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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버팔로즈 2025 시즌 코칭스태프 (2021 시즌부터 감독직을 제외한 1, 2군 구별을 폐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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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및 수석·종합코치 71 키시다 마모루 (1군 감독) · 89 코바야시 히로시 (2군 감독) 88 미즈모토 카츠미 (수석 코치) · # 나카가키 세이이치로 (순회 수석 코치) · 76 카자오카 나오유키 (야수 종합 코치) 투수코치 72 히라이 마사후미 · 73 마키노 루이 · 75 아츠자와 카즈유키 타격코치 79 츠지 류타로 · 83 코야노 에이이치 · 85 타카하시 신지 수비·주루코치 3 아다치 료이치 (선수 겸 내야) · 77 소요기 에이신 (내야) · 80 코지마 슈헤이 (내야) · 70 마츠이 유스케 (외야) · 81 타구치 소 (외야) 배터리코치 74 야마자키 카츠키 · 87 사이토 토시오 육성코치 90 하루 토시오 (육성 수석 코치) · 84 스즈키 코헤이 · 86 요시다 신타로 · 91 이이다 다이스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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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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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NPB 팀 명단 보기 |
키시다 마모루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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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일본시리즈 우승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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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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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릭스 버팔로즈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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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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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미야케 다이스케 (1936~1937) |
2대 무라카미 미노루 (1937) |
3대 야마시타 미노루 (1938~1939) |
4대 무라카미 미노루 (1939) |
5대 야마시타 미노루 (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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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대 이노카와 토시하루 (1940~1942) |
7대 니시무라 마사오 (1943~1947) |
8대 하마자키 신지 (1947~1953) |
9대 니시무라 마사오 (1954~1956) |
10대 후지모토 사다요시 (1957~1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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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토쿠라 카츠키 (1959~1962) |
12대 니시모토 유키오 (1963~1973) ★ ★ ★ ★ ★ |
13대 우에다 토시하루 (1974~1978) ★ ★ ★ ★ |
14대 카지모토 타카오 (1979~1980) |
15대 우에다 토시하루 (1981~199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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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도이 쇼조 (1991~1993) |
17대 오기 아키라 (1994~2001) ★ ★ |
18대 이시게 히로미치 (2002~2003) |
19대 레온 리 (2003) |
20대 이하라 하루키 (20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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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오기 아키라 (2005) |
22대 나카무라 카츠히로 (2006) |
23대 테리 콜린스 (2007~2008) |
24대 오오이시 다이지로 (2008~2009) |
25대 오카다 아키노부 (2010~2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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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모리와키 히로시 (2013~2015) |
27대 후쿠라 준이치 (2016~2018) |
28대 니시무라 노리후미 (2019~2020) |
29대 나카지마 사토시 (2021~2024) ★ ★ ★ |
30대 키시다 마모루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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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리즈 우승 / ★: 퍼시픽리그 우승 |
오릭스 버팔로즈 등번호 14번 | ||||
조쉬 스튜어트 (2005) |
→ |
키시다 마모루 (2006~2009) |
→ |
후루카와 슈이치 (2010~2013) |
오릭스 버팔로즈 등번호 18번 | ||||
야마구치 카즈오 (2003~2009) |
→ |
키시다 마모루 (2010~2019) |
→ |
야마모토 요시노부 (2020~2023) |
오릭스 버팔로즈 등번호 71번 | ||||
후지이 야스오 (2018~2019) |
→ |
키시다 마모루 (2020~) |
→ | 현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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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19><colcolor=#fff> 오릭스 버팔로즈 No.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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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다 마모루 岸田護 | Mamoru Kishi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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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1981년 5월 10일 ([age(1981-05-10)]세)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출신지 | 오사카부 스이타시 |
학력 | 리세이샤 고교 - 도호쿠 복지대학 |
신체 | 180cm, 78kg |
포지션 | 중간 계투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2005년 NPB 대학・사회인 드래프트 3순위 ( 오릭스) |
소속팀 | 오릭스 버팔로즈 (2006~2019) |
지도자 |
오릭스 버팔로즈 투수코치 (2020~2024) 오릭스 버팔로즈 감독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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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릭스 버팔로즈의 감독.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스이타 시립 니시야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야구를 시작하였고 3학년부터 본격적으로 투수의 길을 걷게 된다. 스이타 시립 니시야마다 중학교 진학 후에는 연식 야구부에 들어갔다.리세이샤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야구부에 입부해 1학년부터 벤치에 들어갔다. 팀은 첫 고시엔 출장을 이뤄냈지만 등판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이듬해는 80번째 개최를 기념하여 오사카를 남/북으로 나누어 본 대회 출전 학교를 결정하게 되었지만 북 오사카 지구 3회전에서 팀이 탈락하는 바람에 본 대회 진출에 실패. 이후로도 2년간 팀은 고시엔 본선에 나가지 못하였고 키시다의 고교야구 생활도 이렇게 마감하였다.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도호쿠 복지대학에 입학해 4학년부터 팀의 에이스가 되어 춘계리그에선 MVP, 베스트 나인을 수상, 대학 선수권에서는 팀의 4강 진출에 공헌하는 활약을 선보였다. 대학 졸업 후 NTT 서일본에 입사해 야구부 활동을 하게 되었고 입사 이후 2년 연속 도시대항야구대회 출전,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에서 팀의 준우승에 공헌하였다. 그 해 가을에 열린 드래프트 회의에 참여해 대학/사회인 드래프트 3순위에서 오릭스의 지명을 받고 입단에 합의했다.
2.2. 오릭스 버팔로즈 시절
2006년 5월 30일 주니치 드래곤즈 전에서 프로 첫 등판을 가졌고 시즌 최종전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전에서 프로 첫 선발 등판을 가졌지만 8이닝 1실점으로 호투하고도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패전 투수가 되었다 . 2군 웨스턴 리그에서는 선발, 불펜을 가리지 않고 기용되어 31경기에 등판해 방어율 1.80을 기록하고 최우수 방어율 타이틀을 얻었다.[1]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에 정착해 4월 5일 치바 롯데 마린스 전에서 동점 상황에서 등판. 8회초에 아오노 타케시에게 피홈런을 맞고 리드를 내 줬으나 8회말 그렉 라로카가 곧바로 역전 홈런을 때리며 패전을 지워줬고 그 홈런이 결승타가 되면서 프로 첫 승리를 달성했다. 주로 선발이 조기에 내려간 뒤 올라와 많은 이닝을 소화하는 역할을 맡았으며 후반기 무렵부터는 전반기에 롱 릴리프로서 활약한 모습 덕에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는데 성공. 11경기를 선발로 등판했지만 승운이 없던 탓에 선발로는 2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2008년, 전년도의 활약을 발판삼아 선발 로테이션 진입을 노렸지만 개막 직전에 허리 부상으로 이탈하여. 개막 이후 한참이 지난 4월 22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전에서 시즌 첫 등판을 가졌다. 5월 5일 롯데전에서 8이닝 3실점으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었지만 5월 17일 오른발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 8월 29일 닛폰햄 전에서 복귀 후 개인 3연승을 달리며 팀이 A클래스에 진입하는데 공헌했지만 잦은 부상에 발목이 잡히며 시즌 4승을 거두는 데 그쳤다.
잦았던 부상을 떨쳐내기 위해 오프시즌부터 철저히 몸 관리에 들어갔던 2009년, 개막을 1군에서 맞이하는데 성공하며 선발 로테이션에 안정적으로 정착했다. 4월 한 달간 프로 첫 완봉을 포함한 3연승을 달렸고 한 때 주요 투수 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5월 10일, 오른 어깨 부상으로 팀에사 이탈하며 또다시 부상 악령을 마주하고 말았다. 7월 4일이 되어서야 부상에서 복귀했고 복귀 이후 차근차근히 승을 챙겨가더니 시즌 최종 등판인 10월 8일 닛폰햄 전에서 개인 최초이자 커리어 유일의 두 자릿수 승수를 달성했다. 어깨 부상으로 인해 규정이닝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부상으로 빠진 동안에 팀은 5월 9연패, 6월 7연패로 대표되는 장기 연패를 반복하며 하위권에 머무르고 말았다.
2010년에는 등번호를 18로 바꾸고 개막시리즈 3차전 4회부터 계투로 등판해 6이닝 1실점을 기록하고 시즌 첫 승리를 기록한다. 하지만 선발 등판 이후로 계속해서 맞아나가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5월 9일 롯데전부터 불펜으로 전향. 나중에는 마무리 역할을 맡고 있던 외국인 투수 존 레스터가 불안한 투구를 계속해서 보였던 탓에 6월 10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에서 프로 첫 세이브를 기록한 것을 계기로 팀의 마무리 투수로 지명되었다. 같은 해에 불펜으로 전향한 히라노 요시히사와 함께 필승조의 일원으로서 교류전 우승에 공헌하고 이후로도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다. 이 해에 선발로는 6경기 ERA 4.85, 1승 4패로 부진했지만 불펜으로는 51경기 ERA 2.18, 5승 1패, 11홀드 12세이브로 선발보다는 훨씬 좋은 성적을 남겼다.
2011년에도 마무리 투수의 중책을 맡아 68경기에 등판해 단해년도 세이브 1위인 닛폰햄의 타케다 히사시에 이은 33세이브로 세이브 2위를 기록했다. 다만 안정감 측면에서는 의구심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 해 들어서 리드를 날려먹는 일이 많았던 탓에 시즌 6패에 ERA 2.61을 기록했다. 그래도 이 시즌에는 감독 추천으로 개인 첫 올스타 선출의 영예를 안고 올스타전 첫 경기에서 KKK를 기록하는가 하면 올스타 2차전에서도 1이닝을 깔끔히 틀어막는 좋은 모습을 선보였다.
2012년에도 마무리 투수로 시즌을 시작, 5월 한 달간 11경기 ERA 4.50으로 부진했으나, 6월 둘어 10경기 무실점을 기록하는 등 타 팀들의 마무리 투수들이 일제히 부상이나 부진 등으로 전전긍긍 하는 동안 안정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순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8월 19일 소프트뱅크 전에서 1점차로 뒤진 9회초에 등판해 견제 아웃을 잡은 이후 폭풍 3실점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결국 이 날 경기 이후로 히라노 요시히사와 보직을 맞바꿔 중간계투가 되었으며 계투로 전환된 뒤 3경기에서 무실점으로 반등하고 있었지만 9월 1일에 내전근 부상으로 전열에서 이탈하고 말았다. 시즌 마지막 경기인 10월 7일 세이부전에 복귀해 1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시즌을 마쳤다. 이 시즌은 유독 소프트뱅크에게 매우 고전했는데 7경기에 등판 8.59라는 높은 ERA를 기록했다.
2013년 들어선 선발 재전향을 목표로 했지만 2월 스프링캠프 도중 햄스트링 부상을 당하고 말았으며 치료가 늦어지는 바람에 개막은 2군에서 맞이했다. 팀은 개막시리즈 2번이나 연장 12회까지 가는 혈전을 벌여 불펜을 초반부터 갈아넣은 탓에 불펜 보충을 위해 키시다를 올해도 불펜으로 기용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시즌을 치르던 도중 8월 13일 닛폰햄전에서 오른발등 부상을 당했고 진단 결과 발등쪽 인대가 손상되었다는 결과가 나와 시즌을 조기에 마감하게 되었다.
2014년엔 다시 선발 전향을 목표로 개막 로테이션이 들어가 4년 만에 선발승을 기록했다. 하지만 그 이후론 성적이 신통치 않았도 결국 다시 계투로 배치가 전환되어 주로 필승조 등판 전이나 연투 등으로 인해 필승조가 휴식해야하는 상황에서 등판을 가져 총 55경기에 등판해 12홀드를 기록했다.
2015년, 부상의 영향으로 시즌 초반에 부진했지만 불펜이 일제히 무너지던 시즌 중반 이후 필승조로 정착해 15홀드를 기록했다.
2016년은 16경기에 등판해 6홀드를 기록하는데 그쳤으며 2017년에는 불과 4경기에만 등판. 선발로 전향하긴 했으나 선발로 던진 경기는 4월 29일의 소프트뱅크전 단 1경기에 불과했고 나머지 3경기는 불펜으로만 등판했다.
2018년에는 17경기에 등판해 홀드 1개를 기록하였다. 1군에서는 핵심 불펜이 되지 못했으나 2군 웨스턴 리그에서는 24경기 25⅓이닝 2승 ERA 0.00 12세이브를 기록했다.
2019년에는 현역 은퇴를 결정했으며 9월 29일 교세라 돔 소프트뱅크전에서 은퇴 경기가 열렸다. 9회초에 등판해 타카타 토모키를 상대로 포심 3개를 던져 삼구삼진을 뺏어내면서 마운드를 내려와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3. 지도자 시절
은퇴 후, 2020 시즌부터 오릭스 2군 투수코치로 취임했다. 2021 시즌부터는 코치의 1,2군 구별이 없어져 투수코치로 직책 변경.2024 시즌 후 자진 사퇴한 나카지마 사토시 감독의 뒤를 이은 차기 오릭스의 감독으로 유력하다는 소식이 알려졌고 10월 9일 구단 발표로 취임이 확정되었다. #
4. 플레이 스타일
5. 연도별 성적
6. 기타
[1]
당해년도 2군 규정이닝을 달성한 9명 중 유일하게 피홈런이 없었으며 사사구도 2번째로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