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st Ham United Football Club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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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7d2b3a> 이름 |
칼튼 콜 Carlton Co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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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칼튼 마이클 조지 콜 Carlton Michael George Col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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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83년 10월 12일 ([age(1983-10-12)]세) | |
영국 잉글랜드 런던 크로이던 | ||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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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키 191cm | |
직업 |
축구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코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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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colbgcolor=#7d2b3a> 선수 |
첼시 FC (2000~2001 / 유스) 첼시 FC (2001~2006)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2002~2003) → 찰튼 애슬레틱(2003~2004 / 임대) → 아스톤 빌라 FC (2004~2005 / 임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06~2015) 셀틱 FC (2015~2016) 새크라멘토 리퍼블릭 FC (2016) 페르시브 반둥 (2017) |
감독 |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U18 (2018~ / 코치) | |
국가대표 | 7경기 ( 잉글랜드/2009~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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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 축구코치이다.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에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스트라이커로 뛰면서 256경기에 출전해 56골을 득점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의 레전드다.2. 소개
1983년 10월 12일 런던의 크로이든에서 시에라리온계 어머니와 나이지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첼시 FC 유스팀에 입단해 선수생활을 시작하였다.3. 선수 경력
3.1. 첼시 FC
2000년 10월 첼시 FC와 프로 계약을 체결한 칼튼 콜은 2001-02 시즌 1군으로 승격되었고, 2002년 4월 6일 에버튼 FC와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홈경기에서 지미 플로이드 하셀바잉크와 교체되어 출전하면서 18세의 나이에 데뷔전을 치렀다. 4월 27일에는 부상당한 하셀바잉크를 대신해 미들즈브러와의 경기에서 선발 출장, 헤딩으로 프리미어 리그 첫 데뷔골을 기록하며 임팩트를 남겼고,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당시 첼시 감독에게 칭찬을 받았으며 영국 언론으로부터도 "어린 사자(young lion)"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2002-03 시즌에는 찰튼 애슬레틱과의 프리미어 리그 개막전에 팀의 레전드 지안프랑코 졸라와 교체 출전해 1골을 넣었고, 질링엄 FC와의 EFL 컵 경기에서도 멀티골을 성공시켰다. 이에 라니에리 감독은 "내가 지도해본 어린 선수들 가운데 최고의 재능을 갖고 있다"며 칼튼 콜을 치켜세웠다. 2002-03 시즌 중반 울버햄튼 원더러스로 3개월간 긴급 단기임대를 떠났고, 거기에서도 7경기에 출전하여 1골을 득점했다.
3.2. 찰튼 애슬레틱(임대)
2003-04 시즌 첼시와 6년 재계약을 체결한 칼튼 콜은 실전 경험을 쌓기 위해 찰튼 애슬레틱 FC로 임대됐다. 22경기에 출전하여 5골을 넣었으며, 찰튼이 당시 프리미어 리그에서 7위를 차지하는데 기여를 했다.3.3. 아스톤 빌라(임대)
2004-05 시즌에는 버밍엄의 아스톤 빌라 FC로 1년간 임대되었다. 데뷔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는 것을 포함, 30경기에 출전해 3골을 기록하는 등 핵심전력으로 활약했으나 2005년 2월 잉글랜드 청소년대표팀에 차출되었다가 얻은 부상으로 시즌 후반에는 출전하지 못했다.3.4. 첼시 FC 복귀
2005년 6월 다시 첼시 FC로 복귀하였다. 그러나 디디에 드로그바와 에르난 크레스포, 아이두르 구드욘센 등 뛰어난 선배들이 즐비한 첼시에서는 많은 기회를 얻지 못했고 컵대회 포함 12경기에 출전해 1골을 기록하는데 그쳤다.3.5.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
2006년 7월 더 많은 출전 기회를 얻기 위해 웨스트햄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다. 그러나 첫 시즌에는 말론 헤어우드, 딘 애쉬튼과 카를로스 테베즈가 있었던 웨스트햄의 공격진 때문에 많은 경기를 주전으로 출전하지 못했고 대부분 교체 출전으로 23경기에 나와서 3골을 득점했다.그러나 2007-08 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테베즈가 맨유로 이적하고 딘 애쉬튼이 장기부상을 끊으며 선발로 출장하는 기회가 많아졌고 37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한 것이다. 2008-09 시즌에는 지난 시즌보다 더 맹활약을 하여 32경기에 출전해 12골을 득점했다. 특히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월까지는 5경기 연속 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활약상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기도 했다.
2009-10 시즌에도 칼튼 콜은 리버풀 FC와 아스날 FC, 토트넘 홋스퍼 FC 등 강호들을 상대로 득점하는 등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37경기 10득점으로 시즌을 마쳤으며 팀이 극적으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잔류할 수 있게 도왔다. 2010-11 시즌은 선수의 줄부상과 아브람 그랜트의 막장운영으로 팀은 강등되었으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와의 EFL컵 경기에서 2득점을 기록하며 맨유를 4-0으로 대파하는데 기여하였으며, 총 43경기에 출전 11골을 기록하는 등 계속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팀이 강등되자 핵심 스트라이커였던 칼튼 콜도 이적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새로 부임한 샘 앨러다이스 감독과 함께 웨스트 햄에 잔류하는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많은 팬들의 환호를 받았다. 2011-12 시즌 EFL 챔피언십 40경기에 출전해 14골을 기록하였으며, 특히 블랙풀과의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전에서 선취골을 득점하면서 팀의 승격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2012-13 시즌엔 앤디 캐롤이 리버풀로부터 임대 영입되자 주로 로테이션 자원으로 활용됐다. 친정팀 첼시 FC와의 경기에서 멋진 골을 기록하는 등 간간히 나올 때는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나 포스트 플레이 능력이 더 뛰어나고 더 젊은 앤디 캐롤에 밀려 많은 경기에 나오지 못했고, 23경기 2골에 그쳤다. 이후 웨스트햄과 재계약을 체결하지 않고 보스만 룰에 따라 팀을 떠났으나... 칼튼 콜 본인도 새로운 팀을 찾는데 실패하고 웨스트햄도 스트라이커를 보강하는데 실패하자 다시 칼튼 콜을 불러들인 것.
아무튼 이렇게 다시 웨스트햄으로 돌아온 칼튼 콜은 2013-14 시즌 풀럼 FC와의 경기에서 득점한 것을 시작으로 총 6골을 득점하며 녹슬지 않은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014-15 시즌에도 웨스트햄에 잔류하여 총 26경기에 출전해 3골을 넣었다.
3.6. 웨스트햄 이후
2015년 여름 스코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셀틱 FC로 이적했다. 그러나 무릎 부상이 발병하여 리그와 컵 합계 4경기밖에 출장하지 못했고, FA 컵에서 1골을 넣는데 그쳤다. 이후 미국의 새크라멘토 리퍼블릭과 인도네시아의 페르시브 반둥에서 뛰다가 2017년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3.7. 국가대표
청소년 대표팀에서는 꽤 좋은 활약을 보였다. 특히 첼시의 유망주로 찰튼과 아스톤빌라에 임대가서 활약했던 2003년부터 2005년까지는 잉글랜드 U21 대표팀에 19경기를 출전해 6골을 기록했다. 이후로는 국가대표와는 인연이 없다가 2009년 파비오 카펠로 감독에 의해 잉글랜드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적이 있었고 7경기에 출전했으나 득점은 하지 못했다.4. 플레이 스타일
유연성과 피지컬, 골 결정력이 상당히 뛰어났고 큰 키로 공중볼 장악 능력 또한 뛰어났다. 그래서 웨스트 햄의 팬들은 그를 가리켜 완성된 스트라이커라고 불렀다. 2005년 청소년대표팀 경기에서 장기부상을 당한 뒤, 프로 생활 내내 잔부상이 잦았고 그로 인해 대단한 재능에도 불구하고 그 재능의 100%를 온전하게 발휘하지는 못했다.5. 지도자 경력
2018년 현역 시절 레전드로 뛰었던 웨스트 햄 유나이티드 FC의 유소년 코치로 부임했다.6. 여담
- 성격이 꽤나 다혈질적이다. 2011년과 2015년 트위터에서 토트넘 팬에게 욕설을 해 벌금을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