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기인 1995년
黒夢. 사진에서 좌측은 키요하루(보컬), 우측은 히토키(베이스).
1. 개요
일본의 비주얼계 록밴드. 보컬리스트인 키요하루(清春)와 베이시스트 히토키(人時) 2인조로 구성된 밴드 듀오. 1991년 나고야 기후현에서 결성되었다.1.1. 바이오그래피
쿠로유메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시작은 밴드 'GARNET'이 시초이다. 밴드의 메인보컬인 키요하루가 세션(로디) 베이시스트였던 히토키를 정식 멤버로 가입하기를 요청하면서 둘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었다. 편모가정에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히토키는 자신에게 상냥히 대해주는 키요하루에게 큰 영향을 받았고, 키요하루는 그의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동반자가 된다. 한편 GARNET은 밴드 리더와 키요하루의 알력 다툼으로 와해되어갔는데, 키요하루는 탈퇴를 결심하게 되고, 이때 히토키가 키요하루를 따라나선다. 비슷한 시기에 GERACEE의 기타리스트인 신(臣)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우연히 키요하루와 만남을 가지면서 그와 함께하기로 결심한다. 신은 키요하루와 밴드를 만들기 위해 집요한 구애를 보였는데, 키요하루는 훗날 이 때를 회상하며 "내가 그와 결혼한다면, 그건 그의 말솜씨에 넘어가서 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신의 구애를 키요하루가 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쿠로유메는 1991년 결성하는데, 키요하루는 이 당시 넘쳐나던 라틴어 이름의 비주얼계 밴드들에 큰 불만을 가지며, 이에 대한 안티테제에서 밴드 이름을 한자로 된 쿠로유메로 짓는다. 멤버들의 표기도 한자로 표기한 건 덤. 명명된 밴드 이름인 쿠로유메는, 빛조차 없는 무의 상태, 즉 '꿈이란 없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고 한다. 아무튼 결성 당시엔 기타리스트 신(臣)과 외부에서 영입한 드러머 에이키를 포함한 4인조였으나, 극 초기에 드러머 에이키가 탈퇴하고, 또 다른 드러머 히로를 영입하나 이마저도 1993년을 기점으로 탈퇴한다. 하지만 1993년에는 hyde의 라르크 앙 시엘과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하면서 밴드의 인지도를 쌓아갔고, 인디 씬에서 독보적인 발돋움을 하게 된다. 특히 LUNA SEA와 함께 X-JAPAN의 Yoshiki가 이끌던 Extasy Record에서 메이저 데뷔 제의를 받기도 하는 등, 인디 씬에서 정상의 인기를 누린다.
하지만 셋은 독자적인 색채를 유지하고 싶어했고, 이후 도시바 EMI에서 셋의 요구를 충족해주겠다며 데뷔 제의를 해, 도시바 EMI에서 메이저 데뷔를 선언한다. 1993년 12월에는 인디즈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실시했으며[1], 1994년 2월 발매된 메이더 데뷔 싱글 'For Dear'는 발매 첫주 오리콘 18위를 기록하며 나름의 인지도를 올린다. 하지만 메이저 데뷔 초인 1995년에는 자유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던 기타리스트 신이 멤버들과의 견해차이로 인해 개인 프로젝트를 위한 탈퇴[2], 2인조로 활동을 이어간다. 그렇게 밴드의 존립이 위험하던 중 발매된 싱글 'Miss MOONLIGHT'는 서정성 짙은 가사와 신나는 멜로디로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얻어 부활하는 데 성공하고, 정규앨범 ' Feminism'이 10만장의 초동을 올리며 오리콘차트 1위를 달성하면서 그 위치를 공고히 했다. 이후 나온 싱글 'BEAMS', 'SEE YOU' 또한 상당한 반응을 얻었고, 1996년 발매한 정규앨범 'Fake Star - I'm Just a Japanese Fake Rocker'도 화제성을 크게 얻는 등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다. 1996년 11월 발매한 싱글 'Like @ Angel'도 12만장의 초동을 올리며 라르크 앙 시엘의 Lies and Truth(6위)와의 초동 대결에서 승리(5위)하는 등, 그 상승세는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밴드의 성공과는 별개로 두 멤버의 끝없는 불화설이 나돌았고, 1997년 발매한 싱글 '소년'을 기점으로 음악적 성향도 펑크락 성향이 매우 짙어진다. 이때문에 비평에서는 좋은 평을 얻었으나 대중적인 흐름과는 동떨어졌고[3], 아주 단단해진 코어 팬덤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1999년 1월 29일 투어 마지막 공연에서 무기한 활동중지를 발표한다. 이는 키요하루와의 관계를 버티지 못했던 히토키에 의해서 내려진 결정이었다고.[4] 해체 후 발매된 베스트 앨범은 무려 30만장 이상의 초동을 올리며 오리콘 주간순위 2위를 기록, 이후 연간 판매량 791,660장의 경이로운 기록과 함께 전설이 된다. 이는 1999년 발매된 비주얼계 밴드들의 정규/베스트 앨범들 가운데 4위의 기록[5]이었다.
이후 이들의 관계는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치닫으며 언론과 음악을 통해 기나긴 디스를 벌였고, 각자 솔로 커리어를 쌓으며 담을 쌓았었다. 그러다 정확히 10년 후인 2009년 1월 29일, 일본 부도칸에서 1일 한정 부활 공연을 펼치는 것과 동시에 밴드의 공식적인 해산을 발표하며 활동에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2009년의 일시 활동이 히토키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이들의 관계는 극적으로 회복한다.
그리하여 1년 뒤인 2010년 1월 29일에 보컬 키요하루는 블로그를 통해 쿠로유메와 삿즈로서 활동을 재개할 것을 알렸고,
이후 두장의 앨범을 더 발매. 2015년을 기점으로 SADS 재결성, 히토키의 개인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현재 쿠로유메의 활동은 자연스럽게 휴지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2015년 중순에는 모 비주얼계 밴드가 쿠로유메와 비슷한 이름을 사용하면서 기획을 파쿠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키요하루와 히토키가 SNS를 통해서 우회적으로 해당 밴드를 함께 비판하기도 했다. 이를 미루어보았을 때 2차 활동휴지는 원만한 관계에서 합의된 듯.
2021년에는 쿠로유메 결성 30주년을 기념해 기념 앨범 발매 등을 예정했으나, 쿠로유메 상표의 저작권 문제 등으로 과거 공연 상영회 정도를 소규모로 실시했다.
그러다 2024년, 키요하루가 메이저 데뷔 30주년을 맞아 실시한 장기 투어에서 쿠로유메의 메이저 데뷔 30주년 기념 공연을 예정, 10여년만에 부활을 예고했다. 2025년 2월 예정인 공연은 소식 공개 당시부터 뜨거운 반응을 얻었다. 30주년 공연은 히토키도 참가하나, 신은 25년만에 VINYL의 재결성으로 일단 입장을 보류하고 있다.
1.2. 음악성
음악적으로는 초기에는 북유럽쪽의 블랙 메탈과 고딕 록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음악을 연주하였으며, 인간의 삶과 죽음, 그리고 시체1994년 메이저 데뷔 이후에는 팝적인 성향이 강해졌고, 특히 NTV의 유명 버라이어티 '빙글빙글 나인티나인'의 엔딩곡으로 타이업된 Miss MOONLIGHT는 그 변화를 잘 보여주었다. 이러한 성향은 일련의 연속성을 띄면서 BEAMS-SEE YOU 싱글까지 이어졌고, 활동 후기에 이르러서는 다시 변화를 일삼아 MISFITS나 The Damned스러운 초기 펑크 음악을 구사하게 된다.
재결합 후에는 SADS의 음악성과 동일해지는 면모를 보여 일부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가면서 히토키의 독창적인 베이스라인을 중심으로 한 악곡을 선보이며 전성기 못지않은 기량을 보였다는 호평도 받는 데 성공한다.
이들은 거친 연주와 함께 울려퍼지는 몽환적인 멜로디로 일본을 비롯해 바다 건너 한국 및 타 아시아 지역에서도 인기를 올렸던 밴드 중의 하나였다. 또한 많은 비주얼계 뮤지션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하였다.
보컬 스타일은 독특한 꺾기 창법과 비브라토를 사용하여 키요하루만의 특이한 창법을 만들었다. 특히 고음부에서 보여주는 극적인 느낌은 서정성과 처절함을 잘 표현하며, 이러한 보컬은 쿠로유메의 음악성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또한 후대의 보컬리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PIERROT의 키리토와 MERRY의 가라는 키요하루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여담이지만 MERRY의 가라는 키요하루를 매우 무서워한다고 한다(...).
2000년대 초, M.A.D. 라는 이름의 키요하루 한국 개인 팬페이지에서 당시 잡지 인터뷰를 출처로 한 많은 정보가 운영자 개인의 opinion과 함께 많은 분량 개재되고 있었다.
인디 시절엔 대단히 어두운 분위기를 풍겼던 쿠로유메였지만 메이저 계약사와 일을 시작하며 팝으로의 급격한 변화를 요구받자 그 스트레스가 상당했다고 한다. 싱글 'BEAMS'에 이르러 그것이 절정에 달했고 이후 철저히 본인들의 의사를 관철한 음악을 할 것을 다음 앨범으로 표현하는데 이 앨범이 곧 'FAKE STAR-I'm just japanese fake star' 였다. 그동안 자신들이 만들어진 '가짜 스타' 였음을 앨범과 노래 제목을 통해 직설적으로 말했고 이후부터 키요하루와 히토키는 지금의 음악성을 갖추게 된다. 의도적인지 알 수 없지만 스포티파이의 쿠로유메 페이지에서도 초창기 앨범은 모두 제외한 채 fake star 앨범부터 서비스하고 있다.[6]
1.3. 패션
비주얼적으로는 초기에는 X JAPAN의 인디즈 시절을 방불케 하는 삐죽머리에 가부키화장에 어둡고 음울한 곡들에 맞춰 고딕 컨셉의 의상을 보였다. 이는 메이저 데뷔 극 초기였던 For Dear 싱글 활동 당시에도 그 단면을 잘 볼 수 있었다. 그러다 메이저 데뷔 초기에는 멀끔하고 이쁘장하게 다니다가 후반에는 달라진 음악 성향에 맞춰 펑크 의상을 즐겨 입었다.특히 메이저 초기에는 일종의 역발상으로 키요하루가 유니섹스 의상을 입고, 여성스러운 메이크업을 하며 비주얼락의 정의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 당시 비주얼계 씬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7] 이외에도 1996년 2월에 발매된 싱글 SEE YOU에서 키요하루가 기존의 긴머리를 자르고 선보인, 붉은색의 머리스타일은 아직까지도 팬들에게 회자될 정도.
키요하루는 이어진 SADS 활동시에는 글램락스러운 복장들을 선호하고 있다.
1.4. 여담
- 사실 키요하루는 학창 시절에 이지메를 당하던 학생이었는데, 어느날 이지메를 하던 학생A가 놀려먹을 생각으로 "야 키요하루 노래 불러봐" 라고 시켜봤는데, 키요하루는 아무 생각없이 노래를 불렀지만 노래를 굉장히 잘해서 이지메시키던 학생들은 키요하루의 재능에 감탄해서 가수를 할 것을 권유하며 더이상 이지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키요하루는 17살에 밴드를 결성했다. 후에 키요하루는 밴드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준 이지메를 했던 친구들에게 감사한다는 대인배적 반응을 보였다...(...)
- 여담으로 보컬리스트 키요하루가 한국에서 안좋은 추억을 안고 돌아갔다는 후문이 있다. 한국에서 Masquerade의 뮤직비디오 촬영 후 한식당을 들어갔는데, 거기 위생이 불량하여 불만을 품었다고 한다. (바퀴벌레가 나왔다고 한다) 비빔밥집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후 팬들의 조사에 따르면 재래시장에 있는 허름한 밥집 수준의 식당에 데리고 간 것으로 밝혀졌다.[8] 그런데 그 후 인터뷰에서 마치 그 음식점 한군데로 마치 한국의 모든 음식점이 다 그렇다는 듯이 말하고, 다시는 안오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표한데다가 민족성까지 운운하여 은근히 한국인 안티가 많은 인물. 하지만 2012년에 방한하면서 과거 발언을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현재까지 한국 관련하여 특별한 발언을 한 것이 없다. 사실 음식점에 갔는데 바퀴벌레가 나왔으면 당연히 기분 나쁘고 나쁜 인상을 받을 수밖에 없다.
- 2012년 4월 28일 멜론AX홀에서 내한공연을 치렀다. 저조한 티켓 판매로 700명 이상으로 예상하고 있던 정원에 한참 못미치는 인원(어림잡아 300명 내외)이 모였으나, 그 가운데에서도 성실하게 공연을 끝마쳤다. 한국 쇼케이스가 쿠로유메로서는 처음으로 갖는 해외공연이었다고. 한국에 다시 오겠다고 코멘트 하긴 했지만 과연...
- 보컬인 키요하루는 하도 말라서 한국에서는 키요 민관이라는 애칭도 가지고 있다. 171cm에 키에 체중이 45kg도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해체 후인 2016년에는 키요하루가 가지고 있었던 '쿠로유메'의 상표가, 키요하루의 개인 매니지먼트 부도에 의해 경매로 부쳐저 개인 사업자에게 매각되었다.
- 4년 뒤인 2020년 9월 12일에는 이케부쿠로 HUMAX에서 쿠로유메의 최근 공연들이 극장 상영되었는데, 상영 후 진행된 첫날 행사에서 키요하루가 깜짝 등장해 인터뷰와 향후 개인활동 계획을 밝혔다. 2021년이 쿠로유메 결성 30주년이다보니, 이때 행사에 키요하루가 등장한 것을 두고 팬들 사이에서 여러가지 말이 있었다. 이후 2021년 3월 결성 30주년을 기념하는 베스트앨범이 발매될 예정이라고 소식이 들려왔다.
2. 현 멤버
2.1. 키요하루(清春): 보컬, 리더
본명은 모리 키요하루. 1968년생. 특유의 카리스마와 퇴폐미로 인해 일본 락 씬에서는 서구의 펑크락 뮤지션을 연상케하는 독보적인 아이콘이였었다. 현재는 안타깝게도 매너리즘으로 인해 '인맥빨로 의존하는 한물간 락스타' 대접을 받고있는 실정이지만, 꾸준히 음악활동을 하면서 나름의 지위는 인정받고 있는 상황. 오히려 한물간 락스타라는 대접이 그의 퇴폐미를 더욱 가미시킨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자세한 항목은 키요하루 항목 참조.
2.2. 히토키(人時): 베이스/기타
본명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오기소 히사토시(小木曾 久時)라는 설이 국내에서는 알려졌으나, 확실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는 1972년생. 의외로 90년대 당시에는 특유의 과묵한 이미지와 나름 준수했'었'던(...) 비주얼로
3. 전 멤버
- 신(臣) - 기타리스트. 1968년생. 본명은 스즈키 신. 인디시절부터 메이저 데뷔 초까지의 쿠로유메가 선보여온 음악들의 핵심 축이었다. ICE MY LIFE처럼 차갑고 도회적인 곡부터 For Dear같은 인디 느낌의 곡까지 그 스펙트럼이 넓었다. 쿠로유메 탈퇴 이후에도 VINYL, SUPER DROP BABIES, LIZARD'S TALE 등의 굵직한 밴드들을 거쳐갔으며, 2012년에는 쿠로유메 재결성 공연에 참석해 멤버들과 17년만에 해후하기도 했다. 현재는 세션 뮤지션/스튜디오 엔지니어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24년 9월에는 25년만에 VINYL을 재결성했는데, 최근에는 고등학교 음악 교사도 병행했었다는 소식이 새로 알려졌다.
- 에이키(鋭葵) - 드럼. 초대 드러머.
- 히로(HIRO) - 드럼. 2대 드러머.
4. 디스코그래피
4.1. 정규앨범
발매일 | 타이틀 | 비고 |
1기 인디즈 | ||
1992.12.25 | 生きていた中絶児・・・(살아있었던 중절아) | 오리콘 인디즈차트 주간 1위(EP) |
1993.06.11 | 亡骸を・・・(시체를...) | 오리콘 인디즈차트 주간 1위 |
2기 메이저 | ||
1994.03.09 1998.05.27 2009.01.28 2011.12.14 |
迷える百合達(방황하는 백합들)〜Romance of Scarlet〜 | 오리콘차트 주간 3위(초동 45,840장) |
1994.08.31 1998.05.27 2009.01.28 |
Cruel | 오리콘차트 주간 7위(초동 55,060장)(미니앨범) |
3기 메이저 | ||
1995.05.10 1998.05.17 2009.01.28 |
Feminism | 오리콘차트 일간/주간 1위(초동 107,920장) |
1996.05.29 2009.01.28 |
Fake Star - I'm Just a Japanese Fake Rocker |
2연속 오리콘차트 일간/주간 1위(초동 203,660장) 1996년 오리콘 앨범차트 연간 74위(349,250장) |
1998.01.01 1998.01.16[9] 2009.01.28 |
1997.10.31 LIVE AT 新宿LOFT |
콘서트 실황앨범 1998년 1월 1주 오리콘 앨범차트 7위(초동 143,790장) 1998년 오리콘 앨범차트 연간 71위(321,270장) |
1998.05.27 2009.01.28 |
Corkscrew |
오리콘차트 주간 2위(초동 268,180장) 1998년 오리콘 앨범차트 연간 55위(480,400장) |
3기 재결성 이후 | ||
2011.11.02 | Headache and Dub Reel Inch |
에이벡스 이적 후 발매한 첫 정규앨범 오리콘차트 주간 2위(초동 17,067장) |
2014.01.29 | 黒と影(흑과 그림자) |
에이벡스에서 낸 마지막 앨범 오리콘차트 주간 7위(초동 12,260장) |
4.2. 싱글
발매일 | 타이틀 | 비고 |
1기 인디즈 | ||
1992.06.20 | 中絶(중절) | 2,000장 한정생산/비디오싱글 |
2기 인디즈 | ||
1993.09.20 | 百合の花束(백합 꽃다발) -Acoustic Version- | 코스튬 미션을 수행한 팬에게 한정제공 |
2기 메이저 | ||
1994.02.09 | For Dear | 히로 탈퇴 후 처음으로 발매한 앨범 |
1994.07.20 | ICE MY LIFE | 신이 참여한 마지막 앨범 |
3기 메이저 | ||
1995.03.08 | 優しい悲劇(부드러운 비극) | TV 아사히계 교양예능 USA 주제곡 |
1995.04.26 | Miss MOONLIGHT | NTV 빙글빙글 99' 엔딩곡 |
1995.10.13 | BEAMS | 멕셀 Po'z 카세트테잎 CM 송 |
1996.02.21 | SEE YOU | 히토키가 타이틀곡을 작곡한 유일한 앨범 |
1996.04.17 | ピストル (피스토루) | |
3기 인디즈 | ||
1996.07.31 | COMMEMORATION | 96' Fake Star 투어 요코하마 아레나 회장 한정판 |
3기 메이저 | ||
1996.11.18 | Like @ Angel | 대표곡 |
1997.04.10 | NITE & DAY | |
1997.06.04 | Spray | |
1997.11.19 | 少年 (소년) | 다이하츠 무브 CM 송 |
1998.04.08 | MARIA | |
3기 인디즈 | ||
1999.03.31 | MY STRANGE DAYS | 베스트앨범 구매예약자 특전 |
3기 재결성 이후 | ||
2011.02.09 | Misery | |
2011.05.25 | Alone | |
2011.08.17 | heavenly | |
2013.12.11 | Guernika | 선행싱글 동시공개 |
2013.12.11 | I Hate Your Popstar Life | 선행싱글 동시공개 |
2014.03.26 | Reverb | 전국무쌍 4 이미지 송 |
3기 인디즈 | ||
2015.02.03/05/09 | DAY 1 | 회장 한정 공개 |
[1]
이 공연은
X JAPAN의
hide와
LUNA SEA의
SUGIZO가 직접 관람한 것으로 유명하다. hide는 특히 SUGIZO에게 '정말 대단한 밴드의 공연이 열릴 것'이라며 스기조를 데려왔다고.
[2]
싱글 '優しい悲劇' 기타 솔로 작업 후 녹음실을 나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인디즈 시절 친분을 쌓았던 X-JAPAN의 hide가 설립한 레이블 LEMONed에 합류해
데란져, Strawberry Fields의 보컬이었던 후쿠이 요시히토와 VINYL을 결성해 독자적으로 큰 활약을 펼친다.
[3]
물론 코어 팬층이 아주 두터워지며 앨범 판매량은 36만장 이상을 돌파했고, 이는 쿠로유메 역사상 가장 높은 판매량이었다.
[4]
키요하루는 쿠로유메의 메이저 데뷔 후 전성기를 구가할 시절에도 소규모 클럽 공연장 위주로 연 100회에 가까운 공연을 강행할 정도로 정력적인 활동으로 유명했다. 활동 초반에는 히토키 역시 이에 응하여 의기투합한 채로 투신했으나, 이후 결혼을 하여 가정을 갖게 된 뒤로는 가정 생활과 양립할 수 없는 바쁜 공연 스케줄에 곤란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특히나 편모가정에서 자란 히토키가 자신의 가정에는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뜻을 호소했다고.. 두 사람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은채 삐걱대기 시작하면서 히토키는 급기야 탈퇴 의사를 전했다. 히토키에 따르면 키요하루는 당시 모든것을 이해한다고 자신을 다독이며 탈퇴 의사를 존중해주는 듯 하였으나 이후 인터뷰에서 히토키에게 배신 당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는 모습에 히토키 역시 감정이 좋지만은 않았다고.
[5]
1,2위는
라르크 앙 시엘의 ark와 ray, 3위는
GLAY의 HEAVY GAUGE.
[6]
그 전에만 하더라도 쿠로유메의 곡 자체는 스포티파이에서 서비스 자체가 안되고 있었다.
[7]
물론
Malice Mizer의
Mana(기타리스트)나 SHAZNA의 IZAM처럼 대놓고(...) 여장한 것은 아니었다만, 이런 시도를 한 것은 상당히 센세이션이었다.
[8]
Masquerade M/V를 보면 정말 완전 재래시장이다.
[9]
LP판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