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17:25:45

제프리 힌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obel_Prize.png
역대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cd9f51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25%; min-height:2em"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5px -1px -5px; word-break:normal"
{{{#555,#aaa
<rowcolor=#cd9f51> 1901 1902 1903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빌헬름 뢴트겐 헨드릭 로런츠 피터르 제이만 앙투안 베크렐
<rowcolor=#cd9f51> 1903 1904 1905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svg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피에르 퀴리 마리 퀴리 존 라일리 필리프 레나르트
<rowcolor=#cd9f51> 1906 1907 1908 1909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896-1908).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조지프 톰슨 앨버트 마이컬슨 가브리엘 리프만 굴리엘모 마르코니
<rowcolor=#cd9f51> 1909 1910 1911 1912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카를 브라운 요하너스 판데르발스 빌헬름 빈 닐스 달렌
<rowcolor=#cd9f51> 1913 1914 1915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헤이커 오너스 막스 폰 라우에 헨리 브래그 윌리엄 브래그
<rowcolor=#cd9f51> 1917 1918 1919 1920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독일 제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찰스 바클라 막스 플랑크 요하네스 슈타르크 샤를 기욤
<rowcolor=#cd9f51> 1921 1922 1923 1924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덴마크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로버트 밀리컨 만네 시그반
<rowcolor=#cd9f51> 1925 1926 1927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제임스 프랑크 구스타프 헤르츠 장 페랭 아서 콤프턴
<rowcolor=#cd9f51> 1927 1928 1929 1930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인도 제국 국기.svg
찰스 윌슨 오언 리처드슨 루이 드 브로이 찬드라세카라 라만
<rowcolor=#cd9f51> 1932 1933 1935
파일:독일 국기(3:2 비율).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폴 디랙 에르빈 슈뢰딩거 제임스 채드윅
<rowcolor=#cd9f51> 1936 1937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영국 국기.svg
빅터 헤스 칼 앤더슨 클린턴 데이비슨 조지 톰슨
<rowcolor=#cd9f51> 1938 1939 1943 1944
파일:이탈리아 왕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엔리코 페르미 어니스트 로런스 오토 슈테른 이지도어 라비
<rowcolor=#cd9f51> 1945 1946 1947 1948
파일:오스트리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볼프강 파울리 퍼시 브리지먼 에드워드 애플턴 패트릭 블래킷
<rowcolor=#cd9f51> 1949 1950 1951
파일:일본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아일랜드 국기.svg
유카와 히데키 세실 파월 존 콕크로프트 어니스트 월턴
<rowcolor=#cd9f51> 1952 1953 1954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펠릭스 블로흐 에드워드 퍼셀 프리츠 제르니케 막스 보른
<rowcolor=#cd9f51> 1954 1955 1956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발터 보테 윌리스 램 폴리카프 쿠시 윌리엄 쇼클리
<rowcolor=#cd9f51> 1956 1957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미국 국기(1912-1959).svg 파일:대만 국기.svg 파일:대만 국기.svg
존 바딘 월터 브래튼 리정다오 양전닝
<rowcolor=#cd9f51> 1958 1959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미국 국기(1959-1960).svg
파벨 체렌코프 일리야 프란크 이고르 탐 오언 체임벌린
<rowcolor=#cd9f51> 1959 1960 1961
파일:이탈리아 국기(1946-2003).svg.pn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에밀리오 지노 세그레 도널드 글레이저 로버트 호프스태터 루돌프 뫼스바우어
<rowcolor=#cd9f51> 1962 1963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헝가리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레프 란다우 유진 위그너 마리아 메이어 한스 옌젠
<rowcolor=#cd9f51> 1964 1965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미국 국기.svg
찰스 타운스 니콜라이 바소프 알렉산드르 프로호로프 리처드 파인만
<rowcolor=#cd9f51> 1965 1966 1967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일본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줄리언 슈윙거 도모나가 신이치로 알프레드 카스틀레르 한스 베테
<rowcolor=#cd9f51> 1968 1969 1970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1794-1815, 1830-1958).svg
루이스 앨버레즈 머리 겔만 한네스 알벤 루이 네엘
<rowcolor=#cd9f51> 1971 1972
파일:헝가리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데니스 가보르 존 바딘 리언 쿠퍼 존 슈리퍼
<rowcolor=#cd9f51> 1973 1974
파일:일본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노르웨이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영국 국기.svg
에사키 레오나 이바르 예베르 브라이언 조지프슨 마틴 라일
<rowcolor=#cd9f51> 1974 1975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덴마크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덴마크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앤서니 휴이시 오게 보어 벤 모텔손 제임스 레인워터
<rowcolor=#cd9f51> 1976 1977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대만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버턴 릭터 새뮤얼 팅 필립 앤더슨 존 밴블랙
<rowcolor=#cd9f51> 1977 1978
파일:영국 국기.svg 파일:소련 국기(1955-1980).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네빌 모트 표트르 카피차 아노 펜지어스 로버트 윌슨
<rowcolor=#cd9f51> 1979 1980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파키스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스티븐 와인버그 무함마드 살람 셸든 글래쇼 제임스 크로닌
<rowcolor=#cd9f51> 1980 1981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스웨덴 국기.svg
벨 피치 니콜라스 블룸베르헌 아서 숄로 카이 시그반
<rowcolor=#cd9f51> 1982 1983 1984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인도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이탈리아 국기(1946-2003).svg.png
케네스 윌슨 수브라마니안 찬드라세카르 윌리엄 A. 파울러 카를로 루비아
<rowcolor=#cd9f51> 1984 1985 1986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시몬 판 데르 메이르 클라우스 폰 클리칭 에른스트 루스카 게르트 비니히
<rowcolor=#cd9f51> 1986 1987 1988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스위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하인리히 로러 요하네스 베드노르츠 카를 뮐러 리언 레더먼
<rowcolor=#cd9f51> 1988 1989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멜빈 슈워츠 잭 스타인버거 한스 데멜트 볼프강 파울
<rowcolor=#cd9f51> 1990 1991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캐나다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프랑스 국기.svg
제롬 프리드먼 헨리 켄들 리처드 테일러 피에르질 드 젠
<rowcolor=#cd9f51> 1992 1993 1994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폴란드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캐나다 국기.svg
조르주 샤르파크 러셀 헐스 조지프 테일러 버트럼 브록하우스
<rowcolor=#cd9f51> 1994 1995 1996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클리퍼드 슐 프레더릭 라이네스 마틴 펄 데이비드 리
<rowcolor=#cd9f51> 1996 1997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더글러스 오셔로프 로버트 리처드슨 윌리엄 필립스 스티븐 추
<rowcolor=#cd9f51> 1997 1998
파일:프랑스 국기.svg 파일:대만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미국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클로드 코엔타누지 대니얼 추이 로버트 러플린 호르스트 슈퇴르머
<rowcolor=#cd9f51> 1999 2000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네덜란드 국기.svg 파일:러시아 국기.svg 파일:독일 국기.svg
헤라르뒤스 엇호프트 마르티뉘스 펠트만 조레스 알표로프 허버트 크뢰머
<rowcolor=#cd9f51> 2000
파일:미국 국기.svg
잭 킬비
}}}
}}}}}}}}}
[ 21세기 ]
##
||<rowbgcolor=#663334><rowcolor=#cd9f51><-3> 2001 || 2002 ||

}}}}}} ||

역대 튜링상 수상자 목록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1966년 1967년 1968년 1969년
앨런 펄리스 모리스 윌크스 리처드 해밍 마빈 민스키
1970년 1971년 1972년 1973년
제임스 H. 윌킨슨 존 매카시 에츠허르 다익스트라 찰스 바크만
1974년 1975년 1976년
도널드 커누스 앨런 뉴웰 허버트 사이먼 미하엘 라빈
1976년 1977년 1978년 1979년
데이나 스콧 존 배커스 로버트 W. 플로이드 케네스 아이버슨
1980년 1981년 1982년 1983년
토니 호어 에드거 F. 커드 스티븐 쿡 켄 톰프슨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데니스 리치 니클라우스 비르트 리처드 카프 존 홉크로프트
1986년 1987년 1988년 1989년
로버트 타잔 존 코크 이반 서덜랜드 윌리엄 카한
1990년 1991년 1992년 1993년
페르난도 J. 코바토 로빈 밀너 버틀러 램슨 유리스 하르트마니스
1993년 1994년 1995년
리처드 스턴스 에드워드 파이겐바움 라즈 래디 매뉴얼 블럼
1996년 1997년 1998년 1999년
아미르 프누엘리 더글러스 엥겔바트 짐 그레이 프레드 브룩스
2000년 2001년 2002년
앤드루 야오 올렌-요한 달 크리스텐 니가드 로널드 라이베스트
2002년 2003년 2004년
아디 샤미르 레오나르드 아델만 앨런 케이 빈트 서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로버트 칸 페테르 나우르 프란시스 E. 앨런 에드먼드 M. 클라크
2007년 2008년 2009년
앨런 에머슨 조세프 시파키스 바바라 리스코프 찰스 P. 태커
2010년 2011년 2012년
레슬리 밸리언트 유디 펄 샤피 골드바서 실비오 미칼리
2013년 2014년 2015년
레슬리 램포트 마이클 스톤브레이커 휫필드 디피 마틴 헬만
2016년 2017년 2018년
팀 버너스리 존 헤네시 데이비드 패터슨 제프리 힌튼
2018년 2019년
요슈아 벤지오 얀 르쿤 에드윈 캐트멀 팻 한라한
2020년 2021년 2022년
앨프리드 에이호 제프리 울먼 잭 동가라 로버트 메칼프 }}}}}}}}}
<colbgcolor=#262633><colcolor=#fff> 제프리 힌튼
Geoffrey Everest Hinton
파일:70803910-E5AA-4FBF-8497-7E4E29276C98.jpg
출생 1947년 12월 6일 ([age(1947-12-06)]세)

[[영국|]][[틀:국기|]][[틀:국기|]] 런던 윔블던
국적
[[영국|]][[틀:국기|]][[틀:국기|]] |
[[캐나다|]][[틀:국기|]][[틀:국기|]]
직업 컴퓨터 과학자, 교수
현직 토론토 대학교 ( 컴퓨터과학과 / 명예교수)
벡터 연구소 (최고과학자문)
학력 케임브리지 대학교 킹스 컬리지
(실험심리학 / 1970년 학사)
에든버러 대학교
(인공지능 / 1978년 박사)
지도교수 크리스토퍼 롱게히긴스[1]
자녀 2명
외부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1. 개요2. 일생3. 평가 및 수상4. 여담

[clearfix]

1. 개요

영국 컴퓨터과학자이자 인지과학자, 인지심리학자다.

2. 일생

런던 윔블던에서 출생했으며 힌튼의 부친은 강단에서 곤충학을 가르치는 학자였다. 브리스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 입학해 물리학을 전공했으나 수학을 못했기 때문에 낙제하고 전과했다. 이후 자연과학 철학 등 여러 학위를 두고 고민하던 끝에 1970년 실험심리학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인지과학에 흥미를 가지며 당시 별다른 진입 장벽이 없었던 인공지능 분야에 발을 들였다. 훗날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며 회고하길 자신은 물리학자가 아니며 ai연구자인 자신이 받는게 맏냐는 질문엔 컴퓨터과학상이 제일 적합하고 컴퓨터과학상이 없기에 대신 받은 것으로 여기지만 인공신경망의 초기 발전에는 물리학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물론 발전된 최신 ai 모델들은 물리학과 연계가 적다고 밝히기도 했지만.. 1972년부터 해당 분야 선구자인 크리스토퍼 롱게히긴스의 지도 하에 관련 연구를 진행하였고 인공 신경망을 연구하며 1975년 박사 과정을 마쳤다.[2]

졸업 후 1976년부터 서식스 대학교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합류했으며 1978년에는 UCSD에 방문학자로 근무했다. 1980년부터 1982년까지 MRC의 응용 심리학 부서에서 몸을 담았다가 1982년에는 잠시 UCSF의 방문 조교수로 활동했다.

이후 1982년 카네기 멜런 대학교에 합류하여 본격적인 강단 활동에 돌입하고 정착했다.

1985년 홉필드 네트워크[3]에 신경망 알고리즘을 결합하여 자가 패턴 창조를 통해 대규모 병렬 연산을 가능케 하는 볼츠만 머신을 제안했다. #

1986년 다층 퍼셉트론과 (오차)역전파 알고리즘을 증명하면서 XOR 적용 문제를 해결하였다. #

그러나 당시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의 미군은 니카라과의 항만에 지뢰를 심고 있었고, 카네기 멜런은 힌튼 입장에서 비인간적 단체로 간주되는 국방부로부터 연구 지원금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1987년 전혀 연고도 없는 캐나다로 건너가 토론토 대학교로 합류한다.

1998년~2001년 개츠비자선재단에 합류하여 잠시 계산신경과학 부서의 책임자로 활동하다 토론토 대학교에 복귀했다.

2006년 “A Fast Learning Algorithm for Deep Belief Nets”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심층신뢰 신경망이라는 알고리즘으로 비지도학습의 가능성을 선보였으며, 이로 인하여 기울기 소실 문제를 해결하고 2차 인공지능 겨울을 끝낸다.

2012년 1세대 MOOC 플랫폼인 코세라에서 인공신경망에 관한 무료 강의를 진행했다.

2012년 이미지넷이 주최한 ILSVRC 이미지 분류 대회에서 힌튼의 학생팀이 압도적인 성과를 거두며 앞선 본인의 이론들의 효용성을 증명했다.[4] 이 대회 이후로 컴퓨터 비전 분야에서는 기존 SIFT 방법론에서 탈피하여 힌튼의 방법론이 주류가 된다. 뿐만 아니라 딥러닝이 상위 개념인 인공신경망의 개념을 대체하며 인공지능이라는 말과 거의 동일시되기 시작하고 그래픽 처리 작업에만 쓰이던 GPU 딥러닝 학습용으로 확장시키며 병렬연산이 딥러닝 분야의 대세가 된다.

이러한 성과를 기반으로 2013년 컴퓨터 비전 스타트업인 DNN 리서치를 설립하고 몇 달 뒤에 기업을 구글에 4,400만 달러로 매각했다. 이후 구글리서치 산하의 구글브레인 팀에서 연구원으로 활동하게 되면서 토론토 대학교에서는 명예교수로 물러난다.

2016년 10월 구글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2017년 1월 벡터 연구소라는 비영리 인공지능 재단을 공동설립하고 최고과학자문으로 합류했다.

2023년 5월 구글브레인과 딥마인드가 합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글을 퇴사하였다. 이후 국제적 범위의 AI 규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Future of Life 재단의 인공지능 개발 일시 중단 성명서에 서명했다. 그 외에도 OpenAI의 성공 이후로 구글이 안정성은 안중에 없고, 본인들의 비즈니스 확장에만 집중한다고 비판하며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5][6]

3. 평가 및 수상

2018년 딥러닝 분야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 대학교 컴퓨터과학과 교수, 메타의 AI 과학자 얀 르쿤과 함께 컴퓨터과학 분야의 노벨상 튜링상을 수상하였다.[7]

2024년 10월 8일에 인공신경망을 통한 기계학습 연구에 대한 공로를 인정받아 존 홉필드 교수와 함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로 발표되었다.[8] 물리학 자체의 연구가 아니라 인공지능에 관한 연구로 컴퓨터과학자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첫 사례로 상당한 파격성을 띈다.[9] 따라서 제프리 힌튼은 튜링상 노벨물리학상을 모두 수상한 첫 번째 인물이 되었으며 이분야 최고 권위자임을 다시한번 증명했다.

ChatGPT를 시작으로 각종 언어 모델 생성형 인공지능 광풍이 불게 된 사회현상을 반영하여 이들의 원로격 모델을 만들어낸 홉필드와 힌튼에게 수상의 영예가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홉필드 네트워크와 볼츠만 머신이 통계물리학적 접근법 사용된 것을 제외하면, 인공신경망 자체는 동물의 신경세포의 움직임을 모델링한 것이라 생물학과 관련이 더 깊으며, 대부분 수학 컴퓨터과학의 연구성과에 해당한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제프리 힌튼은 홉필드의 연구는 물리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고, 테리 세노프스키와 함께 했던 초기 볼츠만 머신 연구는 통계 물리학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최근의 연구는 물리학과의 관련성이 적었기 때문에, 본인이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고 말했다. 인터뷰

4. 여담

  • 대대로 학자 집안 출신인데 아버지 하워드 힌튼(1912-1977)은 위에서 언급한데로 딱정벌레를 연구한 곤충학자였고, 할아버지 조지 힌튼(1882-1943)은 광산 엔지니어이자 식물학자였다. 증조할아버지 찰스 힌튼(1853-1907)은 차원, 특히 4차원를 연구한 수학자였는데 정팔포체 테서렉트라는 이름을 붙인게 찰스였다. 무엇보다도 그의 아내, 그러니까 힌튼의 증조할머니 메리 앨런 부울(1856-1908)이 바로 현대 수리논리학의 창시자 중 한명인 조지 부울의 장녀였다. 즉 힌튼의 고조 외할아버지가 바로 조지 부울이다.
  • 가정사적으로 아픔이 있는 사람이다. 두번째와 세번째 부인 모두 암으로 타계했다고 한다. 이중 두번째 부인은 난소암이었다고 한다.
  • 인공지능 대부라는 별명이 있다. 여러 차례 인공지능의 겨울을 끝내고 학계에 새로운 연구 방향성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구글 스칼라에서 논문 피인용수를 따져볼때, 컴퓨터과학 관련 분야에서 논문 피인용수 1위인 86만회를 자랑한다. [10]
  • 노벨상 수상직후 한국의 주요 언론사에서는 인공지능, 딥러닝을 개발한것을 후회한다는 말을 남긴것으로 보도하였는데, 이것은 날조된 사실로 힌튼은 그런말을 한적이 전혀 없다. AI개발에 있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고 발언한것이 와전된것으로 보인다. 2023년 MIT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직접 그 사실을 부정하였다. #
  • AI개발 신중론자인 개인적 신념과는 별개로, 딥마인드의 통합 CEO인 데미스 허사비스가 인공지능의 특이점에 도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발언한 것과 비슷하게 #, 2024년의 힌튼은 현재의 AI 가속발전을 멈출수 없는 것을 인정면서, 빅테크 AI개발 책임자들이 이에 대해 조심하지 않고 초지능으로 인해 재앙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언급하며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초지능 개발까지 4년 내외가 남았다고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23:36부터 시작

[1] Hugh Christopher Longuet-Higgins [2] 박사 졸업 논문 : Relaxation and its role in vision [3] 원자가 작은 자석처럼 행동하는 스핀 개념을 활용한 패턴 저장 및 복원 네트워크다. 가장 안정적인 에너지 상태의 패턴을 저장해두고 네트워크에 불완전하거나 왜곡된 패턴이 입력되면 저장된 패턴 중 가장 비슷한 것이 복원되는 방식이다. [4] 해당 논문은 구글 스콜라 인용수가 무려 16만회에 달한다. 논문의 메인저자는 알렉스 크리제브스키이고 공동저자이자 힌튼의 팀원으로 대회에 참여한 인물이 바로 OpenAI 수석과학자 출신인 일리야 수츠케버다. # [5] 후속 인터뷰나 기사 등을 참고하면 제프리 힌튼은 현대 AI의 기본을 만든 대부로써 AI의 위험성에 대해 충분하게 인식하고 있었기에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AI 기술이 인류를 위협하지 않도록 개발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OpenAI를 포함한 많은 AI개발 기업들이 안전성은 뒤로 하고 브레이크 없는 기차마냥 AI개발을 가속하는 모습을 보였기에, 이를 비판하며 상술한 과정에서 경영진과의 의견 충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2024년 10월 노벨상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본인의 제자 샘 올트먼을 해고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 그의 해고 사태는 안정성과 상업성 사이에서 줄다리기로 인해 이해관계가 충돌하며 발생했다. [6] 힌튼의 동료의 제자이면서 힌튼과 함께 구글 인공지능을 연구한 딥마인드의 통합 CEO인 데미스 허사비스가 인공지능의 특이점에 도달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발언한 것과 비슷하게, 2024년의 힌튼은 현재의 AI 가속발전을 멈출수 없는 것을 인정하고,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인류에게 엄청난 충격을 줄 AI 개발까지 4년 내외가 남았다고 인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 [7] Deep Learning(2015) [8] 홉필드는 상술된 홉필드 네트워크의 창안자이며 힌튼이 이를 볼츠만 머신 형태로 진화시켜 사실상 현재 상용화되고 있는 인공지능 모델 대부분의 조상 격이 되는 고전적 모형을 제시했다. 즉 홉필드가 뉴런에서 영감을 얻어 통계물리학적으로 인공신경망의 토대를 닦았다고 볼 수 있으며, 이후 힌튼이 현대적 모델 구조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9] 마찬가지로 같은 해 노벨화학상에 인공지능 관련 연구인 알파폴드2를 비롯한 3차원 단백질 구조 예측에 대한 공로로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와 존 점퍼가 수상했는데, 알파폴드도 결국 제프리 힌튼의 고전적인 볼츠만 머신의 인공신경망 방법론을 활동하여 패턴을 분석한 결과물이기에 여러모로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10] 그 뒤를 요슈아 벤지오가 근소하게 뒤쫓고 있으며 그 뒤를 힌튼의 수제자인 일리야 수츠케버가 55만회로 3위를 유지하고 있다. 괜히 대부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