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카하시 미나미 AKB 그룹 내 주요 활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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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생 |
타카하시 미나미 [ruby(高橋, ruby=たかはし)]みなみ | Minami Takahash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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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373a3c><colbgcolor=#f576a3> 출생 | 1991년 4월 8일 ([age(1991-04-08)]세) |
도쿄도 하치오지시 | |
신체 | 148.5cm| AB형 |
별명 | 타카미나(たかみな) |
소속 그룹 | AKB48 팀 A |
그룹 경력 |
AKB48 1기생 AKB48 팀 A (2005~2015) 1대 총감독 (2012~2015) |
소속사 | 프로덕션 오기 |
링크 | |
SN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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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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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카하시 미나미 졸업곡「背中言葉」(등으로 하는 말) |
2005년 10월 30일,
AKB48의 최종오디션에 합격한 당신은, 14살이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아니,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지긋이 어른들을 관찰하는 것 같은 소녀였습니다.
그로부터 9년 반의 세월이 흘러,
다시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고 해보니,
솔직히 무엇을 써야 할까 모르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추억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단지,
어째서인지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던가.
“AKB48란 타카하시 미나미다.(AKB48とは、高橋みなみのことである。)”
나는 책의 띠지에 그렇게 적었습니다.
AKB48가 팔리지 않던 시절부터 멤버를 지지해주고, 스태프를 이끌어, 팬 모두와 정면에서 마주보아온 것은 당신입니다.
세간으로부터 비난받았을 때도, 당신은 도망치는 일 없이 그 작은 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불합리한 일도 잔뜩 있었겠죠. 그러나 당신은 불평이나 불만은커녕, 투정 하나 부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 멀고 먼 꿈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차기총감독으로 요코야마 유이를 지명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던 당신의 마음을, 아플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괴로운 포지션은 나 하나만으로 족해’라고 생각한 거겠죠.
많은 멤버가 자신의 꿈을 향해 떠나는 중에도, 당신은 미소 지으며 마중했고, 계속 이 AKB48 그룹에 남겨진 멤버들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마음처럼, 소녀가, 어린 형제들이 자립해나갈 때까지 자신의 꿈이나 미래를 뒤로 미뤄둔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의 AKB48에 대한 사랑에 응석부려버린 것을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아, 다음은 당신의 순서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꿈만을 생각할 순서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그 첫 걸음을 내딛으세요.
당신이 이 악물고 노력하는 그 모습을, 많은 후배들이 배웠습니다.
분명, 당신의 AKB48에 대한 사랑을 계승해주겠지요.
다음으로, 당신이 이곳을 떠났을 때, 바깥에서도 빛나고 있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세요.
멤버뿐 아니라, 모든 팬분들과, 많은 사람들의 용기가 됩니다.
노력은, 보답받는 거구나, 라고.
고마워. 지금까지 AKB48 그룹을 이끌어주어서.
고마워. AKB48 멤버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이 세상에 태어나주어서.
고마워, 타카미나.
생일, 축하해.
{{{#!wiki style="text-align:right"
아키모토 야스시, 2015년 생탄제 축하 편지}}}AKB48의 최종오디션에 합격한 당신은, 14살이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아니,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지긋이 어른들을 관찰하는 것 같은 소녀였습니다.
그로부터 9년 반의 세월이 흘러,
다시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고 해보니,
솔직히 무엇을 써야 할까 모르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추억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단지,
어째서인지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던가.
“AKB48란 타카하시 미나미다.(AKB48とは、高橋みなみのことである。)”
나는 책의 띠지에 그렇게 적었습니다.
AKB48가 팔리지 않던 시절부터 멤버를 지지해주고, 스태프를 이끌어, 팬 모두와 정면에서 마주보아온 것은 당신입니다.
세간으로부터 비난받았을 때도, 당신은 도망치는 일 없이 그 작은 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불합리한 일도 잔뜩 있었겠죠. 그러나 당신은 불평이나 불만은커녕, 투정 하나 부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 멀고 먼 꿈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차기총감독으로 요코야마 유이를 지명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던 당신의 마음을, 아플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괴로운 포지션은 나 하나만으로 족해’라고 생각한 거겠죠.
많은 멤버가 자신의 꿈을 향해 떠나는 중에도, 당신은 미소 지으며 마중했고, 계속 이 AKB48 그룹에 남겨진 멤버들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마음처럼, 소녀가, 어린 형제들이 자립해나갈 때까지 자신의 꿈이나 미래를 뒤로 미뤄둔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의 AKB48에 대한 사랑에 응석부려버린 것을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아, 다음은 당신의 순서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꿈만을 생각할 순서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그 첫 걸음을 내딛으세요.
당신이 이 악물고 노력하는 그 모습을, 많은 후배들이 배웠습니다.
분명, 당신의 AKB48에 대한 사랑을 계승해주겠지요.
다음으로, 당신이 이곳을 떠났을 때, 바깥에서도 빛나고 있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세요.
멤버뿐 아니라, 모든 팬분들과, 많은 사람들의 용기가 됩니다.
노력은, 보답받는 거구나, 라고.
고마워. 지금까지 AKB48 그룹을 이끌어주어서.
고마워. AKB48 멤버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이 세상에 태어나주어서.
고마워, 타카미나.
생일, 축하해.
{{{#!wiki style="text-align:right"
타카하시 미나미의 AKB48 활동을 서술한 문서.
2. 캐치프레이즈
불타는 투혼, 불타는 머리카락, 타카미나라고 하는 타카하시 미나미입니다.
[3]
[3]
3. 캐릭터 및 성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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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努力は必ず報われると、私、高橋みなみは、人生をもって証明します」 |
3.1. 성격
팬들과 멤버들이 평가하는 성격은 느긋하고 대인군자다우며 착실하고 올곧은 진정한 리더감. 덕분에 많은 팬과 멤버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리더 역할이 필요할 때는 더없이 훌륭한 리더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버라이어티에서는 언제나 멤버들에게 디스당하곤 한다. 하지만 화내는 일이 일절 없고 그냥 다 받아주는 편. 가끔 정말 민감한 내용까지 디스당하는 경우도 있지만 화내는 경우를 보여준 바가 없다. 심지어 본인보다 10기수 이상 차이나고 나이도 7~8살 정도 어린 까마득한 후배들이 디스하는데도 웃으면서 받아준다. 그래서인지 어린 후배들이 타카미나를 디스하는 걸 즐긴다.다만 공연 리허설이나 안무연습 중 타카미나가 자주 화를 내곤 하는데, 주로 멤버들이 집중하지 않을 때 화를 낸다. 한 사례로 공연 리허설 중 마에다 아츠코, 이타노 토모미, 오오시마 유코가 마사지를 받고 있었는데, 리허설 준비를 하던 중 타카미나가 몇몇 멤버가 안 보인다고 소리치자, 세 명이 놀라서 뛰어왔다고 한다. 그룹 전체 인원이 200명이 넘어가면서 확성기를 사용해 말을 하는데, 문제는 말이 너무 빠르고, 목소리 톤 변화가 심해서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주로 까마득한 후배들이 디스를 할 때 이 소재를 많이 써먹는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원래 타카미나의 성격은 똑 부러지는 성격이 아니었다고 한다. AKB48 초기 시절, 즉 오리이 아유미가 있었을 때만 해도 언니 멤버들에게 어리광부리는 녀석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언니 멤버들이 한꺼번에 졸업해버리자, 어리광쟁이 모습을 버리게 되었다고. 때문에 사적인 생활과 공적인 자리에서 성격 변화가 매우 심한 멤버 중 한 명으로 뽑힌다. 멤버끼리 음식을 먹으러 갔을 때 타카미나가 주문하는 목소리가 지나치게 낯간지러워서 그만두라고 디스를 당한다. 본인은 음식 주문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렇다고.
AKB48그룹의 성격상 총선거 순위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데, 타카미나는 1회 총선거부터 총선거 순위에 해탈한 모습을 보여준다. 오히려 다른 멤버 달래주기에 바빴다. 총선거 어필 영상에서도, 다른 멤버들은 포부를 밝히거나 열심히 하겠다고 호소를 하는 등 자기 어필에 바쁜데, 타카미나는 그런 거 없이 그냥 개그로 때운다. 덕분에 타카미나의 총선거 어필 영상은 늘 원컷 콩트가 되어버린다. 자신을 뒤엎고 올라온 W마츠이에 대해 "그 동안의 노력이 보답받았구나. 진심으로 축하해"라고 코멘트하기도. 단 한 번도 순위가 오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AKB48 SHOW 총감독 설교방에서 사시하라 리노가 순위 목표를 밝히는 게 팬들 입장에서는 기쁠 거라고 디스 아닌 디스를 하기도. 그 말을 들어서인지, 2015년 마지막 총선거를 두 달 앞두고 "저도 역시 1위를 하고 싶어요."고 밝혔다.
후배들을 비롯하여 신도모토쿄다이 멤버들로부터 타카미나는 사람이 워낙 좋아서 나쁜 마음을 품고 접근하는 이성에게 쉽사리 넘어갈 것 같다는 진심 어린 걱정을 많이 받기도 하였다. 일본의 유명 독설가 사카가미 시노부 마저 타카미나를 보고 있으면 나쁜 남자랑 엮이게 될 것 같은 냄새가 나니 정말 조심하라며 아낌 없는 충고를 해주기도 하였다. 실제로 신도모토쿄다이에서 타카미나는 헌팅당할 일이 없겠네, 라고 디스당하자, 헌팅 경험담이랍시고 초등학생 시절에 란도셀 메고 걸어가던 중 트럭 운전수 아저씨가 따라붙어서 "여기 탈래?"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정작 타카미나 본인은 당시 "아뇨~ 죄송해요. 감사합니다~"라며 매우 순수하게 거절했다는 것으로 이야기는 마무리 되었지만, 그 자리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게스트 도쿠나가 히데아키와 쿄다이 오빠들은 전부 타카미나를 걱정스런 눈빛으로 바라봤다.
마에다 아츠코, 코지마 하루나 등은 타카미나에 대해 주로 지나치게 완고하다고 디스. 본인도 자기 성격의 장점을 뚝심이라고 적는 한편, 단점을 완고함이라고 적는다. 외모나 복장에 대한 조언을 해도 도통 듣지를 않는다고.
여성스러운 일면이 있어 핑크색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본인은 "이 세상에서 핑크가 제일 잘 어울려"라고 주장하지만, 역시나 멤버들에게 디스당한다. 솔직장기에서 마에다 아츠코의 증언에 따르면 단골 가게 중 핑크만 취급하는 가게도 있다고 한다. 이전에는 방도 자기 입으로 '공주방'이라고 할 정도로 핑크색 일색의 공주님 분위기로 꾸며 놓았었지만, 성인이 되면서 가구들을 와타나베 마유에게 다 물려주고 심플한 화이트 계열로 바꿨다. 성인이 되고 나서는 핑크색에 대해 별로 안 좋아하게 되었는지, 핑크색 옷을 입는 모습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감수성이 풍부한 편이라 눈물이 엄청나게 많다. 연구생의 정규멤버 승격이나 멤버의 졸업, 생탄제, 기쁠 때, 슬플 때, 프로그램에서 감동적인 장면이 나왔을 때 등등 조금만 감정이 복받쳐도 어김없이 펑펑 울어왔다. 어찌나 많이 우는지 시노다 마리코는 '너무 많이 울어서 엉터리'라고 할 정도. 눈물 흘리는 속도는 AKB48중 단연 최고이며 여배우 지망인 오오시마 유코조차 따라잡지 못한다. 우는 연기도 굉장히 잘하는 편인데, 2014년 12월 6일 방영된 메챠이케 돗키리 해산 총선거에서는 우는 연기를 선보이며 게스트들과 멤버들을 모두 놀래켰다. 본인은 자신이 실제로 그런 상황에 처한다면 어떨까 라고 생각했더니 저절로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한 방송에서는 타카미나가 하도 눈물을 잘 흘린다고 하기에, MC가 뜬금없이 "그럼 눈물 한 번 흘려봐"라고 하자, 5초도 안 되어서 눈물을 펑펑 흘린 일이 있다.
어엿한 20대의 아가씨이지만 데뷔 초부터 일관되게 유지한 아저씨 같은 행동 때문에 다른 멤버들의 블로그에서 종종 화젯거리로 다뤄지기도 한다. 시노다 마리코는 "멤버들과 같이 목욕하지 않는 것, 아침엔 누구보다 제일 먼저 일어나 화장을 하고 먼저 대기하고 있는 걸로 봐서 남자일 의혹이 있다"며 타카하시 남자설을 제기했고 [4] 솔직 장기에선 수염 제모 드립이 자주 출몰한다. 이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카메라가 타카미나의 인중을 클로즈업한다. 드라마 멘돌에서 남장을 했을 땐 멤버들로부터 "남자인 게 더 낫지 않아?"라는 말을 듣기도… 시마자키 하루카가 타카미나가 여자화장실이 아니라 남자화장실에서 나오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고 하자, 볼일이 급한데, 여자화장실이 꽉 차서 비어있던 남자화장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시노다 마리코는 타카미나가 다른 멤버들 옷 갈아입는 것을 몰래 본다고 디스를 걸었다. 그런데 타카미나는 멤버들 중 옷을 제일 빨리 갈아입기로 유명하다. 코지마 마코에 따르면, 같이 대기실에 들어와서 거울로 화장을 살펴보고 있으면 옷 갈아입고 나온 타카미나가 있다고. 멤버들 중 옷 갈아입는 모습을 본 멤버도 거의 없다고 한다.
시노다 마리코의 타카미나 남자설에서도 언급되었듯, 누구보다 먼저 스케줄 준비를 시작하는 성실한 성격. 아침에 스케줄이 있는 날에는 항상 적어도 집합 시간 4시간 전에 일어나서 준비를 한다. 어쩌다가 늦잠을 자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항상 집합 시간 2시간 전에는 일어난다고 한다. 타카미나의 쌩얼을 멤버들 중 본 사람이 드물다고 할 정도로, 가장 늦게 자고 가장 일찍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멤버들은 도대체 언제 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고... 호텔 등에서 묵을 경우 가장 먼저 일어나서 멤버들을 깨우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특히 아침잠이 많은 마에다 아츠코와 코지마 하루나를 깨울 수 있는 사람은 AKB내에서 타카하시 뿐이라고 한다. 코지마 하루나를 깨우려고 문을 노크해서 "일어났어?"라고 물어보면 "응, 일어났어"라고 대답해서, 안심하고 준비하다가 집합시간이 되어 내려가보면 언제나 코지하루는 안 보인다고 한다. 결국 그때까지 자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나온다고. 이를 두고, 아리요시는 "아예 열쇠를 맡기는 게 낫지 않아?"라고 코지하루에게 말한다...
언제나 그룹 전체의 일을 걱정한다.[5] 초창기의 목표는 그룹이 10년 넘게 존속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이제 목표 달성을 했으니 미련 없이 졸업한 듯. 본인의 일보다는 후배 멤버들의 일을 걱정하고, 늘 후배 멤버를 앞에 세워 본인보다 더 돋보이게 만든다. 때문에 나이 어린 멤버에게는 "아빠"라고 불리기도 한다.
졸업 발표 이후 주간 플레이보이에서 약 50주에 걸쳐 한 주에 한 명, 타카미나가 멤버를 선정해 그 멤버에 대해 말하는 기획을 했는데, 타카미나 팬뿐 아니라, 선정된 멤버의 팬들에게도 호평이었다. 멤버 한 명 한 명에 대한 분석이 굉장히 뛰어나서 '역시 총감독이구나'라는 평이 대다수. 번역본은 여기 있으니 참고할 것.
사실 AKB그룹 내에서 그렇게 예쁘장한 편은 아닌데,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봐도 아이돌스럽지 않은데, 한 번 끌리면 계속 끌려서 타카미나의 팬들의 충성도가 가장 높다고 한다.
3.2. 패션 센스
머리 정수리에 단 리본이 트레이드마크. 2011년 제3회 총선거 정견방송에서는 아예 왕리본을 매고 나왔다. AKBINGO! 2009년 6월 24일 사복미인 편에서 핑크색 왕리본을 달고 나와서 '여자애는 리본을 달고 있으면 어떻게든 돼요!'라고 하자, 우에마츠 코지 선생의 평은 '저 리본이 엄청 바보 같아서 말 걸기 쉬워 보인다'였다. 2010년 가을 사복미인 편에서 '리본을 떼고' 나왔을 때 우에마츠 선생의 평은 '그 리본을 뗀게 최고의 매력 포인트'였다. 리본을 달게 된 계기는 AKB48은 워낙 대인원의 그룹이기 때문에 평범하면 묻혀버리기 때문에 남들보다 튀어 보이기 위해서라고. 그러나 머리카락이 타버리는 사건이 발생한 뒤로, 더 이상 리본을 쓰지 않는다.카시와기 유키와 함께 촌스럽다고 놀림받는 멤버 중 하나였다. 그러나 카시와기 유키와는 반대로, 타카미나는 여전히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패션을 대표하는 것이 AKBINGO! 에서 입고 나왔던 전설의 바나나파카.[6] 여담이지만, AKB48에는 유독 옷 못 입는 멤버들이 많다. 구 팀K의 대다수 멤버들을 필두로, 팀B 일부 멤버, 팀A의 타카미나, 요코야마 등등. 그룹 전체로 확장하면 마츠이 레나, 야마모토 사야카, 사시하라 리노 등도 옷 못 입기로 유명...
이렇게 여기저기서 혹평을 받는 타카하시의 패션이지만 웬일인지 AKBINGO!의 패션 체크에서는 일본 최고라고 꼽히는 패션 평론가 우에마츠 디렉터로부터 꽤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다. 네 번 출연해서 첫 번째는 '조금 멋져(평은 누구나 쉽게 낚을 수 있는 바보)', 두 번째는 '초~ 촌스러!(평은 부탁이니 돌아가)'라는 단평. 코지마는 '브랜드한테 사과해!'라고 평했다. 세 번째는 리본을 풀고 나왔더니 '조금 멋져!(평은 리본을 뗀 게 최고의 매력 포인트)' 네 번째는 리본도 떼고 포니테일도 하지 않고 나와서 '조금 멋져(평은 그 전설의 썩은 바나나)' 획득! 마지막으로 나온 크리스마스SP에서는 바나나 파카를 버리고 신상 바나나 가디건을 입고 나와 다시 한 번 '조금 멋져(평은 바나나의 승리)'를 받았다.
2011년 Shibuya Deep A 촬영 때에는 원색의 힙합 패션을 선보여 시청자들에게 호평을 얻었는데, 이 때 코디는 런던 하츠 진행자인 멋쟁이 개그맨 타무라 아츠시. 이 때 선보인 드립이 "겉으로 보이는 건 이래도 나 학교 선생님 딸임."
미성년자 멤버도 수위 높은 화보를 찍어대는 AKB내에서 유일하게 수위가 낮은 사진을 찍는 멤버이다. 가장 높은 수위가 위아래 레이스가 달린 비키니일 정도. 그것도 단독 사진이 아니라 팀 전체 컨셉일 때만이다.[7] 원체 맨살을 보이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웬만한 것은 시키는대로 다 하는 타카미나가 비키니에 대해 정중하게 거절했다고 한다. 맨살을 보이는 것을 얼마나 싫어하냐면 10년 동안 그룹활동을 하면서 멤버들과 같이 목욕탕에 들어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계속 디스를 당했는데도 끝끝내 목욕탕에 같이 들어가질 않았다. 한 번은 'AKB와 XX' 1화 방송에서 타이틀 콜을 찍을 때 다른 멤버들과 같이 욕탕에 들어가있는 장면을 찍게 되었는데, 타카미나가 엄청 열받은 상태였다고. 최종회에서 가장 싫었던 기획이 뭐냐고 묻자, 단번에 그 장면을 대답했다. 코지마 하루나와 오키나와로 여행을 갔을 때, 비키니를 입은 사진을 찍은 적이 있는데, 본인 왈 초등학생 때 이후로 수영복 입고 바다 간 적은 그 때가 유일하다고.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어서 거의 1년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다고 한다.
3.3. 가창력
초지일관으로 가수의 길을 목표로 하는 멤버고, 팀 내에서는 그래도 상위권에 속하는 가창력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보컬 트레이닝을 전혀 안 시키는 AKB의 현실상 도긴개긴이며 그렇게 특출난 실력은 아니다. 오디션 영상이나 초창기 라이브 영상을 보면 노래를 무난하게 잘하는 축에 들어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저음 부분이 강해지다 보니 AKB그룹의 노래와는 맞지 않게 되어서 억지로 목소리를 올리려 비음을 섞기 시작해서 잘못된 발성이 굳어졌다.레전드로는 닼기너라 불리는 Beginner 편곡 버전이 있다.
본인도 이런 문제점을 인지했는지, 자신의 파트는 자기 목소리로 계속 부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솔로 데뷔가 정해지고 나서야 회사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시켜줬다는 이야기가 있다. 솔로 데뷔 후 라이브 무대는 솔직히 보고 있기가 불안할 정도였지만, 그 후로는 계속 보컬트레이닝을 받았는지 꽤 안정된 모습과 발성법이 약간 변한 것이 느껴진다.
그러나 문제는 타카하시 본인의 보컬 스타일은 어느정도 자리를 잡았으나, 그게 AKB그룹 전체와는 조화가 안 된다는 것이다. 최근 들어 음악방송에서 라이브를 하는 경우가 늘어나면서 고음역대, 가는 음색을 가진 멤버들이 다수인 AKB내애서 타카하시의 굵은 저음이 굉장히 튀게 되어버린 것. 특히 MR조차 없이 밴드 반주로 생라이브를 해야 하는 FNS가요제 무대에서는 타카하시의 저음이 무대를 망친다는 공격적인 의견까지 나올 정도.
하지만 타카미나의 졸업 극공을 보면, 멤버들이 Beginner의 도입부분인 "In your position, set!" 부분을 요코야마 유이에게 시켜보고는 경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원래 이 부분은 저음의 단호한 목소리를 내야 어울리는 부분인데 요코야마의 음색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 결국 멤버들은 그 날 졸업하는 타카미나에게 "요코야마가 이 부분을 하지 못하면 앞으로 Beginner 공연이 있을 때마다 그 부분만 하고 돌아가주세요"라는 드립을 치기도. 팬덤에서는 타카미나 2대 목소리 찾기가 열렸고, 그나마 가장 비슷한 음색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미야자와 사에라고 꼽았지만, 그녀마저 졸업해버렸다. 결국 2016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요코야마가 부르는 RIVER 도입부인 "AKB~~~"의 음색이 지나치게 높고 가늘어서 멤버들이 후에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졸업 후 방송에서 대형 음이탈 사건을 터뜨려서 졸업에 찬물을 끼얹었다. 일웹에서 가창력은 역시 AKB 수준이었던 거라는 식으로 회자될 정도로 심하게 까였다. 이 후에는 라이브 하우스 위주로 돌면서 가수로써 수련을 쌓고 있다.
2017년 라이브 하우스 투어에 대해서 일본의 한 음악 칼럼리스트가 글을 올렸다. 타카미나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이 중립적으로 평가한 글이니, 참고해보면 좋을 듯하다. 일웹에서 삿포로 라이브나 나고야 라이브 등에 대한 후기를 보면 평가가 굉장히 좋은 편이다.
3.4. 예능감
AKBINGO에서 '스베라나이 하나시'라는 코너가 생길 정도로, 한때 토크가 재미없었다. 객관적으로 들어보면 재미있는 이야기소재인데, 이상하게 타카미나가 말하면 재미가 없어진다. 쿠라모치 아스카는 문장의 구성능력이 없어서 그렇구나 라고 깨달았다고. 네타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진짜 재밌는 얘기가 있어요"라며 한껏 기대치를 올려놓고, 정작 이야기하는 동안 혼자 웃는 바람에 결국 마지막에는 좌중을 썰렁하게 만드는 토크가 주특기. 아예 '썰렁한 개그의 타카하시' 식의 기믹으로 정착한 듯. 이러한 이미지 덕분에 예능에서 마구 굴려지게 되어 무챠부리의 희생양이 되고 있다. 방송에서 자주 멤버들로부터 (주로 시노다 마리코와 오오시마 유코에게) 무챠부리(갑자기 시키는 미션)를 당하는데 뒤로 빼지않고 결과가 어떻든 일단 한다. 그리고 그 결과 높은 확률로 망가지기 때문에, 초창기 AKBINGO는 평타치는 충분히 넘을 정도로 재미있다는 이야기가 다수였다. 악수회 중 무챠부리2010년 8월 11일에 방영된 AKBINGO! 96화의 코너인 '무챠부리 돗치볼'의 벌칙인 게테모노 요리(혐오 오리)에서 홍어찜을 먹은 적이 있다. 반응을 봐서는 상당히 삭은 홍어인 듯.
닼민의 총선 어필코멘트는 하나같이 다 웃기다. 3회 총선거의 정체불명의 대왕 리본에 이어서 4회 총선거 어필코멘트에서는 무려 33초 동안 아무 말도 없이 끄응 소리만 내서 닼민오시들을 멘붕시켰다. 그리고 5회 총선거 영상에서는 자신이 남긴 총선거 소감인 '노력은 반드시 보답받는다'를 스스로 네타로 삼으며, 양키의 건들건들함과 개그를 동시에 선보였다. 타카미나가 졸업함에 따라, 타카미나의 이런 개그스러운 총선거 어필은 이제 안 나오겠구나, 라고 팬들이 아쉬워했는데, 8회 총선거 어필에서 야마모토 사야카가 경악스러운 모습을 한 채 50초 동안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있다가 마지막에 가면을 쓰고 끝나면서 팬들이 또다시 경악했다.
구플은 한동안 방치하다가 2014년 초에 다시 재개. 그러나 2014년 11월 7일 이후 갱신이 없다. 노스리브스 유닛 블로그는 이미 손을 놓은 지 오래. 팬들은 타카하시가 블로그 업데이트를 하면 매우 놀란다. 참고로 노스리브스 유닛 블로그 갱신률이 가장 높은 건 미네기시 미나미다.
솔로데뷔하면서 생긴 개인 블로그에 꽤 성실하게 업데이트를 해서 잠시 풍악을 울렸으나 2013년 8월 이후 이것도 업데이트가 안되고 있다... 참고로 타카하시가 블로그에 자주 쓰는 ~でス는 팬들은 물론 멤버 사이에서도 유명하다.
2013년 이후부터는 스베리퀸(썰렁한 여왕) 기믹을 버리려는지, 살아난 예능감을 드러내고 있다. 콩트에서는 웬만큼 흥하고, 츳코미도 웬만큼 잘 건다. 타카미나에 대해서 같은 자리에서는 절대 칭찬을 안 해주는 코지마 하루나가 '평범하게 재밌어졌다'라고 평가할 정도. 예능에 타카하시가 출연 멤버로 껴있다면 최소 평타는 치는 수준. 특히 2013년 4월 메챠이케 기말테스트, 2014년 12월 메챠이케 돗키리 해산 총선거에 나와서 활약한 바 있다. 2017년 메챠이케 돗키리에 와타나베 마유와 출연한 바가 있다.
4. 대인관계
사생활에서는 그리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라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며, 실제로도 사적으로 사귀는 친구가 2명밖에 없다고 한다. 그 중 1명인 맛짱은 AKBINGO 기획에 출연해 타카미나와의 우정을 과시했다. 그러나 AKB그룹에 들어오고 나서부터는 2010년까지 맛짱과도 만난 적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사적으로는 철저하게 외톨이였던 듯. 다만 미네기시 미나미가 자주 타카미나의 집에 묵으러 오는 등 사적으로 혼자 있는 시간이 극히 짧다고 할 수 있다. 신도모토쿄다이에서 마에다 아츠코와 같이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타카미나의 휴일 시간표가 나온 적이 있는데 하루 중 10시간이 넘는 시간을 '수면'이라고 적어놓아 좌중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물론 그 시간표대로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날은 별로 없다고 한다. MC로 진행을 맡고 있는 Mujack 에서 'TALKxTALKxTALK' 란 프리토크 코너를 신설한 뒤, 여기서 만난 또래 여자 연예인들과의 인연을 이어나가는 데 성공, 최근 연예인 친구들이 늘었다.AKBINGO의 현대 여성의 본심을 밝힌다는 기획에서는 "AKB내에 친구는 없다."고 말해서 멤버들로부터 놀란 시선을 받았지만, "친구가 아니라 모두 가족이나 다름없으니까"라고 덧붙였다.
코지마 하루나, 미네기시 미나미와 함께 유닛 노스리브스를 결성하였다. AKB 사실상 최초[8]의 CD데뷔 유닛이고 셋의 가창력도 좋은 편인데, 소속사에서 푸쉬를 안 해주는 바람에 어느새 개그담당 유닛이 되었다. 현재 노스리브스의 유일한 활동은 3명이 진행하는 고정 라디오 '주간 노스리부' 뿐이다.(2016년 종료) 그래서 스스로를 라디오 유닛이라고도 부르며 자학개그를 시전하기도 한다.
현재는 졸업한 마에다 아츠코와는 매우 사이가 좋아서 둘의 관계를 일컫는 말인 '아츠미나'는 AKB의 유명 CP중 하나. 사실 이 관계가 좀 복잡한데, 원래 마에다 아츠코와 친했던 건 미네기시 미나미였다고 한다. 내성적인 마에다 아츠코에게 곧바로 다가와 대화를 할 정도로 친화력이 높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운영이 마에다를 단독 센터로 놓기로 결정하면서 둘의 사이는 멀어져버렸다. 그 이유가 된 곡이 바로 '渚のCHERRY'. 마에다 혼자 노란 옷을 입고 앞에서 춤추고, 미네기시와 다른 2명의 멤버는 백댄서로 뒤에서 춤추는데다가 미네기시에게 배분된 가사는 백댄서 세 명이 함께 부르는 'CHERRY CHERRY BOY' 이 부분 뿐. 게다가 마에다 본인이 하고싶다고 했다면 어찌저찌 포기할 수 있는 마음이었지만, 마에다는 하기 싫다고 방에 들어가서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럼 나한테 시켜줘!'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미네기시와 사이가 틀어진 마에다는 그 뒤 타카하시와 친해진다. 원래 동갑이기도 한 데다가, 둘이 잔류조로 남아있기도 했기 때문에 금방 친해진 듯. 다만 훗날 두 명은 '그때 어떻게 그렇게 쉽게 친해진 걸까 신기하다'고 털어놓는다. 둘은 성격도 다르고, 취향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르고, 장래희망도 달랐기 때문. AKB48 곡 중 '추억의 대부분'은 아츠미나에게 헌정된 곡이다. 그래서 둘이 콘서트만 열리면 자주 이 노래를 같이 부른다.[9] 2013 리퀘스트 아워 세트리스트에서는 마에다는 영상으로 등장하고 타카하시 혼자 무대 위에서 부르기도. 타카하시까지 졸업한 2016 리퀘스트 아워 세트리스트에서는 코지마 하루나와 미네기시 미나미가 같이 부른다.
미네기시 미나미와는 언니와 여동생 같은 사이인데, 이름이 같기도 하고 미네기시는 "팀 내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여는 사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미네기시와는 초기시절 몇 개월 동안 말도 제대로 못 붙일 정도로 절교했던 적이 있었다. 미네기시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었는데, 어느날부터 타카미나가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라고. 크게 다투고는 냉전이 시작되었다가, 미네기시 생일공연 때에서야 다시 절친이 되었다고 한다.[10] 그래도 타카하시가 "미이쨩은 고양이 같다. 보들보들한 뺨을 만지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츤데레이기도 하고" 라고 말하면 미네기시가 "기분 나쁘네요" 라고 대답하는 훈훈한 사이. AKB48 다큐멘터리에서 "타카하시가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인간으로서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라는 말을 하기도. AKBINGO 신부 타카하시에게 전하는 고마운 말 편에서, 미네기시가 고등학교 졸업식 전 'AKB활동 때문에 최근 학교에 가지 않아서 불안해'라고 하자, 타카하시가 먼 거리를 열차타고 미네기시의 졸업식까지 찾아와 보호자로 참석한 훈훈한 일화가 유명하다 가치챠레 중 미네기시가 제한시간 내에 멤버들에게 문자 답장을 받아야 하는 도전과제가 있었는데, 타카미나에게 '구해줘'라고 보냈다가, '무슨 일이야!?'라는 답장과 함께 전화를 받았다. 미네기시는 "좋은 녀석이에요"하고 흐뭇하게 웃는다. 상황설명을 하고 얼마 안 있어 타카미나 본인이 촬영장으로 들어오기도. 이 때 타카미나가 한 말은 "웃기지 말라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멤버 코지마 하루나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러나 사실 타카미나와 코지하루는 AKB 초기 약 2년 동안 서로 대화 한 마디 없었다고 한다. 타카미나가 밝힌 이유는 코지하루가 3년 정도 연상인 데다가, 그때까지만 해도 굉장히 무서운 인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타카미나와 코지하루를 연결해준 것은 미네기시 미나미였는데, 이후 이 세 명이 프로덕션 오기 소속으로 노스리브스 유닛을 결성하게 된다.
코지마가 "음료수를 마시고 싶네" 라고 혼잣말하면 가만히 듣고 있다가, 조용히 음료수를 사와서는 "자 여기"하고 내밀기도 한다. 코지하루와 거리를 걷던 중, 전시된 장식품을 보고 "예쁘다, 저런 거 갖고 싶다"라고 한 것을 기억해두었다가 그 해 생일 선물로 사주었다고. 방송, 극장 공연의 MC 등에서 "냥냥 카와이(귀여워)"를 외치며 언제나 헉후헉후(...) 모드. 이에 대해 코지마는 항상 기분 나쁘다는 반응이다. 아니면 아예 무시하거나... 이렇게 보면 일방적인 사랑 같이 보이지만, 사실 둘은 사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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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2월에 한 대조각으로 인해 팀B였던 코지마가 다시 A로 돌아오게 되면서 다시 한 팀이 되었다.
이타노 토모미와는 구절친 관계라고 불리운다. 과거 팀A시절엔 둘은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이타노 토모미가 로리노선에서 갸루노선으로 바꾼 그 시점에서 둘은 어색함을 보였다. 2009년 팀셔플로 이타노가 팀K로 이적되면서 둘 사이는 소원소원해져버렸다. 팬들은 이 둘 사이를 구남친, 구여친 관계로 부른다. 2013 리퀘스트 아워 MC에서 둘이 셀카찍는 걸 보면 둘 사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이타노가 졸업한 후에도 자주 만난다는 것을 보면 사이가 좋은 편.
키가 작은 오오시마 유코와 함께 치비즈로 불린다. 키가 작은 점뿐만 아니라 얼굴 생김새마저도 닮아, AKB48에 입문하는 팬들 중엔 유코와 닼민의 구분이 힘들었다는 사람이 많으며 쌍둥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많은 모양이다. 심지어는 AKB의 매니저도 오오시마 유코를 타카하시 미나미라고 착각했던 적이 있는 모양. 둘은 서로에 대해서 존경하는 멤버로 꼽는다. 오오시마 유코의 극장 졸업공연에서 "졸업하면 전우가 아니라 친우가 되어주세요"라고 했는데, "싫습니다"라고 거절당한 일화가 유명. 그런데 오오시마 유코가 덧붙인 말이 팬들에게는 더 감동적이었다. 자신에게 전우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타카하시 미나미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이렇게 친한 멤버들도 꽤 되지만, 메일이 전혀 오지 않는 날도 있다고 한다. 이유는 중요한 일이 아니면 답장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인도 "휴대폰은 필요 없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AKBINGO 기획에서 본인에게 하루 동안 온 문자 수를 맞추는 문제에서 자신만만하게 1통이라고 대답. 그러나 결론은 매니저인 쿠도에게서 온 문자까지 합쳐서 2통이 되었다.
도쿄돔 콘서트에서 총감독으로 임명된 후, 멤버들에게 '총감독'이라는 명칭으로 디스를 당하곤 했다. '하라 감독을 배낀 거라고 놀려서 죄송해요' 등등. 아예 스스로 네타화하려는지, 멤버들에게 받은 애칭인 소쨩으로 자신을 지칭하거나 멤버들에게 보내는 휴대폰 문자 마지막에 By.총감독이라는 말을 붙인다고 한다.
<신도모토쿄다이> 레귤러 멤버들과는 따로 라인 단톡방이 있을 정도로 제법 사이가 좋은 것으로 보인다. 방송이 종영 된 이후에도 연락은 따로 주고 받는 듯. 음방에서 함께 출연하게 되면 얘기를 나눈다고. 2014년 10월달엔 도모토 츠요시의 솔로 라이브에 초대 받기도 하였으며 2015년 2월달엔 도모토 코이치의 연극을 감상하고 왔다며 타카미나 본인이 755에 남기기도 하였다. 니시카와 타카노리와는 특히 사이가 좋아 쿄다이 수록 때마다 사진을 찍어 각자의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으며 FNS가요제에선 매년 바나나
쿄다이 관련 이야기를 하나 꺼내자면 평소 낯가림이 심하기로 소문난 도모토 쯔요시가 스스럼 없이 타카미나를 건드리거나 귀여운 여동생 대하듯 놀려먹는 모습을 보이자, 킨키팬들 대부분이 "타카미나가 (킨키키즈의 절친으로 알려져 있는) 시노하라 토모에의 포지션을 물려 받았다"라며 부러워하는 한 편 질투하는 팬도 상당수였고 그중 질투에 눈이 먼 어떤 팬은 쿄다이 담당 피디 트위터에 타카미나를 방송프로에서 졸업 시켜달라
신 도모토 쿄다이에서 처음 조우한 뒤 각트와도 친분이 조금 생긴 것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2016년 5월에 각트가 전국투어를 실시할 당시 타카미나의 라디오방송에 출연할 예정이었는데, 컨디션 난조로 한번 불참하게 되자 어떻게든 출연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그해 11월 26일자 방송에 다시 출연하게 되었다는 훈훈한 후문이 있었다고.
의외로도 쿠로유메의 키요하루와도 친분이 있는데, 다카미나가 MC로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Mujack'에 쿠로유메가 게스트로 나오면서 처음 조우한 것이 그 시작. 나중에는 키요하루의 딸이 다카미나의 광팬이라 그에게 다카미나의 싸인을 부탁했고,
5. 활동
5.1. AKB48에 들어오기까지
우여곡절을 겪어서 AKB48에 들어오긴 했지만, 초기의 AKB48 상태는 완전 개판이었다. 공연을 할 극장도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고, 멤버들은 안무와 노래를 처음부터 익혀야 했다.11월부터 레슨이 시작되었는데, 첫날 레슨부터 분위기가 얼어붙었다고 한다. 이유는 이 날 레슨에 지각한 멤버가 있었는데, 안무 선생이었던 나츠 마유미가 모두를 불러놓고 "오늘 ○○가 지각했습니다. 따라서 ○○를 제명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특히 타카미나는 안무를 못 따라갔기 때문에, '잔류조'에 속해 늦게까지 레슨을 받았다. 이때 잔류조 멤버는 타카미나를 제외하고 우라노 카즈미, 때때로 마에다 아츠코, 사토 유카리 등이 있었다.
안무를 따라가지 못한 본인 때문에 안무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어지간히 분했던 건지, 그 뒤로는 학교를 마치면 곧바로 극장으로 가서 공연을 하고 밤 늦게까지 안무연습한 뒤에 집에 돌아와서 계속 연습하는 나날이었다고 한다. 잠을 자는 시간이 2시간이면 많았다고 하며, 아예 잠을 안 잤던 날들도 많다고.
정식 데뷔하기 전, 예명을 생각해오라는 지시를 받았는데, 같은 이름을 가진 미네기시 미나미가 '미미짱'이라는 예명을 지어온 것과 달리, 타카미나는 그대로 '미나미'라는 예명을 지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미네기시 미나미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고 한다.[12]
5.2. 활동 내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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会いたかった (高橋みなみ ver.) SET LIST~グレイテストソングス 2006-2007~ |
5.2.1. 2005년 ~ 2006년
2005년 12월 8일, AKB48 전용 극장을 통해 1기생 20명이 한꺼번에 데뷔했다.[13] 첫날의 관객 수는 아키모토의 연줄로 동원된 업계 관계자 65명, 일반 관객 7명으로 총 72명의 처참한 성적. 당시의 영상을 보면, 카메라나 노트를 들고 서 있는 다수의 업계 관계자와, 객석에 앉아있는 극소수의 관객을 볼 수 있다. 7명의 관객은 중앙에 앉아있었기 때문에, 양 사이드애 있는 멤버들은 관객이 없는 자리를 향해 손을 흔들고 노래를 불렀다. 첫날 공연의 桜の花びらたち 직후 MC를 마에다 아츠코와 담당했다. "즐기고 있습니까(盛ってるかい~)"라는 정해진 대사를 말해야하지만, 7명밖에 없는 관객들을 향해서 외치는 것이 어지간히 쑥쓰러웠는지,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이날부터 매일 극장공연이 열렸지만, 관객 수는 전혀 늘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고, 오히려 1, 2명인 날도 있었다고 한다. 관객을 모으기 위해 멤버들 스스로 거리에 나가서 전단지를 돌리기까지 했을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크리스마스 공연 전단지를 돌리던 중, 전단지를 받은 사람이 자신의 눈 앞에서 보란 듯이 전단지를 버리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고.
데뷔를 하고 2주 정도 지난 후에, 처음으로 팬 레터를 받았다고 한다. 타카미나 앞으로 온 편지 한 통과, AKB48 앞으로 온 편지 한 통, 이렇게 두 통뿐이었지만, 멤버들끼리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참고로 타카미나는 그 편지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고.
극장의 수용 인원인 250석이 처음으로 모두 팔린 것은 2006년 2월 4일이 되어서였다. 극장 데뷔하고 두 달만에 만석이 되었던 것.
2006년, 그러나 만석의 기쁨을 누릴 여유도 없이, 토가사키 총지배인은 2기생을 모집할 거라고 공지했다. 이에 대해서 "우리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야?"라고 앗짱이나 타카미나도 반발했다고. 2기생이 가입하고 4월부터 팀K로 데뷔해 라이벌 관계가 되고 만다. 사실 이건 운영에 의해 의도된 것이었는데, 4월 8일에 타카미나를 팀K 공연에 출연시킴으로써, 팀K 멤버들에게 철천지원수가 되도록 만들었다.[14] 당시에는 극장 출입인원이 워낙에 적었고 인지도도 낮았기 때문에 팀A와 팀K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적은 팬들을 두고 상대 팀에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5월 25일 공연에 오오시마 유코와 카사이 토모미가 마에다 아츠코와 이타노 토모미의 대타로 들어오게 된다. 최초로 언더 비슷한 개념이 시작된 것이 이때부터였다. 후일 타카미나는 앗짱과 토모찡의 자리를 대신해서 들어온 둘을 보면서 매우 복잡한 심경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만약 자신이 자리를 비우게 되면 팀K의 또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결국 자신의 자리는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라는 불안감에 시달리기도 했다고. 때문에 극장관계자에게 "팀K의 인원으로 자리를 메꿀 거라면 차라리 자신에게 그 자리를 맡겨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고 한다.
12월에 팀A공연이 끝난 직후 대기실에 모인 팀A 인원들을 보고, 스태프가 3기생에서 대량의 탈락자가 나왔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팀B로 네 명이 차출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타카미나에게 "어떻게 생각해?"라고 말했다고. 타카미나는 자신이 이동되는구나, 라고 생각하고는 눈 앞이 깜깜해졌다고 한다. 아직 데뷔조차 하지 않은 신생 팀으로의 이동은 곧 좌천을 말하는 것이었고, 팀A에서 자리를 빼앗기게 되면 결국 갈 곳이 없어져 제명당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결과적으로 우라노 카즈미, 히라지마 나츠미, 와타나베 시호 3명이 이동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15]. 결과적으로 놓고 보자면, 팀B로의 이동은 좌천이었다는 타카미나의 판단은 옳았다. 와타나베 시호는 이동이 결정되고 얼마 안 있어 팀A에서도 팀B에서도 정체성을 찾지 못하고 결국 졸업해버린다. 우라노 카즈미와 히라지마 나츠미는 팀B로의 이동을 받아들였지만, 이들에 대해서 운영의 관심은 점점 떨어졌고, 결국 SDN48을 거쳐 졸업절차를 밟게 된다.
사실 이 시기의 AKB라는것은 『극장공연, 라디오, 지역의 텔레비젼, 극장에서 찍은 수준낮은 방송』 정도말고는 이렇다할 컨텐츠도 비젼도 없었다. 퍼스트 콘서트 「아이타캇타 ~ 기둥은없는거야! ~』 1200석을 완매했다고 발표했지만 실제론 그다지 팔리지 않아서 공석은 검은 시트로 가려버렸다.
이처럼 초기 AKB48의 인기는 완전 최하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낙담하는 멤버들이 많았다. 당시 팀A를 실질적으로 이끌고 멤버를 다독인 사람은 오리이 아유미였다. 원진을 하는 것도 그녀의 역할이었다고 한다. 타카미나는 리더십 있는 멤버도 아니었고 그런 입장도 아니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많이 있던 언니멤버들에게 귀여움받는 어린 여동생 포지션이었다. 그러나...
5.2.2. 2007년 ~ 2008년
2007년 1월 25일, 오리이 아유미가 AKB48를 졸업하고 나자, 누가 원진을 해야 할지 문제가 발생했다고 한다. 2월 25일 공연이 시작되기 전, 코마타니 히토미가 "타카미나, 원진 해봐"라고 해서, 그 후로 타카미나가 하게 되었다고 한다.2007년 7월, 프로덕션 오기로 이적되었다.
2007년 12월 31일 제58회 NHK홍백가합전에 첫 출연이 결정. 다만 출연분은 90초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홍백가합전에 출장한다는 사실 때문에 기뻐했던 심정이 한 순간 싸해지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음에 다시 오자고 결심했다고.
2008년 10월, 같은 사무소 소속인 코지마 하루나, 미네기시 미나미와 노스리브스라는 유닛을 결성하게 된다. 또한 이 유닛을 홍보하기 위한 드라마인 멘돌에 3명이 주역으로 나온다.
2008년 10월 5일, 오오에 토모미, 코마타니 히토미를 포함한 1기생 멤버 5명이 한꺼번에 졸업한다. 오리이 아유미가 졸업한 이후, 동생들을 다독여오던 언니 멤버들이 일제히 졸업하게 되자, 팀A 내에서는 엄청난 혼란이 발생했다. 게다가 이 시점에서 팀A의 멤버는 고작 9명밖에 남지 않은 상황. 결국 10월 19일 연애금지조례 공연이 있기 전, 연구생을 승격시켜 부족한 자리를 채우게 되지만, 당시 노스리브스 유닛 활동이 바빴던 타카미나를 포함한 인원은 첫날 공연에 나오지 못한다. 드라마 수록을 마친 뒤, 팀A공연에 복귀하지만, 첫날 대기실에 들어가는 순간 타카미나는 경악했다고 한다.
"뭐야 이건? 어째서 이렇게 되어버린 거야!? 라고, 대기실에 들어간 순간 느꼈어요. 솔직히 최악의 상태였습니다. 우선, 공연 전엔 모두 모여 스트레칭을 하는 순서가 있었는데, 거기에 안 나오는 멤버들이 있었어요. 나왔다고 해도 제대로 하려는 의욕이 전혀 없는 데다가, 구석 자리에 모여서 잡담을 하고 있고. 그런 모습을 다른 멤버들이 불편하게 보고 있고. '그래도 선배니까 뭐라고 할 수 없고...'라고 말이에요. 리허설 때도 솔직히 엉망진창. 이런 건 리허설이 아냐. 그 좋았던 팀A는 도대체 어떻게 되어버린 거야!? 내가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라고 당시에는 충격이었어요. 가장 슬펐던 건, 이전에는 모두가 서로 격려해주는 좋은 분위기였는데, 그 때는 사이좋은 멤버끼리 모여서 몇몇 그룹을 지어서 자기들끼리 웃고 떠들고 있는 것이었어요. 그 그룹 안에 들어가있는 멤버가 이미 정해져 있어서,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교류하지 않는 거죠. 전에도 '팀○○'처럼 자기들끼리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거와 같았어요. 공연 중의 MC도 사이좋은 멤버와 그렇지 않은 멤버에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이대로는 위험하다, 라고, 지금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정말 끝나버린다. 시끄럽다고 여겨져도, 일단 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결국 이때부터 타카미나가 본격적으로 멤버들을 통솔하기 시작한다. 일단 기존의 소수그룹으로 뭉친 것을 모두 부정하고 하나의 팀 체계로 묶으려고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타카미나의 말에 노골적으로 불쾌해하며 따르지 않는 멤버들이 많았다. 타카미나의 앞에서 험담을 하거나, "니가 대체뭔데?" 라며 말을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한다. 결국 타카미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5.2.3. 2009년 ~ 2010년
2009년 생일인 4월 8일, 프로듀서인 아키모토 야스시로부터 장문의 메일을 받게 된다. 중요 내용은 "누구에게나 미움받지 않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면, 결국 모든 사람에게 아무래도 좋을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니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라."라고. 이 이후로 타카미나는 팀A의 리더이자, AKB48의 리더로 활동하게 된다. 기존의 딜레마에서 벗어나, 팀A의 모든 소수그룹을 완전히 찢어놓은 다음에 팀체제로 선언한 것. 하지만 당연히 반발도 많았고, 반발에 대해서 묵묵하게 자기 할 몫을 하는 모습으로 대응했다. 멤버에게 싫은 소리를 하면, 적어도 그 면에 대해서는 자신 역시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얼마 안 있어 팀 내의 신뢰를 얻게 된다.2009년 1회 총선거에서 5위를 얻게 된다. "'타카미나의 꿈은 뭐야?'라고 자주 듣습니다만, 제 꿈은 솔로가수로 데뷔하는 겁니다. 앞으로도 꿈을 목표로 노력하겠습니다."라고 코멘트.
2009년 8월 콘서트 "AKB104선발멤버조각축제"에서 신팀A의 캡틴으로 임명된다. 이때부터 캡틴 제도가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당시의 감상은 "캡틴이란 게 대체 뭐야?"라고. 당시 콘서트 타이틀을 두고 스탭에게 "조각축제라는 게 대체 무슨 소리냐!?"고 따져물었다는 일화가 있다. 이날 SDN48으로 이적한 멤버들이 당시 남긴 글들을 보면, 사전에 이적 내용을 알고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할 수 있다. 결국 조각축제가 멤버 구성을 뒤집어놓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무대 위의 멤버들 표정이 하나같이 불안했던 것이다. 토가사키가 등장해 서프라이즈 발표를 하기 직전, 멤버들이 나누는 대화 역시도 그런 불안감을 보여준다. 캡틴으로 발표되었을 때의 타카미나의 표정이 불쾌감으로 가득했던 것이 이런 이유였다고. 결국 충격과 공포의 조각이 완료되고 난 뒤, 뒷수습은 타카미나에게 떠넘기고 운영진은 자리를 비웠다. 어수선한 분위기를 어떻게든 정리하고 "앞으로도 응원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는 건 순전히 타카미나의 몫이 되어버렸다. 후일 Documentary of AKB48에 출연해 이 조각에 대해 평가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지나놓고 보니 조각하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았구나 라고 평가. 실제로 팬덤에서도 이 조각은 연구생 승격 및 팀별 색깔에 맞추어 성공적으로 멤버들을 분배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2010년 1월부터 방영 시작한 마지스카 학원에서 주인공인 마에다 아츠코의 절친으로 나온다. 처음에 대본을 받아보고, 배역 설정이 거의 준주연급이라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촬영현장으로 오라는 연락이 없어서 문의해보니 자신은 이미 죽은 역할이라고. 결국 시즌 1을 통틀어서 마에다의 회상씬에서야 등장한다. 하다못해 당시 타카미나보다 총선거 순위가 한참 밑에 있던 사시하라 리노도 조연치곤 엄청난 분량을 챙켰는데... 결국 촬영장에서 공동으로 촬영한 것은 마지막화의 졸업식 장면에서 마에다의 앞에 환상으로 등장하는 씬이 유일. 등장하는 모든 분량을 전부 다 합쳐도 채 15분이 안 된다. 대사로 따지면 스무 문장 정도 되려나..
2010년 2회 총선거에서 6위를 얻게 된다. "이 순위를 명예로 받아들입니다. 저는 어떤 순위를 받아도 바뀌지 않습니다. 타카하시 미나미는 타카하시 미나미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한 명의 가수가 될 겁니다. 그건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응원해주신 여러분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도록, 이 팀 전체를 이끌고 갈 수 있도록 죽을 각오로 힘내겠습니다. AKB를 좋아하는 마음만은 다른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라고 코멘트.
2010년 7월 8일부터 간사이 로컬의 음악방송 Mujack의 MC를 담당.
2010년 10월 15일, AKB48의 올나잇니폰에서 팀K의 캡틴인 아키모토 사야카가 스캔들에 책임을 지고 캡틴직 사퇴를 발표하는 자리에 타 팀의 멤버로서는 유일하게 출연한다. 원래 이 자리에는 팀K의 미야자와 사에를 비롯한 멤버들이 있었는데, 방송의 내용을 안 타카미나가 쌩얼을 한 채로 달려온 것이다.[16] "아키모토 사야카의 잘못이 일부 있을 순 있지만, 그녀를 존경하는 건 팀K의 멤버 뿐이 아니니 앞으로도 힘내줬으면 좋겠다."라고 코멘트. 이것에 대해 NHK에서 방영한 Documentary of AKB ~1mm 앞의 미래~에서 심경을 밝혔다. "저도 솔직히, 정말 가볍게 여겼어요. 아무도 (아키모토의 스캔들을) 믿지 않을 거야, 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세상 사람들은 달랐어요. 기사가 나오면 나오는대로 '있을 리 없잖아'라고 생각한 일을 모두가 믿어버려요. 이런 말하면 그렇지만, 정말 어른들이 싫어요. 싫어하게 되어버려요."
2010년 일본 래코드대상 수상후보로 AKB48가 도미네이트되었다. 당시 오리콘차트 1위, 레코드대상 후보 중 유일하게 밀리언 기록 보유 등 AKB48의 수상이 점쳐졌지만, 결국 수상의 기쁨은 EXILE에게 돌아갔다. 이 때문에, AKB48은 권위있는 상은 절대 수상받지 못한다는 비아냥이 퍼지기도 했다.
5.2.4. 2011년 ~ 2012년
2011년 리퀘스트아워 세트리스트 베스트100에 100곡 중 34곡 출연으로 최다출연한다. 참고로 톱3는 노스리브스가 독점.2011년 4월부터 방영되는 마지스카 학원 2에 등장한다. 그나마 이번에는 살아있는 여형사 역할이지만, 시즌 1과 마찬가지로 역시 분량이 없다. 시즌2가 끝날 때까지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메이킹영상에서 이름을 가지고 싶었다고 한탄한다.
2011년 5월 8일부터 신도모토쿄다이(新堂本兄弟) 방송의 레귤러로 참가.
2011년 5월 11일, 생탄제 공연을 치른다. 이날 시노다 마리코로부터 온 편지를 코지마 하루나가 낭독한다.
미나미(みなみ)[17]에게
스무 살 생일 축하합니다.
AKB 오디션 때 갈색머리를 하고 나카모리 아키나의 노래를 부르던 그 양키 중학생이 벌써 스무 살이 된 건가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옵니다.
제일 성실하고, 노력가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상냥하고... 저를 포함해 AKB의 멤버는 모두 미나미에게 의지할 뿐인 5년간이었습니다.
언제나 미나미가 어떻게든 해줄 거야. 미나미의 말대로 하면 돼, 미나미가 웃고 있으니까 괜찮아..
모두들 그런 식으로 어리광부렸습니다.
물론 미나미가 화났을 때는 가장 무섭다는 것도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미나미의 상냥함이 무엇보다도 편안했습니다.
그런 미나미는, 언제, 누구에게 약한 소리를 하는 걸까.
언제, 누구에게 불평을 하는 걸까.
언제, 누구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걸까...
우리들이 떠넘긴 짐을 내려놓을 곳이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미안한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미나미만큼 리더십은 없지만, 그 무거워 보이는 짐, 함께 들어줄게.
분명, 다른 멤버들도 힘을 빌려줄 거야.
나는 미나미보다 연상이니까, 오늘 분명히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제 스무 살이 되었으니까, 약한 소리를 해주세요. 불평을 말해주세요. 어리광을 부려주세요. 자신의 꿈을 향해주세요.
저는 미나미를 정말 좋아합니다. 모두들 미나미를 정말 좋아합니다.
생일 축하해.
시노다 마리코로부터.
스무 살 생일 축하합니다.
AKB 오디션 때 갈색머리를 하고 나카모리 아키나의 노래를 부르던 그 양키 중학생이 벌써 스무 살이 된 건가 하고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옵니다.
제일 성실하고, 노력가고, 다른 사람들을 돌보아주고, 상냥하고... 저를 포함해 AKB의 멤버는 모두 미나미에게 의지할 뿐인 5년간이었습니다.
언제나 미나미가 어떻게든 해줄 거야. 미나미의 말대로 하면 돼, 미나미가 웃고 있으니까 괜찮아..
모두들 그런 식으로 어리광부렸습니다.
물론 미나미가 화났을 때는 가장 무섭다는 것도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평소에는 미나미의 상냥함이 무엇보다도 편안했습니다.
그런 미나미는, 언제, 누구에게 약한 소리를 하는 걸까.
언제, 누구에게 불평을 하는 걸까.
언제, 누구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걸까...
우리들이 떠넘긴 짐을 내려놓을 곳이 있는 걸까.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미안한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미나미만큼 리더십은 없지만, 그 무거워 보이는 짐, 함께 들어줄게.
분명, 다른 멤버들도 힘을 빌려줄 거야.
나는 미나미보다 연상이니까, 오늘 분명히 말해주고 싶습니다.
이제 스무 살이 되었으니까, 약한 소리를 해주세요. 불평을 말해주세요. 어리광을 부려주세요. 자신의 꿈을 향해주세요.
저는 미나미를 정말 좋아합니다. 모두들 미나미를 정말 좋아합니다.
생일 축하해.
시노다 마리코로부터.
2011년 3회 총선거 결과는 7위. "사람에 따라 꿈을 이루는 속도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엄청 느리지만 확실히 꿈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걸까, 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늘어갈 동료들, 그리고 언젠가 졸업해버릴지도 모르는 동료들도 있습니다만, 저는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멤버를 계속 지켜보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력은 반드시 보답받는다, 라고 저, 타카하시 미나미는, 이 인생을 걸고 증명합니다!"라고 코멘트. 계속 늘어갈 후배들에 대해 "각오하고 오는 것이 좋다. AKB48은 인원수가 많기 때문에, 가입하기 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인원수가 많기 때문에 가입하고 난 뒤로 미래가 보이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그러니까 일상생활을 모두 버리고 꿈을 이루려고 하는 일념으로 덤비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바보같은 말이지만, 내 경우는 AKB에 가입하고 나서 곧바로 친구들의 메일 주소를 모두 지워버렸다. 자신의 청춘 모든 걸 바친다는 마음으로 오지 않으면 곤란하다."고 밝혔다.
7월 22일부터 24일까지 AKB48 세이부돔 공연에 참가. 이 공연은 그룹의 전 멤버들이 참가하는 대규모 공연이었는데, 첫날 공연에서 신입 멤버들이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허둥지둥한 데다가, MC 역시도 공연과는 따로 놀았다는 혹평을 받았다. 공연 직후 그룹 전 멤버가 모인 자리에서 아키모토 야스시는 "내가 아는 중에 최악의 콘서트였다. 이대로라면 AKB48의 미래는 없다"라고 혹평. 타카미나는 따로 아키모토를 찾아가 울면서 호소하고는, 멤버들 전원의 앞에서 각오를 다진다. 7월 23일 리허설 중 마에다 아츠코가 긴장상태로 인한 호흡곤란, 발작 증세를 보이자 응급처치를 돕는 한편, 마에다가 맡은 자리의 대타를 몰색, 마츠이 쥬리나에게 센터 자리의 대타를 부탁한다. 하지만 마에다가 복귀하면서 대타 건은 무산되었다. 한편 22일 늦은 밤부터 23일 오후까지 쉴새없이 안무 점검, 멤버들 위치 점검, MC 점검 등을 하다가 피로를 호소했는데, 2일차부터 참가한 사토 유카리가 타카미나를 보고 "우이
2011년 12월 30일, 일본레코드 대상에 フライングゲット가 호명되자, 마에다 아츠코, 오오시마 유코와 함께 울면서 수상받았다.
2012년 1월 20일, AKB48그룹 신문에 "타카미나 교제 발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다. 기사내용으로는 중학교 1학년 시절 남학생과 3일 정도 사귄 일이 있다고 한다. 타카미나에 의하면 유치원 시절부터 첫사랑이었고, 초등학교가 따로따로가 되었지만, 중학교에서 재회해 만나게 되었다고. 연락은 남학생 쪽에서 "사귀자"라고 먼저 연락을 받고 사귀게 되었지만, 3일 만에 "역시 안 되겠다"고 차였다고 한다.
그리고 1월 30일, 히라지마 나츠미와 요네자와 루미가 불명예 사퇴를 당하게 되자, 블로그에 글을 썼다. 당시 다른 멤버들은 누구 하나 그녀들을 언급하지 않아서, 이름을 말해서는 안 되는 그 자라는 드립이 생길 정도였는데, 유일하게 타카미나만이 글을 쓴 것.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의 마음을 쓰고 싶습니다. 문장이 엉망진창인 점은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6년 동안, 5년 동안 함께 AKB48로 힘내온 멤버를 이렇게... 하고 괴롭기 짝이 없습니다. 분명 팬 여러분들도 같은 기분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것과 느끼는 것은 모두 다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슬프고 외롭다고 느끼는 사람, 화를 내는 사람, 떨어지게 되었어도 응원하려고 하는 사람. 저는 슬프고 외롭습니다. 보통의 여자애라면 보통의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AKB입니다. 사실은 바뀌지 않고 바꿀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열심히 노력해준 두 사람. 6년 동안, 5년 동안 힘내온 일 역시도 사실입니다. 떨어져도 동료입니다. 새로운 길을 걸을 두 사람을 응원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캡틴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아도 지금은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료와 함께 지금부터의 길을 걸어나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코멘트.
그러자 얼마 안 있어 주간문춘에서는 이번에는 타카미나를 노리고 글을 게재한다. "타카미나의 모친이 체포되었다"는 기사를 실은 것. 당시 경시청은 이 사실을 인정했지만, 사실은 주간문춘에서 보도한 미성년 성폭행과는 다르다는 결론이 지어졌다. 당시의 사건 정황상, 오히려 타카미나의 모친이 피해자일 가능성이 훨씬 높다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아들의 선배인 15살짜리 중학생을 성폭행했다고 하지만, 사건 성격상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데다가, 성폭행당했다는 중학생이 아들과 친한 양키였기 때문이다. 안티들조차도 이건 말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는지, 타카미나를 욕할 때 이 문제로 욕하는 안티는 별로 없다.[19]
4월 11일, NMB48의 연구생이었던 하라 미즈키가 졸업을 발표. 하라 미즈키는 NMB 1기생이지만, 팀N 결성 당시 16명 인원에 들지 못하고, 팀M 결성 당시에도 멤버에 들지 못한다. 결국 연구생 신분으로 남아있다가 졸업하게 된 셈. 타카미나와는 관계없는 일일 터인 이 일이 문제화된 것은, 그녀가 졸업의 이유로 블로그에 거론한 말 때문. "타카미나는 노력은 반드시 보답받는다고 말했지만, 미즈키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졸업입니다."라는 말 때문이다. 이에 대해 NMB48의 멤버들로부터 코멘트가 달렸는데, 야마모토 사야카는 "보답받는다는 건 지금 이 순간 하고 있는 노력만 말하는 게 아니다. 사과해둬라!"라고 코멘트. 똑같이 긴 무명기간을 거쳐야 했던 코야나기 아리사는 "확실히 모두가 노력한만큼 각자가 반드시 보답받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보답받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이 세계에서 그야 운도 있다. 하지만 운뿐만이 아니다."라고 반론. 이에 대해 본인은 "경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타카미나가 말한 노력은 반드시 보답받는다, 라는 말만 생각해서 그 다음의 코멘트를 잊어버렸습니다."라고 밝혔다.[20]
이에 대해 4월 17일 타카미나도 라디오를 통해 "제가 말한 '노력은 반드시 보답받는다'라는 말에 대해서입니다만, 저는 보답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제 일생을 걸고 그것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여줘서, 모두가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게끔 하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노력했다고 칭찬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가 실감하는 순간이 노력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부디 계속해서 노력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으니까요."라고 코멘트.
4월 18일, 타카미나 생탄제 극장공연에서 오리이 아유미로부터 편지가 와서 코지마 하루나가 낭독한다. 또한 이때 마에다 아츠코가 처음으로 편지를 보냈는데, 미네기시 미나미가 낭독 후, "앗짱은 이런 거 못한다고 거절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흔쾌하게 해줬다. 타카미나와의 인연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고 코멘트.
친애하는 타카미나에게
타카미나, 스물한 살이 된 걸 축하해.
AKB에 들어오고 나서 일곱 번째 생일을 맞이한 걸까나.
모두를 만난 건 벌써 꽤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네. 그립네..
AKB에 들어왔을 때, 타카미나는 아직 열네 살, 저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뭔가 신기하네.
아직 중학생이었던 어린 멤버들이 저에게 있어서는 활기찬 여동생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 귀엽고 귀여워서..
하지만 그 중에서도 타카미나는 중학생일 때부터 자주 주변을 돌보아줬던 것 같습니다.
아직 중학생인데도, 정말 똑부러지니까, ‘좀 더 의지해도 돼’, ‘무리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던 일이 몇 번이고 있었지.
하지만 그때마다 ‘아유미 언니(あゆ姉), 괜찮아’라고 웃으면서 말했었지.
하지만 일이 끝나고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는 자주 파김치가 되어 뻗었었지.
그런 타카미나를 볼 때마다 역시 제일 노력가구나, 라고 생각했어. 몇 번이고 고마워,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졸업하고 나서는, 타카미나가 그룹을 이끄는 사람이 되었네.
분명, 리더로써 힘든 일이 잔뜩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멤버도 늘고, 바뀌고..
AKB가 크게 성장하면서 멤버도, 스태프도 제각각 힘든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중에서도 그룹을 이끄는 것이 굉장한 고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일로 만났을 때, 타카미나는 자주 내 앞에서 눈물지었지. 하지만 언제부턴가 울지 않게 되었어.
또 하나의 큰 벽을 넘었구나, 하고 타카미나의 성장을 느껴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의지해 줘.
아유는 언제까지고 언니입니다.
지금까지 괴로운 일, 힘든 일이 잔뜩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잊지 말아줘.
모두들 타카미나를 정말 좋아합니다. 멤버도, 스태프도, AKB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타카미나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AKB가 결성됐을 때부터 모두의 꿈이었던 도쿄돔 공연이 결정되었네. 축하해. 모두들이라면 절대로 해낼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타카미나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축하해.
이제부터도 당당하게, 앞을 향해 걸어가세요. 모두들 타카미나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쳤을 때는 어깨 힘을 빼렴.
팬 여러분, 타카하시 미나미는 똑부러지는 성실한 아이지만, 사실은 섬세하고 연약한 아이입니다. 부디 지금부터도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좋아하는 타카미나, 정말 좋아하는 멤버, 모두들 행복해지길 바라.
이상, 아유네(あゆ姉) 오리이 아유미였습니다.
타카미나, 스물한 살이 된 걸 축하해.
AKB에 들어오고 나서 일곱 번째 생일을 맞이한 걸까나.
모두를 만난 건 벌써 꽤 오래전 일이 되어버렸네. 그립네..
AKB에 들어왔을 때, 타카미나는 아직 열네 살, 저는 스무 살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제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니, 뭔가 신기하네.
아직 중학생이었던 어린 멤버들이 저에게 있어서는 활기찬 여동생들이 많이 생긴 것 같아 귀엽고 귀여워서..
하지만 그 중에서도 타카미나는 중학생일 때부터 자주 주변을 돌보아줬던 것 같습니다.
아직 중학생인데도, 정말 똑부러지니까, ‘좀 더 의지해도 돼’, ‘무리하지 않아도 돼’라고 말했던 일이 몇 번이고 있었지.
하지만 그때마다 ‘아유미 언니(あゆ姉), 괜찮아’라고 웃으면서 말했었지.
하지만 일이 끝나고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는 자주 파김치가 되어 뻗었었지.
그런 타카미나를 볼 때마다 역시 제일 노력가구나, 라고 생각했어. 몇 번이고 고마워,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졸업하고 나서는, 타카미나가 그룹을 이끄는 사람이 되었네.
분명, 리더로써 힘든 일이 잔뜩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 멤버도 늘고, 바뀌고..
AKB가 크게 성장하면서 멤버도, 스태프도 제각각 힘든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중에서도 그룹을 이끄는 것이 굉장한 고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랜만에 일로 만났을 때, 타카미나는 자주 내 앞에서 눈물지었지. 하지만 언제부턴가 울지 않게 되었어.
또 하나의 큰 벽을 넘었구나, 하고 타카미나의 성장을 느껴서 정말 기뻤습니다.
그래도 가끔은 의지해 줘.
아유는 언제까지고 언니입니다.
지금까지 괴로운 일, 힘든 일이 잔뜩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잊지 말아줘.
모두들 타카미나를 정말 좋아합니다. 멤버도, 스태프도, AKB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타카미나를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AKB가 결성됐을 때부터 모두의 꿈이었던 도쿄돔 공연이 결정되었네. 축하해. 모두들이라면 절대로 해낼 거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역시 타카미나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말 축하해.
이제부터도 당당하게, 앞을 향해 걸어가세요. 모두들 타카미나를 신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쳤을 때는 어깨 힘을 빼렴.
팬 여러분, 타카하시 미나미는 똑부러지는 성실한 아이지만, 사실은 섬세하고 연약한 아이입니다. 부디 지금부터도 따뜻한 눈으로 지켜봐주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정말 좋아하는 타카미나, 정말 좋아하는 멤버, 모두들 행복해지길 바라.
이상, 아유네(あゆ姉) 오리이 아유미였습니다.
타카미나에게
타카미나, 스물한 살 생일 축하해. 오늘 가지 못해서 미안해.
가고 싶었어. 그 자리에 있고 싶었어...
타카미나에게 보내는 응원의 말을 다시금 생각해보려니, 정말 어렵네.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많아서, 타카미나에게 기대기만 했던 내게는 ‘고마워’라든지, ‘미안해’라든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야.
내가 졸업 발표할 때도, 나 말할게, 라고 타카미나에게만 말했었지.
받아들여줘서 고마워.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AKB가 어려웠을 때도 언제나 타카미나가 모두를 챙겨주고 이끌어줬지.
타카미나는 언제나 멤버의 일을 제일 많이 생각해줬지.
하지만, 떠맡기기만 해서 미안해.
타카미나가 옆에 있어줬던 것처럼, 나도 줄곧 옆에 있고 싶어. 내게는 그 정도 일밖에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언제나 옆에 있다는 거 잊지 말아줘. 그렇게 생각해줘.
타카미나는 꼭 타카미나의 꿈을 이루길 바라. 타카미나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테니까.
졸업 발표를 하고 지금까지처럼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적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득 추억을 만들자.
모두들 즐거운 추억, 기억, 가득 가득 만들자.
벌써 알고 있겠지만, 난 타카미나가 정말 좋아.
아이 러브 유,
아츠코(敦子)
타카미나, 스물한 살 생일 축하해. 오늘 가지 못해서 미안해.
가고 싶었어. 그 자리에 있고 싶었어...
타카미나에게 보내는 응원의 말을 다시금 생각해보려니, 정말 어렵네.
여러 가지 일이 너무 많아서, 타카미나에게 기대기만 했던 내게는 ‘고마워’라든지, ‘미안해’라든지 아무리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야.
내가 졸업 발표할 때도, 나 말할게, 라고 타카미나에게만 말했었지.
받아들여줘서 고마워. 옆에 있어줘서 고마워.
AKB가 어려웠을 때도 언제나 타카미나가 모두를 챙겨주고 이끌어줬지.
타카미나는 언제나 멤버의 일을 제일 많이 생각해줬지.
하지만, 떠맡기기만 해서 미안해.
타카미나가 옆에 있어줬던 것처럼, 나도 줄곧 옆에 있고 싶어. 내게는 그 정도 일밖에 할 수 없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언제나 옆에 있다는 거 잊지 말아줘. 그렇게 생각해줘.
타카미나는 꼭 타카미나의 꿈을 이루길 바라. 타카미나라면 뭐든지 해낼 수 있을 테니까.
졸업 발표를 하고 지금까지처럼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도 적어질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득 추억을 만들자.
모두들 즐거운 추억, 기억, 가득 가득 만들자.
벌써 알고 있겠지만, 난 타카미나가 정말 좋아.
아이 러브 유,
아츠코(敦子)
5월 4일, 시부야에 있는 양복점에서 쇼핑 중, 캔들의 촛불이 머리카락에 옮겨붙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타버렸다. 본인은 머리카락이 타는 줄도 모르고 쇼핑을 하고 있던 중, 뭔가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느끼고서야 알아차렸다고 한다. 점원이 소화기로 불을 껐지만, 이미 머리카락의 상당부분이 타버린 상태. 결국 단발로 머리를 자르고 만다. 이것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부스회 과학분석 때 머리카락에 대한 화제가 나오는 순간 타카미나의 목소리 톤 등의 변화를 분석한 과학자는 "트라우마로 여기는 것 같다."고 진단.
2012년 4회 총선거에서 6위. "올해는 스스로도 이런저런 일이 있는 1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힘들다고 생각했던 일도 많이 있었습니다. 작년에 '노력은 반드시 보답받는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분은, 노력은 보답받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전부는 보답받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운도 필요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노력은 무한대의 가능성입니다. 어쩌면 많은 분이 순위를 정하는 것이 싫다고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 순위를 정하는 것으로, 하나의 계기가 되어서 저희들이 절차탁마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AKB48에서는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괴롭다고 생각하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이겨낸 끝에 우리들의 꿈이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게 해주세요. 노력은 반드시 보답받는다고, 제 인생을 걸고 증명하겠습니다!"라고 코멘트.
8월 24일, 도쿄돔 콘서트 첫날, 토가사키 지배인의 등장으로, AKB48그룹 전체 대조각이 실시되었다. 이때 타카하시 미나미가 AKB48의 총감독으로 임명되고, 팀A의 캡틴은 시노다 마리코로 변경되었다. 참고로 이날, AKB48이 A,K,B 3팀 체제로 돌아가면서, 모든 팀의 캡틴이 바뀌었다. 팀K의 캡틴은 기존의 아키모토 사야카에서 오오시마 유코로, 팀B의 캡틴은 기존의 카시와기 유키에서 우메다 아야카로.
8월 25일, 마에다 아츠코 졸업콘서트 도중, 마에다 아츠코가 "아키모토 선생님으로부터 타카미나에게 선물이 있어"라고 소개. VTR로 유니버설 뮤직 최고책임자 맥스 홀이 타카미나의 솔로 데뷔를 발표. 타카하시의 솔로데뷔가 결정된 것은 멤버 중에는 마에다 아츠코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 발표는 도쿄돔 콘서트 2일차의 후반부에 마에다와 함께 듀엣곡 추억의 대부분을 함께 부르고 난 뒤 "타카하시에게 줄 VTR 선물이 있어"라는 마에다의 말이 끝난 후 이루어졌다. 영상 VTR에 등장하는 발표자는 유니버설 뮤직 그룹 인터내셔널(International division of Universal Music Group)의 사장 맥스 홀.
솔로 데뷔 싱글의 타이틀곡 Jane Doe는 소속사 선배인 나카마 유키에 주연의 드라마 '사키' 오프닝곡으로 타이업되었다.
발매일은 4월 3일로 결정. 4월 8일이 22세 생일인 만큼 그 전주에 발매해 오리콘차트 주간차트 발표일과 맞추려는 것으로 보인다.[21]
4월 1일 설마 하던 개인 공식블로그가 오픈(!) 본인도 'AKB 제일의 미갱신률을 자랑하는 내가 개인 블로그라니'라고 소감을 밝혔다. 팬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이라도 갱신해주면 족하다는 분위기였지만 의외로 하루에 1건~2건씩, 그것도 많은 사진을 첨부하여 열심히 갱신하고 있다.
4월 3일 염원의 솔로 데뷔를 하였으나, 같은 주에 EXILE PRIDE 싱글을 발매한 EXILE에 밀려 위클리는 2위로 그쳤다. 하지만 EXILE의 EXILE PRIDE 싱글은 항목을 보면 알 수 있지만 콘서트 티켓에 싱글을 끼워파는 식으로 판매량을 불린 싱글이기 때문에 별 의미는 없다. 발매당일 45,645장의 판매를 기록하고, 초동으로 약 8만 5천장, 여태까지 총판으로는 십만 장을 약간 넘는 수치를
5.2.5. 2013년 ~ 2014년
5월 10일, 극장에서 생탄제를 치렀다. 니토 모에노, 코타니 리호, 요코야마 유이, 시노다 마리코로부터 온 편지를 와타나베 마유가 대독, 키쿠치 아야카, 이리야마 안나가 자기 편지를 직접 읽었다. 그리고 팀A 멤버들로부터의 메시지를 전달받았다.2013년 5회 총선거 결과는 8위. 카미7의 자리에서 떨어져버렸지만, 본인의 코멘트를 담담하게 하고 내려갔다. 자신을 뒤엎고 올라온 W마츠이에 대한 축하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곧 이어진 시노다 마리코의 졸업발표에 눈물을 흘린다. 쓰러질 것 같은 타카미나를 옆자리에 앉아있던 미야자와 사에가 붙잡아줘야 했을 정도.
8월, 한여름의 돔투어 기간 동안 시노다 마리코, 이타노 토모미, 아키모토 사야카의 졸업콘서트가 열렸다.
12월 24일, 제39회 라디오 자선 뮤직송이라는 방송에 여성 그룹으로서 처음으로 퍼스널리티 담당. 시각장애인을 위한 신호등 음향기기 설치를 위한 모금운동의 일환이었다. 24시간 동안 멤버들이 교대로 등장하는 중, 타카미나는 계속 출연. 25일 정오에 무사히 임무 완수.
2월 17일, 2년 1개월 만에 구글 플러스 갱신. 갱신 내용은 요코야마 유이와의 사진.
2월 24일, 대조각 발표. AKB그룹 총감독 연임 결정과 더불어 팀A 캡틴 겸임. 대조각에 대해 후일 "솔직히 '에, 이 타이밍에 또?'라고 생각했습니다. 최근에는 총감독으로서 한 발 내딛었으니까요. 하지만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각이 있다고 들었을 때, 우선 캡틴에 대해서 떠올랐습니다. 요코야마가 머릿속에 떠올랐지만, 다음은 누굴까, 라고. 캡틴을 맡을 만한 사람이 부족하니까요. 발표가 되고 나서 곧바로 '다시 한 번 팀A를 만들자'라고 결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2014년의 대조각은 팬덤에서도 욕을 먹는 개막장 조각으로 유명하다. 수많은 AKB 그룹 멤버가 이적 및 겸임이 발표되면서 자리를 옮겨야 했고, 노기자카46에 교환이라는 명목으로 마츠이 레나를 겸임시키면서, 이코마 리나를 받았기 때문. 각 팀별로도 기존의 팀 멤버가 완전히 뿔뿔이 흩어진 팀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원형은 유지한 상태로 조각을 하던 2012년의 조각과는 완전히 딴판이 되었다. 게다가 팀별 파워 벨런스를 조절하지 못해서, 이후 속속들이 졸업 발표가 나오게 된다.
4월 30일, 극장에서 23살의 생탄제를 치렀다. 졸업을 앞둔 오오시마 유코로부터의 편지를 코지마 하루나가 낭독했는데, 이 편지는 팬들 사이에서 매우 감동적인 편지로 꼽힌다. 아래는 편지의 전문.
高橋みなみ様へ
타카하시 미나미님께
二十三歳のお誕生日、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스물 세 살 생일, 축하드립니다.
十四歳でAKBに入り、今年九周年に突入しますね。
열네 살에 AKB에 들어와, 올해 9년째에 돌입하는군요.
こんなに長くAKBにいると思わなかったと思いますが、
이 정도로 AKB에 오랫동안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ここだけAKBが進めて来られたのは誰でもないあなたのおかけだと思います。
AKB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期生としてAKBに入り、地下アイドルと呼ばれながら一寸先闇の状態の中ひたすらこのグループを愛して、愛して、愛し続けてくれました。
1기생으로 AKB에 들어와, 지하아이돌이라고 불리면서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늘상 그룹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계속 사랑해주었습니다.
そのせいなのか、あなたの影響を受けていつの間にか私もAKBをすごく愛していました。
그 때문인지, 당신의 영향을 받아 언젠가부터 저도 AKB를 매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でも、たまに、そこまでこのグループにすべてを捧げ込まなくても、と思うときがあります。
하지만, 가끔씩, 그렇게까지 그룹에 모든 것을 바치지 않아도, 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もちろん、キャプテンをやり、総監督になった以上、AKBのシンボルですから自分がやらなきゃ、と思うのはわかりますが、
물론 캡틴을 하고, 총감독이 된 이상, AKB의 상징이니까 스스로 해야해,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私は頑張りすぎた後の、力が抜けてしまったあなたを見ると胸が締付けられます。
저는 지나치게 노력한 뒤의, 기운이 빠져버린 당신을 보면 가슴이 조여옵니다.
そんな姿を目にするようになり、なんとか力になりたい、そう思うようになりあなたを戦友と呼ぶようになりました。
그런 모습을 보게 되어, 어떻게든 힘이 되고 싶어 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당신을 전우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私の人生の中で戦友と呼べるのはあなただけです。
제 인생에 전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しかし卒業を目の前にする私ですから、傍で力になれることが難しくなってきています。
하지만 졸업을 앞둔 저니까, 당신의 곁에서 힘이 될 수 없게 되고 있습니다.
なので、ここで今一緒に立っているメンバー、劇場に見に来てくれた客席のみなさん、配信を見てくれているファンの方々にお願いがあります。
그러니, 여기에 지금 같이 서 있는 멤버, 극장에 보러 와주신 객석의 모두들, 방송으로 봐주시는 팬 여러분들께 부탁이 있습니다.
彼女の力になってください。
그녀의 힘이 되어주세요.
彼女が笑顔で居続けるよう、支える力になってください。
그녀가 계속 활짝 웃는 얼굴로 있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힘이 되어주세요.
お願いします。
부탁드립니다.
メンバーに関して言えば、彼女以上にAKB48を愛する人が現れるのを期待しています。
멤버들에 대해서는, 그녀 이상으로 AKB48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주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最後に、たかみなへ。
마지막으로, 타카미나에게.
たかみなに出会えて良かった。見ている私たちの目の先はいつもきらきら輝いていて、同じ景色を見ていたこと、とても大切な思い出です。
타카미나와 만나서 다행이야. 보고 있는 우리들의 눈에는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 (타카미나와) 같은 경치를 보아온 것은, 정말 소중한 추억입니다.
私の事でも、誰の事でも、すぐに涙を流してしまう、そんなたかみなの心が大好きです。
저의 일에도, 다른 누구의 일에도 금방 눈물을 흘려버리는, 그런 타카미나의 마음을 정말 좋아합니다.
すべてを知っている訳ではないけれど、この八年半いろんなことがあったね?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8년 반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
仕事でも、私情な事でも、苦汁を飲む事もあったし、やりきれない事もあったけど、たかみなの顔を思い浮かべようとすると満面の笑顔で「優ちゃん」と言っている、そんな姿です。
일로도, 개인적인 사정으로도, 힘든 일도 있었고, 못 견딜 것 같은 일도 있었지만, 타카미나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만면에 미소를 짓고 “유우짱”이라고 말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この前も話したけど、本当に心の底からたかみなが幸せになることを一番願っています。
요전에도 말했지만, 정말로 마음속으로부터 타카미나가 행복해지길 무엇보다도 바라고 있습니다.
たかみなが幸せにならなかったら、神様は罰当たり。
타카미나가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신의 잘못.
でも、まずはこの一年、たかみなの夢とAKBの道が輝かしく希望に満ち溢れていますよう願っています。
하지만, 우선 이 일 년, 타카미나의 꿈과 AKB의 길이 빛나는 희망으로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生れてきてくれてありがとう。
태어나줘서 고마워.
よー!日本一!!
요-! 일본 제일!!
大島優子より
오오시마 유코가.
타카하시 미나미님께
二十三歳のお誕生日、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스물 세 살 생일, 축하드립니다.
十四歳でAKBに入り、今年九周年に突入しますね。
열네 살에 AKB에 들어와, 올해 9년째에 돌입하는군요.
こんなに長くAKBにいると思わなかったと思いますが、
이 정도로 AKB에 오랫동안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ここだけAKBが進めて来られたのは誰でもないあなたのおかけだと思います。
AKB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1期生としてAKBに入り、地下アイドルと呼ばれながら一寸先闇の状態の中ひたすらこのグループを愛して、愛して、愛し続けてくれました。
1기생으로 AKB에 들어와, 지하아이돌이라고 불리면서도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늘상 그룹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계속 사랑해주었습니다.
そのせいなのか、あなたの影響を受けていつの間にか私もAKBをすごく愛していました。
그 때문인지, 당신의 영향을 받아 언젠가부터 저도 AKB를 매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でも、たまに、そこまでこのグループにすべてを捧げ込まなくても、と思うときがあります。
하지만, 가끔씩, 그렇게까지 그룹에 모든 것을 바치지 않아도, 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もちろん、キャプテンをやり、総監督になった以上、AKBのシンボルですから自分がやらなきゃ、と思うのはわかりますが、
물론 캡틴을 하고, 총감독이 된 이상, AKB의 상징이니까 스스로 해야해, 라고 생각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私は頑張りすぎた後の、力が抜けてしまったあなたを見ると胸が締付けられます。
저는 지나치게 노력한 뒤의, 기운이 빠져버린 당신을 보면 가슴이 조여옵니다.
そんな姿を目にするようになり、なんとか力になりたい、そう思うようになりあなたを戦友と呼ぶようになりました。
그런 모습을 보게 되어, 어떻게든 힘이 되고 싶어 라고 생각하게 되어서, 당신을 전우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私の人生の中で戦友と呼べるのはあなただけです。
제 인생에 전우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당신뿐입니다.
しかし卒業を目の前にする私ですから、傍で力になれることが難しくなってきています。
하지만 졸업을 앞둔 저니까, 당신의 곁에서 힘이 될 수 없게 되고 있습니다.
なので、ここで今一緒に立っているメンバー、劇場に見に来てくれた客席のみなさん、配信を見てくれているファンの方々にお願いがあります。
그러니, 여기에 지금 같이 서 있는 멤버, 극장에 보러 와주신 객석의 모두들, 방송으로 봐주시는 팬 여러분들께 부탁이 있습니다.
彼女の力になってください。
그녀의 힘이 되어주세요.
彼女が笑顔で居続けるよう、支える力になってください。
그녀가 계속 활짝 웃는 얼굴로 있을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힘이 되어주세요.
お願いします。
부탁드립니다.
メンバーに関して言えば、彼女以上にAKB48を愛する人が現れるのを期待しています。
멤버들에 대해서는, 그녀 이상으로 AKB48을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주는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最後に、たかみなへ。
마지막으로, 타카미나에게.
たかみなに出会えて良かった。見ている私たちの目の先はいつもきらきら輝いていて、同じ景色を見ていたこと、とても大切な思い出です。
타카미나와 만나서 다행이야. 보고 있는 우리들의 눈에는 언제나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 (타카미나와) 같은 경치를 보아온 것은, 정말 소중한 추억입니다.
私の事でも、誰の事でも、すぐに涙を流してしまう、そんなたかみなの心が大好きです。
저의 일에도, 다른 누구의 일에도 금방 눈물을 흘려버리는, 그런 타카미나의 마음을 정말 좋아합니다.
すべてを知っている訳ではないけれど、この八年半いろんなことがあったね?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8년 반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지?
仕事でも、私情な事でも、苦汁を飲む事もあったし、やりきれない事もあったけど、たかみなの顔を思い浮かべようとすると満面の笑顔で「優ちゃん」と言っている、そんな姿です。
일로도, 개인적인 사정으로도, 힘든 일도 있었고, 못 견딜 것 같은 일도 있었지만, 타카미나의 얼굴을 떠올려보면 만면에 미소를 짓고 “유우짱”이라고 말하는, 그런 모습입니다.
この前も話したけど、本当に心の底からたかみなが幸せになることを一番願っています。
요전에도 말했지만, 정말로 마음속으로부터 타카미나가 행복해지길 무엇보다도 바라고 있습니다.
たかみなが幸せにならなかったら、神様は罰当たり。
타카미나가 행복해지지 않는다면, 그건 신의 잘못.
でも、まずはこの一年、たかみなの夢とAKBの道が輝かしく希望に満ち溢れていますよう願っています。
하지만, 우선 이 일 년, 타카미나의 꿈과 AKB의 길이 빛나는 희망으로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生れてきてくれてありがとう。
태어나줘서 고마워.
よー!日本一!!
요-! 일본 제일!!
大島優子より
오오시마 유코가.
9월 5일, Mujack 기획으로 HKT48 깜짝 방문. 이로서 SKE48, NMB48, HKT48의 극장에 모두 다녀온 멤버가 되었다.
11월 중순부터 12월 초순에 걸쳐 메챠이케 돗키리 해산 총선거 기획에 참가. 방송 직전에 기사화되어 메챠이케 돗키리에 대한 기사가 올라왔는데, 여기에 낚인 일부 인터넷 매체들이 "타카미나 연애발각, AKB 졸업!?"이라는 기사를 냈다. 해당 방송은 12월 6일 방영되었다.
12월 8일, 9주년 극장공연을 마친 뒤 졸업을 발표했다. 졸업시기는 2015년 12월 8일이고, 차기총감독으로 요코야마 유이를 지명 하였다.
2014년, AKB48에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동료와 이별하기도 하고, 그룹으로서 위기였습니다. 그 모든 것을 뛰어넘어서, 9년째를 이 극장에서 훌륭한 모습으로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되돌이켜보면 2005년 12월 8일, 우리들은 이 무대에 섰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키바48이라고 계속 불렸고, 일반적인 지명도는 올라가는 일 없이, 엄청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이 극장은 여기에 계속 있어줬습니다. 너무 힘든 때도, 괴로워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때도 이 극장으로 돌아오면 모두들 웃음으로 반겨주었습니다. 이 극장은 우리에게 있어선 집이나 다름없습니다.
(중략)
여기에서 제가 한 가지 발표할 것이 있습니다. 저, 타카하시 미나미는 2005년, 2015년 12월 8일을 기점으로 AKB48을 졸업합니다. 아직 1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는 AKB48 그룹의 총감독입니다. 멤버들을 이끌고 갈 시간, 유예를 가지기 위해 이 타이밍에 발표합니다.
저는 AKB48에 들어와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료와의 이별도 많이 있었습니다. 동기도 3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같은 곡이라도 없는 멤버가 많고, 저는 왜 여기 있는 건지 생각한 일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그래도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키모토 선생님을 시작으로 스태프 여러분, 여기 있는 훌륭한 멤버, 그리고 무엇보다도 팬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제 인생 최고의 보물입니다.
제가 이 AKB48에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일은 적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AKB48의 미래가 될 뭔가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은혜갚기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졸업하고 난 뒤의 AKB48의 총감독에는 요코야마 유이를 지명합니다. 솔직히, 총감독은 힘듭니다. 괴롭습니다. 가까이 있는 멤버들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좋은 요코야마 유이에게 총감독이라는 짐을 떠넘기는 것은 너무 싫습니다.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소중한 후배에게 그런 걸 떠넘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정말로 괴롭습니다. 총감독으로 있는 건 저 하나로 끝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AKB는 여자아이가 많이 있는 그룹입니다. 이야기에 꽃이 피우고 집중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전혀 정리되지 않는 때도 많습니다. 그런 때에 한 소리, 가자, 하자, 라고 말해줄 사람이 이 그룹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제게 있어서 훌륭한 후배입니다. 정말 성실하고 융통성이 없습니다. 그래도 굉장히 열심히 해주었습니다. 꿈도 저와 같은 솔로 데뷔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총감독을 넘기는 것은 꿈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될지도 몰라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총감독은 괴롭습니다. 그래도, 동시에 세간에 보여질 수 있는 찬스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코야마에게 있어서 찬스라고 생각해 힘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후략)"
되돌이켜보면 2005년 12월 8일, 우리들은 이 무대에 섰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아키바48이라고 계속 불렸고, 일반적인 지명도는 올라가는 일 없이, 엄청 힘든 일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때에도 이 극장은 여기에 계속 있어줬습니다. 너무 힘든 때도, 괴로워서 일어설 수 없을 것 같은 때도 이 극장으로 돌아오면 모두들 웃음으로 반겨주었습니다. 이 극장은 우리에게 있어선 집이나 다름없습니다.
(중략)
여기에서 제가 한 가지 발표할 것이 있습니다. 저, 타카하시 미나미는 2005년, 2015년 12월 8일을 기점으로 AKB48을 졸업합니다. 아직 1년 뒤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저는 AKB48 그룹의 총감독입니다. 멤버들을 이끌고 갈 시간, 유예를 가지기 위해 이 타이밍에 발표합니다.
저는 AKB48에 들어와서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료와의 이별도 많이 있었습니다. 동기도 3명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주변의 풍경도 달라졌습니다. 같은 곡이라도 없는 멤버가 많고, 저는 왜 여기 있는 건지 생각한 일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입니다. 그래도 여기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키모토 선생님을 시작으로 스태프 여러분, 여기 있는 훌륭한 멤버, 그리고 무엇보다도 팬 여러분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그것이 제 인생 최고의 보물입니다.
제가 이 AKB48에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일은 적을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AKB48의 미래가 될 뭔가를 남기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은혜갚기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졸업하고 난 뒤의 AKB48의 총감독에는 요코야마 유이를 지명합니다. 솔직히, 총감독은 힘듭니다. 괴롭습니다. 가까이 있는 멤버들은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이좋은 요코야마 유이에게 총감독이라는 짐을 떠넘기는 것은 너무 싫습니다.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소중한 후배에게 그런 걸 떠넘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정말로 괴롭습니다. 총감독으로 있는 건 저 하나로 끝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AKB는 여자아이가 많이 있는 그룹입니다. 이야기에 꽃이 피우고 집중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전혀 정리되지 않는 때도 많습니다. 그런 때에 한 소리, 가자, 하자, 라고 말해줄 사람이 이 그룹에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제게 있어서 훌륭한 후배입니다. 정말 성실하고 융통성이 없습니다. 그래도 굉장히 열심히 해주었습니다. 꿈도 저와 같은 솔로 데뷔입니다. 그런 그녀에게 총감독을 넘기는 것은 꿈으로부터 멀어지는 일이 될지도 몰라 고민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계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총감독은 괴롭습니다. 그래도, 동시에 세간에 보여질 수 있는 찬스가 늘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코야마에게 있어서 찬스라고 생각해 힘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후략)"
12월 10일, 요코야마 유이와 함께 ANN에 출연했다. 요코야마를 총감독으로 지명한 이유에 대해서 털어놓았는데,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이미 2년 전인 2012년에도 요코야마 유이에게 총감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라고 물어본 일이 있었고, 당시 요코야마는 "음..."하고 얼버무렸다고 한다.
2. 아키P에게 졸업에 대해 상담하고 2014년 12월 8일로 발표날짜를 결정했을 때, 누구에게 다음 총감독직을 맡길 건지 고민했다고 한다. 머릿속에 떠오른 건 요코야마였지만 2년 전의 대답도 있었고, 그녀에게 총감독이라는 짐을 떠안기는 게 싫은 자신도 있었다고.
3. 그래서 총감독이라는 건 자신 하나로 끝내려고 생각했다고.
4. 발표가 가까워졌을 때쯤, 요코야마에게 다시 "나 졸업하려고 하는데, (총감독) 어떻게 생각해?"라고 물었다고 한다. 만약 이때 요코야마의 대답이 2년 전과 같았다면 총감독직은 자신 하나만으로 끝내려했지만, 요코야마의 대답은 "네"였다고 한다.
5. 그래서 발표하는 날, 요코야마를 총감독으로 지명했다.
5.2.6. 2015년 ~ 2016년
2015년 1월부터 방영되는 마지스카 학원 4에 등장한다. 마지여학교 OG로 일정식집 '아소비나'의 주인으로 등장하는데, 사쿠라 등에게 조언해주는 역할로 이번에는 나름 비중이 생기는가 싶었는데, 여전히 비중이 적다. 마지스카 학원 4는 시마자키 하루카와 미야와키 사쿠라를 띄워주기 위한 드라마였기 때문에 또다시 타카미나는 한을 풀지 못한다.2015년 3월 22일 방송된 ' 노스리브스의 주간 노스리부'에서 타카하시의 생일인 2015년 4월 8일, Zeep 도쿄에서 첫번째 솔로 콘서트가 개최되는 것이 발표되었다. 티켓 가격은 타카하시의 생일과 키(148.5cm)에 맞춰서 4800엔으로 책정되었다. #
4월 1일, 주간문춘에서 2011년 4월 8일 타카미나의 생일파티 음주 사건을 기사화했다. 이 일로 팬덤이 뒤숭숭해졌지만, 얼마 안 있어 다시 잠잠해졌다. 누가 보더라도 해당 자리는 타카미나 주최가 아니라, 오히려 강제참가였다는 것이 확실했기 때문.
4월 8일, 24세의 생일을 맞아, 도쿄 오다이바 zepp tokyo에서 솔로 첫 공연을 가졌다. 이날 총선거 목표에 대해서 "한 명의 멤버로서 마지막이 되는 올해에는 1위를 얻고 싶습니다"라고 울면서 말했다. 총선거가 시작되고 7년 만에 1위를 얻고 싶다고 말한 것이다.
4월 20일, 극장에서 생탄제를 치렀다. 코지마 하루나가 깜짝 등장했고, 나카무라 마리코가 아키모토 야스시 프로듀서로부터 온 편지를 대독했다. 아래는 편지 전문.
2005년 10월 30일,
AKB48의 최종오디션에 합격한 당신은, 14살이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아니,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지긋이 어른들을 관찰하는 것 같은 소녀였습니다.
그로부터 9년 반의 세월이 흘러,
다시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고 해보니,
솔직히 무엇을 써야 할까 모르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추억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단지,
어째서인지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던가.
“AKB48란 타카하시 미나미다.(AKB48とは、高橋みなみのことである。)”
나는 책의 띠지에 그렇게 적었습니다.
AKB48가 팔리지 않던 시절부터 멤버를 지지해주고, 스태프를 이끌어, 팬 모두와 정면에서 마주보아온 것은 당신입니다.
세간으로부터 비난받았을 때도, 당신은 도망치는 일 없이 그 작은 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불합리한 일도 잔뜩 있었겠죠. 그러나 당신은 불평이나 불만은커녕, 투정 하나 부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 멀고 먼 꿈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차기총감독으로 요코야마 유이를 지명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던 당신의 마음을, 아플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괴로운 포지션은 나 하나만으로 족해’라고 생각한 거겠죠.
많은 멤버가 자신의 꿈을 향해 떠나는 중에도, 당신은 미소 지으며 마중했고, 계속 이 AKB48 그룹에 남겨진 멤버들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마음처럼, 소녀가, 어린 형제들이 자립해나갈 때까지 자신의 꿈이나 미래를 뒤로 미뤄둔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의 AKB48에 대한 사랑에 응석부려버린 것을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아, 다음은 당신의 순서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꿈만을 생각할 순서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그 첫 걸음을 내딛으세요.
당신이 이 악물고 노력하는 그 모습을, 많은 후배들이 배웠습니다.
분명, 당신의 AKB48에 대한 사랑을 계승해주겠지요.
다음으로, 당신이 이곳을 떠났을 때, 바깥에서도 빛나고 있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세요.
멤버뿐 아니라, 모든 팬분들과, 많은 사람들의 용기가 됩니다.
노력은, 보답받는 거구나, 라고.
고마워. 지금까지 AKB48그룹을 이끌어주어서.
고마워. AKB48 멤버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이 세상에 태어나주어서.
고마워, 타카미나.
생일, 축하해.
아키모토 야스시.
AKB48의 최종오디션에 합격한 당신은, 14살이었습니다.
눈에 띄지 않는, 아니, 일부러 눈에 띄지 않는 것처럼 지긋이 어른들을 관찰하는 것 같은 소녀였습니다.
그로부터 9년 반의 세월이 흘러,
다시 당신에게 편지를 쓰려고 해보니,
솔직히 무엇을 써야 할까 모르게 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추억이 너무 많아서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습니다.
단지,
어째서인지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나는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주었던가.
“AKB48란 타카하시 미나미다.(AKB48とは、高橋みなみのことである。)”
나는 책의 띠지에 그렇게 적었습니다.
AKB48가 팔리지 않던 시절부터 멤버를 지지해주고, 스태프를 이끌어, 팬 모두와 정면에서 마주보아온 것은 당신입니다.
세간으로부터 비난받았을 때도, 당신은 도망치는 일 없이 그 작은 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불합리한 일도 잔뜩 있었겠죠. 그러나 당신은 불평이나 불만은커녕, 투정 하나 부리지 않았습니다.
단지 하나, 멀고 먼 꿈만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차기총감독으로 요코야마 유이를 지명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던 당신의 마음을, 아플 정도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괴로운 포지션은 나 하나만으로 족해’라고 생각한 거겠죠.
많은 멤버가 자신의 꿈을 향해 떠나는 중에도, 당신은 미소 지으며 마중했고, 계속 이 AKB48 그룹에 남겨진 멤버들을 지켜주고 있었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마음처럼, 소녀가, 어린 형제들이 자립해나갈 때까지 자신의 꿈이나 미래를 뒤로 미뤄둔 나날들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의 AKB48에 대한 사랑에 응석부려버린 것을 정말로 죄송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아, 다음은 당신의 순서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꿈만을 생각할 순서입니다. 주저하지 말고 그 첫 걸음을 내딛으세요.
당신이 이 악물고 노력하는 그 모습을, 많은 후배들이 배웠습니다.
분명, 당신의 AKB48에 대한 사랑을 계승해주겠지요.
다음으로, 당신이 이곳을 떠났을 때, 바깥에서도 빛나고 있는 모습을 후배들에게 보여주세요.
멤버뿐 아니라, 모든 팬분들과, 많은 사람들의 용기가 됩니다.
노력은, 보답받는 거구나, 라고.
고마워. 지금까지 AKB48그룹을 이끌어주어서.
고마워. AKB48 멤버가 되어주어서.
고마워. 이 세상에 태어나주어서.
고마워, 타카미나.
생일, 축하해.
아키모토 야스시.
4월 22일, 법무성 교정지원관에 위촉. 전국 수형소의 교정 활동을 돕는 업무를 한다고 한다. 그녀 외의 교정지원관으로는 하마사키 아유미, EXILE, MAX 등이 있다.
2015년 7회 총선거 결과 4위 기록(표수 13만 표 이상[22]. 본인 최고기록 갱신). 이하는 4위 소감문. 참고로, 이 소감문은, 한국 언론에서는 정말로 드물게 스피치 전문을 기사화했다.[23]
먼저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AKB에 들어 와서 올해로 10년이 지났습니다. 7번째 총선, 마지막 총선거였습니다.
1기생으로 AKB에 들어와 수많은 멤버의 졸업을 지켜봤습니다. 여러 가지 갈등도, 여러 가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들어온 지 1년쯤 지날 무렵, "나는 이 그룹에서는 1인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동기 중에는 마에다 아츠코가 있었고 다음 기수엔 오오시마 유코가 있었습니다. 모두 대단하고 카리스마가 있고 절대적인 인기가 있어서.....
저는 가수가 되고 싶어서 연예계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수많은 오디션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합격한 것이 AKB48이었습니다.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귀엽지도, 예쁘지도 않고 아이돌의 세계도 전혀 몰라서 어떻게 하면 인기가 생기는지도 몰랐습니다만 이 그룹을 몹시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깨닫고 보니 캡틴과 총감독이 되어 있었습니다.
총선거 때마다 "저 따위가 '1위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그룹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룹의 미래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센터를 맡는 것이 좋겠다.", "이 사람이 다음 1위가 되면 좋지 않을까"..... 제 자신의 일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여기 있는 멤버 모두가 꿈꾸고 있는 것을 생각했었습니다. 1위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총선거에서 처음으로 "1위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시원합니다. "1위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팬 여러분과 함께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릴 수 있었던 것이 매우 기쁩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여기에 서서 무슨 말을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이 정답일까. 마지막 총선에서 저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남길까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마 멤버 모두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분하거나 노력을 해도, "100을 노력해도 1정도 밖에 평가받지 못하는구나"라며, 많은 모순을 느꼈을 겁니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모순과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생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노력해야 할 때가 한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이번 선거에는 272명이 출마했습니다만 불린 것은 80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불리지 않은 멤버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모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극장 공연에 계속 서고, 학업도 동시에.....모두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무대에 서는 것은 80명입니다. 그러니 AKB그룹에 있을수록 노력하는 방법을 점점 더 알 수 없게 될 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선발에 들어갈 수 있을까, TV에 나올 수 있을까, 인기를 얻을까.....모두 고민하겠지요.
그러나 미래는 지금 입니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노력한다는 사실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해마다 노력은 반드시 보답 받는다고 저 타카하시 미나미가 인생을 걸고 증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노력이 반드시 보답 받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저는 노력하는 사람이 보답 받았으면 합니다. 모두 목표가 있고 꿈이 있겠지만, 그 노력이 언제 평가받고 보답 받을지는 모릅니다. 모르는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힘들지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팬 여러분은 반드시 봐 주십니다. 이것은 제가 AKB인생을 통해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마츠무라가 설마 제 명언을 말해줄지 몰랐는데.....[24] 그렇죠,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허울 좋은 소리긴 하죠. 그래도 졸업하는 올해도 말해야겠습니다. 종종 어쿠스틱 버전이라는 둥, 마리코 님이 놀리곤했지만 이게 타카하시 미나미 총선거 마지막 버전입니다.
노력은 반드시 보답 받는다고, 저 타카하시 미나미는 인생을 걸고 증명하겠습니다.
(努力は必ず報われると私、高橋みなみはこの人生をもって証明します.)
제가 AKB에 들어 와서 올해로 10년이 지났습니다. 7번째 총선, 마지막 총선거였습니다.
1기생으로 AKB에 들어와 수많은 멤버의 졸업을 지켜봤습니다. 여러 가지 갈등도, 여러 가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들어온 지 1년쯤 지날 무렵, "나는 이 그룹에서는 1인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동기 중에는 마에다 아츠코가 있었고 다음 기수엔 오오시마 유코가 있었습니다. 모두 대단하고 카리스마가 있고 절대적인 인기가 있어서.....
저는 가수가 되고 싶어서 연예계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수많은 오디션에 떨어졌습니다. 그러다 합격한 것이 AKB48이었습니다.
가수가 되고 싶었지만,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귀엽지도, 예쁘지도 않고 아이돌의 세계도 전혀 몰라서 어떻게 하면 인기가 생기는지도 몰랐습니다만 이 그룹을 몹시 좋아하게 되었기 때문에 노력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깨닫고 보니 캡틴과 총감독이 되어 있었습니다.
총선거 때마다 "저 따위가 '1위가 되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그룹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룹의 미래만 생각했습니다. "이 사람이 센터를 맡는 것이 좋겠다.", "이 사람이 다음 1위가 되면 좋지 않을까"..... 제 자신의 일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 역시 여기 있는 멤버 모두가 꿈꾸고 있는 것을 생각했었습니다. 1위가 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총선거에서 처음으로 "1위가 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정말 시원합니다. "1위가 되고 싶다"고 말하고, 팬 여러분과 함께 하나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릴 수 있었던 것이 매우 기쁩니다. 정말 행복합니다.
여기에 서서 무슨 말을 할까를 생각했습니다. 무엇을 말하는 것이 정답일까. 마지막 총선에서 저는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남길까를 생각했습니다. 저는 멤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아마 멤버 모두가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면서 분하거나 노력을 해도, "100을 노력해도 1정도 밖에 평가받지 못하는구나"라며, 많은 모순을 느꼈을 겁니다.
그런데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모순과 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생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노력해야 할 때가 한순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이번 선거에는 272명이 출마했습니다만 불린 것은 80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불리지 않은 멤버는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모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극장 공연에 계속 서고, 학업도 동시에.....모두가 노력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과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무대에 서는 것은 80명입니다. 그러니 AKB그룹에 있을수록 노력하는 방법을 점점 더 알 수 없게 될 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선발에 들어갈 수 있을까, TV에 나올 수 있을까, 인기를 얻을까.....모두 고민하겠지요.
그러나 미래는 지금 입니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 노력한다는 사실이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시작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해마다 노력은 반드시 보답 받는다고 저 타카하시 미나미가 인생을 걸고 증명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노력이 반드시 보답 받는다고는 할 수 없다,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저는 노력하는 사람이 보답 받았으면 합니다. 모두 목표가 있고 꿈이 있겠지만, 그 노력이 언제 평가받고 보답 받을지는 모릅니다. 모르는 길을 계속 걸어가야 합니다. 힘들지만 혼자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랍니다. 팬 여러분은 반드시 봐 주십니다. 이것은 제가 AKB인생을 통해 단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세요.
마츠무라가 설마 제 명언을 말해줄지 몰랐는데.....[24] 그렇죠,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고.....허울 좋은 소리긴 하죠. 그래도 졸업하는 올해도 말해야겠습니다. 종종 어쿠스틱 버전이라는 둥, 마리코 님이 놀리곤했지만 이게 타카하시 미나미 총선거 마지막 버전입니다.
노력은 반드시 보답 받는다고, 저 타카하시 미나미는 인생을 걸고 증명하겠습니다.
(努力は必ず報われると私、高橋みなみはこの人生をもって証明します.)
8월부터 방영된 마지스카 학원 5에서 전작과 마찬가지로 OG로 등장한다. 비중은 전작에 비해 조금 늘어났지만, 애초에 이 드라마도 요코야마 유이와 미야와키 사쿠라 띄워주기용으로 제작된 드라마라, 여전히 분량은 적은 수준이다. 이 드라마를 끝으로 AKB48 드라마엔 더 이상 출연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끝끝내 한을 못 풀었다.
11월 23일, 후쿠오카에서 열린 전국 악수회에서 졸업콘서트 일정 발표.
12월 6일, 마에다 아츠코, 시노다 마리코 등 졸업생들까지 참여한 가운데 10주년 이벤트를 개최했다.
12월 8일, 극장 10주년 공연을 개최. 이 자리에서 요코야마 유이와 총감독직 계승식을 치른다. 이날 이후 공식적으로 총감독은 요코야마 유이가 되었다.
12월 24일 에세이 '리더론'을 발매했다. 발매 3주차에 사시하라 리노의 역전력 총판매량 기록을 깼으며, 2016년 2월 기준 판매부수 10만 부 돌파. 2016년 6월 8쇄 증쇄. 12만 부 판매돌파.
12월 31일, NHK홍백가합전에 출연했다. 마에다 아츠코, 오오시마 유코가 서프라이즈 등장한다.
2016년 마에다 아츠코, 사시하라 리노와 함께 '우리들의 시대'라는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 세 명이 AKB48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대담 기획인데, 사시하라가 총감독으로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묻자, 후배 멤버들의 스캔들에 관련된 일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악수회 등에서 후배 멤버들의 팬이 "○○가 스캔들을 일으켰는데, 왜 안 짤라요?" 등등의 항의를 많이 해왔다고.
3월 27일, 졸업콘서트가 개최되었다. 1기생 졸업생들이 와주었다. 세트리스트 31곡 모두 열창. 원래 이 콘서트는 3월 26일, 27일 양일 간 이루어졌는데, 26일은 AKB48 단독 콘서트, 27일 오전은 동서대항전이었고, 27일 오후가 타카미나 졸업콘서트였다. 졸업콘서트 중 AKB, SKE, NMB, HKT, NGT 등 자매그룹 꼬꼬마들과 함께 한 곡씩을 불렀다. 졸업콘서트가 끝난 뒤, 무대 뒤에서 1기 졸업생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었는데, 친하게 지냈던 동기들을 졸업으로 떠나보내고 외로워했던 심정을 털어놓았다. 더불어 이 자리에서 요코야마 유이에 대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4월 8일, 졸업공연을 끝으로 그룹을 졸업했다.(총 재적기간 3775일). 시노다 마리코로부터의 전화 연결, 마지막 곡에서 마에다 아츠코, 이타노 토모미 등 1기생 졸업생들이 참여했다. 여담이지만, 이 자리에는 아직 졸업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은 멤버는 물론이고, 바로 전주에 극장 졸업공연에 참가한 쿠라모치 아스카도 있었다. 한편 선곡 중 Pioneer MC에서 사시하라 리노가 "오랜만이네~"라고 말하자, 그러고보니 언제부터 사시하라 모습이 안 보였더라, 라고 디스.[25]
5.3. 졸업 콘서트
자세한 내용은 祝 高橋みなみ卒業“148.5cmの見た夢”in 横浜スタジアム 문서 참고하십시오.5.4. 선발 총선거 로그
연도/회차 | 순위 | 득표수 | 등락 | 서열 | 소속 |
2009(1회) | 5 | 2,614 | 첫 진입 |
선발 (카미7) |
AKB48 팀 A |
2010(2회) | 6 | 17,787 | ▽1 |
선발 (카미7) |
AKB48 팀 A |
2011(3회) | 7 | 52,790 | ▽1 |
선발 (카미7) |
AKB48 팀 A |
2012(4회) | 6 | 65,480 | ▲1 |
선발 (카미7) |
AKB48 팀 A |
2013(5회) | 8 | 68,681 | ▽2 | 선발 | AKB48 팀 A |
2014(6회) | 9 | 57,388 | ▽1 | 선발 | AKB48 팀 A |
2015(7회) | 4 | 137,252 | ▲5 |
선발 (카미7) |
AKB48 팀 A |
6. 사건 및 사고
6.1. 모친 관련 사건
2012년 2월 4일, 주간문춘에 타카하시의 어머니가 타카하시의 남동생 선배인 15살짜리 중학생과 수차례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되었다는 충격적인 보도가 나왔다. 보도 주체가 주체인 만큼 믿지 않았으나 2월 7일 야후 재팬에 기사가 뜨고 경시청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함으로 인해 사실로 확정되었다. 더군다나 어머니는 "음행 혐의"를 인정했고 벌금을 내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다행히도 그동안 쌓아놓은 이미지가 있는데다 본인이 잘못한건 아니므로 동정여론이 대부분이지만 워낙 또라이 오타쿠들이 많은데다 AKB는 악수회 등 팬과 직접적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아 팬들의 우려를 샀다. 2ch의 닼민 스레는 안티들이 난입해 한동안 난장판이었다. 게다가 문춘 보도에 따르면 남동생도 양키로 유명했고, 부모님은 수년전에 부친의 과도한 부채로 이혼한 상태라고 한다. 주간문춘 기사 번역본그러나 일단 주간문춘의 내용을 통해서 보더라도, 이 사건에 타카미나는 물론, 타카미나의 어머니에게도 사회적 비난을 보낼 이유가 없다. 우선 어디까지나 주간문춘의 내용을 통해 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이 드러난다.
1. 세 명의 중학교 학생들이 폭행사건으로 입건되었는데, 그 세 명 중 한 명이 타카미나의 남동생이었다는 것.
2. 취조 과정에서 세 명 중 한 명(이하 "A"라 하자.)이 타카미나의 모친과 잠자리를 했다고 말한 것.
3. 주변 주민들의 증언을 통해 볼 때, A와 다른 한 명은 타카미나의 모친 집에 무단으로 드나들었고, A와 타카미나의 모친이 성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주변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동네에서 유명한 양키로, 폭행, 폭언 등을 일삼는 무리라고 한다.
경시청의 발표자료는, 타카미나의 모친이 A와 성관계를 가졌다는 혐의(즉 "음행 혐의")에 대해서 타카미나의 모친이 혐의를 인정했다고 말한다. "음행 혐의"란 성인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것을 뜻하는데, 문제는 이 혐의는 행위 자체만 볼 뿐, 강제성유무를 전혀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성인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었다는 사실 관계가 있으면, 그것이 미성년자의 협박이나 강요에 의한 것인지는 전혀 안 따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3번째 항목을 보더라도, A가 모친을 강제로 협박해 성관계를 맺었을(즉 강간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알 수 있다. 주간문춘에서도 남동생이 A의 명령을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일이 많았고, 집에 무단으로 침입하는 등의 일이 있었다고 적고 있기 때문. 물론 주간문춘 기사의 말미에 마치 타카미나의 모친이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처럼 서술하는 내용이 있지만, 주간문춘 기사의 전체적 뉘앙스가 타카미나의 모친이 일방적으로 잘못했다고 몰아붙이려는 뉘앙스인 점을 고려해보면, A가 타카미나의 모친을 강간했던 것일 가능성이 높다.
6.2. 생일 파티 사건
※ 관련 사진은 주간 문춘에서 전재가 금지되어 있으므로 직접 삽입하거나 링크하지 마시기 바랍니다.2011년 4월 8일, 타카미나의 생일파티가 도쿄의 모 술집에서 열렸다는 폭로가 나왔다. 이 폭로는 주간문춘발로, 사건이 있은 지 4년 가까이 지난 2015년 4월 1일 기사화된 것이다. 기사에는 술집의 모습이 찍힌 사진들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룹의 고위 관계자와 AKB그룹 의상 담당인 카야노 시노부 등 약 10여 명의 어른들이 동석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타카하시 미나미와 동기인 미네기시 미나미도 이 자리에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타카미나의 경우는 2011년 4월 8일부로 20세 성인이 되기 때문에, 술집에 있다고 해도 문제될 것이 없지만, 문제는 미네기시가 아직 19세 미성년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폭로가 터진 후 팬덤이 뒤집어졌는데, 그도 그럴 게 일개 멤버의 생일파티라고 하기에는 참여한 면면들이 너무 엄청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때 2ch를 주축으로 타카미나의 배개 영업 논란이 터져나왔다. 그러나 주간문춘의 기사에서도 배개영업을 입증할 만한 내용은 단 한 줄도 게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논란은 결국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다. 타카미나와 미네기시 등 관련자의 해명은 없는 상태로, 지금까지의 여타 스캔들 문제에 대한 그룹의 대응과 똑같이 스루하는 듯 싶었다.
폭로가 터진 시점이 타카미나의 마지막 총선거를 앞둔 시점이기 때문에, 표수 하락 등 심하면 권외까지 추방될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팬덤 내에서는 이 사건에 대해 냉정하게 분석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우선 폭로 기사에 따르면 그룹의 고위관계자들과 카야노 시노부까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는데, 사실 일개 멤버의 생일파티에 참석할 만한 인물들이 아니다. 게다가 아직 성년이 되지도 않은 미네기시까지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이상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즉, 타카미나가 주도적으로 생일파티를 연 것이 아니라, 높으신 분들 중 누군가가 타카미나의 생일파티라는 명목으로 술잔치를 열고 타카미나와 미네기시를 강제 참가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사진에 담긴 타카미나의 표정이 억지로 어울린다는 느낌이 만만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주간문춘의 기사를 보아도 배개 영업에 대한 기사는 한 줄도 실리지 않은 걸로 보아서는, 생일파티는 그냥 술잔치로 끝낸 듯하다.
사진에 만취한 프로덕션의 일부 인사들이 상의 탈의를 한 모습이 찍혀있었기 때문에, 당시 동일본 대지진으로 우울해했던 시기에 이런 술잔치를 벌인 타카미나에 대해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폭로가 터지고 얼마 안 있어서는, 비난의 화살이 그룹 고위 관계자를 향했다. 어딜 어떻게 봐도, 타카미나가 주도한 술잔치는 아니라는 것에 모두 동의한 것이다.
진위여부가 어떻고는 별개로, 스캔들이 터졌기 때문에 표수에 상당한 영향이 있을 거라는 관측이 주를 이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본인의 최고기록을 갱신한 4위, 총 득표수 13만 표 이상을 얻었다.[26] 결과적으로 이 사건으로 인한 이미지 저하는 없었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폭로가 나온 지 2년 여가 흐른 2017년 시점에서는 화젯거리로도 다뤄지지 않는 상황이다. 일본 내의 인식은 그냥 술파티에 강제로 참가했다는 것으로 굳어진 상황.
7. 참여곡
7.1. 선발 참여곡
AKB48 | ||
NO | 커버 | 싱글명 / 발매일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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桜の花びらたち 센터 2006.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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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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スカート、ひらり W 센터 2006. 6.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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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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会いたかった W 센터 2006.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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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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制服が邪魔をする 센터 2007.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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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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軽蔑していた愛情 W 센터 2007. 4. 18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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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NGO! W 센터 2007. 7. 18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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僕の太陽 2007. 8. 8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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夕陽を見ているか? 2007. 10. 31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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ロマンス、イラネ 2008. 1. 23 |
8
|
|
桜の花びらたち2008 2008. 2. 27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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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by! Baby! Baby! 2008. 6. 13 |
10
|
|
大声ダイヤモンド 2008. 10. 22 |
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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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年桜 2009. 3. 4 |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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涙サプライズ! 2009. 6. 24 |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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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い訳Maybe 2009. 8. 26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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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VER W 센터 2009. 10.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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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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桜の栞 W 센터 2010. 2. 17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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ポニーテールとシュシュ W 센터 2010.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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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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ヘビーローテーション 2010. 8. 18 |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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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ginner 센터 2010.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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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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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桜の木になろう 2011. 2. 16 |
21
|
|
Everyday、カチューシャ 2011. 5. 25 |
22
|
|
フライングゲット 2011. 8. 24 |
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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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は吹いている 2011. 10. 26 |
25
|
|
GIVE ME FIVE! 2012. 2. 15 |
26
|
|
真夏のSounds good! 2012. 5. 23 |
27
|
|
ギンガムチェック 2012. 8. 29 |
28
|
|
UZA 2012. 10. 31 |
30
|
|
So long! 2013. 2. 20 |
31
|
|
さよならクロール 2013. 5. 22 |
32
|
|
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 2013. 8. 21 |
33
|
|
ハート・エレキ 2013. 10. 30 |
35
|
|
前しか向かねえ 2014. 2. 26 |
36
|
|
ラブラドール・レトリバー 2014. 5. 21 |
37
|
|
心のプラカード 2014. 8. 27 |
38
|
|
希望的リフレイン 2014. 11. 26 |
39
|
|
Green Flash 2015. 3. 4 |
40
|
|
僕たちは戦わない 2015. 5. 20 |
41
|
|
ハロウィン・ナイト 2015. 8. 26 |
42
|
|
唇にBe My Baby 센터 2015. 12. 9
|
43
|
|
君はメロディー 2016. 3. 9 |
7.2. 참여곡
#EA5783 센터곡·솔로곡 |
AKB48 - 싱글 | |||
NO | 커버 | 싱글명 / 발매일 | 곡명 |
0
|
|
桜の花びらたち 2006. 2. 1 |
Dear my teacher |
0
|
|
スカート、ひらり 2006. 6. 7 |
青空のそばにいて |
1
|
|
会いたかった 2006. 10. 25 |
だけど… |
3
|
|
軽蔑していた愛情 2007. 4. 18 |
涙売りの少女 |
4
|
|
BINGO! 2007. 7. 18 |
Only today |
5
|
|
僕の太陽 2007. 8. 8 |
未来の果実 |
6
|
|
夕陽を見ているか? 2007. 10. 31 |
ビバ!ハリケーン 夕陽を見ているか? (ひまわり2.0Mix) |
7
|
|
ロマンス、イラネ 2008. 1. 23 |
愛の毛布 ロマンス、イラネ (ひまわり 2nd 2.1 Mix) |
8
|
|
桜の花びらたち2008 2008. 2. 27 |
最後の制服 |
9
|
|
Baby! Baby! Baby! 2008. 6. 13 |
夢を死なせるわけにいかない |
10
|
|
大声ダイヤモンド 2008. 10. 22 |
109 (マルキュー) 大声ダイヤモンド (Team A Ver.) |
11
|
|
10年桜 2009. 3. 4 |
桜色の空の下で |
15
|
|
桜の栞 2010. 2. 17 |
マジスカロックンロール |
16
|
|
ポニーテールとシュシュ 2010. 5. 26 |
マジジョテッペンブルース |
17
|
|
ヘビーローテーション 2010. 8. 18 |
野菜シスターズ ラッキーセブン |
19
|
|
チャンスの順番 2010. 12. 8 |
予約したクリスマス 胡桃とダイアローグ |
20
|
|
桜の木になろう 2011. 2. 16 |
キスまで100マイル |
21
|
|
Everyday、カチューシャ 2011. 5. 25 |
これからWonderland ヤンキーソウル |
22
|
|
フライングゲット 2011. 8. 24 |
青春と気づかないまま アイスのくちづけ 野菜占い |
24
|
|
上からマリコ 2011. 12. 7 |
ノエルの夜 隣人は傷つかない |
25
|
|
GIVE ME FIVE! 2012. 2. 15 |
スイート&ビター |
26
|
|
真夏のSounds good! 2012. 5. 23 |
ちょうだい、ダーリン |
27
|
|
ギンガムチェック 2012. 8. 29 |
夢の河 |
28
|
|
UZA 2012. 10. 31 |
孤独な星空 |
29
|
|
永遠プレッシャー 2012. 12. 5 |
とっておきクリスマス 永遠より続くように |
30
|
|
So long! 2013. 2. 20 |
Ruby |
31
|
|
さよならクロール 2013. 5. 22 |
イキルコト ハステとワステ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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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恋するフォーチュンクッキー 2013. 8. 21 |
最後のドア 涙のせいじゃない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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ハート・エレキ 2013. 10. 30 |
キスまでカウントダウン |
34
|
|
鈴懸の木の道で 2013. 12. 11 |
Mosh & Dive Party is over |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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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ラブラドール・レトリバー 2014. 5. 21 |
今日までのメロディー 君は気まぐれ |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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希望的リフレイン 2014. 11. 26 |
従順なSlave |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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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Flash 2015. 3. 4 |
履物と傘の物語 春の光 近づいた夏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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僕たちは戦わない 2015. 5. 20 |
バレバレ節 君の第二章 出逢いの日、別れの日 |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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ハロウィン・ナイト 2015. 8. 26 |
一歩目音頭 ヤンキーマシンガン 群像 |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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唇にBe My Baby 2015. 12. 9 |
365日の紙飛行機 背中言葉 やさしい place |
58
|
|
根も葉もRumor 2021. 9. 29 |
離れていても |
AKB48 - 앨범 | |||
<rowcolor=#373a3c> NO | 커버 | 앨범명 / 발매일 | 곡명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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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T LIST〜グレイテストソングス 2006-2007〜 2008. 1. 1 |
Seventeen あなたがいてくれたから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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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曲たち 2010. 4. 7 |
Baby! Baby! Baby! Baby! 君と虹と太陽と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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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こにいたこと 2011. 6. 8 |
少女たちよ 風の行方 Overtake ここにいたこと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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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0m 2012. 8. 15 |
ファースト・ラビット Hate 思い出のほとんど 大事な時間 やさしさの地図 行ってらっしゃい 青空よ 寂しくないか?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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次の足跡 2014. 1. 22 |
After rain JJに借りたもの 僕は頑張る 確信がもてるもの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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ここがロドスだ、ここで跳べ 2015. 1. 21 |
愛の存在 All of you Oh! Baby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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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と1の間 2015. 11. 18 |
Clap LOVE ASH |
8. 역대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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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 2006년 | 2007년 | 2007년 | 200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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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0년 | 20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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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9. 관련 문서
[1]
실제로도 슬플 때나 기쁠 때나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AKB 공인 울보. 멤버 생탄제, 멤버 졸업 등의 감동의 순간에는 어김없이 운다.
[2]
명탐정 코난의 대사에서 유래한 것인데, 본인도 이 캐치프레이즈가 부끄러운지 마하의 속도로 읊어낸다.
[3]
2012년 그녀는 다이칸야마의 어느 옷가게를 쇼핑하고 있었는데, 들고 다니던 종이백이 점내 전시된 아로마 양초와 접촉하여 불이 옮겨붙은 사건이 있었다. 그 여파로 뒷머리가 타버렸고, 단발로 활동하게 되면서 사용한 캐치프레이즈이다.
[4]
AKBINGO! 52화에서의
마츠이 쥬리나와
시노다 마리코와의 솔직 장기 중.
[5]
이런 모습은 AKB SHOW 총감독의 설교방에서 잘 드러났다.
[6]
이 바나나파카는
HKT48의
무라시게 안나가 달라고 계속 졸라서 결국 줬다고 한다.
[7]
오오시마 유코,
코지마 하루나,
카시와기 유키의 화보집에 비하면
비키니는 양반이다. 게다가 미성년자인
와타나베 마유의 사진집보다 수위가 낮다.
[8]
현존하는 유닛 중 최초이다. 형식상 최초 CD데뷔 유닛은 '
Chocolove from AKB48' 이었으나,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모 멤버의 졸업으로 인하여 팀이 와해되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Chocolove의 멤버였던
아키모토 사야카와
미야자와 사에는
DiVA로 꿈에 그리던 CD데뷔를 하게 된다.
[9]
또다른 곡은 마에다 솔로 싱글에 수록된 '오른쪽 어깨'라는 곡.
[10]
근데 미네기시는 최근에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다. ...응?
[11]
141128 뮤직스테이션 사전협의 중
[12]
미네기시는 당시 자신의 이름이기도 한 '미나미'를 빼앗긴 것 같아서 질투를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13]
본래 24명이었으나, 지각으로 인해 사퇴당한 멤버 등 4명은 데뷔하지 못했다.
[14]
이에 대해 훗날 오오시마 유코와 대담 자리에서, 유코가 "정말 싫었다. 미워했다. 그래도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그랬기 때문에 팀K가 더욱 뭉칠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한다."라고 터놓고 말하기도 했다. 타카미나 역시 "나가기 싫었다. 미움받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라고 말한다.
[15]
본래 이 시점에선 마스야마 카야노를 포함한 4명이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2007년 1월 25일 오리이 아유미의 졸업으로 인해 팀A 인원에도 문제가 발생하자 마스야마 카야노를 잔류시키기로 최종결정한다. 그러나 마스야마 카야노는 결국 얼마 안 가 졸업을 선택한다.
[16]
여담이지만, 타카미나의 쌩얼은 멤버들조차 거의 본 적이 없다고 할 정도로 희귀하다고 한다. 언제나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서 완벽하게 메이크를 마친 상태에서 다른 사람들을 깨우기 때문이라고. 이때문에
시노다 마리코는 타카미나 남자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17]
AKB48의 멤버들 중 타카하시 미나미를 “미나미”라고 부르는 것은 시노다 마리코가 유일하다. 때문에 타카하시 미나미는 첫 구절부터 이미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18]
원래 앵콜이 있은 지 3분 이내에 나간다는 룰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10분이 지나도록 아무도 무대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고. Documentary Show must go on을 보면 타카미나도 눈에 거의 흰자위만 보일 정도로 과로를 호소했지만, 제일 먼저 달려나간다.
[19]
애초에 타카미나의 안티는 주로 총선거에서의 그녀의 코멘트 "노력은 반드시 보답받는다"에 꽂혀서 거기에 반박하느라 바쁘다.
[20]
타카미나는 노력은 반드시 보답받는다는 것을 자신의 인생을 걸고 증명하겠다고 했다. 즉 타카미나 스스로 노력해서 그 노력이 보답받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지, 모든 사람의 노력이 반드시 보답받는다고 장담한 것이 아니다. 다만 노력해야 한다고 후배들을 격려한 말이라고 해석할 수는 있다. 하지만 어떻게 해석해도, 하라 미즈키가 받아들인 방식은 이상했다.
[21]
오리콘차트는 월~일요일까지 집계하여 그 다음 주 월요일에 주간차트를 발표하는데, 타카하시의 생일인 4월 8일이 월요일이었다.
[22]
타카미나는 지금까지의 총선거에서 단 한번도 10만 표 이상을 얻은 바가 없었다. 본인에게는 뜻깊은 성적
[23]
한국 언론에서는 AKB48 관련해서 좋은 소식은 거의 절대로 내보내지 않아왔다.
[24]
마츠무라 카오리가 13위 소감 스피치에서
타카미나의 노력은 반드시 보답 받는다를 인용하며,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자신은 그 말을 좋아한다고 언급.
[25]
Pioneer 공연이 있고 얼마 안 있어서 사시하라의 스캔들이 터졌고, 이 때문에 HKT로 이적. 약 4년 만에 Pioneer에 참가한 것이었다.
[26]
전년 총선거 득표 기준 약 8만여 표 상승. 마지막 총선거이기 때문에 그렇지, 이미지와는 관계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 안티들도 있지만, 이 정도 규모의 스캔들이 터진 이상 마지막 총선거 드립은 안 먹힌다.
카시와기 유키도 비록 마지막 총선거 드립은 쓰지 않았지만, 테고시 유야와의 스캔들이 터지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의 총선거임에도 불구하고 8만여 표가 급락하는 등 후폭풍을 겪어야했고, 그 이후로는 총선거에 불출마 선언을 계속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