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2-16 23:56:25

에밋 틸


1. 개요2. 생애3. 여파4. 매체에서5. 여담

1. 개요

Emmett Louis Till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백인들에게 살해당하면서 1950년대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2. 생애

1941년 7월 25일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태어난 그는 아기 때 부모가 이혼한 뒤 어머니 메이미 틸(Mamie Till)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인 루이즈 틸은 이혼 직후 제2차 세계 대전 이탈리아 전선에 참전했다가 1944년에 민간인 2명을 강간한 혐의로 체포되어 1945년에 처형되었다.[1]

1955년 8월 20일 그는 미시시피 주 머니(Money) 시에 거주하던 삼촌과 사촌 동생들을 만나기 위해 방문한 뒤 24일 사촌들과 한 식료품점에 들렸는데 가게 여주인 캐롤린 브라이언트와 실랑이가 벌어졌다. 캐롤린은 틸이 자신에게 휘바람을 불며 손을 만지는 등 추근덕거렸다고 주장하였고 틸은 그저 가게 앞에서 휘파람을 분 것이 전부하고 주장하였다.

나흘 뒤인 8월 28일 새벽 2시 30분 사촌 집에서 잠을 자던 중 캐롤린의 남편 로이 브라이언트(Roy Bryant)와 그의 이복 형제 밀엄(J.W Milam)이 집을 급습해 그를 끌고 갔고 사흘 뒤 인근 강가인 탤러해차이강의 그라볼 선착장 부근에서 익사체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 그의 온몸에는 구타당한 흔적이 있었고 목에는 줄이 감겨 있었으며 대형 환풍기가 매달려 있었고 머리에서는 총상이 발견되었다.

3. 여파

그의 시신이 발견된 후 로이와 밀엄은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지만 1955년 9월 전원 백인 남성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흑인 사회의 분노에 기름을 끼얹었다. 이듬해인 1956년 1월 이 둘은 자신들이 틸을 죽였다고 잡지사에 무용담을 늘어놓듯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후 인터뷰에서 배심원들은 두 피고인이 유죄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당시 미시시피에서 살인죄의 형량 선고는 사형, 종신형, 무죄 셋 중 하나만이 가능했고 흑인을 죽인 백인에 대한 종신형이나 사형이 적절한 처벌이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에 무죄를 평결했다고 밝혔다. 한편 배심원들 중 2명은 평결 당시 피고인들의 무죄 주장을 믿었으며 검찰이 틸이 사망했다는 사실이나 발견된 시신이 틸이라는 사실을 입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어머니인 메이미 틸은 처참하게 훼손된 아들의 시신을 장례식장에서 공개했는데 그 시신을 본 사람들은 몹시 분노했고 그렇게 인종간의 갈등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그가 사망한 그 해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거주하던 로자 파크스가 버스 흑백분리 정책에 저항하였으며 이후 마틴 루터 킹이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운동을 주도하면서 미국 흑인 민권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4. 매체에서

  • 2022년 에밋 틸 사건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 ‘틸’이 미국에서 개봉되었고 한국에서는 2023년 3월 개봉했다.

5. 여담

  • 인터넷 사이트에 관속에 누워 있는 그의 시신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오기[2] 때문에 검색하지 않는 게 좋다.

[1] 에밋이 죽은 후 존 스테니스 민주당 의원에 의해 공개되었다. [2] 얼굴의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참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