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 공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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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FFFF><colcolor=#000000> 브르타뉴 공작 장 2세 드 브르타뉴 Jean II de Bretagn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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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장(Jean) | |
출생 |
1239년
1월 4일 브르타뉴 공국 낭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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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305년
11월 18일 프랑스 왕국 리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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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위 | 브르타뉴 공작 | |
1286년 ~ 1305년 | ||
아버지 | 브르타뉴 공작 장 1세 | |
어머니 | 나바라의 블랑카 | |
형제 | 피에르, 알릭스, 티보, 티보, 엘레오노르, 니콜라, 로베르 | |
배우자 | 잉글랜드의 베아트리스 | |
자녀 | 아르튀르 2세, 장, 마리, 피에르, 블랑슈, 엘레오노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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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르타뉴 공국의 공작.2. 생애
1239년 1월 4일 브르타뉴 공국의 중심지인 낭트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브르타뉴 공작 장 1세이고, 어머니는 상파뉴 백작이자 나바라 왕국의 국왕 티발트 1세의 딸인 나바라의 블랑카였다. 형제로 피에르[1], 알릭스[2], 티보[3], 티보[4], 엘레오노르[5], 니콜라[6], 로베르[7]가 있었다.1268년 리치먼드 백작위와 영지를 아버지 장 1세로부터 물려받았고, 프랑스 국왕 루이 9세가 튀니지 십자군을 단행할 때 아버지와 함께 가담했다. 1268년 8월 25일에 루이 9세가 튀니지에서 병사하자, 장 1세는 브르타뉴로 돌아갔다. 하지만 그는 잉글랜드의 에드워드 왕자와 함께 시리아로 가서 1273년 상반기까지 유럽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1285년 프랑스 국왕 필리프 3세가 시칠리아의 만종 사건 후 발발한 아라곤 십자군을 이끌었을 때 브르타뉴 기사단을 이끌고 가담했다. 1286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브르타뉴 공작이 되었다.
장 2세는 여러 자녀를 잉글랜드 국왕에게 맡겼는데, 그 중 장은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의 지시에 따라 기옌 보안관을 맡았고, 1294년 발루아 백작 샤를이 기엔을 몰수한다는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의 선언을 집행하기 위해 기옌으로 쳐들어갔을 때 방어했다. 아버지 장 2세는 1294년 8월 잉글랜드 국왕의 호출을 받고 플로에르멜에서 합세했다. 그러나 아들 장이 기옌에서 프랑스군에게 잇따라 패배했고, 잉글랜드군이 보급품을 확보하기 위해 브르타뉴 영지에 있는 생마티외 드 피네테르 수도원을 약탈하자 1296년 잉글랜드를 더 이상 따르지 않기로 했다. 이에 분노한 에드워드 1세는 리치먼드 백작위와 영지를 박탈했다.
1297년 9월, 장 2세는 프랑스 국왕 필리프 4세와 협의한 끝에 손자인 장 공자와 발루아 백작 샤를의 딸인 이자벨과 결혼을 성사했다. 이후 1297년부터 1304년까지 발발한 프랑스 왕국과 플란데런 백국간의 전쟁에서 프랑스 국왕 편을 섰다. 1302년 프랑스군이 쿠르트레 전투에서 플란데런 반군에게 참패했을 때 참여하지 않았지만, 1304년 8월 18일 프랑스군이 몽앙페벨르 전투에서 플란데런 반란군을 결정적으로 격퇴했을 때 참여했다. 1304년 5월 1일, 에드워드 1세는 프랑스 왕국과 화해한 뒤 그에게 리치먼드 백작위를 돌려줬다.
1305년 11월 6일, 장 2세는 리옹의 생 유스트 성당에서 열린 교황 클레멘스 5세의 교황 대관식에 참여했다. 교황이 대관식을 마치고 성당을 나갈 때, 그가 교황이 탄 노새의 굴레를 잡았다. 그런데 관중들이 모여 있던 벽이 돌연 무너지면서 교황 쪽을 덮쳤다. 교황은 가까스로 피할 수 있었지만, 그는 벽에 깔려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일단 벽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11월 18일에 리옹에서 사망했다. 그의 유해는 납관에 담긴 뒤 루아르 강을 통해 브르타뉴로 운송되었고, 12월 16일 플로에르멜의 카르멜회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사후 장남 아르튀르 2세가 브르타뉴 공작이 되었다.
3. 가족
- 잉글랜드의 베아트리스(1242 ~ 1275):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의 딸.
- 아르튀르 2세(1262 ~ 1312): 브르타뉴 공작.
- 장(1266 ~ 1334): 리치먼드 백작(1306 ~ 1334). 기옌 보안관으로서 프랑스군에 맞섰으며, 에드워드 2세가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1세와 전쟁을 치렀을 때 에드워드 2세 편에서 참여했다. 그러나 1322년 10월 14일 올드 바이랜드 전투에서 생포되었고, 1324년까지 옥고를 치르다가 몸값을 지불하고 풀려았다.
- 마리(1268 ~ 1339): 생폴 백작 기 4세 드 샤티옹의 부인.
- 피에르(1269 ~ 1314): 1294년까지 레옹 자작을 맡았지만, 말을 지나치게 많이 구입하다가 너무 많은 빚을 져서 레옹 자작령 형 아르튀르 2세에게 팔았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플란데런 전쟁에 참여했다.
- 블랑슈(1270 ~ 1327): 아르투아 백작 로베르 2세 다르투아의 아들인 필리프 다르투아의 부인, 아르투아 백작령을 놓고 고모 마호트와 대립했고,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에게 추방된 뒤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의 편을 들어서 백년전쟁에 참여한 로베르 3세 다르투아의 어머니.
- 엘레오노르(1275 ~ 1342): 퐁트브로의 제16대 수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