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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최선을 다해, 준비하여 싸워 이기는''' | ||||||
창설일 |
1948년
11월 20일(제18보병연대) 2020년 12월 1일(제18보병여단) |
|||||
상징명칭 | 진백골부대 | |||||
소속 | 대한민국 육군 | |||||
상급부대 | 제3보병사단 | |||||
규모 | 여단 | |||||
역할 | 휴전선 중부전선(철원군) 일대 경계작전 담당 | |||||
여단장 | 대령 성연춘 | |||||
위치 |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 |||||
[clearfix]
1. 개요
함께 최선을 다해 준비하여 싸워 이기는 명예로운 진백골여단
대한민국 육군
제5군단
제3보병사단 예하 제18보병여단. 별칭은 진백골부대.2. 상세
1948년 11월 20일 조선경비대 3여단[1]이 창설될 때 예하 18연대로 창설되었다. 18연대가 '백골'명칭을 사용한 것은 공산측의 핍박을 못이겨 월남 후 입대한 서북청년회 출신 병사들이 "죽어 백골이 되더라도 공산당과 싸우겠다, 백골이 되어서라도 고향 땅을 되찾겠다."라며 철모에 백골을 그려넣었고, 이내 18연대의 유행이 되어 급기야 연대 자체가 백골부대로 불리게 된 데에서 유래한다.[2] 연대기도 졸리 로저 방패와 리본, 월계관으로 바뀌었다.[3]창설 후 육군본부 직할 독립연대가 되어 옹진반도를 사수하다 1949년 8월 수도경비사령부 소속이었던 17연대와 위치[4]를 교대했다. 그 후 6.25가 발발했고, 의정부 전투에서 다른 부대들과 함께 축차투입되기도 했다.
이후 수도 서울이 함락당하고 수경사가 1, 8, 18연대 기반의 수도사단으로 재창설되는 우여곡절을 겪는 와중 수도사단 예하에서 진천 전투, 청주 전투 등을 치르며 남하해 안동·의성전투, 안강-기계 전투를 치른다.
그 후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돼 계속 북진, 원산 전투, 동부전선 최선봉으로 부령까지 진격하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0년 12월 15일 흥남에서 철수할 때 3사단 26연대와 배를 바꿔타고 말았다. 게다가 철수의 난잡함 속에서 원대복귀를 위해 서로 목적지를 바꿀 수도 없던 상태였고, 당시 3사단장이었던 최석 장군[5]이 18연대와 26연대를 맞교환 하는 것으로 육본에 건의하여 당시 사자부대라 불리던 3사단에 예속되어 맹활약을 하나... 현리 전투, 금성 전투[6]에서 전멸당하는 등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리고 전후 사단명칭을 보다 전투적으로 바꾸겠다는 사단장의 의지에 18연대 명칭이 사단에도 적용돼 사자 부대에서 백골 부대로, 18연대 역시 자신들이 원조 백골이라는 의미로 진백골로 바꾸었으며, 현재는 사단의 최전방 한축을 경계하고 있다.
국방개혁 2.0 기본계획에 의거, 상비사단과 지역방위사단이 개편되면서 18보병연대 역시 2020년부로 18보병여단으로 격상되었다.
3. 근무환경
4. 예하부대
4.1. 여단 직할대
4.2. 제1대대 진백골
- 본부중대
- 1중대
- 2중대
- 3중대
- 4중대(화기중대)
진백골 중에서도 원조를 자칭하는 의미로 진진백골로도 불린다. 사실 그럴만도 한 게 금성 전투 당시 여러 부대들이 쓸려나가 행방불명 되었고, 그 와중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백암산 자락에서 1대대만 겨우 수습됐기 때문.
여단본부를 제외하면 가장 시설이 좋은 부대이다.[7] 하지만 진백골 부대 중에서도 진백골이라는 자부심때문에 다른 대대에 비해서 훈련량이 매우 많다.
4.3. 제2대대 아리랑
- 본부중대
- 5중대
- 6중대
- 7중대
- 8중대(화기중대)
시설이 낙후되어 있기로 악명 높다.
4.4. 제3대대 백혼 (GOP대대)
- 본부중대
- 9중대
- 10중대
- 11중대
- 12중대(화기중대)
10중대 쪽으로 갈수록 평지에 가깝고 11중대 쪽으로 갈수록 산세가 험하다. 9중대 관할 섹터는 타 중대와 동떨어져 있는데, 산세, 경사로가 11중대의 그것과 비교조차 힘들 정도로 험하다. 9중대 쪽은 애초에 전술도로가 끊겨서 걸어가야 한다.
본부중대와 화기중대 본부는 함께 생활한다.
5. 출신인물
5.1. 여단장
볼드체는 대장 진급이 된 연대장 및 여단장. |
역대 제18보병여단장 | |||||
역대 | 이름 | 계급 | 임관 | 비고 | 기타 |
초대 | 최석 | 예) 중장 | 군영 1기 | 前 제3군단장 | |
2대 | 김종갑 | 예) 중장 | 군영 1기 | 前 제5보병사단 사단장 | 前 국방부차관 |
3대 | 임충식 | 예) 대장 | 육사 1기 | 前 합동참모의장 |
前
국방부장관 前 국회의원( 민주공화당) |
00대 | 박경원 | 예) 준장 | 육사 8기 | 前 제50보병사단 사단장 | 前 관선 강원도지사 |
00대 | 김영일 | 예) 소장 | 육사 특8기 | 前 십자성부대장 | 前 한국해외개발공사 사장, 前 광복회 회장 |
00대 | 김석재 | 예) 대장 | 육사 23기 | 前 제1야전군사령관 | |
00대 | 정대현 | 예) 준장 | 육사 35기 | 前 연대장 | |
00대 | 김현집 | 예) 대장 | 육사 36기 | 前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제3야전군사령관 | |
00대 | 송유진 | 예) 소장 | 육사 40기 |
前 |
|
00대 | 정철재 | 예) 중장 | 3사 23기 | 前 육군교육사령관 | |
00대 | 손봉석 | 대령 | 前 연대장 | ||
50대 | 김범식 | 대령 | 육사 47기 | 前 제3보병사단 참모장 | |
51대 | 조용근 | 준장 | 육사 49기 | 現 제2작전사령부 교육훈련처장 | |
52대 | 정광웅 | 소장 | 육사 50기 | 現 합참 작전본부 작전기획부장 | |
53대 | 김경훈 | 대령 | 육사 51기 | 前 제3보병사단 참모장 | |
54대 | 박상훈 | 대령 | 육사 52기 | 前 여단장 | |
55대 | 조희정 | 대령 | 학군 35기[9] | 前 여단장 | |
56대 | 정용균 | 대령 | 육사 00기 | 前 여단장 |
57대 | 성연춘 | 대령 | 육사 00기 | 現 여단장 |
5.2. 장교/부사관
5.3. 병
- 임영웅 - 18연대 1대대에서 복무했었다.
- 김석훈 - 18연대 1대대 본부중대에서 대대장 당번병으로 복무했었다.
- 신동수[10] - 18연대 1대대 3중대에서 복무했었다.
- 서영주 - 18여단 수색중대에서 복무중이다.
6. 기타
6.1. 부대영상
6.2. 여단가
죽어서야 백골이 살아도 백골
백골이 되련다 나라 위하여
쓰러지는 전우의 시체너머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뿐이다
통일의 그날이다 올 때는 왔다
백골용사 앞에는 적이 없도다
백골이 되련다 나라 위하여
쓰러지는 전우의 시체너머로
앞으로 앞으로 진격 뿐이다
통일의 그날이다 올 때는 왔다
백골용사 앞에는 적이 없도다
7. 사건 사고
진백골여단은 동상걸리기 쉬운 추위를 자랑한다. 21년 군번인 병사한명이 23년도 초 동상 걸리는 사고가 1대대에서 발생했다.8. 여담
- 수도사단 시절부터 공산당의 핍박을 못이겨 내려온 서북청년회 출신자들의 입김이 강한 부대다 보니 극도의 반공성향과 전투적 기질을 자랑했던지라 어떻게 보면 한국의 토텐코프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 2009년 3월 18일에는 일본인이 월북시도하려고 했다가 철책에서 초병한테 잡혔다고 한다. 이는 3. 18완전작전으로 불린다. 최초로 발견한 초병은 18연대 소속의 이등병과 병장이었는데 이들은 나중에 3야전군사령관으로부터 포상휴가 14박 15일을 각각 받았다고 한다. 덤으로 통역병과 상황병, 그 시각 5분대기조 인원들도 6박 7일씩은 받았고 대대장과 중대장, 소대장도 표창과 함께 4박5일 포상휴가를 받았다고.
[1]
3사단의 전신이다.
[2]
참고로
채명신 장군이 이끌었던 유격 부대인 백골병단은 또다른 월남자들이 같은 동기로 자칭한 것 외엔 공통점이 없다.
[3]
여단의 역사를 정리한 '진백골 부대 전사'에 따르면 창설 당시 부연대장(1대대장 겸직)이었던
한신 장군이 모병 과정에서 '백골'도안을 고안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졸리 로저'가 이승만 대통령의 사조직이 사용하여 '정예'라는 이미지가 있었다는 카더라
[4]
임무교대 및 소속.
[5]
초대 18연대장이었다.
[6]
이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백암산에서 병력을 수습했을 땐 1대대만 남았을 정도다.
[7]
진백골 여단중 시설이 그나마 나은편인거지 사실 18여단 자체가 시설이 부실하다
[8]
2014년 10월 여군 하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 후 보직해임 되었다.
[9]
청주대학교
[10]
맥아더 장군이 영등포 지역을 시찰 왔을 때 만났다고 하는 일화가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