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5 08:04:52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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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555,#aaaaaa
<colcolor=#000,#fff> 순위 선수 국적 득점
1 실비오 피올라 파일:UEFA ITA.png 274
2 프란체스코 토티 파일:UEFA ITA.png 250
3 군나르 노르달 파일:UEFA SWE.png 225
4 주세페 메아차 파일:UEFA ITA.png 216
4 조제 알타피니 파일:UEFA ITA.png 파일:UEFA BRA.png 216
6 안토니오 디 나탈레 파일:UEFA ITA.png 209
7 로베르토 바조 파일:UEFA ITA.png 205
8 치로 임모빌레 파일:UEFA ITA.png 196
9 쿠르트 함린 파일:UEFA SWE.png 190
10 주세페 시뇨리 파일:UEFA ITA.png 188
10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 파일:UEFA ITA.png 188
10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파일:UEFA ITA.png 188
13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파일:UEFA ARG.png 183
14 파비오 콸리아렐라 파일:UEFA ITA.png 182
15 잠피에로 보니페르티 파일:UEFA ITA.png 178
16 아메데오 아마데이 파일:UEFA ITA.png 174
17 주세페 사볼디 파일:UEFA ITA.png 168
18 루이지 리바 파일:UEFA ITA.png 166
19 굴리엘모 가베토 파일:UEFA ITA.png 164
20 로베르토 보닌세냐 파일:UEFA ITA.png 162
21 루카 토니 파일:UEFA ITA.png 157
22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파일:UEFA SWE.png 156
22 필리포 인자기 파일:UEFA ITA.png 156
22 로베르토 만치니 파일:UEFA ITA.png 156
25 루이스 비니시오 파일:UEFA BRA.png 155
25 카를로 레구초니 파일:UEFA ITA.png 155
27 이스트반 나이에르스 파일:UEFA HUN.png 153
27 에르난 크레스포 파일:UEFA ARG.png 153
29 아드리아노 바세토 파일:UEFA ITA.png 149
30 오마르 시보리 파일:UEFA ITA.png 파일:UEFA ARG.png 147
}}}}}}}}}}}} ||
이탈리아의 축구 감독
파일:321739.jpg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이름 알베르토 질라르디노
Alberto Gilardino
출생 1982년 7월 9일 ([age(1982-07-09)]세)
피에몬테주 비엘라
국적
[[이탈리아|]][[틀:국기|]][[틀:국기|]]
신체 184cm, 79kg
직업 축구 선수 (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경력 <colbgcolor=#eeeeee><colcolor=#000000> 유스 USD 코사토 (1991~1996)
ASD 라 비엘레세 (1996~1997)
브레시아 칼초 (1997~1999)
선수 피아첸차 칼초 (1999~2000)
엘라스 베로나 FC (2000~2002)
파르마 FC (2002~2005)
AC 밀란 (2005~2008)
ACF 피오렌티나 (2008~2012)
제노아 CFC (2012~2014)
볼로냐 FC (2012~2013 / 임대)
광저우 에버그란데 (2014~2015)
ACF 피오렌티나 (2015 / 임대)
US 팔레르모 (2015~2016)
엠폴리 FC (2016~2017)
델피노 페스카라 1936 (2017)
스페치아 칼초 (2017~2018)
감독 레차토 (2019)
FC 프로 베르첼리 1892 (2019~2020)
ACN 시에나 (2020~2021)
ACN 시에나 (2021)
제노아 프리마베라 (2022)
제노아 CFC (2022~2023 / 감독 대행)
제노아 CFC (2023~2024)[1]
국가대표 57경기 19골 ( 이탈리아 / 2004~2013)

1. 개요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2.2. 국가대표 경력
3. 플레이 스타일4. 지도자 경력5. 기록
5.1. 대회 기록5.2. 개인 수상5.3. 수훈
6. 기타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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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탈리아 축구 선수 출신 감독.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1.1. 커리어 초기

피아첸차에서 축구를 시작해 2000년 1월 6일에 17세의 나이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2000년 3월 25일, AC 베네치아전에서 프로 첫 골을 기록하였다. 피아첸차는 그해 세리에 B로 강등되었지만 질라르디노는 17경기 3골로 나름 존재감을 보였다.

2000년 7월 1일 피아첸차와 공동소유의 조건으로 엘라스 베로나로 이적하였다. 베로나에서 보낸 두 시즌에서 질라르디노는 39경기 5골을 기록했다. 2001년 여름 베로나는 질라르디노에 대한 완전 소유권을 얻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파르마와 공동소유를 갖게 되었다.

한편 2001년 4월 28일 교통사고를 당하는 아찔한 일을 겪었다.

2.1.2. 파르마

2002-03 시즌에는 파르마로 이적하였다. 파르마가 베로나와의 공동소유권 나머지 50퍼센트를 모두 사들인 것. 이때 루마니아 공격수 아드리안 무투가 영입되어 팀을 떠난 마르코 디 바이오의 자리를 메웠고, 2002-03 시즌에는 아드리아누와 무투에 밀려 출장기회가 적었다. 파르마에서의 첫 시즌 질라르디노는 주로 벤치에 머무르며 24경기 4골을 기록했다.

2002-03 시즌 종료 후 아드리아누, 아드리안 무투의 이적으로, 출전 기회가 좀더 늘게 되었다. 2003-04 시즌에는 주전자리를 확보하고 유망주 딱지를 떼며 완전히 포텐을 터뜨렸다. 질라르디노는 리그에서 23골을 기록하며, 안드리 셰브첸코에 이어 득점 2위 (이탈리아 선수 중에서는 1위)라는 결과로 끝내면서 그 지명도가 단번에 높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3골 중 무려 17골이 후반에 기록한 득점이라 순도도 높았다.

2004-05 시즌에도 질라르디노는 똑같이 리그에서 23골을 기록하며, 득점 2위를 차지했다. 거기에 질라르디노 본인은 세리에 A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소속팀 파르마는 모기업의 파산으로 재정난에 시달리며 볼로냐와의 처절한 강등 타이브레이커 끝에 가까스로 세리에 A에 살아남았다. 볼로냐와의 강등 타이브레이커에서 1차전 홈에서 0-1로 패배한 파르마는 2차전 원정경기에서 2-0 승리하며 생존했는데 이때 질라르디노는 잔류를 확정짓는 득점에 성공했다. 한편 레체와의 최종전에서 3-3을 만드는 골로 파르마를 다이렉트 강등에서 타이브레이커로 끌고간 것도 질라르디노였다. 시즌 중에도 질라르디노의 활약은 놀라웠는데 유독 결승골이 많았고 34라운드 리보르노와의 경기에서는 크리스티아노 루카렐리와 4골을 주고받으면서 6-4 승리를 이끌기도 했다. 득점왕 경쟁은 AS 로마 빈첸초 몬텔라의 독주체제였는데 이 경기로 인해 순식간에 양상이 바뀌게 되었고 질라르디노는 최종전까지 이어진 득점왕 경쟁 끝에 루카렐리에게 1골차로 밀렸다.[2] 결국 질라르디노의 주가는 크게 올랐고 내로라하는 빅클럽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2.1.3. AC 밀란

파르마에서의 맹활약을 바탕으로 2005년 7월 17일, 2,500만 유로의 큰 이적료와 함께 AC 밀란으로 이적하였다.

이적 초기에는 선발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2005-06 시즌 세리에 A에서는 34경기 17골을 득점했다. 그러나 커리어 첫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 12경기 무득점에 그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2006년 11월 6일 안데를레흐트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커리어 첫 챔피언스리그 득점에 성공했다. 그러나 챔스 울렁증은 여전했는데 챔피언스리그에서 안데를레흐트전을 포함해 겨우 2골에 그쳤다. 그런데 그 나머지 골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준결승 2차전에서 나온 득점으로 밀란은 1차전 2-3 패배를 뒤집고 2차전에서 3-0 대승을 거두며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서 밀란은 리버풀을 2-1로 꺾고 2년 전의 굴욕을 설욕해 커리어 첫 빅이어를 획득했지만 질라르디노는 경기 막판 필리포 인자기의 교체선수로 나와 겨우 2분만 소화해 존재감은 없었다. 리그에서는 12골로 밀란에서 유일한 두 자릿수 득점자였다. 시즌 후 질라르디노는 챔스 우승에 이적을 고민했지만 코칭스태프와의 면담 끝에 잔류하기로 결정했다.

2007-08 시즌 질라르디노는 기나긴 침묵 끝에 2007년 10월 7일 라치오 원정에서 2골을 넣으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10월 24일 샤흐타르 도네츠크 원정에서 2골을 넣으며 챔스 울렁증을 떨쳐내는듯했다. 그러나 자신의 침체와 슈퍼유망주 알렉산드르 파투의 대두로 인해 인자기-파투에 이은 3옵션으로 점차 출전 기회가 줄어들게 되었고 이탈리아 대표팀과도 점점 멀어지게 된다. 2007-08 시즌 세리에 A에서의 성적은 30경기 7골, 전체 경기에서도 40경기 9골의 초라한 기록이었다. 질라르디노는 이후 밀란에서의 마지막 시기를 커리어 최악의 시기라고 회고했다.

2.1.4. ACF 피오렌티나

2008년 5월 28일에 출전 기회를 모색하기 위하여 파르마 시대의 은사 체사레 프란델리 감독이 지휘하는 ACF 피오렌티나로 이적을 결정하였다. 이적료는 1,500만 유로에 5년 계약이었다. 그리고 파르마 시절 동료 아드리안 무투, 세바스티앵 프레이, 마르코 도나델과 재회했다.

이적 후 첫 시즌이 된 2008-09 시즌에서는 리그 19골을 넣어 팀을 견인하고 UCL 출전권 획득에 크게 공헌하였다. 그리고 챔피언스리그에서도 6골을 넣어 유럽대항전 울렁증에서 벗어났다. 또한 이 활약과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으로 마르첼로 리피가 다시 취임 한 것도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이탈리아 대표에 복귀하였다.

2008년 10월 18일에 열린 세리에 A 7라운드 레지나 칼치오 전에 2골을 넣으며 세리에 A 통산 100골을 달성하였다.

2009-10 시즌 스포르팅 CP와의 UEFA 챔피언스리그 플레이오프 1차전 원정경기에서 경기 막판 2-2를 만드는 동점골을 넣어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그리고 본선에서는 데브레체니를 상대로 득점했고 안필드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서는 경기종료 직전 결승골을 득점하면서 조 1위를 확정지었다. 피오렌티나에서는 밀란에서의 챔피언스리그 울렁증은 온데간데 없는 모습이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피오렌티나 소속으로 10골을 득점하면서 클럽 레전드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어깨를 나란히했다. 질라르디노는 세리에 A에서 15골, 챔피언스리그에서는 4골을 득점했다. 그러나 피오렌티나는 무투의 약물파동 징계로 인해 순위가 급전직하했고 은사인 프란델리 감독도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떠났다.

2011년 2월 27일 AS 바리를 상대로 커리어 200번째 득점에 성공했다.[3] 그러나 이때부터 커리어는 내리막을 겪었고 2011-12 시즌 전반기 내내 단 2골만 득점하면서 겨울이적시장에서 제노아로 떠났다.

2.1.5. 제노아 CFC

2012년 1월 3일, 제노아 CFC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14경기에서 4골에 그쳤다. 팀도 마지막까지 잔류 싸움에 휘말리며 17위에 그쳤다. 2012년 8월 31일, 마르코 보리엘로의 영입에 따라 마르코 디 바이오의 후임으로 볼로냐에 임대 이적하였다. 볼로냐에서는 36경기 13골로 갱생에 성공했고 볼로냐의 중위권 성적을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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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4 시즌 제노아로 복귀하여 주전으로 꾸준히 출장해 24라운드 종료기준 12골로 루카 토니, 안토니오 카사노, 로드리고 팔라시오등과 함께 세리에의 30대 스트라이커 돌풍의 주역이 되었다.

2.1.6. 커리어 말기

2014년 7월 11일 광저우 헝다로 이적하였다. 이적료는 5m 유로, 계약 기간은 2년 6개월이며 연봉은 5m 유로이다. 2015년 1월 28일 ACF 피오렌티나로 6개월 임대되었다. 그리고 마리오 고메스를 밀어내버렸다. 4월 26일에는 칼리아리를 상대로 세리에 A 통산 175번째 득점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또 5월 18일에는 강등이 확정된 친정팀 파르마를 상대로 2골을 만들어내며 피오렌티나에서의 반 시즌 동안 14경기 4골을 기록했다. 그러나 피오렌티나와 완전이적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5년 8월 28일 US 팔레르모 이적이 확정되었다. 10월 4일 AS 로마를 상대로 팔레르모에서의 첫 득점에 성공했다. 2016년 1월 30일 카르피 전에서 세리에 A 통산 184호 득점으로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와 동률을 만들어내며 세리에 A 역대 11번째 최다득점자가 되었다. 또한 세리에 38개 팀을 상대로 득점 기록도 만들어냈다.[4] 5월 15일 엘라스 베로나와의 경기에서 득점해 3-2 승리를 이끌어내며 팔레르모의 잔류를 이끌었다. 세리에 통산 188번째 골로 주세페 시뇨리,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와 함께 공동 9위가 되었다. 팔레르모에서 질라르디노는 33경기 10골을 기록했다.

2016년 7월 7일 엠폴리 FC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2년간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6경기 1골에 그쳤고 세리에 A에서는 14경기 0골. 2017년 1월 9일 델피노 페스카라 1936 이적이 확정되었다. 단 3경기 출장에 그쳤고 시즌 후 방출되었다.

2017년 10월 3일 자유계약으로 세리에 B 스페치아 칼초 이적이 확정되었다. 커리어 첫 세리에 B에서 16경기 6골을 넣었고 시즌 후 팀을 떠났다.

그리고 2018년 9월 20일 은퇴를 발표했다.

2.2. 국가대표 경력

2004년의 UEFA U-21 챔피언십에서 다니엘레 데 로시 등과 함께 출전해 우승을 차지하며 대회 최우수 선수에 올랐다. 2004년 8월 30일에는 이탈리아 대표팀에 첫 발탁되어 9월 4일 의 노르웨이전에서 대표 데뷔를 장식하였다. 같은 해 10월 13일, 벨라루스 전에서 A매치 첫 골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 4골을 넣으며 이탈리아 U-23 대표팀의 동메달 획득에 기여하였다.

파일:질라르디노 바이올린.jpg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2차전에서 미국을 상대로 득점을 기록하였고, 4강전에서 독일을 상대로는 알레산드로 델 피에로의 쐐기골을 어시스트 하여,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에 공헌하였다.

로베르토 도나도니 체제에서 2007년 10월 17일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친선경기에서 교체아웃된 다니엘레 데 로시로부터 주장완장을 넘겨받으며 첫 국가대표 주장완장을 달았다. 그러나 이때는 커리어 최악의 2007-08 시즌을 보내 자신감이 매우 떨어진 상황이었고 결국 UEFA 유로 2008 최종엔트리 승선에 실패했다.

피오렌티나 이적 후 부활에 성공하면서 마르첼로 리피 2기 시절에는 다시금 대표팀의 주전 스트라이커가 되었다. 리피의 복귀전인 오스트리아와의 친선전에서 2골을 터뜨렸다. 2009년 여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 선발되었고 최약체 뉴질랜드와의 첫 경기 졸전 끝에 4-3으로 승리한 경기에서 2골을 넣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는 이후 2경기에서 무득점 패배하면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리고 이는 1년 후 대참사의 전주곡이었다.

2009년 10월 10일 월드컵 예선 아일랜드 원정에서 2골을 넣어 2-2 무승부를 이끌어내면서 디펜딩챔피언 이탈리아의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10월 14일에는 키프러스를 상대로 홈에서 0-2로 지고 있다가 경기 막판 국가대표 커리어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3-2 역전승을 거뒀다.[5]

2010년 6월에 남아공에서 열린 월드컵 본선에서 주전 스트라이커로 낙점받았지만 빈첸초 이아퀸타와 함께 대표팀 부진의 주범으로 꼽히며 비판받았고 이탈리아는 슬로바키아와의 최종전에서 2-3으로 패배하며 2무 1패 최하위로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마르첼로 리피는 결국 불명예 사퇴했고 은사인 체사레 프란델리가 감독이 되었다.

프란델리 체제에서 2010년 9월 7일 페로 제도와의 UEFA 유로 2012 예선에서 선제골을 넣어 5-0 대승을 이끌었다. 그러나 소속팀에서 부진에 빠지며 대표팀에서 멀어지는듯 했는데 볼로냐 임대 후 폼을 끌어올리면서 2012년 10월 7일 1년 여만에 대표팀에 부름받았다. 2013년 2월 6일 네덜란드와의 친선경기에서 교체투입되어 마르코 베라티의 동점골을 어시스트했다.

2013년 5월 31일 산 마리노와의 친선전에서 득점했고 2013년 브라질에서 열리는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엔트리에 승선했다. 6월 16일 조별리그 첫 경기 멕시코전에서 후반 마리오 발로텔리 대신 교체출전하였다. 발로텔리가 부상당하면서 주전 공격수로 나섰다.

2013년 9월 6일 발로텔리와 오스발도가 징계로 결장하면서 불가리아전에 선발출전했고 결승골을 득점해 1-0 승리를 이끌었다. 그러나 2014 FIFA 월드컵 최종엔트리에는 승선하지 못했고 이후로는 대표팀에 부름받지 못했다. 결국 대표팀 커리어는 57경기 19골로 마감했다.

성적도 꾸준하지만 그가 특히 국가대표팀에 잘 뽑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前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프란델리의 영향이다. 파르마 시절 그를 발굴하고 세리에 A 정상급 공격수로 조련하고 밀란 시절 카카의 따까리[6]를 해주다 기량이 하락하면서 이적한 피오렌티나에서 재회해 다시금 부활하게 해준 감독이라 그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그를 가장 아끼는 감독이기도 하기 때문.

3. 플레이 스타일

파일:external/giant.gfycat.com/WetEmbarrassedAngelwingmussel.gif
파일:external/45.media.tumblr.com/tumblr_n13cebtqbR1qaorn7o1_400.gif [7]

파르마 입단 후 대성하여 아드리아누 아드리안 무투가 떠난 파르마에서 홀로 팀의 득점을 다 책임지는 센세이셔널한 활약을 펼친 공격수. 개인능력에 의존하는 정통 스트라이커는 아닌 포스트 플레이, 연계에 굉장히 능한 지능적인 타겟맨이며, 제공권도 훌륭해서 미드필더진의 지원을 받으면 받을수록 엄청난 득점력을 뽐냈던 선수다. 이것이 여실히 드러나는게 2004-05 시즌 파르마의 세리에A 성적. 상대팀 신경 안 쓰고 대놓고 팍팍 지원했을뿐인데, 질라르디노가 리그 23골이나 넣은 덕분에 리그 17위로 간신히 잔류했었다.

누가 이탈리안 스트라이커 아니랄까봐 테크닉도 훌륭하고, 퍼스트 터치도 좋은 편. 과거의 클래식한 스트라이커들처럼 최소한의 터치로 슈팅을 때리는 능력과 간결한 연계 능력을 모두 갖췄었다. 간결하고도 정확한 퍼스트 터치로 아주 좋은 위치에 공을 떨어뜨려 놓던 선수였다. 거기에 슈팅에 있어서도 매우 뛰어난 선수였는데 위력적인 강슛, 정확한 발리슛, 아웃프론트 킥이나 아웃사이드 칩슛 등 화려한 슈팅부터, 골키퍼를 바로 앞에 둔 상황에서 크로스나 스루패스를 방향과 높낮이만 바꾸어 가볍게 툭 밀어넣는 슈팅 능력에 천부적인 슈팅 타이밍을 모두 가졌으며, 거기에 화려한 발리 슈팅과 우아한 터닝 슈팅 능력도 모두 갖춘 선수였다. 거기에 정확하면서도 강력한 헤더에 피지컬이 아주 튼튼하지는 않지만 지능적인 몸싸움으로 상대 수비와의 경합을 이겨낼 수 있는 능력이 있던 선수였다.

전성기 시절엔 특히 순간적인 침투와 슛 타이밍도 굉장히 빨라서 리버풀로 이적하기 전이었던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 페르난도 토레스와 비교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 때 까지만 하더라도 질라르디노가 상당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2007년부터 둘의 행보는 완전히 달라졌지만 골 결정력이 일품이며 헤더도 워낙 뛰어나 마이클 오언처럼 헤더 골을 굉장히 잘 넣는 편. 그래서 한국팬들 사이에선 황금대가리로 불렸었다(...). 특히 전성기의 슛 타이밍에 있어서는 반박자를 넘어서 한 박자 이상 빠른 슈팅도 자주 보여주었고, 애매한 위치와 각도에 있는 슈팅도 빠른 박자로 처리하는 능력이 일품이었다.

그러나 2006년 이후의 밀란에서의 생활 때처럼 최전방 공격중심인 자신이 아닌 주위의 다른선수카카로 팀의 전술과 지원이 집중됐을 경우 활약빈도가 극도로 적어지는버로우 경우가 많았다. 이를 두고 한때 국내 세리에 커뮤니티에선 질라르디노의 이런 딜레마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이야기와 토론이 오고 가기도 했다. 이 딜레마의 토론은 피오렌티나 시절에도 말이 나오기도 했다. 다만 그럼에도 피오렌티나 시절에는 질라르디노가 부진할 때에도 밀란 시절에 비해서 옹호하는 의견이 많은 편이었는데, 질라르디노가 영입된 뒤 피오렌티나는 주전에서 완전히 밀려 출전시간에 불만을 품게 된 파찌니 오스발도를 어쩔 수 없이 처분할 수 밖에 없었고, 문제는 밀란 시절에는 질라르디노가 부상 혹은 부진이나 체력 문제가 생기게 된다고 해도 필리포 인자기등 나이는 많지만 클래스는 여전했던 베테랑들이 충분히 질라르디노의 공백을 잊을 수 있는 활약을 해주는 등 백업 선수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반면 (심지어 밀란에서의 마지막 시즌에는 질라르디노가 부진한 틈을 타 당시 최고의 초신성이었던 알렉산드르 파투까지 좋은 활약으로 자신을 알리며 질라르디노는 잊혀지게 되었을 정도였다.) 피오렌티나에서는 그런걸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피오렌티나가 저 둘을 이적시킨 이후 질라르디노의 백업 공격수를 보강하기 위해 수년간 보나쫄리, 카스티요, 케이리손, 마우로 실바 등을 영입해보기도 하고(케이리손의 경우에는 그래도 당시에는 저들 중에서는 어린 선수였기에 그런지 영입한 공격수들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피차일반이었다.), 당시 피렌체 유스의 특급 유망주였던 쿠마 바바카르를 성인팀으로 승격시켜보기도 했지만 모두 질라르디노의 활약의 절반만도 못한 기대 이하의 모습만을 보이며 실패해버렸고(그나마 마우로 실바를 영입했던 시기에는 주전인 질라르디노도 부진한 시기였기는 했고 바바카르의 경우에는 저 시도 중에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기는 했다.), 백업 공격수들의 실패로 인해 밀란에서보다 더욱 부담이 커진 질라르디노마저 이후 부진을 거듭하며 제노아로 이적해버리고 만다. 이후에는 어떻게든 공격수를 매우기 위해 아마우리까지 영입해보는 시도까지 했으나 당시 피렌체의 기대주들이었던 스테판 요베티치 아뎀 랴이치가 소년가장급 모습을 보이고 친정팀으로 복귀한 루카 토니도 로테이션 멤버로서 활약하며 그나마 숨통은 트이게 된 상황이었다.

4. 지도자 경력

2019년 7월 11일 FC 프로 베르첼리 1892의 감독으로 부임하였다.

2020년 9월 8일 ACN 시에나 감독에 선임되었다. 2021년 1월 12일 계약을 상호 해지하며 팀을 떠났으나, 한 달 만에 복귀한다.

2021년 10월 24일, 경질 소식이 발표되었고 팀을 떠났다.

2022년 7월 1일, 제노아 프리마베라 감독으로 부임했다.

2022년 12월 6일, 제노아 CFC가 알렉산더 블레신 감독을 경질한 후 감독 대행으로 임명했다. # 이후 2023년 1월 4일, 정식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

정식 감독 전환 이후에도 호성적을 이어가 중위권에 처져 있던 제노아를 2위까지 끌어올렸으며, 2023년 5월 6일 아스콜리 칼초를 2-1로 꺾고 세리에 A 승격을 확정지었다. 2024년 5월 20일, 제노아와 재계약을 하였다.

3-4-1-2와 3-5-2 전술을 즐겨 활용하는 감독으로 낮은 블록을 쌓고 견고한 조직력과 역습으로 마무리하는 것을 선호하는 감독이다. 최근 이탈리아에 등장한 젊은 감독들이 지안 피에로 가스페리니 감독의 영향을 받았고 이반 유리치 라파엘레 팔라디노와 같이 이를 지향점으로 하는 감독들이 생겼지만, 질라르디노의 전술은 좀 더 고전적인 카테나치오에 가깝다.

질라르디노가 제노아 CFC를 최종 12승 13무 13패 승점 49점으로 11위로 안착시킨 것에도 이러한 전술에서 나오는 단단한 수비와 조직력, 순간적인 역습을 잘 활용한 것이 주요했다. 그 대신 축구가 정말 재미없다. 조직력과 선수비 후역습을 선호하며, 부분적인 역압박만 수행하는 탓에 경기가 지루하다는 평이 대다수다.

2024년 11월, 주포 마테오 레테기 알베르트 그뷔드뮌손의 이적을 제대로 매꾸지 못하면서 팀은 리그 17등이라는 최악의 성적에 빠졌고 결국 경질당했다.

5. 기록

5.1. 대회 기록

  • 이탈리아 U-23 축구 국가대표팀

5.2. 개인 수상

5.3. 수훈

  • 이탈리타 공화국 공로장 5등급: 2004
  • 이탈리아 공화국 공로장 4등급: 2006

6.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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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잘생긴 선수였다. 그러나 남자의 주적 탈모에 겪게되면서 폭삭 늙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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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골 세리머니로 유명하다. 좋은 연계 플레이와 특유의 세리머니로 그라운드의 음유시인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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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란에서 뛰던시절 말년의 활약상이 좋지 않은 관계로 키배의 대상이 되었는데[8] 이시기 이탈리아 축구 팬사이트 세리에매니아에서 질라르디노 관련 글만 올라오면 무조건 100플[9]을 보장해주었기 때문에 세리에매니아에서 질라르디노의 이름 자체가 떡밥왕의 의미로 통하기도 한다. 밀란을 떠난지도 한참이 지난 2014년에도 게시판이 불타오를 만한 관련주제가 올라오면 질라르디노 등판하나요? 라는 댓글들을 심심찮게 볼수있다.

아드리아누와 비슷한 시기에 주목을 받았지만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편.[10] 이 때문에 아드리아누에 비해 과소평가 받는 면이 강한데 득점력에서 만큼은 대부분의 시즌 동안 아드리아누는 질라르디노를 꺾은 적이 별로 없다. 그 망했다는 밀란 시절조차 아드리아누보다 득점 페이스만은 더 좋았다.[11]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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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25 시즌 제노아 CFC 스쿼드
번호 국적 포지션 한글 성명 로마자 성명 비고
1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GK 니콜라 레알리 Nicola Leali
2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MF 모르텐 토르스비 Morten Thorsby
3 파일:스페인 국기.svg DF 아론 마르틴 Aarón Martín
4 파일:벨기에 국기.svg MF 코니 더빈터르 Koni De Winter
8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MF 에밀 보히넨 Emil Bohinen
9 파일:포르투갈 국기.svg FW 비티냐 Vitinha
10 파일:브라질 국기.svg FW 주니오르 메시아스 Junior Messias
11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FW 가스톤 페레이로 Gastón Pereiro
1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DF 마티아 바니 Mattia Bani 부주장
14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DF 알레산드로 볼리아코 Alessandro Vogliacco
15 파일:잉글랜드 국기.svg DF 브룩 노튼커피 Brooke Norton-Cuffy
17 파일:우크라이나 국기.svg MF 루슬란 말리노우스키 Ruslan Malinovskyi
18 파일:가나 국기.svg FW 케일럽 에큐반 Caleb Ekuban
19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FW 안드레아 피나몬티 Andrea Pinamonti [1]
20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DF 스테파노 사벨리 Stefano Sabelli
21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FW 제프 에카토르 Jeff Ekhator
22 파일:멕시코 국기.svg DF 요한 바스케스 Johan Vásquez
23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MF 파비오 미레티 Fabio Miretti [2]
27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DF 알레산드로 마르칸달리 Alessandro Marcandalli
30 파일:나이지리아 국기.svg FW 데이비드 안케예 David Ankeye
32 파일:덴마크 국기.svg MF 모르텐 프렌드루프 Morten Frendrup
33 파일:우루과이 국기.svg DF 알란 마투로 Alan Matturo
39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GK 다니엘레 솜마리바 Daniele Sommariva
45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FW 마리오 발로텔리 Mario Balotelli
47 파일:크로아티아 국기.svg MF 밀란 바델 Milan Badelj 주장
53 파일:이스라엘 국기.svg MF 리오르 카사 Lior Kasa [3]
59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DF 알레산드로 자놀리 Alessandro Zanoli [4]
72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MF 필리포 멜레고니 Filippo Melegoni
95 파일:이탈리아 국기.svg GK 피에를루이지 골리니 Pierluigi Gollini [5]
99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GK 프란츠 슈톨츠 Franz Stolz
<colbgcolor=#9d002c> 구단 정보
회장: 알베르토 장그릴로 / 감독: 파트리크 비에라 / 구장: 스타디오 루이지 페라리스
출처: 영문 위키피디아 / 마지막 수정 일자: 2024년 10월 29일

[1] US 사수올로 칼초에서 임대 [2] 유벤투스 FC에서 임대 [3] 마카비 하이파 FC에서 임대 [4] SSC 나폴리에서 임대 [5] 아탈란타 BC에서 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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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부폰 · 2 자카르도 · 3 그로소 · 4 데 로시 · 5 칸나바로 ⓒ · 6 바르잘리 · 7 델 피에로 · 8 가투소 · 9 토니
10 토티 · 11 질라르디노 · 12 페루치 · 13 네스타 · 14 아멜리아 · 15 이아퀸타 · 16 카모라네시 · 17 바로네
18 인자기 · 19 잠브로타 · 20 페로타 · 21 피를로 · 22 오도 · 23 마테라치

[1] 24/25 시즌 도중 경질 [2] 공동 득점왕이 가능한 상황이었으나 루카렐리가 후반 39분에 24번째 골을 넣으면서 루카렐리의 단독 득점왕이 되었고 질라르디노는 1골차로 물을 먹었다. [3] 세리에 A 138골, 코파이탈리아 8골, 챔피언스리그 13골, UEFA컵 5골, 국가대표팀 17골, U21 팀 15골, 올림픽대표 4골 [4] 프란체스코 토티, 로베르토 바조와 동률이다. [5] 이때부터 이탈리아는 월드컵 대참사의 전주곡을 보이고 있었다. [6] 카카의 공간침투를 위한 미끼로 수비진을 자신에게 집중시켰다. 덕분에 2003-04 시즌 부터 이어진 시즌 두자릿수 골 기록이 2006-07 시즌을 마지막으로 끊기기도 하였다. [7] 11번이 질라르디노다. [8] ex: 질라르디노 못하네요→ 미들진 지원이 좋지않아 못하는거임 → 잘하는 선수들은 지원 없어도 잘하던데?→ 패스자체가 안오는데 어떻게 활약함?→ 못하니까 신뢰가 안가서 패스 안주는거 아님? → 그러니까 지원 못받아서 못함! 의 무한루프 [9] 어그로성 글도 아니고 말 그대로 질라르디노 부진에 관련한 순수 토론 글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토론이 끝나질 않았다. 단순 어그로성 글이면 무시하거나 운영진에서 처리해버리면 그만이지만 말 그대로 토론글들이기 때문에 어느 한 쪽의 의견을 무시할수 없었다. [10] 파르마 소속 동기였던 아드리아누가 2004년 인테르 이적 후 코파 이탈리아 2연패와 브라질 국대에서 2004 코파 아메레카 MVP + 득점왕, 2005 컨페더레이션스컵 MVP + 득점왕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써버린 탓에 본인의 뛰어난 기록에도 불구하고 소속팀의 차이와 우승컵의 유무로 상대적으로 너무 덜 주목받은 편. 참고로 질라르디노의 당시 개인 수상 기록만 봐도 2004 UEFA U-21 챔피언십 MVP + 득점왕, 2003-04 세리에 A 올해의 영플레이어, 2004-05 세리에 A 올해의 선수, 2004-05 세리에 A 올해의 이탈리아 선수 등 개인상을 휩쓸었다. [11] 파르마 소속으로 2003-04 시즌 26골, 2004-05 시즌 25골을 기록했으며 밀란에서도 첫 시즌인 2005-06 시즌에 19골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