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1 21:20:54

이병규(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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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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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KBO 퓨처스 북부리그 타격왕

LG 트윈스 등번호 0번
오태근
(2005)
<colcolor=#fff> 이병규
(2006~2008)
백창수
(2009~2010)
LG 트윈스 등번호 24번
최승환
(2003~2008. 6. 2.)
이병규
(2009~2011)
정의윤
(2012~2015. 7. 23.)
LG 트윈스 등번호 7번
오지환
(2010~2011)
이병규
(2012~2017)
정주현
(2018~2023)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16번
임종혁
(2017)
<colbgcolor=#dc0232> 이병규
(2018~2020)
김진욱
(202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번
신본기
(2017. 5. 5.~2020)
이병규
(2021)
최민재
(202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8번
정호진
(2020~2021)
이병규
(2022)
배영수
(2023)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3번
민성우
(2022)
이병규
(2023~)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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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41e42><colcolor=#fff> 롯데 자이언츠 No.83
이병규
李柄奎|Lee Byung-kyu
출생 1983년 10월 9일 ([age(1983-10-09)]세)
대구직할시 동구
(現 대구광역시 동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구율하초 - 경상중 - 경북고 - 한양대[1]
신체 178cm|98kg
포지션 좌익수, 우익수, 1루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2006년 신고선수 ( LG)
소속팀 LG 트윈스 (2006~2017)
롯데 자이언츠 (2018~2021)
지도자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21~2022)[2]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보조코치 (2022)[3]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 (2023)[4]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코치 (2023~)[5]
병역 전시근로역[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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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플레이 스타일
4.1. 타격4.2. 수비4.3. 주루
5. 여담
5.1. 별명
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자 現 롯데 자이언츠 2군 타격 코치.

1974년생 이병규(이하 라뱅)와는 다른 인물이며, 2006년부터 2008년까지 등번호를 0번으로 달고 있었지만 2009년부터는 24번으로 변경했다. 2012년 부터 7번을 사용했다. 이쪽은 삼성 라이온즈의 연고지인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난 신고선수 출신이다. 사람 헷갈리기 딱 좋게 좌투좌타[7] 외야수다. 거기에 응원가마저 라뱅의 그것을 재탕했다는 썰이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이후 이진영 FA로 LG에 입단하면서 이 응원가를 사용했다가 라뱅이 2010년에 LG로 컴백하면서 응원가가 원 주인에게 되돌아갔다.

은근히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유리몸만 아니었다면 풀타임 뛰던 전성기 때는 꽤 좋은 활약을 선보였으며, 신고선수 출신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성공한 선수라고 볼 수 있겠다. 대부분의 신고선수 출신이 얼마 못 가 사라지는 걸 봤을 때, 1군에서 팀의 간판타자로도, A급 백업으로도 있던 선수에 억대 연봉도 여러 번 진입했으므로 성공한 게 맞다. 사실 지명을 받은 선수였다고 쳐도, 금방 사라지는 선수들이 수두룩 빽빽한 걸 보면, 여러 번 억대 연봉을 받았던 이병규는 성공한 선수이다.

2. 선수 경력

통합 선수 경력: 이병규(1983)/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06~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3. 지도자 경력

3.1. 롯데 자이언츠

2021년 7월 22일 은퇴 발표 후 곧바로 2군 타격코치에 임명되면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군 타격성적이 초반이지만 매우 좋다. 선수들 사이에서의 평가도 좋은 데다 신인타자들도 좋은 타격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보니 작뱅매직으로 불리며 팬들의 평가는 매우 좋은 편. 배드볼 히터로 악명높던 라뱅과 달리 눈야구를 하는 선수였다 보니 코치로도 걱정거리가 없다는 평. 거기다 잦은 부상 경력으로 재활 관련해서도 선수들에게 가르쳐 줄 게 많을 것으로 보여 팬들의 신뢰도가 높다.

특히 기존 1군 타격코치인 라이언 롱의 평가가 나쁘다 보니 팬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라이언 롱 대신 이병규를 1군 타격코치로 콜업하자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6월 24일 코칭스태프 개편에 따라 1군 타격보조코치로 보직을 변경했다. 메인 타격코치인 라이언 롱 코치를 보조해 함께 타격 지도를 맡는다고 한다.

2023년 시즌부터는 1군 메인 타격코치를 맡게 되었다.

하지만 시즌 개막 후 팀 타선이 침묵해버리면서 평가는 매우 좋지 못하다. 박흥식 수석 코치와 함께 좌상바 타선을 만들어낸 1등공신이라 불리고 있다. 육성이나 타격폼 수정을 중요시하는 2군 코치로서는 최적이라는 평가지만 실전 중심인 1군 코치로서는 글쎄라는 평가가 대다수. 결국 5월 23일 롱 코치가 다시 콜업되기에 이르렀으며, 7월 19일에는 다시 2군 타격코치로 내려갔다.

2024년부터는 다시 2군 타격코치를 맡고 있는데, 시즌 초반 부진에 빠진 고승민 나승엽이 2군에 한 번씩 다녀온 뒤 성적이 반등하면서 평가가 다시 나아졌다.

4. 플레이 스타일

4.1. 타격

엄청난 출루율이 최대 강점이다. .278인 통산 타율에 비해 통산 출루율은 .394에 달하며 타출갭은 무려 0.116이다. 코너 외야수임을 고려할 때 장타력 면에서는 다소 처지나, 처지는 장타력을 뛰어난 출루능력으로 메꾸는 특이한 유형의 OPS 히터이다.

타격 성향은 동명이인의 라뱅과 정반대로 매우 신중하다. 대표적인 배드볼 히터인 1974년생 이병규와 달리, 당시에 쳐서 나가려는 성향의 타자들이 많은 LG에서 눈야구를 하는 몇 안 되는 선수였다.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좁게 잡고 그 존 안으로 들어오는 공이 아니라면 설령 2스트라이크로 몰려 있을지라도 방망이가 거의 나가지 않는 편. 그 때문에 볼넷도 많지만 답답할 정도로 루킹 삼진이 많아, 볼넷/삼진 비율은 LG의 배드볼 히터들과 사실상 큰 차이가 없다. 2010년의 훌륭한 활약으로 LG 팬들은 이후 작뱅에게 3할 타율과 4할대의 출루율, 두자릿수의 홈런을 기대하고 있지만, 타율과 출루율은 어느 정도의 수치는 보여주는 데 비해 장타능력은 X-존의 폐지 및 잦은 무릎부상의 후유증으로 2010년 이후 한동안 기대치를 밑돌고 있었다.

손목 힘으로 잠실 야구장을 넘길 정도로 손목 힘이 좋다. 그러나 생각보다 홈런 갯수는 적다. 2루타 생산력은 좋지만 담장 근처에서 타구가 계속 잡히니 팬들 입장에서는 애가 탔다.

그런데 2014년에는 순장타율(ISO)이 .250이 넘을 정도로 2010년의 장타력을 회복, 아니 능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홈런이 아주 많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밀어쳐서도 홈런이 나올 정도로 타격 기술이 더더욱 좋아졌으며, 특히 2루타를 생산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높은 출루율에, 역대급 타고투저 시즌이기는 하지만 LG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었던 OPS 10할을 8월까지 기록하는 등, 잠실 야구장을 홈으로 쓰는 LG 입장에서는 이상적인 중심 타자였다.

전성기에서 내려오기 시작한 2016 시즌에 제한된 출전 기회로 6월 초까지 타율은 2할 9푼~3할 1푼 사이를 왔다갔다하는데 출루율은 4할 5푼에 이르렀다. 롯데로 이적한 이후로도 선구안만큼은 여전하였고 같은 팀에 이적한 채태인도 역시 출루율이 괜찮아서, 보통 노장 선수는 감독이 투입을 하면 조금이라도 부진할 때 믿음을 주는 게 일반적이어서 계속 출전, 그 사이클 대로 욕을 먹기에 바쁜데 오히려 제한된 출전 기회에도 이 정도 해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할 정도. 즉 이병규는 타율만 받혀 주면 무조건 밥값을 하는 선수였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LG시절엔 확실한 4번타자가 없던 팀의 사정, 아직 정착 못한 세이버메트릭스와 클래식 스탯을 중시한 당대 야구관, 그리고 심각한 유리몸 때문에 상당히 저평가 받아왔지만 롯데 이적 이후엔 풀타임 주전이 아닌 대타요원 겸 제 4의 외야수로 뛰면서 부상을 당하는 빈도가 많이 줄어들었고, 세이버메트릭스가 완벽하게 정착하면서 재평가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시대를 잘못 타고난 선수이기도 한데 현재 메이저리그의 타격 트렌드는 컨택은 평균치 정도만 요구하고 장타, 출루에 극단적으로 치중된 OPS 히터를 선호하는데 이병규는 나쁘지 않은 컨택, 뛰어난 장타력, 자기만의 존이 잡혀있는 뛰어난 선구안 등 세이버메트리션들이 껌뻑 넘어가게할 요소들만 가지고 있는 타자나 다름없다. 현세대에 나왔더라면 부상 빈도가 적다는 가정하에 4번을 제외한 클린업의 3, 5번은 물론 2번타자, 카일 슈와버처럼 극단적인 장타에 치중한 1번타자로도 활용할 가능성이 충분했을 것이다.

4.2. 수비

수비는 외야 전 포지션과 1루를 보았던 경험이 있다. LG 시절에는 코너 외야수(주로 좌익수)를 주로 소화하며 종종 1루수를 봤었다. 그러나 본래 1루수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루 수비는 가히 절망적인 수준. 차라리 과거 이택근의 1루 수비가 나아 보일 지경이다. 1루수로서의 캐치 능력, 타구에 대한 수비 능력 등이 모두 극악이며 가끔은 집중력을 상실한 듯한 어이없는 플레이도 나온다. 2012년 LG 코칭스태프는 그의 무릎 부상 경력과 팀 내 과포화된 외야수 로스터의 정리를 위하여 작뱅을 아예 전업 1루수로 기용할 계획이었으나, 1년간 주전 1루수로서 지옥의 수비력을 똑똑히 본 후 1년만에 다시 외야수로 돌아왔다. 최동수와 플래툰으로 1루를 봤는데, 최동수도 나이 때문에 포구를 제외한 면에서 수비력이 하락하였기 때문에 2012년 LG의 1루수는 상당히 지옥에 가까웠다. 이에 더하여 1루수로 주로 출전하는 것이 생각보다 무릎 상태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외야 수비는 매년 발전하면서 2014년 보통 수준의 외야수비는 된다는 평. 과거 타구 판단에 약점이 있었으나 경험이 쌓이면서 많이 괜찮아졌다. 특히 송구 능력은 외야수로서의 평가가 나빴던 시절에도 장점으로 평가받던 부분으로, 제법 강한 송구를 뿌릴 수 있다. 라뱅이 지명타자로 주로 출전하는 2013년부터는 LG의 주전급 외야수들 중에서는 이진영과 함께 주자의 진루를 억제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수로 평가받았다. 롯데 이적 이후에는 1루 수비는 꽤 볼 만 하다. 물론 LG 시절에 비해서. 이병규 이후에도 LG는 과포화된 외야진 정리와 부족한 1루수 자원을 해결하기 위해 외야수를 1루수로 전업시키는 일을 많이 저질렀다. 김용의[8], 채은성[9] 등. 김현수는 사정상 억지로 나온 것이니 예외.

다만 2014년에 들어서는 박용택을 대신해 무려 중견수로도 간간히 출장했으며, 여기서도 이따금씩 호수비가 나올 정도로 외야 수비력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위에서 언급한 무릎 부상은 과거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을 입은 이후 작뱅의 커리어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고질병으로, 매 시즌 풀타임 출장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 요인이었다. 그나마 이 부상으로 군 면제를 받았다는 것이 나름의 위안이기는 하지만, 결과적으로 심각한 유리몸 체질이 되고 말았으니 선수 개인에게는 몹시 불운한 부분. 2014년 규정 타석을 채울 때까지 규정타석을 채운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부상을 하도 많이 달고 살아서 타격 성적이 좋았음에도 묻히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015년 이후에는 아예 타격 성적도 하향세를 타면서 주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4.3. 주루

매년 부상을 호소하고 고생하는데도 주루 플레이는 상당히 공격적이고 도루시도도 꽤 많다. 그걸 볼 때마다 팬들은 가슴이 철렁할 지경. 안 그래도 햄스트링과 십자인대에 고질병이 있는 선수인데 주루 속도가 똥차급은 아니고 평균 수준은 되지만 앞서 말한 고질적 부상과 유리몸, 그리고 높지 않은 도루 성공률 때문에 제발 안 뛰었으면 하는 선수였다.

5. 여담

  • 잠실만 나가면 20홈런 뻥뻥칠 선수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아마 잠실에서도 풀타임만 뛰었다면 가능했을 것이다.
  • 똥군기의 피해자이다. 2009년 8월 23일, 서승화가 2군에서 이병규에게 배트로 머리를 내려쳐서 부상을 입힌 사실이 드러나 징계를 받았다. 그 업보인지 서승화는 1군 2패만 기록하고 시즌을 마감했다. 문제는 동명이인이자 팀 대선배 큰 이병규의 네임밸류에 밀려 큰 이병규가 피해를 입은 것으로 오해를 사기도 했다.[10]
  • 잘 알려지진 않은 편이지만, 워크에식이 좋지 않은 편이었다. 본인의 유리몸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이것으로 코칭스태프와 마찰을 일으키는가 하면 LG 시절 2군 구리구장에 직관 간 팬들에 의하면 불성실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었다. 그래서인지 당시 박종훈 감독이 부상 회복이 더딘 모습을 보며 빨리 돌아오라면서 분발을 촉구했고, 김기태 감독 또한 이병규의 성실성에 대해 디스하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이병규가 프로 세계에서 여러 족적을 남기며 여러번 억대 연봉을 받을 정도로 성공한 것은 그야말로 놀라울 지경. 어찌보면 게으른 천재과의 마이너 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11]
  • 무릎 부상 탓에 병역면제를 받았을 정도로 무릎이 좋지 않다. 한술 더 떠 유리몸인지라 코치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롯데로 이적할 때 LG 팬들이 농담삼아 하이파이브 함부로 하다가 부상당하지 말라고 했을 정도다.
  • 농구선수 조성민과 절친한 사이다. 같은 한양대학교 02학번 동기동창으로 대학 시절 친분이 생겼고 꾸준히 교류했다고 한다.
  • 믿기 힘들겠지만 이대형과 동갑이다! 물론 이대형이 상당한 동안임을 감안해야겠지만, 당장 같은 1983년생 동갑내기 선수들과 비교해봤을때도 상당한 노안을 자랑한다.
  • 배우 명계남과 닮은 꼴이다. 위에 언급된 대로 잠실만 나가면 20홈런 칠 타자라고 되어 있듯이 담장 근처에서 잡히는 타구가 많아서 담계남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근데 명계남은 52년생.

5.1. 별명

먼저 입단한 이병규가 '라뱅', '큰 이병규' 등으로 불린다면 이쪽은 라뱅보다 나이가 적고 데뷔가 늦다는 점에서 '작은 이병규', 약칭 '작뱅'이라는 별명이 빠르게 자리잡았다.[12] 그외에도 '뢰뱅(벼락같은 스윙, 혹은 뒤에 나오는 뇌뱅의 변화), '뇌뱅((무)뇌주루 병규)' '컵라뱅', '짭뱅(짭퉁뱅규)' 등의 파생 별명이 있었고, 유망주 시절에는 루킹삼진 많이 당한다고 밀랍인형[13]이라는 별명도 붙었다. 또한 큰 이병규의 별명이 ' 적토마'라서 이쪽 이병규는 '작토마'로 부르기도 한다. 여러모로 언론에서도 구분상의 편의를 위해 작뱅이라는 별명을 많이 사용했고, 팬들이 쓰는 별명도 다른 건 잘 안 쓰이고 제일 대표적인 작뱅만 주로 쓰인다.

다만, 선수 본인은 작은 이병규, 작뱅이란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의미가 어찌되었건 '작다'는 수식어 자체가 어떤 방향으로든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니.[14]그래서 2013년에는 빅뱅이라는 별명을 선수단에서 공식적으로 밀어주기도 했는데, 기사 등에서 간간히 쓰이고 팬들사이에 사용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신 2014년에는 큰이병규/작뱅 대신 9번 이병규/7번 이병규 같이 등번호로 구분하기도 했다.

2016년 라뱅이 은퇴하고 소속 팀도 바뀐 후에는 굳이 두 사람을 구분할 필요성이 줄었으므로 언론에서도 이젠 수식어 다 떼고 그냥 이 쪽을 이병규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2015년 초반에는 결장 때문에 담병규라고 불리기도 했다.

2018년 롯데로 이적하고 나서는 초반에 잘 해서 빛병규 또는 빛뱅이라고 불렸지만, 2019년에는 부상 후 실종되면서 "빚뱅"이 되었다.

2021년 4월 선발 출장보다 대타 출장이 많은데 클러치 상황에서 거의 매번 출루하는 엄청난 선구안으로 출루 후 대주자로 교체될 때마다 밥 값하고 퇴근한다고 하여 워라밸+ 작뱅=워라뱅이 되었다.

6. 관련 문서


[1] 02학번. [2] ~6월 23일 [3] 6월 24일~ [4] ~7월 18일 [5] 7월 19일~ [6] 무릎 부상으로 인해 전시근로역에 편입되었다. [7] 필기 및 식사는 오른손으로 하는 것으로 보아 이승엽처럼 야구만 왼손으로 하는 오른손잡이인 듯하다. [8] 다만 김용의는 원래 내야수에서 외야로 전향했다가 다시 돌아온 경우이다. [9] 이쪽은 자의에 의한 것이긴 하다. [10]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큰 이병규는 일본 주니치에서 뛰고 있었을 뿐더러 서승화보다 선배인 만큼 애초에 상황이 맞지 않았다. [11] 어느 정도 말이 되는 것이, 이병규는 신고선수 출신이다. 보통 프로 지명을 받은 선수들도 엄청난 확률 속에서 경쟁을 벌이다 별 다른 활약 없이 조용히 사라지는 경우가 엄청 많은데 신고선수 출신인데다가 워크에식이 이렇게나 좋지 않은 선수였음에도 이런 활약을 보였다는건 그만큼 재능으로 야구했다고 볼 수도 있는 부분이다. [12] 보통 같은 팀의 동명이인 선수를 큰OO-작은OO으로 구분할 때는 키나 체구가 아닌 나이순으로 붙인다. 쉽게말해 큰아들-작은아들 표현과 같은 셈. 타종목을 보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1989년생 정우영을 '큰 정우영', 1999년생 정우영을 '작은 정우영'으로 호칭하기도 하며, 스포츠가 아니더라도 부자 2대에 걸쳐 영국 총리를 역임했던 윌리엄 피트 부자의 경우도 국내에서 아버지 윌리엄 피트는 대(大) 피트, 아들 윌리엄 피트는 소(小) 피트라고 통칭한 바 있다. [13] 사실 루킹삼진이 많은 것은 본인의 존을 설정하고 나쁜 공을 잘 안 건드리려는 작뱅의 타격 스타일 때문이기도 하다. 실제로 타격 기량이 상승하고 주전으로 자리잡아 상대도 작뱅을 만만히 보지 못하게 되자 볼넷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14] 다만 은퇴 후 작은 이병규라고 불린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