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09:59:31

줘루현

{{{#!wiki style="margin:-12px -0px" <tablebordercolor=#ee1c25> }}}
{{{#!wiki style="color: #ffff00; 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word-break: keep-all;"
<rowcolor=#fff> 지급행정구
지급시 11
현급행정구
시할구 49, 현급시 21, 91, 자치현 6
스자좡시
성도
石家庄市
창안구
长安区
차오시구
桥西区
신화구
新华区
위화구
裕华区
징싱광구
井陉矿区
가오청구
藁城区
루취안구
鹿泉区
롼청구
栾城区
신지시[1]
辛集市
진저우시
晋州市
신러시
新乐市
징싱현
井陉县
정딩현
正定县
싱탕현
行唐县
링서우현
灵寿县
가오이현
高邑县
선쩌현
深泽县
잔황현
赞皇县
우지현
无极县
핑산현
平山县
위안스현
元氏县
자오현
赵县
탕산시
唐山市
루베이구
路北区
루난구
路南区
구예구
古冶区
카이핑구
开平区
펑난구
丰南区
펑룬구
丰润区
차오페이뎬구
曹妃甸区
쭌화시
遵化市
첸안시
迁安市
롼저우시
滦州市
롼난현
滦南县
라오팅현
乐亭县
첸시현
迁西县
위톈현
玉田县
친황다오시
秦皇岛市
하이강구
海港区
산하이관
山海关区
베이다이허구
北戴河区
푸닝구
抚宁区
창리현
昌黎县
루룽현
卢龙县
칭룽 만족 자치현
青龙满族自治县
한단시
邯郸市
충타이구
丛台区
한산구
邯山区
푸싱구
复兴区
펑펑광구
峰峰矿区
융녠구
永年区
페이샹구
肥乡区
우안시
武安市
린장현
临漳县
청안현
成安县
다밍현
大名县
서현
涉县
츠현
磁县
추현
邱县
지쩌현
鸡泽县
광핑현
广平县
관타오현
馆陶县
웨이현
魏县
취저우현
曲周县
싱타이시
邢台市
샹두구
襄都区
신두구
信都区
런쩌구
任泽区
난허구
南和区
난궁시
南宫市
사허시
沙河市
린청현
临城县
네이추현
内丘县
바이샹현
柏乡县
룽야오현
隆尧县
닝진현
宁晋县
쥐루현
巨鹿县
신허현
新河县
광쭝현
广宗县
핑샹현
平乡县
웨이현
威县
칭허현
清河县
린시현
临西县
바오딩시
保定市
징슈구
竞秀区
롄츠구
莲池区
만청구
满城区
칭위안구
清苑区
쉬수이구
徐水区
줘저우시
涿州市
딩저우시[1]
定州市
안궈시
安国市
가오베이뎬시
高碑店市
라이수이현
涞水县
푸핑현
阜平县
딩싱현
定兴县
탕현
唐县
가오양현
高阳县
룽청현[2]
容城县
라이위안현
涞源县
왕두현
望都县
안신현[2]
安新县
이현
易县
취양현
曲阳县
리현
蠡县
순핑현
顺平县
보예현
博野县
슝현[2]
雄县
장자커우시
张家口市
차오둥구
桥东区
차오시구
桥西区
쉬안화구
宣化区
샤화위안구
下花园区
완취안구
万全区
충리구
崇礼区
장베이현
张北县
캉바오현
康保县
구위안현
沽源县
상이현
尚义县
위현
蔚县
양위안현
阳原县
화이안현
怀安县
화이라이현
怀来县
줘루현
涿鹿县
츠청현
赤城县
청더시
承德市
솽차오구
双桥区
솽롼구
双滦区
잉서우잉쯔광구
鹰手营子矿区
핑취안시
平泉市
싱룽현
兴隆县
롼핑현
滦平县
룽화현
隆化县
청더현
承德县
펑닝 만족 자치현
丰宁满族自治县
콴청 만족 자치현
宽城满族自治县
웨이창 만족 몽골족 자치현
围场满族蒙古族自治县
창저우시
沧州市
윈허구
运河区
신화구
新华区
보터우시
泊头市
런추시[3]
任丘市
황화시
黄骅市
허젠시
河间市
창현
沧县
칭현
青县
둥광현
东光县
하이싱현
海兴县
옌산현
盐山县
쑤닝현
肃宁县
난피현
南皮县
우차오현
吴桥县
셴현
献县
멍춘 후이족 자치현
孟村回族自治县
랑팡시
廊坊市
광양구
广阳区
안츠구
安次区
바저우시
霸州市
싼허시
三河市
구안현
固安县
융칭현
永清县
샹허현
香河县
다청현
大城县
원안현
文安县
다창 후이족 자치현
大厂回族自治县
헝수이시
衡水市
타오청구
桃城区
지저우구
冀州区
선저우시
深州市
짜오창현
枣强县
우이현
武邑县
우창현
武强县
라오양현
饶阳县
안핑현
安平县
구청현
故城县
징현
景县
푸청현
阜城县
국가급 신구
슝안신구
雄安新区
단열관할구
화베이유전지구
华北油田地区
성직관현급시[1]
신지시 · 딩저우시
辛集市 · 定州市
[1] 성직관현급시는 지급행정구 수준의 자주권을 갖지만, 명목상 기존의 지급시 소속이다. 신지시 스자좡시 소속, 딩저우시 바오딩시 소속.
[2] 룽청현, 안신현, 슝현 및 주변 지역은 실질적으로 국가급 신구인 슝안신구의 관리를 받고 있다.
[3] 런추시 내부의 화베이유전지구는 허베이성의 지급행정구 대우를 받으며, 허베이성 인민정부와 중국 석유 천연가스 공사 양자의 관리를 받는다.
※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background-color: rgba(255, 0, 0, .2)"
색인: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padding: 3px; text-align: center"
}}}}}}}}}

1. 개요2. 역사
2.1. 고대2.2. 중세2.3. 근세2.4. 근현대

1. 개요

중국어 涿鹿
영어 Zhuolu

중국 북부 허베이성 장자커우시의 현. 인구는 약 30만명이다. 치우 삼황오제의 전설이 내려오는 탁록[1] 땅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중세 시기 봉성주, 근대 시기 보안주라 불리다가 1914년 다시 탁록 (줘루) 지명을 회복했다. 황제성 등 황제 헌원씨 관련 유적 뿐만 아니라 최근 포괄적 중화 사상이 강조되며 기존에 경시되던 치우까지 합사한 중화삼조당 등 관광단지 조성이 진행 중이다. 주요 산업으로 제조업과 포도, 아몬드 등이 특산물인 농업이 있다. 북방에 위치하여 여름에도 35도를 잘 안넘고, 겨울에는 영하 20도까지 떨어지는 서늘한 기후를 보인다.

2. 역사

사기에 따르면 원시 시대 말엽, 탁록 일대에는 곰을 숭상하는 부족이 살았다. 기원전 2700년경 중화문명의 시작을 알린 판천대전과 탁록대전에서 황제 헌원씨가 각각 염제 신농씨와 치우를 격파하고 화하족의 패권을 장악하였다. 따라서 탁록은 중국 신화상 중심지였고, 남서쪽 4km 지점 바오다이진은 5제 시기의 수도였다고 한다. 제요 시기 천하가 9주로 나뉘었을 때에 탁록은 기주에 속했고, 제순이 다시 12주로 나누었을 때에는 계주에 속했다 한다.[2] 하나라 시기 화하족은 대거 황하 유역으로 이주했고, 탁록 일대에는 얼마 안되는 제순의 후예들만이 남게 된다.

2.1. 고대

상나라 시기 탁록은 대 (代)국에 이어 영지 (令支)국에 속했고, 주나라 시기에는 연나라에 분봉되었다. 전국시대인 기원전 300년경 조나라가 정복했다가 연나라가 수복하여 기원전 283년 상곡군 (上谷郡)에 편성되었다. 진시황의 통일 후 기원전 221년에 시가지 일대에 하락현 (下落縣)이, 남동쪽에 탁록현 (涿鹿縣)이, 남서쪽에 판현 (潘縣)이 설치되어 모두 상곡군에 속하였다. 전한 시기에도 똑같이 이어지다 신나라 대에 상곡군이 삭조군 (朔調郡)으로 개칭되며 하락현이 하충현 (下忠縣), 탁록현이 포륙현 (抪陸縣), 판현이 수무현 (樹武縣)으로 개칭되었다. 다만 이러한 변화는 후한을 세운 광무제에 의해 취소되어 원상복구되었다. 서진 시기인 274년, 일대는 광녕군 (廣寗郡)으로 분리되었고 하락현이 그 치소가 되었다.

2.2. 중세

북위 시기인 525년, 하락현과 판현이 폐지되고 탁록현과 현 장자커우 시할구에 설치된 광녕현만이 광녕군을 구성했다. 북제 시기인 572년에는 영풍군 (永丰郡) 회룡현 (懷龍縣)에 편성되며 탁록 지명이 밀려났다. 수당교체기 시기에는 군벌 고개도가 차지했다가 624년 당나라령이 되었고, 북연주 (北燕州) 회룡현에 속했다. 634년 북연주는 규주 (妫州)가 되었다가, 698년 돌궐에 정복된 후로 한동안 기록에서 사라진다. 당 말엽인 822년, 일대는 얼마 전에 수복되었는지 신주 (新州)로 명명되었다. 936년, 신주는 연운16주의 일부로써 요나라에 넘겨졌고 938년 봉성주 (奉聖州)라 명명되었다. 금나라 시기인 1209년, 일대는 수도권인 대흥부 (大興府) 직할에 놓았다가 원나라 시기인 1266년에 봉성주로 환원되었다.

2.3. 근세

원 말엽인 1338년, 보안주 (保安州)가 설치되어 명나라 시기에도 유지되었다. 청나라 시기인 1693년, 보안주는 상당 부분이 인근 행정구역들로 이관되어 축소되었다.

2.4. 근현대

신해혁명 후 1913년, 보안주는 보안현 (保安县)으로 개편되었고 이듬해에는 (한자가 같은) 섬서성의 보안현과 구분하기 위해 옛 지명을 살려 탁록현으로 명명되었다. 1929년 탁록현은 다른 9개 현들과 직예-하북성에서 차하르성 (察哈尔省) 관할로 이전되었다. 1937년 8월,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일본군이 탁록현성을 폭격했고 이에 국민혁명군이 철수했다. 곧 일본군이 장악하여 탁록현공서를 설립했고, 일본의 괴뢰국인 몽강연합자치정부의 찰남행정 (察南政厅)에 속하였다. 찰남행정은 1943년 선화성 (宣化省)으로 개편되었다.

1940년을 전후로 팔로군 등 공산주의 계열 저항군이 농촌 지역에서 활동했고, 1945년 8월 일본군이 철수한 후에는 공산 계열의 줘루현민주정부 (涿鹿县民主政府)가 설립되었으나 이듬해 국민혁명군이 다가오자 남쪽 산지로 피신하였다. 다만 1948년 12월, 인민해방군과 함께 줘루현민주정부가 귀환했고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차하르성 차난전구행정공서 산하 줘루현인민정부로 개편되었다. 1952년 차하르성이 폐지되며 줘루현은 허베이성 장자커우 지구에 편성되었다. 1958년 줘루현은 화이라이현 (怀来县)에 편입되었다가 1961년 부활하였고 1993년 장자커우 지구는 지급시로 승격되었다.


[1] 아마 높은 / 평탄한 성이란 뜻이라 한다 [2] 다만 하나라를 건국한 우가 다시 9주로 편성하며 기주에 속하게 되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