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탬파베이 레이스/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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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창단까지 과정2. 데블레이스 시절
2.1. 1998~20052.2. 2006~2007 시즌
3. 레이스 시절4. 역대 성적

1. 창단까지 과정

파일:where-is-tampa-fl.jpg
플로리다의 탬파 지역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메이저리그 구단 유치를 위해 노력해왔다. 메이저리그의 구단 확장 움직임이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이를 유치하기 위해 움직였지만, 그 과정은 상당히 험난했다.

198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일리노이 주 신구장 건설이 불발될 경우 연고지를 탬파베이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했는데, 일리노이 주의회는 신구장 건설과 관련한 표결의 마감 시간을 넘기도록 합의에 이르지 못했고, 이를 중계하던 탬파 지역 방송국들은 구단 유치를 미리 축하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리노이 주지사 제임스 톰슨이 의사당 시계를 일부러 고장낸 뒤 의원들을 설득, 결국 신구장 건설을 가결했고, 톰슨 주지사는 "의사당 시계가 마감 시간을 넘기지 않았기 때문에 적법하다."라는 말을 남겨 이를 보던 탬파 지역 사람들이 분통터지게 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인수해 연고를 옮기려는 시도도 이루어졌다. 구단 매각과 연고 이전이 모두 합의가 된 상태였지만 샌프란시스코 팬들의 반대와 함께 기존 구단주들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이 또한 무위로 돌아갔다.

1993년 리그 확장이 결정됐을 때는 최종적으로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플로리다 말린스가 창단되는 것이 결정되면서 결정되면서 세 번째로 구단 창설에 실패한 탬파는, 끝내 1995년 메이저 리그의 추가 확장 움직임에 발맞춰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함께 구단 유치에 성공했다. 오랫동안 탬파 지역 구단 유치에 앞장선 빈스 나이몰리가 구단주가 되었고, 1998년부터 탬파베이 데블레이스라는 이름으로 메이저 리그에 참여하게 되었다. 참고로 애리조나와 탬파베이의 창단은 2021년 지금까지 메이저 리그의 마지막 신생팀 창단이다.

참고자료

2. 데블레이스 시절

2.1. 1998~2005

1998년 3월 31일,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나온 데블레이스의 1호 기록들

1호 투구: 윌슨 알바레즈[1]

1호 안타: 데이브 마르티네즈[2]

1호 홈런: 웨이드 보그스

번외: 보그스의 3,000번째 안타[3]

1998년부터 아메리칸리그에 가세한 탬파베이가 10년간 기록한 성적은 5팀 중 5555554555.[4] 10년간 평균 승률이 4할이 안된다. MLB를 대표하는 최강팀이자 빅마켓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역시 1990년대 팀 페이롤 1위를 각각 찍을 정도로 제법 큰 시장을 가진 토론토 블루제이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같은 지구에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같은 시기에 창단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가 마찬가지로 타이트한 NL 서부를 뚫고 월드 시리즈 우승까지 거머쥔 걸 생각하면 데블레이스의 부진은 심각했다.

여기에는 구단주 빈센트 나이몰리와 단장 척 라마의 삽질이 주효했다. 나이몰리 구단주는 '인터넷은 한때의 유행'이라면서 2005년 물러날 때까지 직원들의 이메일을 금지하고, 직원들이 사용할 연필 한자루 주문시에도 자신이 직접 모든 서류를 읽어보고야 결재하던 구시대 인물이었다. 거기에 흥행이 안된다면서 팀을 닦달하면서도, 음식물 반입금지 규정을 내세워 관광버스를 3시간을 타고 온 노부부를 견과류 한 봉지 때문에 경기장에서 내쫓는가 하면,[5] 경기 중에 바깥음식을 가지고 들어온 사람이 보이면 그에게 다가가서 어느쪽 입구로 들어왔는지 물어본 후 그쪽 입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즉석에서 해고하기도 하고, 기자석에서 피자를 먹던 기자도 끌어내려다 실패한 적도 있고,[6] 경기 전 미국 국가 연주를 위해 초대한 지역 고등학교 밴드한테 고액의 입장권을 사라고 강요하는 등의 막장 행각을 선보여서 지역주민들과 언론의 공공의 적이 되었다.[7] 물론 나이몰리 구단주가 탬파에 메이저리그팀을 유치하기 위해서 몇 년 동안 지역을 대표해서 솔선수범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인 사람이었다는 공은 모두가 인정했지만, 그의 능력은 거기까지만이었고 구단주로서는 능력은 빵점이었다.

여기에 단장인 척 라마는 무능함의 극치로, 꾸준한 꼴찌의 보상인 드래프트에서 이해할 수 없는 상위픽 지명을 하고 트레이드도 못하면서 팜을 개박살 내버렸다. 기껏 확장 드래프트로 영입한 바비 아브레우를 별 볼일 없는 유격수 케빈 스토커를 받고 필라델피아로 트레이드 시키는가 하면, 콜로라도에서 5년간 평균 3할의 타율에 세 번을 40홈런을 넘긴 강타자 비니 카스티야를 트레이드해왔지만, 2년 전 타율 0.319에 46홈런을 치던 그는 2000년 탬파에서 타율 0.222/출루율 0.254/장타율 0.308을 찍었다. 장타율이 전성기 적 타율만도 못 나온 셈.

이렇듯 성적에만 조급한 막장 짠돌이 구단주와 이런 구단주를 견제하지 못하는 무능한 단장의 시너지 효과로 탬파베이는 창단 동기 애리조나처럼 돈을 퍼부어 강력한 팀을 만든 것도 아니고, 유망주도 충분히 키우지 못했다. 선수들을 충분히 확보하지도 못하면서 한물 간 노장선수들에게 돈은 돈대로 썼다.

게다가 탬파 지역은 NFL 버커니어스[8]를 위시한 미식축구팀과 올랜도 매직이 인근해있는 NBA가 강세인 지역. 그래서 마켓도 작은데 늘 지고있으니 꿈도 희망도 없는 팀이었다. 거기에 NHL 라이트닝이 뜬금없이 스탠리컵을 우승하면서 그쪽으로 팬덤이 빠져나간건 덤이다.[9] 그리고 후술할 것처럼 홈 구장 트로피카나 필드의 입지도 최악이라서 관중 동원에 악영향을 미쳤고, 이는 탬파베이가 도시 인구와 광역 인구에 비해 지나치게 스몰 마켓이 되어버리는 원인이 되었다.

다만 탬파가 미국을 대표하는 휴양도시이기 때문에[10] 선수생활 말년의 왕년의 스타들이 마지막으로 뛰는 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웨이드 보그스가 대표적인 선수로 1999년 탬파베이에서 3000안타를 치고 은퇴해 탬파베이 최초의 영구 결번 선수가 되었다.[11] 그외에 약물로 악명 높은 호세 칸세코, 탬파 출신으로 양키 왕국의 중심타자로 활약했던 티노 마르티네즈 등이 거쳐갔다.

2003년에 탬파 출신의 대스타였던 루 피넬라 감독을 사상 초유의 선수 ⇔ 감독 트레이드[12]로 영입하며 분위기 반전을 꾀했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2004 시즌 중반 갑자기 연승을 몰아치더니 '잠깐' 5할 승률을 달성한 적도 있었다. 이것은 탬파베이 역사상 거의 최초. 그러나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고 알동 빅3와의 격차는 여전히 줄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그 해에 처음으로 볼티모어 오리올스를 재끼고 4위를 기록했다는 것. 팀 역대 최초의 70승으로 창단 이후 10년 중 제일 높은 성적이다. 물론 이듬해 67승으로 다시 5등으로 돌아갔다(...).

그래도 이 즈음 젊고 유망한 타자 여럿이 좋은 성적을 내면서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 칼 크로포드, 로코 발델리, 호르헤 칸투, 자니 곰스 등이 주목받았고, 팀의 4번타자 오브리 허프[13]가 건재했으며, 대형 유망주 B.J. 업튼도 2004년 처음 메이저 무대를 밟았다.[14]

그러나 문제는 이 타자들 대부분이 성장하지 못한 채 망해버렸다는 것. 3년간 유틸리티로 굴리던 오브리 허프는 결국 2005년 OPS 8할이 무너지는 성적하락을 겪고, 2006년 페이스가 올라올 즈음 해서 트레이드되었다. 자니 곰스는 2005년 101경기에서 20홈런을 기록하고 타출장 3/4/5에서 타율과 출루율만 살짝 모자란, OPS 9할을 기록하는 아름다운 비율스탯을 기록하며 적잖은 기대를 받았으나, 2006년부터 급속도로 공갈포화가 진행되면서 더 성장하지 못했고 여기에 마이너에서부터 좋지 않았던 수비력도 발전이 없는 채 정체되며 좌투 전문 플래툰 요원 및 대타요원으로 자리잡는 데 그쳤다. 호르헤 칸투는 2005년 2루와 3루를 오가며 28홈런에 OPS 8할대를 기록해 차세대 거포로 기대받았지만, 19볼넷/83삼진이라는 극악의 선구안이 발목을 잡으며 2005년이 커리어 하이가 되어버린 채 정체되며 2007년 시즌 중 트레이드, 2008년 플로리다 말린스에서 29홈런을 기록한 것을 마지막으로 꾸준히 내리막길을 걸었다.[15] 로코 발델리는 2003년 데뷔시즌부터 건실한 중견수 수비와 적절한 타격능력으로 2년간 탬파의 주전 중견수로 활약했으나 2005년 시즌을 앞두고 전방 십자인대 파열로 이탈하더니 재활 도중 팔꿈치까지 다쳐 토미 존 서저리까지 받으며 1년 반을 날렸고 복귀 이후에도 갖은 병치레로 커리어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 탬파베이의 주요 유망주 타자들 중 성공적인 커리어를 계속 이어나간 선수는 칼 크로포드 한 명뿐이었다.

더 큰 문제는 타선은 그래도 유망주라도 나왔지, 투수진은 그보다도 심각한 수준이었다. 2004년까지는 선발진에 믿을 투수 하나 없었고, 그나마 2005년 스캇 카즈미어가 선발진에 자리를 잡고 뛰어난 구속과 구위를 바탕으로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받은 정도. 그나마도 카즈미어를 제외하면 괜찮은 선발은 없었고, 불펜도 데니스 바에즈의 2년간의 활약을 빼면 전반적으로 불안했다.

2.2. 2006~2007 시즌

2005시즌이 끝나고 만악의 근원 나이몰리 구단주가 물러나고 월가 출신의 스튜어트 스턴버그[16]가 새 구단주로 들어섰고, 실버맨 사장, 앤드류 프리드먼 단장, 조 매든 감독 체제로 팀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2006년과 2007년에 전체 3픽, 전체 1픽으로 팀의 투타 기둥이 될 에반 롱고리아 데이비드 프라이스를 지명한 것을 비롯, 팜이 좋아지기 시작했다.[17][18] 2007년에는 꾸준히 팀 타선을 리드한 칼 크로포드에 더하여, 저니맨이 되면서 잊혀지던 카를로스 페냐와 메이저에 적응하지 못하던 유망주 B.J. 업튼이 완벽한 활약을 해주면서 기대감을 높였다.

문제는 여전히 무너져있는 투수진. 2007년 탬파베이는 944실점으로 암흑기 10년 중에서도 최악의 투수력을 기록했다. 제임스 실즈 스캇 카즈미어의 원투펀치는 구축되었지만 5점대 후반 방어율의 에드윈 잭슨과 앤디 소낸스타인이 3-4선발을 지켰다. 5선발은 방어율 7.70의 케이시 포섬, 6.14의 제이슨 해멀[19], 7.59의 J.P. 하웰, 8.13의 서재응.[20] 여기에 불안한 수비진이 투수진에 더욱 부담이 되고 있었다. 이에 프리드먼은 결단을 내려 2003년 드래프트 전체 1픽인 델몬 영를 내주고 선발 유망주 맷 가자를 받아오는 것을 중심으로 한 미네소타와의 3:3트레이드를 단행한다. 탑 유망주를 교환한 흔치 않은 트레이드인 만큼 결과를 놓고 예측이 분분했는데, 결국 이 트레이드는 탬파베이의 완전한 승리가 된다. 맷 가자가 기존의 실즈, 카즈미어와 강력한 3선발을 구축했고, 델몬 영과 브렌던 해리스 두 마이너스 수비수가 나가고 들어온 유격수 제이슨 바틀렛도 뛰어난 수비와 쏠쏠한 타격으로 좋은 활약을 했다.[21]

3. 레이스 시절

2008년 구단명을 데블 레이스(Devil Rays)에서 그냥 레이스(Rays)로 바꾸었다. 여전히 가오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의 뜻도 가지고 있어 팀 로고 등에 빛, 섬광 등의 이미지를 차용했다[22]. 참고로 구단 명을 바꿀 때의 슬로건이 "악마(Devil)를 쫓아내라!". 상당히 재치있다.

그렇게 레이스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 출발을 했고, 2008년 이전 10년동안 70승이 최다승이었던 팀이 이후 6년동안 5번의 90+승을 만들어 낼거라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번 못한 2009년에도 84승으로 5할 승률을 넘겼다. 2014년 이후로도 90승을 두 차례 기록하고 2020년에는 단축 시즌 가운데 60경기 40승으로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2위를 기록하는 등, 말 그대로 환골탈태한 모습을 보여주는 중. 월드 시리즈도 2008년 2020년 두 차례 진출하기도. 이 기간동안 탬파베이보다 더 많은 90승 이상 시즌을 기록한 팀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8번) 한 팀 뿐이며, 탬파베이와 똑같이 7번의 90승 이상 시즌을 기록한 팀도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 두 팀 뿐이다. # 특히 2018년은 시즌 종료 시점 기준으로 30개 구단 중 가장 낮은 페이롤로 90승에 성공하는 등, 스몰마켓 구단의 모범 사례로 자리 잡게 되었다. #

MLB.com 선정 2010년대 레이스의 명장면 Top 10

3.1. 2008~2010 시즌


2008시즌에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를 제치고 97승을 거두며 아메리칸 리그 동부지구 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간 차곡차곡 유망주들을 모으고 팜 시스템을 다진 것이 드디어 결과로 돌아왔으며, 월가 투자은행 출신인 신임 단장 앤드류 프리드먼과 믿음의 야구를 구사하고 열린 마인드의 소유자인 조 매든 감독의 지휘 하에 끈끈한 팀 조직력을 다진 덕이었다. 또한 막 인기를 얻어가던 세이버 메트릭스를 적극적으로 팀에 적용하며 수비 시프트, 프레이밍, 주루 등 저평가된 가치를 통해 새로운 머니볼을 구축해나갔다.

2007년에 가능성을 보인 타선이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된 반면, 2007년에 여유롭게 전체꼴지였던 투수진은 2008년 AL 평균자책점 2위를 찍는, 믿기지 않는 전력상승을 실현했다. ALCS에서는 동부지구 우승 경쟁을 했던 보스턴을 제치고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기적을 일궜다. 비록 필라델피아 필리스에게 져 기적은 멈추긴 했지만 메이저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인상적인 한 해를 보냈다. 그리고 이 모든건 메이저리그 29위의 페이롤로 이루어낸 성과였다.

2009시즌에는 84승 78패를 기록해 5할 승률 이상을 유지했다. 물론 시즌 중 두자릿 수 연패를 찍으면서 리그 우승은 양키스에게, 와일드카드 경쟁에서는 레드삭스에 밀려 지구 3위에 머물었지만 팀 내 프랜차이즈 스타인 칼 크로포드를 비롯한 에반 롱고리아, 데이빗 프라이스, 맷 가르자, 스캇 카즈미어 등의 대다수의 저비용 고효율의 젊은 선수이 꾸준한 활약을 보여주면서 전년도의 지구 우승은 우연이 아님을 보여줬다. 젊은 선수들을 무리하지 않는 가격으로 장기 계약을 체결하면서 갑툭튀한 팀이 몰락으로 이어지는 재정난과도 거리가 먼 팀 운영을 했다. 다만 향상된 성적에도 불구하고 구장의 여러 문제로 관중 동원은 여전히 문제였다는 점이 아쉬웠다.

2010시즌에는 96승 66패로 AL 동부 1위이자 AL 전체 1위, 필라델피아 필리스에 이은 ML 전체 2위를 기록했다. 이후 ALDS에서 텍사스 레인저스와 격돌하였으나 클리프 리의 원맨쇼에 관광당하며 시리즈 2승 3패로 석패. 아쉬운 시즌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3.2. 201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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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와의 시즌 최종전. 탬파베이는 기적적인 시즌의 끝에 이 경기를 클라이맥스로 장식하고 극적으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게 된다. 자세한 내용은 2011 MLB 와일드카드 레이스 문서 참조.

3.3.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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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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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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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매든- 앤드류 프리드먼 체제 아래 마지막 시즌. 이 시즌을 끝으로 팀의 슈퍼스타 데이비드 프라이스 벤 조브리스트도 팀을 떠나는 등 팀이 다시 한번 개편되었다.

3.6.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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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2016 시즌

시즌 중반까진 그래도 선전하다가 6월 16일~7월 16일 동안 연승없이 11연패, 8연패를 포함하여 3승 24패를 기록하며 무너졌다. 결국 68승 94패로 압도적인 지구 꼴찌, 메이저리그 공동 28위라는 처참한 성적을 내며 데블레이스 시절이던 2007년 이후 처음으로 70승 미만의 폭망성적을 거두며 오랜만에 드래프트 상위 순번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루었다.[23]

이전 시즌과 마찬가지로 공갈포 물타선을 개선하지 못하고, 선발진마저 사이영상 후보로 주목받던 크리스 아처가 초반부터 흔들리며 팀컬러와 맞게 홈런머신이 되며 패를 적립하기 시작, 후반기에 정신을 차렸으나 이미 버스는 떠나갔고 결국 200이닝은 넘겼으나 9승 19패 ERA 4.02를 기록하며 최다패의 멍에를 썼다.

그나마 위안인 것은 2선발인 제이크 오도리지가 10승 3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며 체면치레를 했고, 알렉스 콜로메 브래드 박스버거의 부상을 계기로 보직을 옮긴 것이 히트를 쳐 ERA 1.91, 37세이브로 단숨에 리그에서 손꼽히는 마무리로 위상이 올라가게 되었다..

3.8. 2017 시즌

8/27일 기준으로 64승 67패 4위로, 1위인 보스턴 레드삭스와 10게임 차이가 난다. 뉴욕 양키스 보스턴 레드삭스의 기세가 워낙 무서운지라 리그 선두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에, 와일드카드 결정전 가능권을 지키느냐가 트레이드 기한에 알렉스 콜로메, 크리스 아처 등 주요 매물들의 세일을 단행하느냐 마느냐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 성적은 80승 82패로 아메리칸리그 동부 3위. 스티븐 수자 주니어, 로건 모리슨이라는 공갈포들이 밥값 이상 해줬고[24] 코리 디커슨도 히트를 쳤으나 정작 다른 선수들은 영 좋지 못했고, 팀은 컨텐더 목적으로 댄 제닝스 스티브 시섹을 데려왔지만 망했어요...

3.9. 2018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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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rays20patch.jpg
20주년 기념 패치
창단 20주년을 맞이하는 시즌이자, 프랜차이즈 스타 에반 롱고리아의 트레이드 후 첫 시즌. 불안한 선발 뎁스로 우려를 샀으나 오프너 전략을 위시한 참신한 운용으로 오랜만에 90승 달성에 성공했다.

3.10. 2019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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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의 좋은 기세를 이어나가며 2013년 이후 6년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성공했다.

3.11. 2020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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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해 60경기 단축 시즌으로 진행된 시즌. AL 전체 승률 1위를 기록했고, 2008년 이후 12년만에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다.

3.12. 2021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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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인한 재정 문제로 주축 선발 투수 두 명을 내보냈지만, 탄탄한 뎁스와 불펜진의 활약으로 2년 연속 디비전 우승을 거머쥐었다.

3.13. 202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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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선의 잦은 부상으로 고생한 시즌. 마운드의 힘으로 와일드 카드 획득에 성공했지만, 결국 물타선이 발목을 잡아 포스트시즌은 조기에 마감했다.

3.14.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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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초반 화끈한 타격을 앞세워 선두로 치고 나갔지만, 중반 이후 타선의 페이스 저하, 완더 프랑코의 사생활 문제로 인한 이탈, 투수진의 줄부상이 전부 발목을 잡아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지구 우승을 내줬다. 그럼에도 시즌 99승을 챙겨 동부지구 2위에 올랐지만, 와일드카드 시리즈에서 텍사스 레인저스를 만나 작년에 이어 또 2연패로 광탈하며 아쉬움을 삼켰다.

3.15.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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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역대 성적

{{{#!wiki style="margin: -10px -10px" <tablewidth=320><tablebordercolor=#092c5c><tablebgcolor=#092c5c> 파일:탬파베이 레이스 엠블럼.svg 탬파베이 레이스
역대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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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mpa Bay Devil Rays
<rowcolor=#fff> 시즌 리그 지구 순위 포스트시즌
1998 AL 동부 5위 63 99 -
1999 5위 69 93
2000 5위 69 92
2001 5위 62 100
2002 5위 55 106
2003 5위 63 99
2004 4위 70 91
2005 5위 67 95
2006 5위 61 101
2007 5위 66 96
<rowcolor=#000> TBD 총합 AL 동부 평균 4.9위 645 972 진출 0회
Tampa Bay Rays
<rowcolor=#092c5c> 시즌 리그 지구 순위 포스트시즌
<rowcolor=#092c5c> 시리즈 상대 승패 전적
2008 AL 동부 1위 97 65 ALDS CWS 3-1
ALCS BOS 4-3
WS PHI 1-4
2009 3위 84 78 -
2010 1위 96 66 ALDS TEX 1-3
2011 2위 91 71 ALDS TEX 1-3
2012 3위 90 72 -
2013 2위 92 71 ALWC CLE 1-0
ALDS BOS 1-3
2014 4위 77 85 -
2015 4위 80 82 -
2016 5위 68 94 -
2017 3위 80 82 -
2018 3위 90 72 -
2019 2위 96 66 ALWC OAK 1-0
ALDS HOU 2-3
2020[1] 1위 40 20 ALWC TOR 2-0
ALDS NYY 3-2
ALCS HOU 4-3
WS LAD 2-4
2021 1위 100 62 ALDS BOS 1-3
2022 3위 86 76 ALWC CLE 0-2
2023 2위 99 63 ALWC TEX 0-2
<rowcolor=#000> TB 총합 AL 동부 평균 2.5위 1267 1062 진출 10회 / WS 준우승 2회, DS 탈락 5회, WC 탈락 3회
<rowcolor=#000> 총합 AL 동부 평균 3.7위 1912 2034 진출 10회 / WS 준우승 2회, DS 탈락 5회, WC 탈락 3회
<colcolor=#000> 범례
볼드체: 해당 시즌 포스트 시즌 진출
빨간색: 해당 시즌 지구 1위
파란색: 해당 시즌 지구 최하위
[1] 코로나로 인한 60 경기 단축시즌



[1] 포수는 존 플래허티, 상대 타자는 브라이언 헌터, 주심은 리치 가르시아였다. [2] 워싱턴 내셔널스 감독인 그 분 맞다. [3] 1999년 8월 7일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달성. 참고로 사상 최초로 3천번째 안타를 홈런으로 기록한 선수다. 이후 데릭 지터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3천번째 안타를 홈런으로 때려냈다. [4] 롯데 8888577, LG 6668587667, 한화 5886899678, 이 3개의 상위 버전이다. [5] 심지어 이 노부부가 이 캐슈를 가지고 들어가려는 이유는 요깃거리 하려는것도 아니고 당뇨병 때문이었다. 당뇨병이 있는 사람은 당이 떨어지면 목숨까지 위태로워진다. 결국 이 노부부는 경기가 끝나고 같은 관광버스를 타고왔던 사람들이 돌아올 때까지 3시간 이상을 구장 주차장에 세워둔 관광버스 안에서 기다려야 했다. [6] 이 시대에는 공식적으로 기자석에서 음식을 먹으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기는 했었지만 사문화된 규칙이었다. [7] 후술할 <그들은 어떻게 뉴욕 양키스를 이겼을까>에 당시 구단의 막장 행각이 잘 나와 있다. [8] 글레이저 가문 소유. 즉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같은 구단주다. [9] 진짜로 종목 불문하고 웬만한 미식축구 팀이 아니라면 스몰마켓 팀들은 같은 동네의 다른 종목 팀이 좋은 성적을 내면 관중 동원력에 악영향이 있다. 2009-10 스탠리컵 챔피언 시카고 블랙호크스가 리글리 필드 삭스-컵스 게임에서 국가 제창을 하고 2010-11 챔피언 보스턴 브루인스가 펜웨이 파크에서 대규모 시구행사를 가진 사례도 있지만, 이건 빅마켓 클럽들이라 관중이 꽉꽉 들어차는 구장에서나 팬들이 대규모로 모여서 축하해줄 수 있는 것이다. [10] 주세 혜택 덕에 알렉스 로드리게스 데릭 지터같은 수억불 규모의 몸값을 자랑하는 스타들은 실주소를 탬파에 두고 일할 때만 자기 팀 있는 곳에 별장 사서 먹고 잔다. [11] 물론 이에 대해선 팬덤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보그스는 보스턴에서 11시즌을 뛰었고, 26번은 보스턴 영구결번이 되었으며(양키스에 제 발로 간 경력 때문에 2015년에야 됨) 명전도 보스턴 모자를 쓰고 들어갔는데, 탬파에선 고작 말년 2시즌만 뛰었으니... 워낙 인기가 없던 팀의 쇄신을 위해 "영구결번이 탐나면 탬파로"라고 꼬셨기 때문이다. [12] 피넬라 감독과 함께 내야수 유망주 안토니오 페레스를 데려왔는데, 반대급부로 내준게 무려 올스타 외야수였던 랜디 윈이었다. 라마 단장의 삽질 중 하나. [13] 4번타자로 한 시즌 30홈런을 쳐낼 수 있는 선수임에도 정해진 포지션 없이 유틸리티맨으로 뛰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참고로 이 중심타선+유틸리티맨 특징은 이후 벤 조브리스트가 이어받는다. 물론 활약은 조브리스트가 넘사벽으로 좋다. [14] 다만 이는 업튼의 성장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이후 업튼은 2005년 마이너에서만 1년을 보낸 뒤 2006년 다시 메이저로 올라온 뒤, 2007년부터 주전으로 자리잡았다. [15] 2014년에는 KBO 리그 두산 베어스에서 뛰기도 했다. [16] 헤지펀드를 운영하다 구단을 인수했다. 2015년 기준 개인재산 800m. [17] 라마 단장 시절 레이스는 상위픽 갖고도 좋지도 못한 유망주만 꼬박꼬박 모으면서 하위권에 머무는, 전형적인 총체적으로 안 되는 팀의 모습을 보였다. 1픽만 해도 조시 해밀턴, 데원 브라즐턴, 웨이드 타운젠드가 대표적인 실패사례. 비슷한 예시라면 데이브 리틀필드 단장 시절 피츠버그 파이리츠가 있다. [18] 한편으로는 또한 데이비드 프라이스 에반 롱고리아 외에 1라운더가 아닌 좋은 유망주도 많았다. 예를 들면 제레미 헬릭슨(4라운더), 맷 무어(8라운더), 데스먼드 제닝스(10라운더) 등등. 그만큼 탬파베이의 팜 시스템이 좋고 유망주를 잘 키운다는 의미이기도 한데, 앤드류 프리드먼 단장 부임 이후 탬파베이의 주요한 유망주 전략은 유망주를 급하게 러쉬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스몰마켓 팀들이 FA로 떠나는 선수들의 자리를 메꾸기 위해서 마이너에서 아직 더 있어야할 선수들을 메이저로 올리거나 AA에서 한 시즌 더 뛰어야 할 선수를 AAA로 올리는 식의 러쉬가 많은데, 이러한 근시안적인 콜업을 지양하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유망주들을 다룬다. 물론 서비스 타임 계산 때문에 콜업을 늦추는 MLB 대개의 스몰마켓 팀들이 쓰는 수법이기도 하지만, 막 메이저에 콜업된 롱고리아와의 장기계약 건 처럼 과감한 콜업과 계약도 마다하지 않는 유연성도 갖췄다. [19] 이후 콜로라도-볼티모어-컵스를 거치며 3선발급 투수로 성장한다. [20] 나중에 KBO리그로 오는 게리 글로버, 호르헤 칸투, 류제국 등도 이 때 이 팀 소속이었다. [21] 비교하자면 바틀렛의 탬파베이 3년 활약이 델몬 영 브렌던 해리스의 트윈스 성적을 합친 것보다 훨씬 낫다. 여기에 맷 가자까지 더하면 탬파베이의 압승. [22] 과거부터 사용했던 가오리 로고는 유니폼 소매 패치로 쓰고 있다. [23] 이때 탬파베이가 전체 4순위로 데려온 유망주가 현재 투타겸업을 시도중인 브렌던 맥케이다. [24] 특히나 로건 모리슨은 타율만 낮지 높은 출루율과 장타율을 기록하며 훌륭한 OPS 히터로서의 모습을 보여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