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흑인 고등학생 칼리프 브라우더(Kalief Browder)가 백팩을 훔쳤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악명 높은 라이커스 형무소[1]에 투옥된 후 무려 3년 동안(2010~2013)이나 재판조차 받지 못한 채 투옥되어 있다가 검찰 측의 일방적인 기소 취하로 석방된 후 우울증과 피해망상에 시달리다가 향년 22세에 자살한 사건.
누명을 쓴 피해자에 대한 배상은커녕 무죄추정의 원칙조차 씹어먹어버린 미국 사법체계의 개판인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다.
2. 사건의 발단
2.1. 사건 이전 칼리프의 삶
칼리프 브라우더는 마약 중독자인 어머니[2]에게서 태어나 아동보호 제도[3]의 적용을 받아 양부모[4] 밑에서 자라났다. 학교 생활 중에는 '재미있는 성격'이라고 기록되어 있었고 본인이 자신의 레포트는 C 점수로 가득하다고 하였으나[5] 교사들은 그를 '영리한 학생이었다'고 술회했다.2.2. 보호관찰
문제의 사건이 일어나기 8개월 전 칼리프는 중절도죄로 기소되었고 유죄를 인정했는데 죄목은 칼리프가 도난당한 빵집 자동차에서 물건을 훔쳤다는 것이었고 이 때문에 보호관찰 대상이 되었다. 나중에 자신은 이 사건이 일어날 때 그저 옆에 있었던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아무튼 그는 보호관찰 중이었고 이것이 후술될 문제들을 훨씬 심각하게 만들었다.2.3. 강도 혐의로 체포
2010년 3월 16세의 고등학생이었던 칼리프는 파티에 초대받았다가 친구와 함께 귀가 중 갑자기 경찰의 검문을 받고 연행되었다. 당시 경찰차 내부에는 911에 강도를 당했다고 신고했던 피해자 로베르토 바티스타[6]가 있었다. 칼리프는 경찰에게 자기 소지품을 검사해 보라고 했고 검색해도 문제의 백팩[7]은 나오지 않았다. 피해자는 이에 강도사건이 지금 발생한 것이 아니라 1주일 전에 일어난 거라고 말했고 칼리프와 그의 친구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검찰은 혐의를 부인하던 칼리프를 2급 강탈혐의로 기소해 구속하기에 이른다.2.4. 라이커스 교도소 수감
그런데 여기서 어이가 없는 건 2급 강도혐의를 중범죄랍시고 16세였던 청소년을 뉴욕의 라이커스 아일랜드 교도소에 처넣어 버린 것이다. 라이커스 아일랜드는 재소자간의 폭력과 살인, 강간으로 악명이 높은 성인 교도소인데 여기 아직 재판도 받지 않아 유죄가 확정되지도 않은, 심지어 미성년 소년을 처넣은 것이다. 그는 이곳에 무려 3년 동안 재판도 못 받은 채 수감되었다.그 사이에 재학 중이던 학교에서는 칼리프를 퇴학 처분했다.
3. 무슨 일이 벌어진 건가?
3.1. 검찰의 반복된 공판연기
칼리프의 재판이 단 한 번도 열리지 못한 것은 검찰 측에서 증거 보강을 한답시고 계속 공판연기 요청을 하고 법원이 그 때마다 이를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브롱크스 지방 검사장 로버트 T. 존슨은 공판 연기 요청을 3년 동안 무려 31번이나 했고 법원은 그 때마다 받아들여 결국 칼리프는 재판도 받지 못한 채 계속 갇혀 있게 되었다.[8] 칼리프의 어머니는 3년 동안 31번이나 재판 예정일마다 법원에 갔다가 재판이 연기됐다는 소리만 듣고 돌아와야했다.3.2. 국선변호사의 미미한 대응
칼리프의 집은 가난했기 때문에 보석금 1만 달러를 낼 수 없었고 국선 변호인[9]은 아무 쓸모도 없었다. 뉴욕 검찰의 비상식적인 공판 연기 요청에 대해 변호사가 적극적으로 대응했더라면 칼리프는 좀더 빨리 출소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의 국선 변호인은 브롱크스에 사무소가 있었고 거기서 교도소에 다녀오려면 반나절이 걸리기 때문에 변호사는 거의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이는 그에게 더욱 더 고립감을 주었는데 변호사는 화상 대화를 통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화상통화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3.3. 지연의 원인(추정)
덥썩 체포해 기소할 때는 언제고 검찰에서 증거보강을 이유로 공판 연기 요청을 한 이유는 칼리프를 범인이라고 지목한 피해자가 "생각해 보니 확실하지 않다." 면서 슬그머니 주장을 철회했기 때문이다. 칼리프가 범인이라는 증거라고는 그 사람의 주장뿐이었는데 기소를 철회하여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던 검찰[10]은 증거 보강을 핑계로 공판을 연기하면서 교도소에 갇힌 그에게는 사법거래를 시도했는데 혐의만 인정하면 10년형3.4. 석방
2013년 6월 칼리프는 갑자기 석방되었는데 별다른 해명도 없이 그냥 뉴욕 검찰에서 기소를 취하한 것이다. 유일한 증거가 되는 증언을 한 피해자 바티스타가 멕시코로 돌아가 버렸다는 것이 알려지자[12] 뉴욕 검찰에게는 더 이상 유죄를 입증하기 충분한 증거가 남지 않았다. 남은 것은 강도 사건이 일어난 날짜가 1주일씩 다른 바티스타의 증언기록 뿐이었다.3.5. 석방 이후
재판이 끝나고 칼리프에게는 단 한푼의 보상금도 주어지지 않았다. 16살이었던 그는 10대의 나머지 부분을 모조리 감옥에서 보내고 20세의 청년이 되어 있었으며 더구나 1110일의 수감기간 중 무려 800일을 독방에서 지냈다.출소 후 칼리프는 지역 인권단체의 도움을 받아 뉴욕 시경과 검찰을 상대로 재판을 걸었다. 원고측(칼리프 측) 변호사[13]는 '뉴욕 시경과 검찰, 교정국이 피해자 겸 유일한 증인, 바티스타가 미국에 없다는 걸 안 시점이 정말 2013년이었나'를 중점에 두고 재판을 진행했지만 당국은 일체의 쟁점을 부인했다. 결국 '원고가 겪은 일은 무척 불행하고 투옥은 비합리적인 상황이었던 것은 맞지만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다'는 이상한 판결을 받고 패소하면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도 단 1센트도 받지 못했다.
4. 쟁점
4.1. 사법거래
플리 바겐은 미국의 법 현실에 맞추어 형사법정에서 민사법정 같은 중재와 화해를 도입함으로써 정의에서 일부 물러나는 대신에 경제성과 신속성을 추구하는 제도다. 사법 거래에 따른 장단점이 있겠으나 이 사건에서는 두 가지 문제를 일으켰다. 하나는 충분한 법적 지식과 도움이 부족한 피의자를 손쉽게 범죄자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법 적용기관인 검경이 자신들의 오판을 얼버무리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이 두 가지가 결부되어 무고한 피의자에게 범죄의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결과를 낳았으며 그에 더해서 피의자가 상대적 빈곤층에 인종차별의 대상인 흑인이라는 점에서 법제도의 정의가 위협받는 결과를 초래했다.[14]
4.2. 수감제도
경제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미국식 사법제도가 수형제도에서 허점을 드러내 아직 학생이었고 사회적으로 미숙한 인격체를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성인 수형시설에 수감시켰으며 지속적으로 분쟁이 발생한다는 이유로 독방에 장기간 체류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이것이 아직 감수성이 예민한 피의자에게 크나큰 심적 부담을 일으킨 것이 후술할 비극적 결과의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여지가 크다.4.3. 검사제도
미국식 형사제도만의 특징은 아닐 수 있으나 검사가 피의자를 다루면서 기소를 유지하기 위해 제도를 악용해서 절차를 지연시키는 것도 역시 문제가 된다. 제도적, 절차적 문제로 재판을 전부 공개하지는 않았으나 검사측의 재판지연은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희생양을 만드는 구태의연한 수법이라는 비난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다. 그리고 이전까지 수감자에게 보석금을 대출해 주고 이자를 챙기는 보석금 대출 브로커들이 고액대출을 망설이는 수감자를 겁줄 때 "만약 검사가 공판연기를 몇 년 동안 계속하면 당신 계속 감옥에 있어야 해요." 라고 겁을 주곤 했는데 그게 그냥 겁 주는 게 아니라 사실이었다.4.4. 기타
법제의 특징이기는 하지만 아직 학생이고 현행범도 아니며 명확한 주거가 있는 상태에서 피의자가 바로 수감되어 3년 동안이나 수형생활을 한 것에는 피의자가 보호감찰 중이라는 점도 기여했겠으나 미국 사회의 특성상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롭기도 힘들다. 만약 칼리프가 백인이었어도 이런 일을 당했을지는 상당한 의문이기 때문이다.5. 서글픈 죽음
5.1. 칼리프의 수감기간 중 변화
수감 중 칼리프는 유쾌한(fun)한 성격에서 폐쇄적이고 우울한 성격으로 바뀌었다. 담당변호사는 칼리프가 수감되어 있는 동안 '얌전하고 조용한 성격'에서 '더 크고 거칠어졌다'라고 회고했다.5.2. 재활 노력
칼리프는 출소 후 정신적 충격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직업도, 학교도, 돈도, 자신만의 거주지도 없는 상태에 놓인 그는 지역 인권단체의 도움으로 한국의 검정고시에 해당하는 GED 시험에 합격해 고졸 학력 인증서를 받았고 브롱크스 지역사회 대학에 진학해서 평점 3.5점의 학점을 받기도 했지만 억울한 수감생활에서 얻은 PTSD와 우울증, 피해망상증으로 괴로워했다. 석방된 지 6개월 뒤에는 자살을 시도했을 정도였다. 다행히 이때는 우연히 들른 친구가 자살을 막았다.5.3. 자살
결국 2015년 6월 6일 칼리프는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자살한 그를 발견한 것은 그의 석방을 그토록 갈망하던 의붓어머니 베니다 브라우더였다. 베니다는 아들이 사망한 지 1년 뒤에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사후에도 끝내 뉴욕 경찰과 검찰은 사과 한 마디 하지 않았다.6. 사망 이후
6.1. Black Lives Matter
이 사건 이후 미국에서는 Black Lives Matter 운동의 영향을 받았고 칼리프 사건에 대해서는 많은 분석이 이루어졌다.6.2. 교정시설 개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행정명령으로 연방교도소 내에서 미성년자가 독방에 감금되는 일이 없게 조치하면서 칼리프 사건을 언급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뉴욕 시장을 비롯한 몇몇 정치가들은 이 사건을 언급하면서 미국 형사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런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개선하겠다고 밝혔으며 빌데 블라지오 시장은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으나 라이커스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6.3. 청소년 사건 담당 법원
2017년 4월 뉴욕 주지사는 16~17세의 형사범에 대해서 가정법원이 사건을 담당하거나 판사가 교정 현황을 감독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에 서명했다.6.4. 미디어
JAY-Z와 하비 와인스틴이 이 사건을 6부작 다큐멘터리로 제작했다.
[1]
세계적인 규모의 대형 교정시설이며 뉴욕의 대표적인 수형시설이지만 수감자들 간의 폭력 등으로 악명 높다. 톰 클랜시의 디비전에서 나오는 범죄 세력 중 하나인 라이커스가 이 교도소에서 탈옥한 자들이다.
[2]
7자녀를 낳았고 그 중 칼리프를 포함한 다섯 명이 입양되었다.
[3]
친권을 유지하는 경우 아동의 최선의 복지가 위태로울 수 있다고 판단될 때 아동학대나 방치를 막기 위해 정부가 나서서 아동의 양육을 양부모에게 맡기는 제도
[4]
양어머니 베니다 브라우더와 양아버지 에버랫 브라우더는 2015년까지 입양된 자녀 34명을 키웠다.
[5]
C평점은 낙제를 면할 수준인 D보다 약간 나은 수준인데 빈말로도 우수한 성적이라 할 수준은 아니지만 최소한 공부에 손을 놓은 학생의 성적은 아니므로 부진아는 아니었다.
[6]
바티스타는 멕시코 이민자였다.
[7]
피해자의 증언으로는 그 안에 카메라, 700달러, 아이팟 터치, 신용카드가 들어 있었다.
[8]
https://whowhatwhy.org/2015/07/07/is-bronx-d-a-to-blame-for-innocent-teens-death/
[9]
변호사는 당시 사건별로 시간당 6~7만원 정도를 받으며 여러 사건을 한꺼번에 수임한 상태였다.
[10]
담당검사가 하원의원으로 출마할 생각이었는데 경력에 오점을 남기기 싫어서 기소를 취하하지 않았다는 소문이 있다. 이 검사는 결국 선거에는 나가지 않았지만 검사에게 주어지는 면책 특권 덕분에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고 언론에 이름이 공개되는 일조차 피했다.
[11]
뉴요커가 공개한 감시영상에서 칼리프는 신원이 알려지지 않은 교도관에 의해 묶인채로 심한 구타를 당한다. 해당 교도관이 누구인지 정보공개를 요청했지만 공개가 거부되었다.
[12]
바티스타는 형에게 사건 관련 내용을 말해 두었다고 했지만 그 또한 행방이 묘연해졌다.
[13]
이번에는 중진 변호사를 선임했다.
[14]
심지어 저소득층 중에는 법정출두를 위한 의복 구매마저도 힘든 경우도 많다. 어떤 국선변호사는 복장 문제로 난감한 의뢰인들을 위해 여기저기서 버려진 정장을 구해서 사무실에 걸어둔 경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