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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1977)/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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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롯데 자이언츠
2.1. 1996~2008 시즌2.2. 2009 시즌2.3. 2010 시즌
3. 넥센 히어로즈
3.1. 2011 시즌3.2. 2012 시즌3.3. FA3.4. 2013 시즌3.5. 2014 시즌3.6. 2015 시즌3.7. 2016 시즌
4. 연도별 주요 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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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롯데 자이언츠, 넥센 히어로즈 소속 우완 투수 이정훈의 선수 경력을 다룬 문서.

2.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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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996~2008 시즌

동래고를 졸업하고[1][2] 1996년 드래프트 당시 연고팀인 롯데 자이언츠에 고졸우선지명으로 뽑혀 입단했다.[3] 이후 1997년부터 1군 경기에서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2002년까지는 크게 눈에 띄는 활약이 없었다.

그러나 이 때 웃지 못할 일화도 있었다. 2002년 6월 롯데는 16연패를 하며 한 달간 단 3승에 그쳤다.[4] 롯데는 매월 월간 MVP를 투타에서 한 명이 받아가는데, 팀이 단 3승이고 그 경기의 승리투수 역시도 제각각이었기에 결국 16연패를 탈출한 경기에서 5회부터 등판해 5이닝 무실점의 완벽투를 한 이정훈이 어부지리로 월간 MVP를 차지했다.

2003년 시즌 초반에는 선발투수로도 뛰었으며, 시즌 후반에는 마무리 투수로 돌려져 입단 후 7승 8패 5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5.20, WHIP 1.60 나름대로 괜찮은 성적을 냈으나 이 시기가 롯데와 프로야구의 암흑기라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 이후에는 그다지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구속은 충분히 빨랐지만 볼끝이 가볍고 제구가 들쭉날쭉해서 쉽게 얻어맞았다. 2008년 01월 22일 좌측 무릎 관절경적 내측 반월상 연골 절제술을 받아, 08시즌은 단 1경기도 뛰지 않았다.

2.2. 2009 시즌

2009년 시즌 초반에 갑자기 150km/h를 던져 그를 기억하는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자신의 투구폼을 바꿨더니 구속이 증가했다고 하던데, 아무리 1년동안 재활 훈련을 충실하게 했다지만 투수가 나이 32살 먹고도 갑자기 구속이 증가할 수가 있는지 롯데팬들은 의아해하였다.

특히 1-2점차에 주자가 나와있는 터프 상황을 잘 막아내어 사실상 불펜 에이스나 마찬가지였다. 존 애킨스가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을 때나 연투를 했을 때는 애킨스 대신 마무리 투수로 나오기도 했다.

2009년 7월 16일 한화의 경기에서 연경흠에게 프로야구 통산 20,000번째 홈런을 허용하기도 했다.

2009년 57경기 74⅓이닝 1승 3패 9홀드 8세이브 4블론세이브, 평균자책점 3.03, WHIP 1.41을 기록해, 데뷔 후 최고의 시즌을 기록했다.

시즌종료 후 2009년의 활약으로 연봉이 대폭 오를 것이라는 예측은 있었으나 구단 측에서 3,000만원 오른(약 80% 인상) 6,600만원을 제시, 8,000만원을 요구한 이정훈 선수와 큰 시각차를 보였다. 구단은 그를 전훈명단에서 제외하고 그에게 폭언을 하는 것으로 응수. 결국 이정훈 선수는 연봉조정신청을 했으나 구단은 100% 인상액인 7,200만원을 기습 제시하고 KBO도 만장일치로 구단의 손을 들어주게 된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갈매기 마당에서는 팬들이 이러한 처우에 불만을 표시하며 희망 연봉과의 차액 800만원을 모금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1월 21일 오후 첫 글이 작성된 후 하루도 안 되어 200만원이 모였었다. 만약 이정훈 선수가 받지 않을 경우는 기부하겠다고 했었다. 기사보기 최종적으로 600만원가량 모아졌다고 하며 이 돈은 유소년 선수들에게 야구용품을 후원했다고 한다.[5]

2.3. 2010 시즌

2010년 정규시즌 기록은 43경기 46이닝 3승 9패 1세이브 2블론세이브 5홀드 평균자책점 6.85 WHIP 1.63.

2010년 10월 5일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2010년 준플레이오프 5차전에서 팀이 스코어 0:2로 지던 3회말 무사 1루, 1스트라이크 2볼 상황에서 2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⅓이닝 16투구수 2피안타 1볼넷 3실점 3자책점으로 부진한 피칭을 보이면서 더더욱 까였다. 특히 부산의 야자 시간에 라디오를 듣는 학생들이 있는 교실에서 뜬금없이 욕이 나올 때에는 이정훈이 올라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날 팀은 스코어 4:11로 대패하여 시리즈 전적 2연승 뒤 3연패로 탈락하고 말았다.

이정훈은 2010년 준플레이오프에서 2경기 2⅔이닝 3피안타 2볼넷 1몸에 맞는 공 3실점 3자책점 평균자책점 10.13을 기록했다.

시즌 종료 후인 11월 2일자 기사에 의하면 시즌 내내 무릎 부상이 있는 상태로 던졌다고 한다. 그리고 시즌 종료후 구단에 정밀검진을 요청했지만 구단은 무시...이후 이정훈 선수 본인이 개인적으로 병원에 받은 소견은 오른쪽 무릎 연골 파열. 그러나 역시 막장 프런트 어디 안 가듯이 구단에서 수술일정을 감독 취임식 이후로 연기해버리고 만다. 관련기사

3. 넥센 히어로즈

2010년 12월 20일, 박정준과 함께 넥센 히어로즈로 트레이드됐다. 상대는 고원준. 연봉협상 시의 트러블과 선수협활동으로 인해 구단측에 밉보인 것이 계기가 되었다는 분석이다. 참조 기사

3.1. 2011 시즌

2011 시즌 시범경기에서 상당히 불안한 모습과 함께 부진을 면치 못하였으나, 정규시즌이 시작된 후로는 불펜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가면서 자기 역할 정도는 해주었다. 4월 5일날 두산戰에 첫 등판해 5타자 상대로 1⅓이닝 무실점을 보여 불펜으로 꽤 활약했다. 그리고 4월 9일 7회 2번째 등판을 했는데, 하필 상대가 바로 롯데였다. 6:4의 상황에서 2이닝을 잘 틀어막았다. 이 날 성적은 2이닝 1실점(0자책) 2삼진 1볼넷. 4월 21일 두산전에서 무너진 것을 빼면 4월 24일까지 잘 틀어막았다.

4월 28일에는 계투로 등판해서 몸에 맞는 공 하나를 주며 밀어내기 실점을 하며 문성현의 승리를 날리고 말았다. 강정호가 잡은 공을 송구하여 아웃을 잡아내기만 했어도 한화의 공격이 끝이었기에 더욱 아쉬운 상황.

그 이후 구위가 갑자기 죽었는지 2군에 내려갔다가 5월 29일 콜업된 뒤 무너지던 조작범 김모씨의 뒤를 이어 5회초에 등판, 단 1개의 공으로 2사 주자 1, 3루의 위기를 막아버리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이 날 6회초에는 무난히 막았으나 7회초 들어 갑자기 안타를 연달아 맞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5회초 위기를 잘 넘긴 모습 덕에 크게 문제시되지는 않았다. 이미 1이닝 이상 잘 막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후반기 와서는 완전히 무너졌다.

3.2. 2012 시즌

시즌 초반 이보근이 흔들릴 때 그 역할을 안정적으로 잘 막았다. 5월 초에 담이 걸리면서 내려가자 불펜의 공백이 느껴졌을 정도.

6월 9일 대전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와의 경기에도 연장 10회부터 등판에 2이닝을 볼넷 1개만 내주며 삼진 3개 무실점으로 깔끔하게 막아냈고, 팀이 연장 12회초에 결승점을 뽑으면서 4:3 승리를 차지하면서 시즌 3승 째를 챙겼다.

6월 중순부터는 구위 자체가 떨어지고 제구마저 흔들리면서 안타와 사사구를 양산해내는 모습을 보였다.

7~8월 완전히 불타오르고, 2군에서 몸 좀 추스리고 팀이 4강 경쟁에서 멀어진 9~10월경에 비로소 박성훈, 한현희와 팀의 필승조로 활약하며 일명 박한이 라인을 구축했다.

2012시즌 최종 성적은 40경기 44이닝 평균자책점 4.67. 필승조로 부르기 민망한 성적이지만, 오재영, 마정길, 이보근 등의 기존 불펜이 무너졌던 넥센에선 박성훈, 한현희 다음으로 좋은 성적이며 2012 팀 홀드 1위이다.

3.3. FA

이미 시즌 전부터 '내 권리를 무조건 행사하겠다'고 공언했던대로 시즌 종료후 FA 신청을 하였다. 보상금으로만 영입할 수 있는 NC 다이노스가 있기 때문에 부담없이 신청한 듯 하다.

11월 13일 넥센과 계약 기간 2년에 계약금 2억, 연봉 매년 1억, 옵션 최대 1억 총액 5억의 FA계약을 체결하였다. 이정훈, 넥센과 총액 최대 5억원에 FA 계약 5억은 힘들다고 예상했던 팬들 사이에선 넥센이 최대한 선수 예우를 해줬다고 놀라워하며 선수 본인도 구단 관계자와의 두번째 미팅에서 도장을 찍었다고 한다. 계약 이후 가족과 함께 살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하였고, 현재 김포에 집을 얻어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3.4.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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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성적 56경기 69이닝 5승 2패 11홀드 1세이브, ERA 3.00로 마감하였다. 2009년 이후로 개인의 커리어 하이 성적이며, 본인 통산 첫 단일 시즌 두자리수 홀드 달성 및 500경기 출장을 이뤄낸 해였고, 6월 8연패 당시엔 이보근과 함께 팀의 추락을 저지했고 가을이 오자 필승조로도, 롱 릴리프로도 맹활약했다.

3.5. 2014 시즌

4월 1일 홈 개막시리즈 vs 두산전. 9 대 3으로 리드하고 있던 8회 등판하여 안타 하나를 내주고 깔끔히 막았다. 최고구속은 142km로 14시즌 활약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4월 8일 vs KIA전. 조기강판된 오재영의 뒤를 이어 등판. 1이닝 8실점 7자책의 불쇼를 저질렀다. 다음 날인 9일에 오재영, 최상덕 투수코치와 함께 2군으로 내려갔다.

그간 몸을 잘 추스리고 5월 1일부터 2군 경기에 등판. 5월 10일자 기준으로 3경기 4.1이닝 ERA 0.00을 기록중이다. 조만간 콜업이 예상된다.

5월 23일과 25일 삼성전에서 2.1이닝 동안 1사사구만 내주며 잘 막나 싶었는데, 27일 SK전에서 1이닝 2실점을 기록하며 평균자책점이 치솟았다. 30일 LG전에서는 1이닝을 공 단 9개로 막으며 마정길과 박성훈과는 대비되는 산뜻함을 보여줬다.

그러다 1군에서 말소되었고 6월 4일 롯데와의 2군 경기에 출장한 것을 마지막으로 경기에 나오지 못했다.

7월 1일 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는 기사가 떴는데, 놀랍게도 인대가 13년전에 이미 끊겨있었다고. 재활해서 복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재활을 위해 임탈처리 되었던 건지 2014년 10월 홈페이지 명단에서 제외된 상태였다가 11월에 다시 복구되었다.

3.6. 2015 시즌

그후 전반기 무렵부터 2군에서 감을 익힌다는 소식만 들리다가 드디어 8월 19일 오재영과 같이 등록됐다. 그리고 그날 경기에서 8회초 7점차의 유리한 상황에서 올라왔는데... 819 대첩 참조.

3.7. 2016 시즌

나이 마흔에 유망주 교육 캠프를 갔다왔다....가 시즌을 2군에서 시작했다. 그러다 7월 1일날 넥센 추격조 김정훈 - 박정준 등의 눈썩는 피칭으로 10-3으로 이기던 경기를 10-7까지 따라잡히고 마무리 김세현을 끌어내게 되자, 7월 2일 전격적으로 1군에 콜업되었다.

7월 10일 NC 다이노스 3연전 마지막 경기에 나와 1,016일 만의 홀드를 기록했다. 구속은 그다지 빠르지 않았으나, 베테랑다운 완급조절과 볼배합으로 NC 타자진을 안정적으로 틀어막았다.

7월 29일 삼성전에서 12회에 나왔으나 구자욱- 이승엽에게 안타를 허용한 후 계속 볼넷을 던지는 모습을 보였다. 넥센은 이날 밀어내기 볼넷으로 5:6으로 패했고, 이정훈도 패전의 멍에를 썼다.

이렇게 1군 15경기에 등판하여 3패 1홀드 ERA 7.00을 기록하고 시즌 후 넥센 히어로즈에서 방출당했다.

본인은 딱 1년간만 뛰고 마흔을 채우고 은퇴하고 싶다고 밝혔지만, 불혹에 가까운 나이인데다 최근 3년간 기량저하도 뚜렷했기 때문에 받아 줄 팀이 있을지 의문. 벌써 kt와 한화에서 물을 먹었단 언급도 있으니... 특히 한화의 경우 김성근 감독이 노장도 잘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하기에 가능성이 점쳐졌지만, 박종훈 전 LG 감독이 NC 프런트에서 한화 단장으로 스카웃되면서 김성근 감독은 1군 운영 외의 모든 권리를 프런트에 내주었고, 프런트에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며 한화행 역시 무산되었다.

이렇게 재취업에 실패하고 선수생활을 마무리하면서, 2016년 시즌이 그의 커리어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프로 데뷔 이후 20년간 528경기에서 774.1이닝을 던지며 ERA 4.75의 통산 성적을 남겼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WHIP
1996 롯데 1군 기록 없음
1997 15 27⅔ 1 0 0 0 6.51 31 5 13 14 1.52
1998 35 71 3 2 2 0 4.44 69 4 37 26 1.39
1999 10 17⅔ 2 1 1 0 7.13 21 3 13 8 1.93
2000 10 14 1 2 0 0 6.43 15 0 11 10 1.86
2001 7 5 0 0 0 0 9.00 9 1 5 2 2.60
2002 19 31⅓ 1 3 0 1 6.32 42 1 12 19 1.60
2003 44 110⅔ 7 8 1 2 5.20 126 13 59 67 1.60
2004 30 58 1 4 0 0 4.19 68 7 28 33 1.57
2005 54 75 2 3 1 5 4.44 86 6 35 46 1.52
2006 33 43⅓ 1 3 0 4 4.15 46 1 18 22 1.41
2007 7 7⅓ 0 0 0 0 2.45 9 0 4 8 1.77
2008 1군 기록 없음
2009 57 74⅓ 1 3 8 9 3.03 77 5 36 50 1.41
2010 43 46 3 9 1 5 6.85 56 4 23 27 1.63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WHIP
2011 넥센 44 52⅓ 3 3 1 7 3.78 50 1 25 31 1.32
2012 40 44⅓ 4 4 1 8 4.67 45 2 22 32 1.40
2013 56 69 5 2 1 11 3.00 69 5 26 29 1.35
2014 7 7⅓ 0 0 0 0 12.27 15 2 5 2 2.73
2015 2 2 0 0 0 0 4.50 3 0 0 0 1.50
2016 15 18 0 3 0 1 7.00 32 3 5 8 2.06
KBO 통산
(20시즌)
528 774⅓ 35 50 17 56 4.75 870 63 377 434 1.53

[1] 1998년 해체한 동래고 야구부가 마지막으로 배출한 주전급 프로선수다. 96년 신인 드래프트 두산 12번으로 입단한 김용혁, 해체 당해인 98년에 지명외로 롯데에 입단한 김정호, 이민재는 별다른 활약 없이 은퇴했다. [2] 원래는 대학에 진학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박명환야구TV에 출연해서 밝힌 일화로 경남중을 나와 경남고가 아닌 동래고에 간 것도 연세대에 가고 싶어서였다고, 동래고 출신으로 문동환 박정태 등이 있었던 것도 한몫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고3 때 진학 문제가 잘 풀리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나간 봉황대기에선 박명환의 충암고와 맞붙어 본인은 딱 1구를 던졌고 그게 콜드게임 결승점이 되면서 경기가 끝났다. [3] 이때 본인 공인 계약 조건은 롯데 2차 1번 계약금 2500만원, 삼성은 이보다 뒷순번에 총액 1억을 불렀는데 부모님과 상의 후 롯데를 선택했다고 한다. [4] 이 와중에 13연패째를 한 이후 롯데는 우용득 감독을 경질하고 백골퍼를 신임 감독으로 임명한다. [5] 이정훈에게 글러브 스폰서를 해주던 중소용품 업체 사장님을 통해 진행했으며 이정훈은 아직도 그 부분에 감사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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