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하 전경. 깎아지른 석회암 절벽이 양옆에 있어 산사태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코린토스 운하 일대의 위성사진. 지도가 남북이 바뀌어 상단 우측이 코린토스, 하단이 루트라키이다.
1. 개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연결하는 코린토스 지협을 가로지르는 운하이다. 이오니아 해의 코린토스 만과 에게 해의 사로니코스 만을 이어주고 있다. 길이 6.3km, 폭 21.3m, 깊이 8m의 소규모 운하로, 화물선이 지나가기엔 너무 좁기에 관광용 여객선 위주로 통행하고 있다. 펠로폰네소스 반도로 돌아가는 것에 비해 이오니아 해에서 에게 해까지 약 700km가량 단축되니 그만큼 소요시간도 감소하는 효과가 있다.코린토스가 코린토, 코린트, 고린도 등 언어에 따라 여러 이름으로 불리기에 이 운하 역시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2. 역사
운하 개통식 (1893년)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이오니아해와 에게해의 양쪽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이 지점에 바닷길을 내면 해상운송 시간이 크게 단축되어 운송의 효율성이 올라갈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있어왔다. 더구나 그 시기는 다른 운송수단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기라 배를 사용하는 해상운송의 중요성이 지금보다도 훨씬 큰 시기였다. 그래서 이 지점을 다스리는 코린토스의 지도자들은 이곳에 운하를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굴착기술 부족과 깎아내야 하는 엄청난 땅의 양 때문에 공사에 막대한 자원과 비용을 투입해도 운하의 건설은 엄두도 내지 못할 수준이었다. 결국 운하건설을 포기하고 디올코스(Δίολκος)라는 궤도를 만들어 마차로 끌어올리는 방식을 통해 지협 간에 선박을 이동시켰다. 처음 운하 건설을 시도한 것은 로마 제국 네로 황제 시기로, 유대인 포로들을 이용해 약 700m 구간을 10~30m 깊이로 굴착했지만, 네로 황제가 죽은 후 중단되었다.
현재의 코린토스 운하는 1893년 7월 완공되었다. 고대부터 시도는 해왔지만 기술력 부족으로 번번이 실패하고 실현하지 못했던 아이디어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알프레드 노벨이 상용화한 다이너마이트 덕분이었다. 1869년 수에즈 운하가 개통되자 그리스 정부는 이 운하를 본격적으로 건설하고자 했고, 프랑스 사업가로부터 투자를 받았다. 하지만 프랑스의 파나마 운하 건설이 실패로 끝나고 주관 회사가 파산하면서 이 사업 역시 중단되었다. 사업은 1881년 건설사에 99년간 운영권을 주는 조건으로 재개되었으며, 1882년 4월 그리스 국왕인 요르요스 1세가 참석한 가운데 기공식이 거행되었다. 중간에 건설사가 파산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11년만에 완공하기는 했지만, 수요는 예측에 크게 밑돌았다. 일단 폭이 너무 좁아 대형 선박이 드나들 수 없었고, 6~70미터에 달하는 깊은 계곡처럼 만들어진 운하 사이로 바람이 세차게 불었으며, 코린토스 만과 사로니코스 만의 조수간만 시간차로 인해 운하의 유속이 빨라 선주들이 운하 이용을 꺼렸다. 게다가 지진대에 위치한 탓에 운하 양옆의 퇴적암이 붕괴할 가능성까지 있어 막대한 유지보수 비용이 매년 추가로 들어갔다.
3. 여담
자료 사진
2019년 10월 대형 크루즈 선 '브레마'호가 이 운하를 통과했다. 이 배는 선체 폭이 22.5m에 달하는 큰 배인데, 운하폭 25m에서 겨우 2.5m의 여유를 가지고 통과한 것이다. 이로 인해 코린토스 운하를 통과한 가장 큰 배라는 타이틀을 획득했다. #
이 운하가 만들어지면서 펠로폰네소스 반도는 반도가 아니라 엄밀하게는 섬이 되었다.
번지점프의 명소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