로 인해 낯빛이 흐려지자, 그는 그런 폭풍 속에서도 한 구석에서 평온하게 먹이를 먹고 있는 돼지를 가리키며, "현자란 이와 같은 평정심 가운데 자신을 유지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참지 못하는 것도 있었다. 그는 그에게 질문하는 사람들에 의해 들볶이게 되자, 겉옷을 벗고는 그대로 강에 뛰어들어 그 강을 건넜다고 한다.
피론은 조국에서 대단히 존경을 받고 대신관의 자리에까지 앉았으며, 자신으로 인해 모든 철학자들에게 세금이 면제되는 법안이 가결되기도 했다. 그는 90세 가까이 살다가 죽었다고 전해진다.
3. 사상
3.1. 회의주의
그는 파악불가와 판단중지의 형태를 도입해 참으로 고귀하게 철학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어떤 것도 아름답지도 추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부정의하지도 않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모든 것의 경우에 어떤 것도 진실로 그런 것은 없고 법과 관습에 따라 사람들은 모든 것을 행한다고 말했다. 하나하나의 것이 이렇기보다 저렇다고 할 것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7]
피론은 어떤 것도 진실로 그런 것은 없기 때문에, '이것의 본성은 이렇다'라고 말하는 대신에 '그것은 내게 이렇게 보인다' 혹은 '그것은 그러할 것이다'라는 식으로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프로타고라스처럼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단순한 회의주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탐구를 지속해야 한다는 것까지를 말한다. 인간은 보통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은 분명하다고 해서 그것을 무작정 진리로 받아들이지만, 우리는 단지 감각기관들을 통해 나에게 나타나는 것만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에게 드러나지 않는 면을 결코 '안다'라고 확신해선 안되며, 우리에게 드러나는 면만을 그저 탐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자신에게 감각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는 섣불리 규정하지 않고 판단을 보류하고 탐구를 계속하자는 의미에서의 판단중지를 말하며, 이를 에포케(판단중지; epoche)라 한다.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7]
생각되는 것들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에 대해, ㅡ심지어 우리의 감각조차도ㅡ 피론은 10가지를 제시한다. 첫번째는 생물마다 즐거움과 고통, 해악과 이익에 대해 차이가 있으므로, 동일한 것들로부터 동일한 인상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오고 이 때문에 이와 같은 다툼은 판단을 중지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사람에 따라 원하는 것이 다르다. 셋째는 감각 통로의 차이에 따라 다르다. 넷째는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다르다. 다섯째는 교육방식과 법률과 신화적 믿음과 관습적 협약, 독단적 가정에 따라 다르다. 여섯째는 어떤 것도 순수하게 그 자체로 나타나지 않고 다른 것과 혼합되기 때문에 다르다. 일곱째는 거리와 장소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 다르다. 여덟째는 양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있다. 아홉째는 익숙함에 따라 다르다. 열번째는 오른쪽 왼쪽처럼 비교에 따라 다른 것이다.
또한 그는 진리에 이르는 모든 '증명'과 '기준'과 '표시'[8]와 '원인'과 '운동'과 '배움'과 '생성'과 '본래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차례대로 부정한다.
따라서 각각의 생각들은, 어느 쪽이 '더 좋다'거나 '더 나쁘다'로 섣불리 판단해선 안된다. 각각의 주장은 그것이 인간의 생각인 한에서 모두 동일한 무게의 근거를 지니고 있으며,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맞다고 확언하는 것은 인간을 다툼에 빠지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공통의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독단론자[9]들이 자신들이 파악했다고 주장하면서 논변으로써 확신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우리는 이를 불분명한 것으로 보아 판단을 중지하고 그 상태만을 끊임없이 탐구하자고 말해야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세상에 절대적인 진리는 없다는 피론의 주장은, 세상의 진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모든 학파들의 학설을 뒤집어엎어 버린 셈이 되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문제가 생긴다. 그렇다면 피론은 '모든 진리가 없다'라는 '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또다른 진리이므로 독단론이 아닌가? 하지만 피론에 따르면, 그 진리는 '진리가 있다'는 독단을 없앤 이후에는 스스로 소멸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피론은 거기에 대해서도 또다시 '판단중지'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설사약이 배출물을 배출하고서는 자기 자신도 배출되고 소멸되는 것과 같다.[10]
4. 여담
- 몽테뉴는 《수상록》에서 '피론과 돼지'의 일화를 소개한 뒤 "우리가 자랑으로 여기는 이성이 오히려 평정을 잃게 하고, 지식이란 게 우리의 처지를 '피론의 돼지'보다 못하게 만든다면 이성과 지식이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면서, 이성의 확실성이 삶의 평온함을 가져다 주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 피론주의를 단순한 상대주의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데, 피론주의는 '절대적'인 것은 없으니까 끊임없이 '탐구'하자는 것이다. 즉 '탐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것을 '시도'나 '관찰', '개선'이라고 말해도 된다. 이러한 '탐구 정신'은 르네상스 시기, 몽테뉴와 샤롱 등에 의해서 광범위하게 퍼져서 프랜시스 베이컨이 고전적 경험론( 귀납법)을 탄생시키는데 영향을 미쳤다.
[1]
로마 시대의 수집상들은 고대 그리스 유명 조각가의 작품을 대량 복제하여 수집하는 데 열을 올렸는데, 그 복제품을 로만 카피(Roman copy)라고 한다. 위 작품도
코르푸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피론 흉상으로써, 로마시대 때 만들어진 로만 카피다.
[2]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서쪽에 위치했던 지역. 이 지역의
올림피아에서 제1회 올림픽이 열렸다.
[3]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그가 살던 엘리스의 체육관에는 괜찮은 수준의 그의 횃불경기 그림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4]
논변에 뛰어났다. 얼마나 말을 잘했던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그를 논박하러 왔으나 결국 그들 모두를 자신의 열렬한 추종자로 만들었다고 한다.
[5]
알렉산더 대왕에게 조언을 했던 철학자였으며, 부동심(apatheia; 아파테이아)과 만족할 줄 앎(eukolia; 에우콜리아)을 실천하면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헷갈리기 쉽지만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아낙사르코스'이지,
아낙사고라스가 아니다.
[6]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 사제들. 매지션(마법사)의 어원이다.
[7]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277
[8]
표시(semeion): 감각할 수 없는 것들을 추론할 수 있는 감각적 기초가 되는 것을 말한다.
[9]
스토아주의를 겨냥한 말이다. 스토아주의는 세상과 삶에 논리적 정답이 있다고 주장한다.
[10]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288~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