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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소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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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 Percussion Rif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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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퍼커션 소총
파일:Lorenz_M1867Green.webp
로렌츠 소총(위) / M1867 그린 소총(아래)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종류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 볼트액션 소총
원산지
[[영국|]][[틀:국기|]][[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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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력
<colbgcolor=#c7c7c7,#353535><colcolor=#000,#fff> 역사 <colbgcolor=#ffffff,#121212><colcolor=#000,#fff> 1867년~ 1878년
개발 C.E. & J 그린
개발년도 1859년~ 1860년
생산 크라구예바츠 군사 기술 연구소
생산년도 1867년~ 1869년
생산수 27,000정
사용국
[[세르비아 공국|]][[틀:국기|]][[틀:국기|]]
사용된 전쟁 세르비아-오스만 전쟁
기종
원형 패턴 1853 엔필드
로렌츠 소총 (M1867)
파생형 M1867
세부사항
탄약 13.8mm
급탄 브리치로딩
단발
작동방식 볼트액션
퍼커션 캡
전장 1,335mm
중량 4.5kg }}}}}}}}}
1. 개요2. 상세3. 파생형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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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에서 개발한 볼트액션 소총. 당대에 우후죽순 나오던 후미장전식 구조의 일환으로, 세르비아 공국에서 제식으로 사용되었다.

2. 상세

19세기 후반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을 통해 전장식 총기에 대한 후장식 총기의 우위가 확실시되자, 각국은 기존에 제식으로 보유하고 있던 강선 머스킷을 후장식 소총으로 대체하고자 하였다. 초창기에는 전장식 구조를 후장식으로 전환하는 정도의 개조가 이루어졌는데, 대표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로렌츠 소총 벤츨 소총으로 개조했고, 미국 스프링필드 M1861 M1865로 개조했다. 영국 또한 예외가 아니라서 기존의 제식 머스킷인 패턴 1853 엔필드를 후장식으로 개조하고자 하였고, 그린 소총 또한 그러한 사례 중 하나이다.

그린 소총은 영국의 C.E. & J 그린 형제가 개발했으며, 초기의 후장식 소총은 브리치블록이나 폴링 블록 등의 방식을 사용한 데 비해 원시적인 볼트액션 방식을 채용했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드라이제 샤스포 소총 같이 탄약에 뇌관까지 붙어 있는 방식이 아니고, 샤프스 소총처럼 구멍이 뚫린 페이퍼 카트리지를 따로 삽탄하고 격발은 퍼커션 캡을 통해 해야 했다. 뇌관과 탄환이 일체화된 당대의 후장식 소총에 비해 명백히 뒤떨어지는 구조였던 탓에 그린 형제의 설계는 금속 탄피와 브리치블록 구조를 사용하는 스나이더-엔필드에 밀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린 형제의 설계는 전장식 총기를 개조하는 데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고 구조도 단순하다는 장점도 있었기 때문에 돈도 없고 시간도 없는 국가에게 알맞은 선택일 수 있었는데, 세르비아 공국이 바로 이에 해당했다. 1865년 당시 세르비아는 오스만 제국의 형식적인 속국으로서 자치권을 인정받은 상태였으나 이웃 국가 및 잠재 적국의 군사력 증강에 따른 안보적 위협에 시달리고 있었다.[1] 그에 따라 세르비아도 자국의 정규군의 현대화에 박차를 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소총을 구매할 예산이 부족했던 세르비아는 기존의 전장식 총기를 후장식으로 개조하고자 했고, 마침 남북전쟁이 끝나면서 무더기로 시장에 풀린 로렌츠 소총 27,000정을 저렴한 가격에 매입하는 데 성공했다. 이 로렌츠 소총을 값싼 가격에 후장식으로 대체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그린 형제의 설계였다.

1867년부터 크라구예바츠의 군사 기술 연구소[2]에서 로렌츠 M1854 소총을 그린 소총으로 개조하기 시작하여 2년 뒤인 1869년에 27,000정의 개조를 모두 끝마치고 M1867이라는 새로운 제식명칭이 부여되었다. 그러나 실전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자마자 그린 M1867은 여러 문제를 드러내기 시작했는데, 탄약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페이퍼 카트리지는 쉽게 찢어지고 날씨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격발 후 찌꺼기가 많이 남아 자주 청소를 해 줘야 했다. 무엇보다 퍼커션 캡은 페이퍼 카트리지 용으로 설계된 물건이 아니었기에 불발율이 심각했다. 결국 M1867 그린 소총은 불발율 50%라는, 제식 소총이라고 믿을 수 없는 처참한 결과를 내고 말았다.

결국 세르비아는 M1867 그린 소총을 2선급으로 도태시키고 금속 탄피를 사용하는 피보디 방식의 M1870을 주력으로 밀어 주기로 했다. 1876년부터 1878년까지 진행된 세르비아-오스만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로 최전선의 병력은 피바디 소총으로 무장한 반면 그린 소총은 후방 병력에 지급되었다. 또한 전쟁 중 6,000정이, 전쟁이 끝난 후 모든 그린 소총이 피바디로 개조되었다. 현재 M1867 그린 소총의 유일한 실물은 베네치아의 해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다.

3. 파생형

  • M1870 세르비안 피보디

4. 참고 자료


[1] 오스트리아-헝가리는 벤츨 소총에서 베른들 소총으로 교체 중이었으며, 오스만 제국도 스나이더-엔필드를 채택한 상황이었다. [2] 자스타바의 전신 쯤 해당 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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