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07:10:32

중앙아프리카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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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프리카 제국
Empire centrafricain | Central African Empire
파일:중앙아프리카 공화국 국기.svg 파일:중앙아프리카제국 국장.svg
국기 국장
Unité, Dignité, Travail
통일, 존엄, 노동
1976년 12월 4일 ~ 1979년 9월 20일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위치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수도 방기
정치체제 명목상 입헌군주제, 군사독재
사실상 전제군주제[1]
국가원수 황제( 보카사 1세)
언어 상고어, 프랑스어
종교 가톨릭, 이슬람교
통화 CFA 프랑/중앙아프리카

1. 개요2. 역사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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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중앙아프리카 제국 국기.png
황제기.

1976년 12월 4일에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이던 장 베델 보카사가 ' 보카사 1세'라는 이름으로 황제를 자칭하고 제국을 선포하면서 수립된 국가. 참고로 인류 역사상 가장 마지막으로 건국된 제국이다.

2. 역사

보카사 1세의 대관식 당시 실제 영상

제국 수립 1주년이던 1977년 12월 4일에 보카사 1세는 과거 중앙아프리카의 종주국이던 프랑스의 원조금까지 빼돌려가며 1년 국가 예산의 1/3, 국가 GDP의 18% 정도인 2200만 달러[2]를 들인 초호화 대관식을 열었다. 이에 대해 다른 나라에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3] 이후 프랑스는 중앙아프리카 제국과 보카사를 암묵적으로 지원하였다.

그러나 보카사 1세는 국민들을 위해 나름 선정을 펼쳤다고 볼 여지도 있는 대통령 집권기와 달리 국민들의 자유를 심각하게 탄압했고, 경제를 파탄내며 점점 국민의 신뢰를 크게 잃었으며, 폭정이 얼마나 심했는지 우간다 이디 아민 이상으로 잔혹한 식인 소문까지 나돌았을 정도였다.[4]

1978년 10월부터 보카사 1세는 본인이 직접 디자인한 황제의 모습이 그려진 교복을 학생들에게 국민들의 반년 봉급 이상으로 비싼 가격으로 강매했는데,[5] 이 조치에 항의하는 학생들과 국민들이 1979년 1월 18~20일/4월 17~19일에 방기에서 2차례에 걸친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열었다.[6]

이 두 시위에서 보카사는 황실 근위대 자이르에서 파견된 군대[7]를 시위 진압에 투입한 후 발포를 명령하며 폭압적인 진압을 자행하여 1차 시위에서는 50~150명의 민간인들을, 2차 시위에서는 100명의 학생들을 포함한 400명이 넘는 민간인들을 살해했다.[8] 심지어 이 참극들이 일어난 1979년 UN에서 세계 아동의 해라고 선포한 해이기도 했다.

이 피의 학살은 세계적으로 거센 비난을 받게 되었고, 이 광풍을 보다 못한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은 조사 위원회를 만들어 방기에 왔지만, 보카사는 자신에 대한 비난을 2년 전에 이혼 프랑스인 아내의 복수극이라고 일컫는 등의 궤변을 일삼았지만, 오히려 조사관들은 이 아동 학살을 고발하는 보고서 발표하게 되며, 보카사를 암묵적으로 지원하던 프랑스도 특사를 보내 보카사에게 선정을 베풀라고 다그쳤으나 보카사는 그 특사를 두들겨 패고 쫓아냈다.

이러한 사건들로 인해 프랑스는 제국에 대한 지원을 사실상 완전히 끊은 후 보카사의 전임 대통령이던 다비드 다코를 지지하는 세력과 쿠데타를 계획하였고, 1979년 9월 20일에 제1해병공수연대를 방기에 투입하는 '바라쿠다 작전'를 실시하여 제정을 무너뜨린 후 다코를 다시 대통령에 앉혔다.

보카사 1세가 쫓겨난 후 방기는 축제 분위기였다고 하며, 이후 보카사는 프랑스로 망명을 갔다가 1986년 고국에 돌아와 재판을 받게 되어[9] 1987년 사형 판결을 받게 되나, 1988년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후 1993년 사면되고 1996년 11월 2일에 방기에서 향년 75세로 사망한다.

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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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는 입헌군주제였던 독일 제국, 이탈리아 왕국도 가끔씩은 전제군주적인 일면을 보이기는 했으나 보카사 제국은 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뿐인 완전한 전제군주국이었다. [2] 2022년 가치로는 약 9천만 달러로, 원화로 환산하면 약 1200억 원이다. [3] 실제로 보카사의 대관식에 외국 국가원수 단 한 명도 오지 않았고, 영부인을 보낸 나라도 단 2개국( 모리셔스, 모리타니)밖에 없었다. [4] 다만 식인 소문만큼은 무근거로 확인되었다. [5] 당시 교복의 가격은 당시 가치로만 165달러였고, 2022년 기준으로는 약 680달러(약 92만 원)이다. 참고로 2022년 기준 중앙아프리카 공화국의 1인당 GDP가 527달러다. [6] 참고로 문제의 교복 규정은 1차 시위 종결 후에 폐지되었기 때문에, 2차 시위의 발생은 이후에도 반정부 학생들에 대한 탄압이 그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것에 가깝다. [7] 심지어 이들은 중앙아프리카 제국의 용병도 아니었고, 보카사가 모부투 세세 세코 자이르 대통령에게 군대 파견 요청을 해서 온 것이었다. [8] 심지어 2차 시위 당시에 보카사 1세 황제는 감옥에 가서 수감된 어린 학생들을 직접 때려 죽였다고 한다. [9] 여담으로 이 재판은 아프리카 역사상 최초로 열린 전직 독재자에 대한 재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