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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단 기본 문서 | 모기업 | HD현대중공업 |
연고지 | 울산광역시 | ||
구단 | 울산 HD FC | ||
유소년 | 현대고등학교 축구부 | ||
유니폼 | 역대 유니폼 | ||
주요 인물 | 현재 | 김판곤 감독 | 선수단 | |
역대 | 역대 감독 | 역대 주장 | 프랜차이즈 선수 | ||
시설 | 홈구장 | 울산문수축구경기장 | |
제2 홈구장 | 울산종합운동장 | ||
클럽 하우스 | HD현대스포츠 클럽하우스 | ||
역사 | 구단 역사 | 역사 및 역대 시즌 | ACL 기록 | |
K리그1 |
1996 | 2005 | 2022 | 2023 | 2024 | ||
코리아컵 |
2017 | ||
ACLE |
2012 | 2020 | ||
현재 시즌 | 2024 | ||
팬덤 관련 문서 | 응원 | 서포터즈 처용전사 | 응원가 | 울산큰애기 응원단 | 잘 있어요 | |
팬 커뮤니티 | 울티메이트 | ||
라이벌전 | 동해안 더비 | 현대家 더비 | ||
논란 | 사건·사고 | ||
기타 | 성수울포 | 문수의 기적 | 울산 왕조 |
처용전사 | |
함성으로 그라운드를 지배하라, 열두 번째 전사, 처용전사 | |
<colbgcolor=#014099><colcolor=#fff> 등번호 | 12번[1] |
홈페이지 | 처용전사 공식 인스타그램 |
1. 소개
우리 서포터를 솔직히 이야기하면 굉장히 다른 서포터[3]들에 비해서
양반이야.[4]
우리 울산 팬들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팬들이 됐다. 그리고 문수축구경기장을 수놓는 아주 아름다운 모습들도 많이 보여주신다.
前 울산 HD FC 감독 홍명보
K리그1
울산 HD FC를 응원하는
서포터즈 클럽. 우리 울산 팬들은 전국에서 가장 유명한 팬들이 됐다. 그리고 문수축구경기장을 수놓는 아주 아름다운 모습들도 많이 보여주신다.
前 울산 HD FC 감독 홍명보
처용전사라는 명칭은 지역연고를 강조하기 위해 울산의 상징 중 하나인 처용과, 강력한 응원을 통해 관중석을 지배하겠다는 의미인 전사를 합친 것이다. 등번호는 대부분 구단에서 팬들을 위해 비워둔 12번을 1999년부터 사용하고 있다.[5] 과거에는 K리그에서도 나름 강성으로 불리는 서포터즈 중 하나였다. 초창기 PC통신 하이텔에서 방을 개설한 이래 자체 홈페이지를 만들어 활동했으나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다음 카페로 자리를 옮겼고 현재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으로 주요 공지나 소식 등을 공유하고 있다. 그 외 소모임별 계정은 있으나 처용전사라는 집단 자체는 더 이상 별도로 가입을 받거나 심사를 거치지 않고, 현재는 S석으로 울산 현대 유니폼이나 팀 컬러인 푸른색 계열의 옷을 입고 서포팅하러 오는 소모임과 개개인을 모두 통틀어 처용전사라고 부르고 있다.
2. 역사
- 1997년 12월, 처용전사가 공식적으로 창단했다. 운영방식은 회장제로 결정된다.
- 1998년, 홈 구장이던 울산공설운동장에서 첫 서포팅을 실시했다. 처음엔 일반석 여러 구역을 옮겨다니며 응원하다가 골대 뒤가 아닌 전광판과 가까운 일반석 오른쪽에 서포팅존을 마련해 자리 잡았다.
- 1999년, 울산 구단 측에서 처용전사를 '12번째 선수' 라는 의미로 등번호 12번을 정식으로 부여하고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 명단 소개시 처용전사도 같이 소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포팅존을 전광판이 있는 북측으로 옮긴다.[6] 서포터 자체 MD로 니트 머플러를 제작해 판매했다.[7] 3월 28일과 6월 12일, 19일에 서울에서 벌어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경기를 처용전사들이 울산교에 모여 당시 코리아나 호텔의 대형 전광판에 중계되는 화면을 보며 단체 응원을 펼치면서 울산 지역의 축구 응원 문화 조성에도 한몫했다.[8] 또한 한일월드컵 공동 개최를 계기로 만들어진 울산 월드컵 문화시찰단의 일원으로 10월 일본 오이타시를 방문해 오이타시 월드컵 준비 상황과 시민 의식 수준을 체험하고 당시 J2리그에 소속된 오이타 트리니타 서포터인 APO와 자매결연을 맺고 J2리그 경기에서 합동 응원을 펼치기도 했다.
- 2001년, 울산공설운동장에서 문수월드컵경기장으로 홈 경기장이 옮겨진다. 이에 따라서 처용전사 구성원도 기존의 직장인+학생 위주에서 학생 등 젊은층으로 점점 변화되었다.
- 2002년, 소모임 활성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펼쳤으나, 소모임이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9]
- 2004년, 회장 투표 과정에서 이견 발생으로 일부 소모임이 일반석으로 거점을 옮겼다. 2~3시즌 동안 N석과 일반석 이렇게 2개의 서포터가 존재하였으며, 구단 측에서는 이에 대해 중립 입장을 고수했다. 일반석에 자리 잡은 서포터는 내부 문제로 인하여 분열되었고, 일부는 N석으로 다시 복귀한다.
-
2005년, 처용전사가 서포팅을 실시한 이후 처음으로 울산이 리그에서 우승한다.
- 2006년,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A3 챔피언스컵에 참가한 울산을 응원하기 위해 23명으로 구성된 첫 해외 원정단이 현지에서 서포팅을 했다.
- 2007년, 3개의 소모임이 정착하게 된다. 명칭은 NAVY BLUE, NCN (30대 이상), USISAN CREW (역대 회장 및 현장팀 인원)
- 2009년 시즌 종료 후, 운영방식을 회장제에서 소모임 연합체로 변경한다.
- 2010년, 사실상 현장팀이 해체된다. 자율참여로 현장운영을 하였으나 실질적으론 2개의 소모임이 운영을 주도했다.
- 2012년, 연합회 및 현장팀 운영방식에 대한 불만으로 인해, USISAN 연합 (아세시노, 우시산 크루)이 잠시 일반석 2층으로 거점을 옮긴 적이 있었다. 이후 ACL에서 울산이 홈 구장인 문수에서 우승할 때 처용전사의 전매특허인 잘가세요가 문수구장 전체로 울려퍼지면서 우승을 만끽했다.
- 2015년, 구단과의 협의를 통해 홈 서포터석을 S석으로 옮긴다.[10]
- 2022년, 그동안 세를 불린 처용전사가 열심히 선수들을 응원하고 선수들 역시 열심히 뛰어준 덕분에 울산이 17년 만의 세번째 우승을 달성했다. 이후 K리그 시상식에서 홍명보 감독과 주장 이청용은 한목소리로 그동안 열심히 응원해왔던 처용전사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3. 대표 제도
- 회장제 (1997년 ~ 2009년)
- 의장제 (2010년 ~ 2016년)
- 대표회원제 (2017년 ~ 2018년)
- 의장제 (2019년 ~ 현재)
4. 수상 경력
- 2000년 10월, 2000년 한국프로축구 올해의 서포터즈상 수상.
- 2002년 11월, 2002년 한국프로축구 올해의 서포터즈상 수상.
- 2006년, 제2회 K리그 서포터즈 축구대회 우승.
- 2010년, 제3회 K리그 서포터즈 축구대회 우승.
5. 특징
창립 초창기, 처용전사는 한 달 단위로 서포터 인원을 중,고등학생은 5,000원, 성인은 10,000원의 가입비를 받는 회원제로 모집했다. 이를 통해 모인 신입 회원들을 경기가 없는 공휴일에 공설운동장에 마련된 서포터 사무실 등지에 모여 응원가 숙지 등의 집체 교육을 실시했다. 집체 교육은 서포터 가입 인원이 점점 커지면서 얼마 뒤 사라졌지만 초기 회원들은 '전사' 와 '일당백' 이라는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가입비와 회원들의 사비를 털어 응원 걸개, 깃발, 탐탐이 등 응원 도구를 제작하거나 구입해 서포팅을 실시했다. 회원제는 2002년 월드컵 이전까지 시행되었고 2004년 소모임제 실시 이전까지 연령별, 각급 학교별 등의 자생적 모임이 존재했고 또한 남성 회원들이 많아 서포팅 시 중후한 목소리의 응원가가 경기장에 울려퍼지곤 했다.2005년 울산의 두번째 우승 이후 팀에 인기 선수들이 있음에도 성적이 부진하자 경기장을 찾는 처용전사의 수도 줄어들었고, 이후에도 골수팬 이외 그냥저냥 수준의 숫자의 서포터만이 남았으나 2018년 이후 울산의 성적이 상위권으로 상승하고 안타깝게도 계속 준우승에 머물렀음에도 불구하고 10~30대의 젊은 서포터들이 늘었고 그들이 S석을 점점 메우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그리고 2022년 울산이 17년 만의 세번째 우승을 이루면서 팬덤의 크기 또한 정점에 올라 홈 경기가 있는 날이면 S석의 서포팅존 이외 나머지 S석 좌석들도 스탠딩 응원석으로 발전했고 여성 회원 수도 늘어 예전의 중후했던 응원가가 하이톤의 응원가로 바뀌어 경기장에 울려퍼지고 있다. 특히 연고지 울산 이외의 수도권 등 지역에서의 서포터와 팬이 크게 늘어 울산의 수도권 등 원정 경기에서도 1,000명 이상의 원정 서포터와 팬들이 원정석에서 응원하면서 전국구로 세가 커지고 있다.
2024년부터는 처용전사 측에서 응원 깃발 공동구매를 열어 홈 경기가 있는 날이면 코어석뿐만 아니라 S석 전체를 푸른 깃발로 뒤덮는 새로운 응원 방식을 도입했는데, 유럽의 빅클럽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웅장함으로 호평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영상
6. 조직도
의장 |
연합회의[11] |
총무, 현장팀, 홍보팀 |
6.1. 소모임 목록
소모임 목록은 공식 홈페이지와 홍보 문구를 그대로 참조하였기 때문에 사실과 다르거나 최신화가 되어있지 않을 수 있다.- 울트라스 파랑 : 과거 우시산 크루에서 울트라스 성향의 멤버들이 독립하여 만든 그룹
- 울트라스 파나틱스 : 울트라스 그룹
- 까마라다 : 인차다스 스타일을 추구하는 그룹
- 더 브로스 : 과거 우시산 크루와 아쎄시노의 멤버들이 주축이 된 그룹
- 깔롱 : 2024년에 새롭게 합류, 젊음과 열정의 서포팅을 자랑하는 그룹
- 수도권 대리점 : 서울 등 수도권 거주 울산팬들의 소모임
7. 응원가
자세한 내용은 울산 HD FC/응원가 문서 참고하십시오.
8. 여담
- 2018년 이후 경기장에 서포터가 늘었음에도 신규로 들어온 회원들이 응원가를 잘 몰라 서포팅 시 규모에 비해 소리가 작다는 지적들이 나오자 원정 경기시 이용하는 단체원정 버스에서 가사집을 배포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맞춰 가사집에 응원가 음원에 익숙할 수 있도록 QR코드를 넣어 유튜브로 쉽게 따라 배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 2024년 2월부터 진행 중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임시 감독 선임 과정에서 대한축구협회가 차기 감독 후보로 울산의 감독인 홍명보를 내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협회의 졸속 행정에 대한 책임을 K리그에 전가하지 말라는 취지의 성명문을 작성하면서 가장 먼저 반기를 들었다. 이후에도 트럭 시위 및 근조 화환 전달 등 축구 팬들의 관심을 고조시키며 타 구단 서포터들까지 축협을 비판하기 시작하자 축협이 결국 꼬리를 내리고 임시 감독 체제를 천명하면서 축협의 만행을 저지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12]
9. 처용전사임을 밝힌 인물
10. 관련 문서
[1]
구단에서 팬들을 위해 비워두었다.
[2]
육성 응원이 금지됐을 때는 "영혼의 울림으로 그라운드를 지배하라."였다.
[3]
마린스,
매드 그린 보이즈,
수호신
[4]
푸른파도 시즌2 EP8
라이벌
포항에게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한 이 후.
[5]
2000 시즌부터 2004 시즌까지 등번호 12번이 적힌 서포터 전용 유니폼이 존재했다.
[6]
일부 몇몇 경기는 상대팀 서포터즈와 협의 하에 반대편 남쪽에서 응원하기도 했다.
[7]
이 머플러는 2022년 리메이크 되었다.
[8]
이 시절엔 붉은악마 울산지회가 없었다.
[9]
향후에도 꾸준히 소모임 정책을 실시한다.
[10]
S석으로 옮긴 이유는 여러가지 중 여름엔 그늘이 지고, 겨울에는 볕이 들기 때문이다.
[11]
각 소모임
[12]
K리그 개막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을 강제로 빼앗는 것은 대한축구협회가 K리그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 축구의 근간인 K리그를 무시하는 행태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